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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貞陵)이야기

조선의 왕을 모시는 宗 廟

작성자山房山(榮國)|작성시간12.03.30|조회수859 목록 댓글 0

 

 

 

                                 조선의 왕을 모시는 宗 廟

 

 

아직도 많은 분들이 종묘는 '묘'라는 글자 때문에 왕의 묘지라 생각하기 쉽다.하지만 조선시대 왕의 묘는 글자가 '릉'으로 끝난다. 서삼릉,서오릉,동구릉, 융건릉,...등등 예부터 우리들은  조상의 덕을 가리는것을 중요하게 생각해 왔는데 이는 아직까지 내려오고 있다,명절이면 성묘를 가고 세배를 하는 것 역시나 조상들에게 예를 갖추는 풍습중에  하나이고,일년에 한번 한 집에서 크게 제사를 지내는 시제 역시나 이러한 풍습 중 하나이다.한 집안의 시제를 한 나라로 놓고 보면 종묘제례라 할수있을 것이고,이러한 장소가 바로 종묘다.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정궁인 경복궁을 세우고,좌우로 종묘와 사직을 만들었다.

왕의 선조들을 모시는곳으로

하늘,남성,양을 대표하는 종묘는 왼쪽에 땅과 곡식의 신에 제사를 드리는곳으로

땅.여성.음을 대표하는 사직은 오른쪽에 지었다.

양과 음의 조화를 잘  맞춰야  나라에 큰 불화가 없을 거라 여긴 탓이었다.태조가 한양으로 도읍을 옮기고 바로 착공하기 시작해 이듬해 완공 시키고,태조의 4대조인 목조,익조,도조,환조의 신주를 모신 것이 시작이었다.그리고 태조,정종,태종까지 모시니 처음 지었던 7실은 모두 차버려서 세종은 자신이 죽고 난 후를 걱정하게 되고,처음 지었던 정전 옆에 영녕전이라는 건물을 하나 더 세우고.이성계의 4대 조상신위를 영녕전으로 옮겼다.그렇게 후세의 왕들도 기존의 정전에 방을 하나씩 늘리게 되었고 결국 19칸의 정전이 되었다.이 모습은 헌종 2년에 정전의 신실 4칸을 늘리고,영녕전 협실 4칸을 증축함으로써 지금의 모습이 완성됐다.

 

재미있는 건 생을 짧게 막감했거나, 왕이 될 수 있었지만 못한 이들, 혹은 추후 평가를 매겨 왕으로서 제대로 역활을 수용하지하지 못한 이들은 정전이 아닌 영녕전에서 모시고 있다는 사실이다.또한 연산군과 광해군의 신위는 없다.왕실의 정통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공덕이 있어야 하는데 정치적 파단이 개제되므로 이 둘의 신위는 제외 되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초등학교 때부터 미치도록 외었던 `태정태세문단세'~에서 뒷글자에 붙는 조(祖)나 종(宗)자가 어떻게  붙느냐도 알 수 있다.바로 묘호 때문인데 이건 죽은 다음에 붙게된다.그래서 역대 왕들은 살아 생전에 자신이 태조, 정종,태종,세종이라는 묘호를 알 수가 없었다.

 

조(祖)가 붙는 왕들은 나라를 창건한 사람들에게 붙였고, 계승한 사람에게는 종(宗)을 붙였다.따라서 왕의 묘호 뒤에 `조'가 붙었으면 개국과 창건이 있었음을 뜻한다. 그런데 분명 조선의 왕이었으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지도 않았는데7대왕인 세조, 14대선조, 16대인조, 21대영조, 22대정조, 23대 순조는 뒤에 조가 붙었다. 훗날까지 말이 많지만 조선왕조가 편파성을 갖고 묘호를 추증했다는 대표적인 증거가 된다.

나라를 망하게 한 순조는 묘호를 쓰지 못함에도 순조라 칭한걸 보면 대충 짐작할수있다.

 

 

 

종묘의 외대문을 다른 궁궐의 대문과 다르게 조용하고 큰 도로변에 자리하지않는다.돌아가신 왕들의 혼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조용한 곳한 곳에 자리한다고 한다. 그리고 외대문에서 보여주듯 종묘의 건축물에는 팔작지붕이나 우지각지붕보다는 맞배지붕을 많이 사용하는 편이다. 조용하고 단아한 모습을 보여주기 더 없이 좋은 지붕이 바로 맞배지붕이다.

 

 

 

                                                            외대문을 들어서면 3줄의 길이 보인다.

높은 가운데는 신(神)이 다니는 신(神)로,

동쪽은 왕(王)이 다니는 어(御)로,

서쪽은 세자가 다니는 세자로다.

 

조심스럽게 행동하라는 의미에서 거친 박석을 깔았놓았다.

종묘를 둘러보는 순서는 외대문 - 망묘루 - 공민왕 신당 - 향대청 - 재궁 - 전사청 -정전 - 영녕전 - 영녕전 악공청 - 정전 악공청 순서다.

 

 

 

                                                                왕들의 신주가 모셔진 정전

 

오른쪽부터 태조묘(신의고황후 한씨, 신덕고황후 강씨[신천강씨(信川康氏 康允成의 딸]) - 태종묘(원경왕후 민씨) - 세종묘(소헌왕후 심씨) - 세조묘(정희왕후 윤씨) - 성종묘(공혜왕후 한씨, 정현왕후 윤씨) - 중종묘(단경왕후 신씨), 문정왕후 윤씨, 장경왕후 윤씨) - 선조묘(의안왕후 박씨, 인목왕후 김씨) - 인조묘(인열왕후 한씨, 장열왕후 조씨) - 효종묘(인선왕후 장씨) - 현종묘(명성왕후 김씨) - 숙종묘(인경왕후 김씨, 인원왕후 김씨, 인현왕후 민씨) - 영조묘(정성왕후 서씨, 정순왕후 김씨) - 정조묘(효의왕후 김씨) - 순조묘(순원숙왕후 김씨) - 문조묘(신정익황후 조씨) - 헌종묘(효현성황후 김씨, 효정성황후 홍씨) - 철종묘(철인장황후 김씨) - 고종묘(명성태황후 민씨) - 순종묘(순명효황후 민씨, 순정효왕후 윤씨) -  19위위의 왕과 49위의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한 칸의 구성을 신위를 모신 감실이 있고, 그 앞에 제사지낼 공간이 마련되었으며 끝에 관문이 설치되어 있고,문 밖으로는 툇간 1칸이 추가로 있다.기둥은 부석사 무량수젼,조사당,무위사 극락전,봉정사 극락전과 대웅전,해인사 대장경판고 등에 쓰인 배흘림기둥을 사용했다.

이는 시각교정효과를 주는데 한 눈에 들어오기 대문에 더욱 웅장하고 장엄하게 보인다는 것이다.사진을 찍을 때  광각 렌즈로 찍으면 외곡이 생기는데,이 외곡을 기둥이 처리해 주었다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광각이라 더욱 웅장한 느낌인데 이 느낌이 외곡이 없이 다가온다면 더 압도적 일것이니.정전 신실의 판문을 제례가 있을때만 열리는데,운이 좋게도 문이 열린모습을 볼 수 있다.

 

 

 

                                                    월대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하월대

동서 길이기 109m. 남북 길이가 69m에 이르는 정전 앞을 가득 메우는 월대다.

우리나라 목조단일건물로는 가장 큰 정전, 때문에 굽로 지정되어 있다.

 

 

 

처음 세종이 지은 태실 4칸은 높게, 나중에 지은 좌우의 협실 6칸은 태실에 덧붙이듯 한단계 낮게 지어 정전과는 또다른 느낌이다.

 

태조의 선대 4조를 비롯해 정전에서 조천되어진 신위 34위의 신위봉안이 되어 있다.

 

태실 4칸이 먼저, 협실 좌우가 나중인데 오른쪽부터

 

우측 협실 : 정종(정안왕후 김씨) - 문종(현덕왕후 권씨) - 단종(정순왕후 송씨) -덕종(소혜왕후 한씨)

                예종(장순왕후 한씨, 안순왕후 한씨) - 인종(인성왕후 박씨)태실 4칸 : 목조(효공왕후 이씨) 

                익조(정숙왕후 최씨) - 도조(경순왕후 박씨) - 환조(의혜왕후 최씨)

 

좌측 협시 : 명종(인순왕후 심씨) - 원종(인헌왕후 구씨) - 경종(단의왕후 심씨, 선의왕후 어씨) -

                진종(순소황후 조씨) - 장조(헌경의황후 홍씨) - 의민황태자(의민황태자비 이씨)

 

 

 

  

 

                                                                       

                                                          정전 남문.

신이 드나드는 문으로 사람이 출입할 수 없다.

동문은 헌관인 왕이 출입하는 문이고 서문은 악공이 드나드는 문.

 

 

 

 

영녕전 악공청과 정전 악공청까지 둘러보고 나오면 삼도의 종묘 숲길이 보기 좋게 뻗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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