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이해 하시기 위해 먼저 제 글 “이스라엘 밖에서는 이틀간 지켜지는 나팔절”(http://cafe.daum.net/deanjestory/9Ax4/73)을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히브리 전통에 회개 기간이 있습니다. 히브리력으로 여섯째 달인 “엘룰”월의 첫째날에—엘룰월 1일에—시작해서 대속죄일인 그 다음달 10일에—티슈리월 10일에—끝납니다. 그러므로 그 기간이 40일이 될 수도 있고 39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엘룰월의 길이가 29일이 되면 회개 기간은 39일이 되는 것이고 그 길이가 30일이 되면 그 기간은 40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엘룰월의 길이가 30일이 되는 연고로 그 “회개 기간”을 통상 “40일간의 회개 기간”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한 달의 길이가 일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변할 수 있는가? 어떻게 엘룰월의 길이가 29일이 될 수도 있고 30일이 될 수도 있는가?”하는 질문이 생기실 수 있습니다. 히브리 달력이 현재의 달력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음력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 글 “이스라엘 밖에서는 이틀간 지켜지는 나팔절”(http://cafe.daum.net/deanjestory/9Ax4/73)을 참고 바랍니다.)
히브리 전통에 의하면 그 “40일간의 회개 기간”은 모세가 다시 십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가서 하나님을 뵈었던 두번째 “시내산에서의 40일 기간”에서 유래 한다고 합니다. 모세가 엘룰월 1일에 시내산에 올라가서 그 다음달인 티슈리월 10일에 내려왔던 것입니다. 모세의 첫번째 “시내산에서의 40일 기간” 중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범죄 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두번째 “시내산에서의 40일 기간” 중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근신하며 “회개하는 마음으로” 지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히브리 전통에 나타나는 “40일간의 회개 기간”의 유래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40일간의 회개 기간”이 끝나기 열흘 전에 나팔절이 있습니다—그러니까 티슈리월 1일에 나팔절이 있는 것입니다.
나팔절이 “40일간의 회개 기간”이 끝나기 열흘 전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교훈에 대해 알아 보겠습니다.
나팔 소리는 “심판”과도 관계가 있습니다—“심판”을 상징 및 의미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1) 요한 계시록에 나타나는 각 단계의 심판이 나팔 소리와 함께 진행 됩니다; 그리고 (2) 나팔절을 뜻하는 이름 중 “욤 하딘”은 심판날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나팔절은 “심판날”을 의미 하기도 합니다.
회개에는 반드시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야 합니다(마 3:8; 눅 3:8). 그러므로 회개 후 회개의 열매를 보기 위한 검증 기간이 있는 것입니다.
29 ~ 30일간의 엘룰월 중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지 않으면 “나팔절”에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면 “나팔절”에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나팔절”에 심판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끝까지 회개의 열매를 맺으시며 사셔야 합니다—육신을 벗으시는 날까지 회개의 열매—성령님의 열매—를 맺으시며 사셔야 하는 것입니다; 일정 기간 동안만 주님 뜻대로 살고 그 기간이 끝났다고 막 살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팔절”이후에도 계속해서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삶을 유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속적인 순종을 통해—비록 인간인 이상 그 순종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나타나고 증명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야고보가 일컫는 “행함으로 나타나는 믿음,” “행함이 따르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삶이 변합니다—회개의 열매가 나타 납니다; 성령의 열매가 나타 납니다; 삶이 거룩하게 “성화” 됩니다. 그렇게 삶이 거룩하게 되는 과정을 구원의 네번째 단계인 “성화”(신학적 용어로 “점진적 성화”)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행하면 영생을 얻으리라고 하실 때 의미하시는 단계가 이 “(점진적) 성화” 단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눅 10:25 – 28). “나팔절”에 심판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계속해서 “성화”되는 삶을 살아야 구원의 네번째 단계인 (점진적) “성화”에 성공 해서 육신을 벗으시는 날 구원의 마지막 단계이고 완성 단계인 신학적 용어로 “영화”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팔절”인 티슈리월 1일 부터 “대속죄일”인 티슈리월 10일까지 “열흘의 기간”(야밈 노라임;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날들) 동안 지속적인 순종을 통해 (점진적) “성화”에 성공 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점진적) “성화”에 성공 하시면 마지막 남은 “대속죄일”에 “영화”가 됩니다—구원이 완성 됩니다.
게다가, “나팔절”인 티슈리월 1일 부터 “대속죄일”인 티슈리월 10일까지의 기간이 열흘이라는 사실이 심상치가 않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biblical numerology) 열이라는 숫자는 “시험” 내지는 “고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어로 Test나 Examination이라고 번역하면 정확 합니다. 그럼 어떻게 성경에서 “열”이라는 숫자가 “고난을 통한 시험”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 이후 지구상에 번성하기 시작하던 죄악이 “노아”때에 관영하는 것을 보시고 드디어 심판하시기로 결정 하셨는데, 노아는 아담의 십대손 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에 재앙을 내리시는데, 그 재앙의 숫자가 열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에서 다시 훈련 시키시겠다고 하시는데, 그 때가 그 민족이 광야에서 시험에 열 번 실패했을 때 였습니다 (민 14:22). 하나님께서 야곱의 임금을 속이는 그의 삼촌 라반을 지켜보고 계시다가 결국은 야곱에게 라반을 떠나라고 하시는데 (창 31:3), 그 때가 라반이 야곱을 열번 속였을 때입니다 (vv. 7, 41). 다니엘이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 음식을 주는 담당자에게 채식만 주고 그들의 혈색이 어떠한지를 시험해 보라고 하는데, 그 때 시험해 보라고 준 기간이 열흘이었습니다 (단 1:14). 예수님께서 서머나 교회가 일정 기간 동안 환난을 통한 시험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 기간이 열흘입니다 (계 2:10). 나팔절 이후 대 속죄일까지의 기간은 회개가 제대로 되었는지 여부를 검증하는 기간이라는 의미가 있는데, 그 기간이 열흘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경멸했던 나발을 치실 때까지 나발에게 시간을 주십니다. 나발이 회개를 하는지 안하는지를 시험하는 기간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성경 저자는 그 기간이 열흘 정도였다고 합니다 (삼상 25:38). 정확하게 열흘이었을 것입니다. 하여간 이와 같이 “열”이라는 숫자는 “고난을 통한 시험”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팔절”에서 “대속죄일”까지의 열흘—야밈 노라임;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날들—동안 “나팔절날 심판을 받지 않으셨다고” 긴장을 푸시면 안됩니다. 즉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으셨다고—정확하게는 사도 바울이 주로 다룬 구원의 처음 세 단계인 “칭의,” “중생,” “죄씻음”( 신학적 용어로 “확정적 성화”)의 과정을 마치셨다고—해서 구원이 완성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이 완성 되는—“영화”가 이루어 지는—대속죄일을 향하여 각자 십자가를 지시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그것이 “나팔절” 부터 “대속죄일”까지 “열흘”이라는 기간이 의미하는 “고난을 통한 시험”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순종을 통해 (점진적) “성화”에 성공 하셔야 “대속죄일”에 “영화”가 됩니다—즉, 구원이 완성 됩니다.
구원 받은 저희는—정확하게는 사도 바울이 주로 다룬 구원의 처음 세 단계인 “칭의,” “중생,” “죄씻음”(확정적 성화)의 과정을 마치신 저희는; 나팔절날 심판을 받지 않은 저희는—육신을 벗으시는 날까지 모두 “야밈 노라임”(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날들) 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대속죄일”까지—즉, 육신을 벗으시는 날까지—긴장을 풀지 마시고 (점진적) “성화” 과정에 승리 하셔서 모두 “대속죄일”의 구원에 동참 하시기를 바랍니다—그것이 나팔절이 “40일간의 회개 기간”이 끝나기 열흘 전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교훈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