CAFE

[[은빛카린]]-피의 노래- Three Night. 움직이는 운명의 수레바퀴 ~가면 속 숨겨진 진의~[16]

작성자은빛카린|작성시간09.07.18|조회수96 목록 댓글 14

 

 

-피의 노래- 전체목록 보기

 

 손이 맞잡아지자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 갔다. 그리고 맞잡은 손이 아닌 다른 손이 ‘왕’의 목을 거세게 졸랐다. 날카로운 손끝이 목을 조여들어 붉은 물방울의 피가 맺히고 생채기가 생겨났다.

 그러나 ‘왕’은 미동조차,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아니, 꼼짝하지 못했다. 이미 ‘악마’에게 정신의 자유를 빼앗겼기에.

 「그래, 계약을 하도록 하지.」

 인형처럼 멀뚱히 서있으며 안색이 변해 가는 ‘왕’을 비웃으며 ‘악마’는 ‘왕’의 목을 조였던 손을 서서히 풀었다. 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빙그레 돈 후에 그는 방 안을 여유로운 걸음으로 걸으면서 여유를 즐겼다.

 하지만 그것도 금세 지겨워졌는지 변덕스럽게 악마는 왕의 곁으로 다가가 그의 눈앞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딱―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손가락을 튕기자 왕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아왔다.

 「그대에게 돌려주지. 그대의 왕비를.」

 자신도 모르게 힘에 이끌려서 이제야 정신을 차린 왕은 정신을 차림과 동시에 살갗을 파고든 붉은 생채기와 눈앞에서 날카로운 손톱에 피를 묻힌, 자신을 ‘악마’라 칭한 자의 모습에 얼굴을 찡그렸다.

 사정을 봐주지 않고 죽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사정없이 그은 생채기가 서서히 선명해지는 정신과 함께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붉게 비치는 빛으로 인해 붉게 물들은, 목의 생채기를 감싼 한 손에 비릿한 냄새와 함께 축축한, 불쾌한 감촉이 스며들었다.

 「네 놈은 대체?」

 왕비를 잃은 슬픔과 좌절이 가져와 희미해진 정신이 아픔과 함께 돌아오고 있었다. 왕으로서의 올바른 판단력과 자신의 자존심을 아무렇지도 않게 짓밟는 이 악마라는 사내에 대한 분노가 깊숙이 밀려오고 있었다.

 「윽.」

 그러나 그런 왕의 분노는 신음소리와 함께 금방 사그라들었다. 아니, 사그라들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소리 없이 자신의 코앞에 선, 얼음처럼 시린 핏빛의 붉은 눈이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저 자신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건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발이 묶여버린 것처럼 손가락 하나, 모든 몸이 굳어 버렸다.

 자신을 향해 위험하게 뻗어오는 붉은 달빛에 물든 붉고 창백한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저 간단히 손을 들어 쳐내면 되는 간단한 행동조차 머릿속으로는 맴돌고 있었으나,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더 이상 나를 자극하지 마, 인간. 계약 전이라면 모르겠지만 계약을 한 이상 명령을 할 수 있는 건 나다.」

 생채기를 당장이라도 더 깊숙이 확 그어버릴 듯이 날카로운 손톱을 목에 갖다 대고 빙그레 미소 짓는 그를 보면서 왕은 진심으로 공포를 느꼈다. 이정도로 위압감을 느낄 정도의 강함을 가진 사람은 최소한 한 명도 왕의 주위에는 없었다.

 「뭐, 좋다. 정도가 좀 심했던 거 같군. 이래 봐도 나의 계약자건만.」

 말과 함께 차갑게 식어 오랜 세월의 노기가 섞인 눈동자의 시선에 담긴 감정이, 지금까지의 모든 감정이 새로운 가면을 바꿔 쓴 것처럼 사라져갔다. 목덜미의 생채기에 날카롭게 세웠던 손톱도 이제는 내려져 원래의 위치로 돌아갔다.

 그제야 손쉽게 움직여지는 손가락에 왕은 위화감을 느끼면서 온 몸을 조금씩 움직여보았다. 손쉽게 움직이는 신체의 움직임에 왕은 인상을 찌푸렸다.

 좀 전에 눈앞에 서있던 정말 ‘악마’라 칭할 만큼 악마와 같던 모습과 지금의 경계를 푼 모습이 같은 사람의 모습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달랐다.

 또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눈앞의 자칭 ‘악마’라는 자에 대한 의심만 더 커져가고 그의 정체에 대한 의구심만 더 커져만 갔다.

 「슬슬 계약을 이행해주어야겠군. 슬슬 인간이라면 의심이 극에 달할 즈음이니까.」

 그런 마음을 읽었는지 핵심을 찌르는 악마의 말에 왕은 무심결에 움찔하고 말았다. 그러자 그런 모습을 보고 악마는 자신과는 정반대되는 존재, 천사처럼 순수하게 웃음을 흘렸다. 찰나의 꿈과 같은 모습이었다. 마치 금세 걷히는 안개처럼.

 정말 여러 모습을 당연하게 가진 듯한 이 모습에 더더욱 왕은 마음 깊숙이 부터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여러 각도에서 빛깔을 조금씩 바꾸어 어느 것이 진짜모습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수정. 그 수정과도 같이 이 악마라는 자는 광기어린 모습으로 자신을 교모하게 조였다, 놨다를 반복하며 혼란스럽게 만든다.

 초조함과 팽팽한 긴장감에 왕은 마른 침을 삼켰다. 아무런 대꾸도 판단도,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빈 것처럼 되어버려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이 자가 하는 행동을 조용히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왕은 그가 방 안에 안치해둔 왕비의 관으로 다가가 관을 열어 왕비에게 손을 뻗는 것조차 막을 수 없었다.

 끼익―.

 아무렇지도 않게 뻗은 손의 손길과 함께 너무나도 손쉽게 관의 뚜껑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면서 열렸다. 그다지 유쾌하지 않는 소리에 그는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윽고 관 안에 자리 잡은 시신에 그는 무신경한 표정으로 관의 가장자리에 걸터앉고는 가치를 평가하는 냉정한 눈초리로 관 안을 바라보았다.

 시체의 상태는 무척이나 좋은 편이었다. 이곳의 기후가 북방이고 겨울인 것도 한 몫하고 있었지만 시체를 보존하기 위해 사용한 것들도 한 몫하고 있었다.

 시신은 최대한의 죽은 직후의 상태를 유지하며 한 왕국의 왕비라는 이름에 걸맞게 치장되어있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죽은 시체 냄새와 더불어 얼어붙어 차갑게 핏기를 잃은 피부는 그녀가 죽었음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그럼 그대의 소원을 이루어주지.」

 홀로 남겨져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는 왕의 모습을 보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그토록 바라왔던 그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멍청한 왕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는 벌써부터 나오려는 조소를 참고는 왕비의 시신으로 손을 뻗었다.

 시체인 만큼 새하얀 두 뺨은 무척이나 차가웠다. 붉던 입술도 생기를 잃어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살아있을 때 느껴지는 심장의 박동소리도 이제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짧고도 허무한 죽음. 투명한 막을 경계로 한 생과 죽음이라는 것.

 「정말 허무해. 인간이라는 것은 말이야.」

 그의 흔들림 없던 눈에 아주 잠깐이지만 슬픈 빛이 감돌고 입가의 조소가 사라졌다. 누구나 마음 속 깊이 가지고 있다는 일말의 양심이라는 것이 그에게도 잠시나마 생겨났는지도 모르리라.

 「쿡. 푸하하하.」

 문득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던 그의 손 틈사이로 짙은 붉은 빛으로 물든 눈동자가 드러났다. 그리고 그는 그 손 틈 사이 눈동자로 왕비의 시신을 응시하더니 얼굴을 감싸던 손을 치우고 입가에 미소를 짓더니 이윽고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순식간에 사라지는 시간을 살아가면서 발버둥치고 살아가는군. 인간이라는 존재는―.」

 관을 열어 관 가까이 서있는 자신을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왕을, 그는 바라보면서 혼잣말인지 그에게 건네는 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에 왕은 잠깐 흠칫하고는 다시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왕을 잠시나마 바라보고는 다시 그는 시선을 관으로 옮겼다. 그리고 몸을 숙여 시신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안녕하세요? 은빛카린입니다!

 

백만년만의 글입니다.ㅠ 이번엔 진짜로 본편글이에요!

 

실습땜에 컴퓨터에 손을 못 대다보니 실력이 많이 줄었습니다.ㅠ

 

재미있으실런지 모르겠네요.ㅠㅠㅠㅠ

 

ps. 다음 편이 또 언제 업로드될 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ㅠ

 

감상평, 오타, 묘사지적 덧글 환영합니다!

 

이제 저작권법으로 인해 배경음악은 없습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7.20 오래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ㅎㅎ 다음편 빨리 올리도록 할께요.
  • 작성자[산스]風〃엘 | 작성시간 09.07.22 오랜만이야, 언니! 악마니까 계약을 어기진 않고 이용을 해먹겠지...? 다음편 기대할게~ 하여간 저작권.
  • 답댓글 작성자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7.22 악마가 인간을 유혹하는 이유는 뭔가를 대가로 받으려고지...[...]
  • 작성자[렘므]Joyce★ | 작성시간 09.07.25 카린씨의 소설이 정말 오랜만인것 같네요 !! 그래도 손색없는 카린씨의 묘사 실력에 다시한번 놀라며 다음편을 기대할게요 ! ^^
  • 답댓글 작성자은빛카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09.07.27 오랜만에 뵈요.ㅠ 다음편도 열심히 쓰고 싶지만, 실습땜에 바빠서요. 주말에 간간히 쓰고 있어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