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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정진영

[인터뷰]스크린 1월호에 이준익 감독님과 정진영님의 음주 인터뷰

작성자감성감자|작성시간06.01.16|조회수1,043 목록 댓글 30

 

 

오늘 왕의 남자 까페갔다가 저런 자료있어서 보려고 하는데

 

이미지가 다 안보여서 도저히 기사를 볼수없게 되자...미쳐버린 저는..

 

온동네 서점과 편의점을 돌면서 스크린 1월호를 찾아서

 

자전거타고 동네 돌아다닌지 30여분 만에 스크린 1월호를 찾아서 사갖고왔습니다...


(소화가 잘되는 우유도 사오고..그 우유 증말 지대루 맛나데요 -ㅠ-)

 

근데 이거 스크린 1월호의 기사인데 이렇게 제가 타자쳐서 올리면

 

저작권법에 위배되나요?


혹시라도 문제되면 알려주세요

 

바로 자삭할게요...

 

잡지에 사진도 있는데 찍어서 올리려고 디카를 찾았는데

 

 디카를 한 반년 쳐박아 뒀더니 작동을 안합니다.. 충전중...

 

충전되는대로 디카로 찍어서 올릴게요...

 

참고로...이 인터뷰 내용은 제가 직접!!!! 접접접!!!  타자를 친거에요...

(한때 700타와 800타를 넘나들며 신의 손으로 불릴뻔했다는~)

 

일욜날 저녁...엄마의 탄압을 받으며... 2시간 동안 치고 오타수정한 거랍니다...

혹시 오타가 났더라도 양해 부탁드리구요

수정할 사항있으면 수정 요청하는 답글 부탁드릴게요 ^^

 

(엄마가 저게 또 뭐에 빠져서 저렇게 밥도 안먹고 잠도 안자는지 -_-++ 라시며... 눈을 흘기시는데..

흑..엄마 나이 30먹은 딸이 앤도 없이 주말에 방구석에서 마치 일본 오타쿠마냥 이러고 있는게

맘은 아프시겠지만... 이짓도 오래못하는거 아심시롱...이제 담주 부터 제가 해야할일 스케쥴대로

할게요 ㅠㅠ...시험 안보면 심심해하는 인간이라 뭐든 공부를 하고 있답니다.

친구들은 시험 중독증이라던데 -_-;;

내일부턴 회사일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해야져~ 하하

여러분들도 너무 여기 폐인돼서 일상생활 잃지 마삼...ㅠㅠ

눈가의 다크써클은 정말 대략난감하오..ㅠㅠ )

 

자 그럼 인터뷰 들어갑니다~~~~

 

** 드디어 사진도 올렸습니다. 사진의 출처는 왕의남자 까페에서 활동하시는 카렌유이님입니다

흑...네이버 까페에 사진 좀 스크랩 하겠다고 글은 올렸는데..

혹시라도 꺼려지신다면 사진 바로 삭제하겠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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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한판 놀다가면 그뿐이지


<왕의 남자>는 냉랭하기 짝이 없는 기자 시사임에도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여기저기서 박수가 터져나오는 범상치 않는 영화였다. <스크린>에서 음주 인터뷰를 청하지 않았더라도, 이준익 감독과 배우 정진영은 여기저기서 밀려드는 축하주 제안에 시달렸을 것이 뻔했다. 빠듯한 일정 때문에 술자리가 아닌 찜질방에서 인터뷰를 하자고 제안했던 정진영이 앞장서서 인사동 단골 주점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꽁꽁 얼린 보드카와 천연 자몽주스를 섞은 칵테일의 농도가 점점 진해지면서, 감독과 배우는 아름다운 광대놀음에 대한 애정과 자신감을 숨김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터뷰는 기자 시사회 날 저녁에 이루어졌다. 이준익 감독은 끊임없이 걸려오는 전화 세례를 즐겁게 받고 있었다.

칵테일 제조에 몰두하던 정진영은 특유의 설득력 있는 말투로 연산 역할이 얼마나 미치도록 어려웠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결론은? 기차게 잘 해냈다는 것이다.

첫째 놀이판 중모리 장단


이준익 감독(이하 이)

오늘 보면서 제일 많이 운 것 같아. 하긴 현장에서도 참 많이 울었어. 모니터 보다가 눈물이 쫙 나고 그랬지. 강성연이 자기 영화 모니터 보면서 운다고 놀리고.


스크린(이하 S)

어떤 장면에서 그렇게 울었나?


이_

장생이 마지막 줄 위에서 “궁에 와서는, 와서는” 하다가 말을 잇지 못하는데, 공길이가 “야이, 잡놈아!” 라고 울부짖을 때, 그때 눈물이 쫘악~.


S_

감정이 서서히 차오를 때, 이병우 음악 감독의 곡이 들리기 시작하면 심장 부근이 뻐근하게 아팠다.


이_

한 번 더 보면 눈물이 줄줄 날걸?(웃음). 근데 음주 인터뷰라면서 술은 안 마셔? 우리건배 한번 때릴까?(일동 폭소 뒤 건배, 정진영은 꽁꽁 언 보드카 병을 거의 쥐어짜다시피 하며 전원에게 돌리느라 진땀을 빼더니, 주스를 왈칵 붓는 기자에게 “주스 너무 많이 넣으면 맛이 없다” 며 3:4 공식을 강조했다.)


S_

오늘의 화두는 ‘과연 영화를 보고 울었는가’ 인 것 같다. 정진영 씨는 어땠나?


정진영(이하 정)

(그제서야 칵테일 제조에서 벗어나) 오늘은 다른 시사회랑 감정이 달랐던 것 같아. 보통 시사회에서는 내 연기만 보이기 때문에 영화 전체를 잘 못 보거든? 오늘은 이상하게 차분했던 것 같아. 내가 저 영화를 언제 찍었나 싶게 아스라한 느낌이랄까.


S_

이준익 감독과 함께 <왕의 남자> 기획 단계부터 의논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준익 감독의 작업은 의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정_

같이 하자고 하니 당연히 해야 하는데, 감독님이 공부하지 말라고 해서 공부도 못하고, 그렇다 보니 작품 얘긴 많이 못했지. <황산벌> 같은 영화는 당시의 정세나 역사적 사건이나 명백한 현실의 소스가 있는 영화였기 때문에 세미나 하듯 공부했거든. <왕의 남자>는 처음부터 유미주의적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이_

연산은 아주 감각적으로 연기했어. <황산벌> 때까지만 해도 논리적인 연기였는데 <왕의 남자>에서는 이성보다 감성을 상위에 놓고 한거지. 잘 짜인 설계안에서 설정을 과감하게 믿고 그 위에 감정이나 색깔을 마구 입혀버리는 거지. 마구~.


S_

연산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진 의미 때문에 부담이 컸을 것 같다.


정_

대본 나오기 전에 감독님이 죽이는 이야기가 하나있다고 얘길 꺼냈지. 감독님이 미리 연산에 대한 답을 만들지 말라고 해서 마음 탁 놓고 중국으로 여행을 갔다 왔는데, 막상 현장에 와서 첫날 첫 컷을 찍는데 미치겠더라고, 나는 원래 준비를 해야 하는 놈인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지. 감독님은 계속 옆에서 “야~ 장생이 완전 죽여!” 라며 계속 놀리기나 하고 말이지.


이_

내가 <황산벌> 때보다 심하게 놀렸어!(웃음)


정_

첫날은 연회가 벌어지고 나와 녹수가 손톱만한 배경으로 보이는 촬영이었지. 그것도 사실 연기의 시작이잖아? 그날 무지하게 긴장을 해서 옆에서 후배들이 농담을 해도 전혀 못 받겠더라고. 사흘째 되는 날 건진 게 연산의 첫 웃음이야. 크흡풉풉풉 하는 웃음. 그런 연기 계획을 갖고 간게 아니었거든? 그냥 느껴보자, 하고 있었는데, 그 웃음이 그냥 그렇게 나오더라고. 그제야 좀 안도를 했지.


이_

그걸 찍을 때 ,어전 밖에 모든 배우들이 다 모여 있잖아. 연산의 얼굴에 카메라를 대놓고 찍고 있는데, 첫 컷에 그 웃음이 나와 버리는 거야. 그냥 바로 오케이 해버렸지. 그걸 보고 있던 배우들이 다 박수쳤잖아. 정진영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잖아? 이번 현장에선 전혀 안 그랬어. 괴팍하고 우발적이고 번뜩번뜩 하는 거지.


정_

나한테는 기회를 많이 줬어. 대왕대비를 밀치고 비틀거리는 장면이 있는데, 첫 컷에 오케이를 하는 거야. 한 번 더 가자고 했지. 왜냐하면 내가 무지하게 고심했던 장면이거든. 결국 내가 한 번 더 찍자고 했던 컷을 썼잖아.


이_

사실 첫 컷이랑 비슷했어(좌중 폭소) 그렇게 고심하고 준비했는데, 한 번에 오케이 하니까 허무해 하길래 다시 찍으라고 한 거지, 비슷해, 비슷해~.


S_

왜 준비하지 말라고 당부했나?


이_

(삐죽거리는 정진영을 외면한 채 기자들을 보며) 연산만큼은 그걸 들키면 안 되는 인물이거든. 배우와 감독이 전혀 계산을 안 하면, 관객들은 그 계산을 읽을 수가 없지. 더 중요한 건 장생도 연산을 몰라야 한다는 거야. 그렇잖아. 궁밖의 천출이 어떻게 왕의 심리를 알아? 모르니까 들이대는 거야. 그리고, 광대가 궁궐 가장 깊은 곳인 왕의 침실 지붕에 줄 걸어놓고 소리를 지른다는 게 말이나 돼? 아무리 영화지만 심하다 그럴거아냐. 그 밧줄은 어디서 났고, 어떻게 지붕에 묶었는지, 그리고, 그걸 혼자 묶었다는 게 밀이 돼? 하지만, 이 영화에선 아무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잖아.


정_

이 인터뷰 나가고 나면 이제 문제가 제기되는 거지(좌중 폭소)


S_

이 인터뷰를 읽고 그런 문제를 제기하면 그 사람 완전 바보 되는 거다 (웃음)


이_

영화적 리얼리티라는 게 있잖아. 영화 속에서만 성립되는. 미술적 리얼리즘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요소들이 들어가는 장면이 많이 있지.


 

 


술이 어느 정도 돌자, 이준익 감독의 말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정진영도 취기가 오르는지 슬슬 말이 빨라졌다. 존댓말과 반말이 섞여 맞장구를 치는 장단이 쿵덕쿵 잘 맞아 들어간다.

두 번째 놀이판 굿거리장단


S_

왕은 노는데 거리낌이 없고, 녹수는 왕에게 시종일관 반말을 하고, 장생도 왕에게 들이댈 정도로 도발적이다. 모든 인물이 굉장히 현대적이다. 사극의 고정관념에서 자유로운 사극이다.


이_

도식적이지 안 하는 것이겠지. 그걸 퓨전이라고 표현하는 건 오버야. 퓨전은 틀린 말이지. 우리 것에 대한 도외시와 무지에서 나온 거지.


정_

(술잔을 비울수록 점점 말이 빨라진다) 사극은 이런 말투로 이렇게 해야 하는 거다, 라고 생각하잖아. (이준익 감독을 바라보며) 이 양반은 그런 걸 싫어해요(웃음) 사실 그때 그렇게 말했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잖아. 증거가 반 푼어치도 없어요~. 첫 연회를 마치고 난 뒤 어전신도 그래. 우리 생각으로는 연산이 신하들을 막 찍어 눌러야 하는 줄 알았지. 그렇게 첫 리딩을 했더니, 딱그러시더라고, “이 장면은 싹 바꿉니다. 연산은 몰리고, 신하들은 들이대야 합니다.” 그때 필이 딱 오더라고.


이_

난 처음부터 그러라고 써 놓은 거야. 왜 그렇게 도식적으로 해석해. 그게 공부를 잘해서 그래. 서울대를 나오면 배운 것 밖에 못한다니까? 그게 무식한거야. 고백을 해, 무식하다고.


정_

그래, 나 무식해~.


이_

어떻게 배운 것밖에 못하니 넌?


정_
(술잔을 싹! 비우며) 에이~ 알았어요. 에이~.


S_

포장은 엘리트 영화 아닌가? 두 주연배우가 모드 서울대 출신이라 (좌중 폭소)


정_

영화 찍으면서 내내 불안했어. 못마땅하고 우울하고, 막 성질나고. 찍다보니까 감정이 막빨라지더라고, 두 번째 신을 찍을 때 세 번째 감정이 막 먼저 나와 버리는 거야. 원래 공부한대로 가면 천천히 가야하거든? 감독님은 막 하고 싶은 대로 해버리라고 하고.


이_

내가 보기엔 현장의 연산 감정에 잘 맞았는데?


정_

이 양반이 귀가 얇거든. 그게 뭐냐면, 그 순간의 진리에 약한 편이야. (일동 고개를 끄덕끄덕) 그때 들을 때 맞으면 혹하는 거야. 확 매혹당해 그냥.


이_

응, 난 남의 말을 잘 믿어.


정_

직관도 아냐. 그럴 때 보면 백짓장 같아.(이준익 감독, 옆에서 “난 백치지, 백치”) 맞아요. 가끔, 대체 생각이 있는 사람인가 , 싶다니까? (좌중 폭소와 동의의 끄덕거림이 이어진다. 그중 이준익 감독의 웃음소리가 제일 크다) 게다가 자기는 그걸 장점이라고 생각해. 자랑한다니까? 자기는 말 바꾸기 선수라면서(역시 가장 크게 웃는 건 이준익 감독. 끊이없이 “맞아 맞아”를 추임새로 넣는다) 그 순간 진리라고 생각하면 인정해버려. 독특한 방식의 고집이지.

이_

내가 고집 부리는 기술이 늘었다니까? 너한테 안 들킨 것ㅁ나 봐도 알잖아.


정_

참나, 기술을 나 때문에 부려요? 지금 추론해보면 일관된 부분이 있었어요. 그렇게 보면, 아주 고집 센 양반이지.


이_

그렇게 많이 들켰나?


정_

뭐, 들~~~키는 걸 두려워하지도 않잖아? 언제부터 그런 거 무서워했다고?(살짝 부부싸움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 이 양반이 극단적인 원리주의자거든. 테러리스트야. 이 사람이 위험한 사람인 거지(좌중폭소) 목표는 있으니까, 누가 칼이 좋다고 하면 “칼칼칼~~~” 하는 거고, 폭탄이 좋다고 하면 “야야~ 폭탄, 폭탄 가져와~~” 하는 거지. 보통 사람이 테러리스트가 되기 힘들거든? 항상 다음을 예비하니까. 그런데 이 양반은 그게 없어. 그러니까 빚도 잔뜩 지고 그러지.


S_

이준익 감독은 사업가보다 창작자의 태고가 강한가보다. <왕의 남자>를 제작비 43억원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도 <불멸의 이순신> 제작팀에서 만든 부여세트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프로젝트 아니었나?


이_

운은 아니고, 계산이 있었지. <왕의 남자> 100억원 들었다고 해도 다 믿어.


정_

아는 감독님 한 분이 영화보고 나서 얼마에 찍었냐고 묻길래, 43억 들었다고 했더니, 이준익 감독 아주 흉한 사람이네, 그러더라고(좌중폭소)


이_

<황산벌>도 싸게 찍었는데, 싼티나냐?


정_

음..좀 나지.(좌중 폭소) 에이그! 카메라를 와이드 앵글로 못 펼치는데 뭐.


이_

그래도 다른 감독은 <황산벌>을 34억 원에 못 맞출 걸? 난 조건에 충실한 사람이야.


정_

기본적으로 이 사람은 테러리스트야 극좌, 굳이 빨갛고 파랗고 가 아니라 (이준익 감독이 끼어들며 “난 레프트, 레프트”) 다짜고짜 일을 치거든.


S_

<왕의 남자>는 대놓고 반골인 영화 같다. 조선시대 왕중에서 가장 반골인 연산과 그 시대 하층계급 중에서도 가장 반골인 광대가 주인공인 영화인데 더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이_

오~ 보이는구나! 좋다. <왕의 남자> 는 솔직한 영화야, 숨기지 않는다는 거지, 어떻게 보면 기교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지.


S_

진심에 기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_

(박수치며)오케이~ 아주 제대로 준비해온 멘트인데?


정_

여기 밧줄 좀 가져와. 감독님 묶어 놔야지, 하늘로 날아가겠다. (일동폭소)


이_

나는 다 필요 없고! 빚만 갚으면 돼. (가장 크게 웃는 정진영)


S_

영화제 감독상 같은 건 욕심나지 않나?


이_

아이고! 빚 갚는 게 먼저야.



이미 누가 챙겨주지 않아도 자기 잔은 악착같이 채우는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말이 느려지는 대신 술잔을 비우는 속도가 더 빨라진다. 인터넷에 오른 시사반응을 체크한 영화사 직원에게 연락이 왔다. 전반적으로 좋은 평과 함께 흥행 기대도 높다는 낭보가 전해지자 술자리 분위기는 더할 나위 없이 후끈 달아올랐다.

세번째 놀이판 자진모리장단


정_

흥행 기대 높다니까 좋긴 한데, 의외네? 이 영화로 빚 갚을 수 있을까 생각했었거든. 기본적으로 쉬운 영화는 아니니까. (영화사 직원에게 속삭이며) <왕의 남자> 손익 분기점은 몇 명이고, 채무이행 손익분기점은 몇 명이야? (좌중폭소) 이게 표하더라고. 끝나고 나서 복기를 해야 하는 영화 같아. 초치는 얘기가 아니라, 영화가 답을 안주잖아.


이_

다 줬잖아. 더 이상 어떻게 답을 줘~.


S_

그 답을 확실하게 알고 싶어서 영화를 두 번 보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정_

(해맑게 웃으며) 그러면 고맙지~.


이_

걱정 마. 세 번씩 보는 관객도 있을걸?


S_

보편적인 주제와 한국적인 소재의 결합 때문에 해외의 반응도 클 것 같다.


이_

100퍼센트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반응은 있을 거야. 해외시장을 겨냥해서 넣은 장면들도 있지. 한국의 극이 얼마나 대단한 수준인지 오리들이 잘 모르고 있어서 그런데, 여기에 비교하면 서양 극은 심심하다니까. 일방적인 대사로 표현하는 게 전부잖아. 우리 극을 보면 얼마나 인터렉티브해. 땅재주를 넘고 나서 관객들에게 말을 걸잖아. 그 반응을 받아서 또 다음 극을 펼치고. 이게 살아있는 극이거든. 알고 보면 두 배로 재미있는 <왕의 남자> 관전 포인트! 이런 기사 좀 특집으로 쓰면 안 되나? 영화 속에는 다양한 극이 많아. 예를 들면 인형극 같은 것.


정_

그 손가락 인형, 이 양반이 만든 거예요, 그런 식으로 세손가락으로 노는 인형은 우리나라에 없어요. 이 양반이 기존 인형으로는 안 된다면서 만들어내라고 하더라고.


이_

나 또 자랑할 만 한거 있는데. 극중 연산이 등불 뒤에서 가지고 노는 그림자 인형도 내가 슛들어가기 30분전에 직접 종이 오려서 만든 거야. 으히히, 잘했지?


S_

그림자 인형의 표정이 살아있어서 미술팀에서 굉장히 세심한 것까지 신경 썼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_

연산이 공길의 연민을 자아내야 하는데, 대사로는 약한 거야. 한참 골머리를 썩다가 예전 버전의 시나리오에서 그림자극이 있던 게 생각나서 종이 오려서 그 자리에서 인형 만들고, 세트에서 등 찾아내고, 그 앞에 나온 공길의 그림자놀이는 사실 나중에 만들어서 붙였어. 뜬금없이 연산이 인형을 갖고 놀면 이상하잖아. 공길이 먼저 보여주고, 연산이 따라 해야 개연성이 맞지.


정_

옆에서 보면서, 이래서 감독인 거구나 싶더라니까. 거짓말 하나해놓고, 빈틈을 메우는 거지(웃음)


이_ 공길의 손 인형극에 숨겨진 이야기가 많아. 처음에 공길이 연산에게 보여주는 인형극은 공길과 장생이 꼭두쇠를 죽이고 나와서 개울가에서 손을 씻는 장면을 그대로 재연한거야. 그리고 이병우 음악 감독에게 실제 공길 장생의 개울가 신과 인형극 신에 같은 음악을 깔아달라고 했어. 아마 단박에 아는 관객이 많지 않겠지만, 열 명중 세 명은 알아 볼 수 있을 거야. 그 세 명을 위해서 꼭 넣자고 했지.


정_

오~ 그렇게 깊은 뜻이? 이것 봐, 감독은 흉악한 사람들이라니까. 거짓말을 해놓고 짜 맞추는 거야!


이_

결국 논리적 사기인거지. 통하면 사기가 아니고, 안 통하면 사시고!


정_

아, 흉악해, 아이고~ 밧줄 가져와라~ 나묶을 것도 같이(일동폭소)


S_

본 사람마다 감정을 몰입시킨 인물이 각각 다르다는 게 이 영화의 특징이다. 보통 영화를 보면, 한명 정도가 확실히 자기배역을 따먹고 나머진 묻히는 경향이 많은데, <왕의 남자>에선 모든 배우가 도드라진다. 묻히는 사람이 없다.


이_

내가 민주주의를 좋아하거든, 같이 했으면 같이 따먹어야지, 하나만 튀면 어떻게 해, 영화 내용도 민주주의잖아? 왕에게 감히 광대가 들이대는 얘기니까. 내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권력의 바닥에 있는 사람을 권력화 시키는 게 아니라, 바닥에 있는 사람이 맨 위에 있는 사람을 끌어내리는 거야. 마지막에 연산이 왕이라는 옷을 다 벗어버리고 장생의 줄타기를 멍~하게 보잖아. 그게 민주주의라고. 왕도 광대도 놀이판에서 하나가 되는 거야. 녹수도 놀이판에 꽂혀서 생명을 포기하잖아. 뭘 더 바래.


정_

그렇다니까 영화가! 어렵다니까? 어려운 걸 곳곳에 숨겨놓고 쉬운척해.


이_

내가 기술이 늘었어(정진영, 고개를 떨구며 “밧줄~~~”) 그럼 그 장면은 어땠어? 공길의 자해 이후에 연산이 나무창살을 퉁퉁 치며 가는 장면, 이거 <블루>의 오마주였는데? 몰랐어? 어깨를 축 떨구고 걸어서 녹수에게 가잖아. 문을 열 때 그 아이 같은 표정! 이거 다시 태어난 거지. 그리고는 녹수의 치마폭 속으로 싹 숨어들잖아? 녹수는 치마를 들어주면서 “미친놈” 이라고 내뱉고. 다시 태어나기 위해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는 연산의 그 모습 정말 처연하지 않아?


S_

특히 녹수의 대사가 파격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왕에게 반말을 하는 여인. 연산을 붙잡고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어!” 라고 울부짖는데, 느낌이 확 오더라.


이_

그게 리얼리티 아냐? 엄마가 아니면 그런 말 못하잖아. 처음에 (강)성연이가 시나리오를 읽고 첫 촬영 들어가기 전에 편지를 세장 써왔더라고, 녹수는 어떤 여자인가에 대한 글이었는데, 아주 100퍼센트 정확해. 딱 알더라고. 아주 똑똑한 배우야. 내가 그랬어. “너 스물세 살에만 영화 데뷔했어도, 전도연 뺨친다. 서른에 왔으니 이걸 어쩌니. 너 분명히 잘 할 건데 이 영화 한편으로 네 인생의 적자를 다 매우려고 하지마라.”



음주 일원 몇몇이 하늘로 둥둥 떠 올라가는 감독을 붙들어 맬 밧줄을 찾으러 간 사이, 인간 이준익과 정진영의 깊은 관계에 대해 물었다. 감독의 진실 된 구라에 마음을 뺏긴 배우와 그 배우의 소같은 눈에 감동받는 감독이 서로에 대한 진심을 털어놓았다. 농담처럼 혹은 만담처럼 두 사람은 서로의 변화에 대해 입을 모았다.

네 번째 놀이판 휘모리장단


이_

내가 <달마야 놀자> 제작할 때 시나리오를 줬어. 처음에 안하겠대, 그래서 직접 집 앞으로 찾아갔어. 안 해도 좋으니 세 번만 읽어라. 한번은 청명스님의 눈으로, 그 다음은 재규의 눈으로, 마지막엔 관객의 눈으로. 그러고 났더니 며칠 지나서 전화가 오더라고. 그냥 바둑이나 한판 두재. 그러더니 진짜 만나서 바둑만 두고 마지막에 한마디 하더라. “내가 시나리오 잘못 읽었네요. 할게요”


정_

그랬지. 그게 처음 인연이었지.


이_

안한다고 했어봐. 그때 청명 역할 하겠다는 배우들 많았거든? 물론 정진영보다 좀 덜 유명한 배우들이었지만.


정_

(한숨을 폭 쉬며) 나도 그땐 안 유명했어.(좌중폭소) 그때는 충무로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을 때, 진정성에 대해 의심을 많이 할 때죠. 시나리오가 딱 들어왔는데, 아니 팔아먹다 이젠 스님까지 팔아먹나, 스님들은 도 닦게 좀 놔두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야. 영화를 하게 된 건 시나리오를 다시 읽은 탓도 있지만, 감독님하고 말하다가 결심을 굳힌 것 같아. 이양반이 구라가! 장난이 아니거든. 구라가 죽여! 그런데 그 구라가, 좋아! (좌중 폭소) 진정성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했지, 행복하게 찍었어요. 아마 감독님은 <달마야 놀자> 찍으면서 나 좋아했을 걸?


이_

응. 좋아했지, 으흐흐흐. 좋아했어.


정_

놀란 사건이 하나 있어요. <달마야 놀자>찍을 땐데, 이준익 감독이랑 연출부 어린 후배가 이야길 하고 있더라고. 한 시간 넘게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그 후배가 휙 일어나면서 “사장님도 역시 상업주의에 물드셨군요!” 하고 소리를 지르더니 표표히 사라지는 거야. 감독님은 아마 상업적인 결말이나 관객의 기대를 그 친구한테 얘기한 것 같은데, 보고 있자니 내가 왠지 미안하더라고. 슬쩍 옆에 가서 어린친구라 그런다고 이해하시라고 말을 붙였거든. 그랬더니 “내가 쟤들한테 해줄게 없잖아. 영화하겠다고 스물 몇 살짜리 어린친구들이 왔는데, 내가 돈도 많이 못주고,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열심히 들어주는 것밖에 없잖아. 이렇게라도 보상을 해줘야지” 하는데, 그때 반했지. 요샌 좀 달라. 그러다보니 점점 이 양반이 어려워져요. 예전엔 막~ 얘기하고 막~ 놀고 그랬는데. 아니 뭐...어렵다는 게 좋다는 거예요. 새로워지는 거죠.


이_

나는 가장 친한 사람하고 같은 얘기를 계속하는 게 싫어. 내가 이 친구한테 새로운 얘기를 해주지 못하면, 직무유기를 한다고 생각해. 자주 보는 사람일수록 새로운 얘기를 던져줘야 성실한 자세잖아. 똑같은 얘기를 같은 사람한테 하는 건 범죄야. 난 이 친구랑 죽을 때까지 새로운 얘기하면서 만날 거야.


S_

정진영은 이준익 감독의 구라에 반했다면, 이준익 감독은 정진영의 어떤 모습에 반했나?


이_

난 정진영의 눈을 보면, 한없이 빠져들어, 소눈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눈이지. 정진영은 정비석 작가 단편에 나오는 소같아. 내가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 딸랑 소리가 들려. 정신 차려보면 정진영이 나를 보고 있는 거야. 무슨 짓을 해도 이친구가 보고있는것같아. 그러니 내가 꼼짝 못하는 거지. (정진영의 눈을 가리키며) 잘 봐봐. 빤히 보고 있으면 무슨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지 않아? 내가 이친구앞에 앉으면 그 눈에 주눅이 들어서 뭔가 설명해 보겠다고 구라를 풀 수밖에 없어요.


정_

이 양반은(잠시 침묵, 술집의 배경음악으로 한영애의 ‘선창’이 들려오자 한 소절을 느릿하게 따라 부른 뒤) 달리고 있는 것 같아. 이제는 스스로도 구라를 푸는 게 짜증나지 않겠어? 다른 걸로 풀어내려는 거지. 몇 년 동안 친하게 지낸 후배로서 즐겁게 지켜보고 있어.


이_

한 번 막 살아보려고 이제. 그래도 당신이면 충분히 함께 갈 수 있잖아. 왜 그래. 사랑이 식었다 이거지? 김치 맛이 변해?(너무 애교스러운 나머지 좌중 폭소)


정_

그 김치가 내가 쉽게 먹을 김치가 아니란 말이지. 어디론가 걷잡을 수 없이 가고 있는데 냅둬, 자기 인생인데 뭐.(폭소) 여기서 “왜 이러세요 서방님~” 하고 바짓가랑이 잡으면 반칙이야. 그런 짓은 하면 안돼. “가쇼, 나도 어디론가 가겠소” 해줘야지. 우리 둘이 친하다는 소문도 많고 그런데.


이_

(말을 막으며) 네가 소문 다 냈잖아.. 네가 나하고 친하다고 해서, 사람들이 우리 사귀는줄알아!(일동 박장대소)


정_

친한 건 사실이잖아. 사귄다는 소문은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대표가 낸 거야. 우리 둘이 만날 붙어 다닌다니까, 나만 보면 “이준익 감독이랑 사귀는 거 아냐? 어제 같이 잤지?” 그러고!(사람들 웃다가 방안을 구르기 시작) 지금은 사귀기 쉽지 않지. 이 사람이 달라졌거든. 좋아, 나도 달라질 거야. 이사람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 그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답은 없지만, 가보자고! 진정한 ‘쟁이’의 세계에선 타협이 없거든. 자기 세계를 확고히 하고, 색깔을 뚜렷이 나타낼수록 타협의 여지가 좁아지잖아. 타협을 잘 한다는 건 정면 승부를 안 한다는 말과 같아.


이_

장생이 연산한테 들이대듯이, 들이대는 거지


정_

이런 감독님의 변화가 나에게 자극이 돼, 변화가 없으면 쓰레기잖아..


이_

어제 같은 오늘을 내가 만들려면, 오늘 죽어야지. 그러면 썩은 물 먹고 사는 저수지의 개가 된다니까?


정_

그렇지 그건 쟁이의 자세가 아니야. 서로 권태롭지 않으려면 변해야지.


이_

(정진영의 팔을 흔들며) 넌 권태롭냐? 난 아닌데. 지금 이 자릴 빌어서 은근슬쩍 작별을 고하는 거야? 뭐 그렇게 어려워. 한 많은 이 세상, 제대로 한 판 놀고가면 그뿐이지! 안 그래? 자, 건배!


일동_

얼씨구!


오프 더 레코드의 시간. 붕 떠오른 분이기에 사람들은 흥겹게 취기를 즐겼다. 한 번 술을 들이킬 때마다 폭소가 터지는 와중에 영화사 아침의 정승혜 대표가 합류한다. 그녀가 들어오자마자 정진영은 이준익 감독의 천적이 왔다며 즐거워한다. 정진영의 말대로, 정승혜 대표가 자리에 앉자 이준익 감독의 말수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어느새 보드카 한 병이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고, 다들 “한 병 더”를 외치는 분위기, 술을 남기면 보관해주느냐고 묻는 김형석 기자에게 다들 “무슨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이라는 눈초리가 쏟아진다.

다섯 번째 놀이판 단모리 장단


정승혜 대표(이하 승)_

영화 보다가 연산이 공길에게 활을 주며 “쏴~”라고 소리 지를 때, 채연의 노래가 생각나서 쿡, 웃었어. 쑤와~ 버전 있잖아. 난 나나난~ 난난나나나난~ 쑤와~(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들은 기절, 정진영 이준익 감독은 어리둥절한 표정) 이거 요새완전유행인데, 두 사람은 모르는구나?


정_

(열심히 설명을 듣더니 그제서야_ 아, 그런 게 있었어? 뭐 어떻게? 쑤와?(정진영이 소같은 눈을 꿈벅이며 따라하는 모습에 또 한 번 폭소, 그러다 갑자기 흥얼흥얼 어떤 트로트를 부르기 시작한다) 밧줄로 꽁꽁, 밧줄로 꽁꽁, 단단히 묶어라~(좌중폭소) 진짜 이런 노래가 있어. 제목이 ‘밧줄로 꽁꽁‘ 인가? (이 노래는 김용임의 ’사랑의 밧줄‘ 로 밝혀졌다)

나, 영화 보면서 이상한 걸 발견했어. 진짜 신기하데. 어느 장면에서 보면 눈에 핏발이 뻘겋게 섰다가, 어느 장면에서 하얗게 맑아, 그게 극중 연산의 감정에 딱맞아 떨어지는 거야, 내가 눈동자 핏발까지 제어할 순 없었을 텐데 말이야. 신기해.


이_

난 보면서 알았는데? 연산이 공길과 있으면 눈동자가 하얗고, 다른 사람들과 있으면 뻘겋더라고. 자신도 모르게 눈동자가 연기한거지~.


정_

그렇죠? 신기하지?


이_

신기한 게 아니라. 잘 한거지!


승_

안되겠다. 여기 밧줄 두벌 갖고 와야겠어. 둘 다 꽁꽁 묶어놔야지!


밧줄대신 기타가 공수됐다. 자칭 ‘좀 놀았다’는 정진영의 기타 반주와 노래는 듣던 대로 수준급이었다. 정진영 포크 콘서트가 끝난 뒤, 2차 술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에도 정진영이 선두에 섰다. 역시 단골술집 인사동의 지하 바 ‘소설’에서 한 무리의 지인을 만났고 두 사람의 공중부양은 계속됐다. 한동안, 두 사람의 발이 땅에 닿을 일은 없을 것 같다. <왕의 남자> 때문이라면 능히 그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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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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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요시꼬 | 작성시간 06.01.17 삼촌과 함께 소주 한잔 뗑기고 싶군요..
  • 작성자진영의 여자 | 작성시간 06.01.18 이준익감독님 담배피는 사진 바로 아래 사진에서 진영님께서 입고 계신 회색빛 스웨터가 우리들의 자료실→송년회사진6에서 drumerst님이 선물한 스웨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나만 그런건가?
  • 작성자칼쑤마쩡 | 작성시간 06.01.17 글 잘 읽었어요~고생 많으셨고요~고맙습니다~^^ ㅎ 글구 낼 당장 서점들을 뒤져서라도 사야겠어요~^^
  • 작성자traeumen | 작성시간 06.01.19 정말 잘 읽었습니다!! 고마워요!
  • 작성자위스워드 | 작성시간 06.02.09 아주 잘 읽엇습니다 ....... 고마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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