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수녀회 인가를 위한 노력들

작성자홍데레사수녀|작성시간21.12.20|조회수147 목록 댓글 0

알로이시오 신부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지 3년째 되던 1991년 8월24일, 마리아수녀회 원장 김두임 소피아 수녀는 알로이시오 신부의 지시로 최 재선주교를 찾아갔다. 마리아수녀회가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최 주교의 서명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이다.

  사실 마리아수녀회는 1964년 최 재선 주교의 허락 아래 창설 되었다. 하지만 달시 아무런 서류도 없이 말로 받은 상태였다. 그것이 그렇게 오랫동안 큰 문제가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소년의 집이 필리핀으로 진출했을 당시, 알로이시오 신부는 마리아수녀회를 국제적인 수녀회로 만드는 것이 아이들을 위한 사업에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해 교황청 인가를 받으려고 준비 했다. 이를 위해 알로이시오 신부는 마리아수녀회 규칙서를 만드는 등 인가에 필요한 서류들을 마련해 교황청에 보낸 준비를 했다.

문제는 최종적으로 최 재선 주교가 창설 당시 허락했다는 확인이 필요했다. 그래서 김 소피아 수녀를 최 재선 주교에게 보냈다. 하지만 최 주교는 첫 마디에 거절했다.

  “나는 이미 교구장직을 떠난 지 오래되었고 아무 권한도 없는 사람입니다. 마리아수녀회가 좋은 일을 하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데 구태여 왜 내 서명이 필요한 것입니까? ”

  “주교님께서 허락하셔서 마리아수녀회를 창설했으며, 또 주교님께서도 늘 인가받기를 원하지 않으셨습니까?”

  “과거는 없었던 것으로 하고, 이 갑수 주교님과 상의해서 시작하면 되지 않습니까?”

  “만일 교황청에서 시인을 해주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교횡청에서 하라고 한다면 해야지요.”

 

 

  당시 최재선 주교는 교구장에서 물러난 상태였고, 이갑수 주교가 교구장을 있었다. 김 소피아 수녀는 그닐 아무런 소득도 없이 돌아가야 했다.

  김 소피아 수녀가 최 재선 주교를 찾아가기 몇 개월 전, 알로이시오 신부는 루게릭 병으로 걷기가 무척 불편한 상태에서 어렵게 최주교를 찾아갔다. 그날 최 주교는 알로이시오 신부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최 주교는 “소 신부, 다음에 만날 때는 지팡이는 내 버리고 나와 함께 마라톤 합시다.” 하며 인자한 아버지처럼 대했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알로이시오 신부는 희망을 갖고 김 소피아 수녀를 최 주교에게 보냈던 것이다.

 

  오래전 알로이시오 신부가 후원금 사용에 있어서 최 주교의 방법과 요구에 동의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유익 때문에 그렇게 했던 것이다. 게다가 세월도 많이 흘렀고, 또 알로이시오 신부가 한눈팔지 않고 열심히 봉사한 결과 한국 교회 내에 엄청난 결과물을 안겨다주었다면 그것이 하느님의 뜻임을 깨닫고 그를 용서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더구나 알로이시오 신부는 3년 시한부 삶을 살고 있었고, 당시는 이미 의사가 예상한 남은 인생의 3분의 2를 산 시점이라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실제로 그는 몸의 많은 부분이 굳어져 활동이 무척 불편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무리 큰 잘못을 했더라도 사랑과 용서로 감싸 안아야 하는 것이 고위성직자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최후의 순간까지 최 주교는 고위 성직자로서 자신이 갖고 있는 권한과 원칙만 내세웠다.

  최주교를 찾아갔던 김 소피아 수녀가 아무런 성과 없이 결과를 보고 했을 때 알로이시오 신부는 무척 쓸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그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두 달 뒤인 1991년 11월15일, 김 소피아 수녀는 알로이시오 신부의 지시로 서울 대교구의 강우일 주교를 찾아갔다. 당시 강우일 주교는 서울 대교구 보좌 주교이자 주교회의 전례위원장 이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마리아수녀회 인가 문제로 최 주교의 서명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한편, 마리아수녀회 규칙서를 만들어 교황청에 제출했는데, 수정 사항이 있어 서류가 몇 차례 오가던 중이었다. 따라서 한 번쯤 전례위원장인 강 주교의 획인이 필요했다.

  서울 소년의 집이 생긴 지 17년, 명동 주교관과 마리아수녀회는 차로 겨우 30분도 걸리지 않는 곳에 있었다. 그런데도 17년 만에 처음으로 마리아수녀회 원장 수녀가 명동성당 주교를 만나게 될 기회가 생긴 것이다.

  김 소피아 수녀가 주교관에 도착했을 때 약속대로 강 주교는 자리에 있었다. 강 주교는 “어찌 그렇게 오랫동안 오지 않았습니까?”하고 친절하게 인사를 건냈다. 김 소피아 수녀는 “죄송합니다. 주교관 문턱이 높은 줄로만 생각했습니다. 과거 몇 번이나 추기경을 뵈올 것을 간청했으나 거절만 당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강 주교는 식사 자리에서 알로이시오 신부에 대해 추기경과 이야기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루게릭 병을 앓고 있으니 마리아수녀회 인가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했다.

  김 소피아 수녀가 찾아온 용건을 말하자 강 주교는 소년의 집 사정을 일지 못하고서는 대답할 수 없지 않겠냐며 12월 5일 마리아수녀회와 서울 소년의 집을 방문하겠다고 했다. 그런 다음 수녀는 몇 명이며, 수련소는 있는지, 수련자 교육은 누가 하는지, 그리고 수녀원재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었다. 그 외 몇 가지 질문을 하고는 서류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소피아 수녀의 보고를 받은 알로이시오 신부는 무척 실망했다. 강우일 주교가 마리아수녀회가 무슨 일을 하는지는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마리아수녀회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지 수녀가 몇 명이며, 수련소가 있는지 없는지가아니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인가 문제가 해결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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