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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고 심리학

"다른 사람의 몸을 자기 몸의 일부로 여길 수 있을까?"

작성자Michum미(국)춤|작성시간24.02.01|조회수0 목록 댓글 0

탱고의 과학적 해석 "다른 사람의 몸을 자기 몸의 일부로 여길 수 있을까?"

알렉교사그레이스 2019. 1. 23

https://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atwithgrace&from=postList&categoryNo=8

다른 사람의 몸을 자기 몸의 연장으로 볼 수 있을까?

 

보디스키마(신체도식)’는 유동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자기라는 개념과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바디스키마의 개방성과의 관계는 최고의 수준까지 가기 위해 서로 얽혀서 추어야 하는 탱고가 상호의존성을 지향하는 문화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여러 가지 춤의 형태 가운데 탱고는 독특하고도 강렬한 끌어당김이 있다.

탱고는 서로 다른 목적과 의도를 가지고 있는 서로 다른 몸과 마음을 가진 두 명의 개인을 등장시킨다.

그 둘은 때로는 가깝게 끌어 안고 때로는 밀어내면서, 몸은 둘이지만 하나의 마음이 되어 상대의 풍부한 음악적 상상력에 반응하며 함께 순간의 움직임을 만들어 장식하고 과시 한다.

 

이러한 정신적인 어우러짐의 개인적 승화가 느껴지기에, 탱고는 춤을 추는 사람이나 춤을 지켜보는 사람 모두에게 매력적으로 보인다.

탱고의 역동성에 대해 연구해온 사회문화인류학자 마이클 키멜은 탱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춤을 추는 3분 동안, 댄서들의 개성은 명상의 합일 상태에 용해되고 그들은 황홀감으로 대화를 나눈다. 시간과 공간은 춤을 추는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그 특별한 존재의 순간에 묻혀버린다.”

 

탱고는 미적인 축복 그 이상을 보여준다.

대단한 기술을 요하는 모든 형식의 예술처럼 탱고 또한 춤의 기술을 배우고 다듬는 드라마틱한 과정을 통해 인간 정신의 잠재성을 드러내며 유혹적이고도 과학적인 퍼즐을 선사하고 있다.

그러나 비로소 최근에 들어서야 한 개인이 사교 댄스와 같은 활동에 필요한 일종의 퓨전(상대와 어우러짐)을 어떻게 성취하는가, 그리고 그러한 얽힘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은 어떤 것이 있을까에 대해서 과학자들이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퍼즐의 중심에는 바디 스키마라고 하는 것이 있다.

바디 스키마란 어딘가에 부딪치지 않고 공간을 누비고 다닐 수 있도록 하고, 코가 가려울 때 자신의 코를 무심결에라도 후려치는 일 없이 긁을 수 있게 하고, 커피 잔을 향해 팔을 뻗을 때 어떻게 하면 커피를 쏟지 않고 재빠르게 들어 올릴 수 있는 지 그냥 알 수 있는 신체적인 자신을 표현하는 정신적인 도식을 말한다.

우리가 행하는 이러한 모든 행위들이 가능한 것은 우리의 뇌가 다양한 감각 정보를 사용해 우리 몸의 경계 부위들을 구분하는 법을 배워 그 경계에서 일어나는 자극들에 대한 뛰어난 주의력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10년 이상 꾸준하게 바디 스키마가 우리가 교류하는 대상들과 쉽게 결합할 수 있다는 증거들을 발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일정기간 어떤 도구를 사용하고 나면 그 도구의 끄트머리에 대한 시각적인 자극에 매우 민감해져 마치 손끝으로 자극을 받는 것처럼 반응하게 된다.

즉 우리의 뇌는 그 도구를 손의 일부처럼 다루게끔 학습된다.

따라서 우리가 스키 타는 것이나 테니스 치는 것이 익숙해지면 테니스 라켓이나 스키가 더 이상 외부의 물체가 아니라 신체의 일부처럼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물체가 아닌 다른 사람 또한 자기 몸의 일부처럼 느껴질 수 있을까? 최근의 한 신문에 테이머 솔리만이라는 심리학자와 그의 동료들은 도구를 기반으로 한 연구에서 영감을 받아 물체와의 교류가 신체 경계의 개념으로 확장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신체적인 행위가 타인의 몸을 자기 자신의 바디 스키마와 통합시킬 수 있는 지 탐구한 기사가 났다.

 

그들은 실험참가자들을 세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손잡이 두개가 달린 도구를 사용해 실험자와 함께 양초를 톱질하도록 했다.

다른 그룹의 사람들은 이 일을 혼자서 시행하도록 하거나 실험자가 하는 것을 그냥 구경만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 그룹의 참가자들은 실험자의 톱질하는 손이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확장되는 느낌에 대한 두가지의 테스트 가운데 하나를 시행했다.

 

첫번째 테스트는 참가자들이 사용한 도구의 끄트머리로부터 전해지는 자극에 대한 민감성을 보여준 도구에 기반한 실험에서 착안한 것으로 참가자가 실험자와 함께 일을 수행했을 때 상대의 손에서 느껴지는 시각적 자극에 대한 반응의 민감성을 보여주는 테스트였다.

참가자들은 자신의 발 밑에 페달을 가능한 한 빨리 밟도록 지시받았는데, 가령 엄지에서 진동을 느끼면 뒷꿈치 쪽으로, 검지에서 진동을 느끼면 발가락 쪽으로 재 빨리 페달을 밟아야 했다.

또한 진동을 느끼기 직전에 그들은 실험자나 자신의 엄지나 검지에서 번쩍이는 불빛도 볼 수 있었는데 자기의 손 쪽에서 번쩍이는 불빛은 보통 진동의 감지를 느리게 하였다. 왜냐하면 손 근처에서 발생하는 빛 자극은 진동하는 감각과 바로 통합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 문제는 참가자들이 이와 비슷한 방해를 상대의 손으로부터도 느꼈냐는 것인데, 그들은 상대와 함께 동작을 수행하였을 때만 방해를 느꼈다고 답했다.

 

두번째 테스트는 참가자들의 행위(참가자들의 인식이 아닌)가 이전에 함께 작업한 상대방의 행위에 의해 영향을 받게되는 지에 대한 실험이었다.

참가자들은 실험자가 타원을 그리는 것을 보면서 자신들은 직선을 그리는 실험이었는데 전에 실험자와 함께 톱으로 양초를 잘랐던 사람들은 그 일을 혼자 했거나 지켜보기만 했던 사람들보다 선을 더 둥글게 그렸다.

 

이 두 가지의 테스트는 참가자들이 협업적 활동에 가담할 때 자신의 바디 스키마를 확장시켜 상대방의 신체 일부와 결합하려고 한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물론 협업을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독립성:의존성의 정도를 측정하기 위해 참가자들로 하여금 설문조사를 작성하게 했다. 북아메리카 및 서부유럽에 있는 국가의 사람들처럼 독립성이 강한 사람들은 나는 나만의 독특함, 그리고 내가 여러 방면에서 남과 다르다는 것을 즐긴다.”와 같은 설문에서 라는 답을 했고, 좀 더 의존성이 강한 아시아인들은 나의 행복은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행복에 의해 좌우된다.” 와 같은 항목에서 라고 많이 답했다.

 

함께 톱질에 참여한 참가자들 가운데에서도 의존성 쪽으로 좀 더 치우친 사람들은 상대방에게도 더 많이 신체적으로 결합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다시 말하면, 개인적인 성향이 상대방을 자신의 일부로 얼마나 쉽게 확장시킬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자기라는 개념과 타인을 향해 열려 있는 바디 스키마의 개방성과의 관계는 최고의 수준까지 가기 위해 서로 얽혀서 추어야 하는 탱고가 상호의존성을 지향하는 문화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우연이 아닐 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알려준다.

- 여기에서 또 하나 궁금한 점이 있다.

자신과 타인 사이의 감정적인 경계 또한 신체의 자각과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까?

사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다.

폴 레디쉬의 연구를 보자. 사람들에게 박자에 맞추어 함께 움직이라고 했을 때 그렇지 않았던 경우(다른 박자에 움직이라든가, 혹은 박자는 같지만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라고 했을 때)보다 더 상호의존적이 되어 더욱 협력적으로 움직였다.

 

탱고가 그저 단순한 춤의 형태라기 보다는 두 인간 관계의 체화된 무대라고 표현하는 것에 누구나 동의하지는 않을테고, 과학적으로 그것을 입증하는 데에도 시간이 좀 걸린 것도 사실이지만 이제 이러한 로맨틱한 생각에 과학적 설명이 더해져 탱고라는 예술에 대한 좀 더 심오한 이해가 가능하게 된 것 같다.

출처: scientificamerican.com (Julie Sedivy 브라운 대학과 캘거리 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아온 인지과학자이자 마음의 언어라는 책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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