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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21일 한타박스의 탄생

작성자유노바교|작성시간11.09.21|조회수350 목록 댓글 0

1990년 4월 21일 한타박스의 탄생

전방에서 군 복무를 마친 이들은 ‘유행성 출혈열’이라는 병에 대한 주의 사항을 지겹도록 들었을 것이다. 등줄쥐의 소변에 섞여 나온 바이러스가 공기 중에 퍼져서 호흡기로 감염되며, 일단 발병하는 경우 특효약이 없고 치사율도 높은 무서운 질병. 이 병은 실로 오랫 동안 공포의 대상이었다.

영화 ‘고지전’에서 보듯 좁은 지역에서 수천 수만의 시신이 쌓이고 썩어가는 와중에 그 병원체가 발생했다는 설도 있고, 6.25 당시 공산군은 미군의 세균전의 소산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수십년간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속절없이 죽어갔으나 대체 무엇이 젊은이들을 죽어가게 하는지 감염 경로조차 알지 못했고 치료나 예방약은 언감생심 먼 나라 이야기였다는 점이다.

이호왕 박사는 이 유행성 출열혈과 수십년간 대결한 사람이다.과정은 지난함 그 자체였다. 연구원들 몇 명은 연구 도중 유행성 출혈열에 감염됐다. 특히 초등학교만 나왔으나 동물을 채집하는데 비상한 수완을 발휘하여 연구에 큰 도움을 준 김수암이라는 사람은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살아나기도 했다. 그 모습에 다른 연구원들도 기가 질려 두 손을 든 상황에서 이호왕 박사는 김수암 연구원을 이렇게 설득했다. “이제 당신은 항체가 생겼으니 절대 유행성 출혈열에 걸리지 않을 거야.” 그 뿐이 아니었다. 발병 지역이 DMZ 인근이다 보니 전방지역의 들쥐를 찾겠다고 헤매는 이들은 수시로 간첩으로 오인받았고 사살 위기에 처한 적도 여러 번이었다.

마침내 1976년 이호왕 박사는 등줄쥐의 오줌에서 유행성 출혈열의 원인이 되는 바이러스를 분리해 낸다. 하지만 병원체를 발견한 것은 문제의 시작일 뿐이었다. 바로 그 해 한 부대에서는 진지 공사를 하던 병사들이 집단 발병을 일으켰다. 현장 근처를 파보니 중공군들의 시신이 썩어가고 있었고 그 시신을 뜯어먹으며 살던 쥐들의 굴이 여기저기 보였다. 그런데 언덕 위쪽에서 작업을 하던 병사들은 거의 발병했는데 아래 쪽 사람들은 멀쩡했다. 바람 탓이었다. 바람이 항상 언덕 아래에서 위쪽으로 부는 지형이었고 유행성 출혈열 바이러스는 그 바람을 타고 병사들을 덮친 것이다. 공기감염이었다.

바로 이 순간 예나 지금이나 우직하기로는 그 누구도 따를 자 없는 대한민국 육군은 전방에 일대 “쥐 소탕령”을 내린다. 쥐꼬리를 많이 가져오는 병사에게는 포상휴가가 주어졌다. 대대적이고 자발적인 “쥐 잡기 운동”이 벌어지는 가운데 난감한 일이 벌어진다. 쥐를 잡겠다고 산지사방을 들쑤시고 다니다보니 쥐들은 죽을 판이었지만 공기를 타고 다니는 바이러스들은 이게 웬 떡이냐고 병사들에게 들러붙은 것이다. 유행성 출열혈 환자는 단번에 2배로 늘었다.

그로부터 10여년 이호왕 박사는 유행성 출혈열 백신을 만들기 위해 골몰한다. 인체에 해롭지 않으면서 항체를 형성할 수 있는 정도의 양의 병원체를 가늠한다는 것은 ‘예술’에 가까운 일이었다. 자칫하면 ‘물백신’이 될 수도 있었고 조금만 과도하면 환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것이었기에 그 임상 실험은 너무나 중요했으되 용이한 일이 아니었다.


결국 이호왕 박사와 연구진들은 자신의 팔목에 주사기를 댄다. 7명. 제약회사 직원들도 팔을 걷었다. 30명. 성공적이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했다. 그때 경기 북부의 한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던 기자 한 명이 유행성 출혈열에 걸리는 초유의 일이 벌어진다. 그러자 골프장 근무자 수백 명이 떼를 지어 백신을 맞겠다고 몰려온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 마침내 1990년 오늘, 이호왕 박사는 ‘한타박스’라는 이름의 유행성 출혈열 백신을 세상에 내놓게 된다.

‘한타박스’는 ‘한탄 바이러스’에서 나온 이름이다. 새로운 바이러스를 발견한 이는 응당 그 명명권을 가지며 세계 과학사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이호왕 박사는 여기에 한탄강의 이름을 붙였다. “학문적 업적을 개인의 이름으로 돌리는 것은 후대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거니와, 병원체를 발견한 것도 한탄강 주변이요 발병지도 한탄강 유역의 철의 삼각지대였고, 한탄강은 남과 북이 갈라진 강으로 우리 민족의 한을 드러내는 상징으로 여겨져 ‘한탄’의 이름을 붙였다 했다.

한탄 바이러스는 그렇게 사려깊게 지어진 이름이었고, 그를 딴 한타박스는 이호왕 박사를 비롯하여 연구하는 병균에 감염되고, 움직이면 쏜다 소리를 들어가며 들쥐굴을 파헤치고 종국에는 자기 팔에 대고 주사기를 누른 이들의 기나긴 노력의 금자탑으로 1990년 오늘 낙성식을 맞았다.

사진은 한탄 바이러스.... 위 내용은 이호왕 박사의 "바이러스와 반세기"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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