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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좋은 생각)

知者樂水 仁者樂山

작성자山房山|작성시간23.01.23|조회수19 목록 댓글 0

유학자는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게 전부일 것이란 착각은 조선의 원리주의 유학자 탓입니다. 유학자는 원래 자연의 순리를 깨닫는 일에 소홀함이 없었습니다. 知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 공자의 말입니다. 공자는 자연에서 인간을 보았습니다.

조선시대 최초 요리서는 <수운잡방>입니다. 유학자 김유가 썼습니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안 되는 것처럼 만든 것은 조선 후기 원리주의 유학자들의 농락입니다. 음식을 하려면 자연을 알아야 합니다. 유학자에게 음식을 마련하는 일은 곧 자연 공부였습니다. 유학자 김유는 요리를 하는 진정한 유학자였습니다.

조선 유학자 유장원이 쓴 <상변통고>라는 책이 있습니다. 유교식 예법을 정리해놓은 책입니다.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후한서》: 안제(安帝)가 조칙을 내리기를, “무릇 천신하는 새 음식이 제 절기에 맞지 않은 것이 많아서, 혹은 덮어 키워 억지로 익히고, 혹은 땅을 파서 싹을 틔우기도 하여 맛이 제대로 나기도 전에 자라나는 것을 꺾어내니, 어찌 철에 순응하여 사물을 육성하는 도리이겠는가? 지금부터 제사를 받듦에는 모름지기 철에 맞추어 올려라”고 했다.

유교의 제사는 유학자가 자신의 배움을 선현에게 보고하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자연이 이러하니 이런 음식을 해서 올립니다' 하는 게 유교 제사 음식의 본디 정신입니다.

유교식 제사가 우리 민족의 전통인 양 자리를 잡았습니다. 나쁠 것은 없습니다. 문제는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유교는 원래 남성의 종교입니다. 그래서 유학자 남성끼리 제물을 마련하고 유학자 남성끼리 제를 올리는 게 유교의 전통입니다. 여기에 여성이 참여하게 된 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다들 양반이 되면서 유교식 제사의 본래 의미가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전통 좋아합니다. 특히 한 유학 한다는 남성분들이 전통 참 좋아합니다. 여성에게 음식하는 거 맡겨놓고 전통 운운하면 안 됩니다. 남성이 하면서 전통 운운해야 합니다. 그게 유교의 전통입니다.

시장에 가서 음식 재료를 사오고 이를 다듬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자연을 알게 됩니다. '지금의 계절이 이러니 이런 음식 재료가 있구나' 하고 자연의 순리를 깨닫게 됩니다. 이게 진정한 유교의 정신입니다.

공자가 대한민국에 다시 태어났으면 명절마다 차례상 준비를 위해 장바구니 들고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이게 제철 것이니 어떠니 할 것입니다.

전통을 차례 음식 그 자체에서 찾지 마십시오. 그런 것에 전통이 있지 않습니다. 차례 음식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자연을 깨닫게 하는 것이 유교의 전통입니다.


-황교익- 국내 최초의 맛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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