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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실록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정조실록(37권17년)

작성자山房山(榮國)|작성시간09.12.14|조회수245 목록 댓글 0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12). 정조실록 

 

정조 37권, 17년(1793 계축 / 청 건륭(乾隆) 58년) 6월 24일(을유)

 

영의정 홍낙성이 사직하나 받아들이지 않다

영의정 홍낙성이 상소하여 사직하니, 비답하기를,

“어제의 유시는 바로 치사(致仕)한 노대신의 복록과 장수를 기원하는 한 편의 전서(全書)였다. 내가 이미 경에게 그러한 글을 주었으면 경도 의당 나에게 답이 있어야 할 것이다. 주(周)나라의 시인(詩人)은 그의 임금이 훌륭한 손을 맞아 잔치할 때를 당해서도 오히려 천보장(天保章)의 아홉 가지와 같으라는 축원으로 녹명(鹿鳴) 이하 5편에 대하여 화답하였다.5558) 그런데 더구나 원로이자 영의정인 경의 경우이겠는가. 경(經)에 이르기를 ‘말에는 반드시 대답이 있고 덕에는 반드시 갚음이 있다.’ 하였으니 곧 경을 두고 이른 말이다. 경은 또 너무 노쇠하였다고 말하지 말라. 경보다 더 많은 나이로 정승에 제수된 사람들의 고사를 상고할 수 있으니, 권중화(權仲和)는 나이가 83세였고, 강순(康純)은 79세였고, 장순손(張順孫)은 78세였고, 정호(鄭澔)는 장순손과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영의정을 지냈다. 이 밖에 좌의정과 우의정에 제수된 사람들은 이루 다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이다. 또 거듭 정승을 지낸 사람 중에서 찾아본다면 경과 나이가 같은 사람이 둘이고 경보다 두 살이 많거나 혹 세 살이 많은 사람도 있었다. 경은 모름지기 내가 경에게 국사를 위임하는 권우를 잘 따라서 다시는 사직하겠다는 말을 말고 바로 묘당으로 나와 나의 홍범(洪範) 구오(九五)의 정치를 도우라. 낯빛을 온화하게 가지면 나는 받아들일 것이다5559) .”

하였다.

 

[註 5558]천보장(天保章)의 아홉 가지와 같으라는 축원으로 녹명(鹿鳴) 이하 5편에 대하여 화답하였다. : 《시경(詩經)》 소아(小雅) 천보(天保)에서 신하가 임금으로부터 녹명(鹿鳴)·사모(四牡)·황황자화(皇皇者華)·상체(常棣)·벌목(伐木) 등 5편의 노래를 곁들여 칭송하고 위로해 주는 환대를 받고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는 뜻에서 임금의 수복을 아홉 가지와 같다고 노래한 것을 말하는데, 그 내용은 곧 ‘산과 같고 언덕과도 같으며, 높은 뫼와 같고 큰 능과도 같으며, 마치 모여드는 냇물과 같고, 가득찬 둥근 달과 같고, 아침에 돋는 해와 같고, 영원한 남산과 같고, 무성한 송백과 같다.[如山如阜 如岡如陵 如川之方至 如月之恒 如日之昇 如南山之壽 如松柏之茂]’고 한 것이다. ☞

 

[註 5559]홍범(洪範) 구오(九五)의 정치를 도우라. 낯빛을 온화하게 가지면 나는 받아들일 것이다 : 홍범은 《서경》의 편명이고 구오(九五)는 홍범의 천하를 다스리는 아홉 가지 법칙 가운데 다섯 번째인 황극(皇極)을 말하는데, 여기에서는 임금이 백성들을 잘 살 수 있게 하려면 우선 임금 자신이 법을 세우고 오복(五福)을 거두어 백성들에게 내려주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였고, 또는 백성들이 낯빛을 온화하게 가지고서 ‘나는 덕을 좋아한다.’고 말하거든 그들을 받아들여서 복을 내려 주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  

 

 

                                                         - 終 -      

 

                                                 - 이어서 순조실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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