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시작하지만 완성은 하느님의 몫

작성자홍데레사수녀|작성시간21.12.28|조회수25 목록 댓글 0

해가 바뀌어 1990년이 되었다. 1월 15일, 알로이시오 신부는 수녀들의 갱신 서원미사에서 특별한 지향을 두기로 마음먹었다. 멕시코 사업의 결정에 관한 특별 지향이었다.

  사실 그 미사는 특별히 기억할 만한 미사였는데 미사 전에 제의를 입는 동안 알로이시오 신부는 몹시 고통을 느껴야 했다. 그래도 미사를 집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실수였다. 제대위에 입맞춤을 한 뒤 자기 자신을 축복하고 미사 시작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가까스로 나오는 소리는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중얼거림이었다. 루게릭 병 때문이었다.

  미사도중 수녀들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성당 뒤쪽에 한 신부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신부에게 대신 미사를 집전해 달라고 부탁했고, 그는 고맙게도 알로이시오 신부의 청을 들어주었다.

  이 사건의 충격으로 알로이시오 신부는 마음이 몹시 우울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신비스러운 평화를 느끼기도 했다. 그는 그것이 하느님의 응답이며, 무모한 멕시코 사업에 대해 하느님께서 철저히 반대하는 징표를 받아들였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 사건을 통해 수녀들이 그에게 멕시코 진출을 포기하라고 말하기를 바랐다. 그런데 수녀들은 더 큰 갈등의 씨를 그의 마음속에 뿌리면서 그의 의견과 반대되는 입장을 취했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하느님이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 도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즈음, 알로이시오 신부는 절친한 친구인 교황대사 이반 디아스 대주교로부터 식사를 함께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알로이시오 신부는 그 자리에서 멕시코 사업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도움말을 구했다. 교황대사는 명석한 정신과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이어서 반대의 조언을 해 주리라 확신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강력하고 열정적으로 멕시코 계획을 추진시켜나가기를 권했다.

 

  “신부님이 그 일을 시작하지만 그 사업을 굳이 신부님이 완성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신부님의 뜻을 이어 완성시킬 것입니다. 이 일은 신부님의 미완성 교향곡이 될 것입니다.”

                                                                                                                 -『조용히 다가오는 나의 죽음』중에서

 

  교황대사의 이 말은 알로이시오 신부에게 참으로 멋지게 들렸다. 그러나 곡을 완성시키지 않은 채 지휘를 하거나 연주를 하는 것은 알로이시오 신부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무슨 일이든지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성격이었다. 하지만 교황대사의 그 말은 그의 의식 속에 깊이 박혀, 의심과 두려움이 그를 괴롭힐 때마다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럴 때면 그는 혼자말로 중얼거리곤 했다.

 

  ‘너무 잘난 체하지 마라. 너만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버려라. 너는 시작만 하고 다른 사람이 완성 할 것이다. 이 사업은 너의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미완성 교향곡이 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알로이시오 신부는 교황대사의 말을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물론 그는 교황대사를 지극히 존경했지만 그가 도대체 자신이 하는 사업이 얼마나 어렵고 복잡한지를 알고 있는지 내심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시작하려고 하는 일은 조그마한 탁아소나 책방이 아니었다. 5천 명에서 1 만 명에 이르는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돌볼 수 있는 집을 지어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너무나 많았다.

  자금도 부족하고, 자신을 도울 사람도 적었으며, 마리아수녀회에는 스페인어를 잘하는 수녀도 없었다. 멕시코시티에서 사업을 시작하려면 넓은 땅도 구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교회 당국으로부터 허가도 받아야 했다. 그 다음에는 비영리 법인을 설립해야 하고, 은행구좌도 개설해야 한다. 여기에다 신뢰 할 수 있는 건축업자를 만나야 하며, 마리아수녀회에 입회해 함께 일할 멕시코 지원자들도 모집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소년의 집 사업의 전체적인 개념이었다. 소년의 집 사업은 멕시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낯선 것이었다. 따라서 가난한 아이들의 부모들이 소년의 집 사업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 아이들을 보낼지 걱정이었다. 이것은 소년의 집 사업이 멕시코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없을지를 좌우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다 알로이시오 신부의 적극적인 후원자인 도티 씨 부부도 멕시코 진출을 은연중에 반대했다. 알다시피 당시 멕시코는 가난한 나라가 아니었다. 도티 씨 부부는 알로이시오 신부가 더 가난한 나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를테면 인도나 아프리카를 생각했을 것이다.

  알로이시오 신부가 멕시코에 머문 기간은 짧았지만 그는 멕시코의 문화와 교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 필리핀과 너무나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멕시코 가난은 정말로 심각했다. 통계적으로는 필리핀보다 두 배 가량 더 잘사는 나라였지만 멕시코의 가난한 사람들은 필리핀의 가난한 사람들보다 더 힘들게 살고 있었다. 멕시코 슬럼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은 불결하기 짝이 없는 환경에서 지독한 추위와 싸우면서 살아가고 있었다. 게다가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 수준은 필리핀보다 더 낮았다.

  멕시코시티는 인구가 2천만 명이나 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그런데도 일자리와 더 나은 삶을 찾아 지방에서 흘러들어 오는 사람들로 날마다 인구가 1천 명씩 늘어나고 있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더 벼랑으로 몰렸고, 그 속에서 교육의 기회를 갖지 못한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나라 자체가 아주 못사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가난한 집 아이들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일로이시오 신부는 그런 아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그곳에는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한 수많은 아이들이 있었다. 결국 알로이시오 신부의 이런 생각에 도티 씨 부부도 동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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