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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암을 다녀와서

08월24일, 오늘의 이름은 木요일 4.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9.05|조회수172 목록 댓글 0

 

 

 2017.09.04.. 멀고 긴 하루

 

 

 

 

 

  0824, 오늘의 이름은 요일 4.

 

 

 

 

 

  The best things in life are free.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다 공짜다.

 

 

 

 

 

  뉴욕 시청이 멀리 보이고 맨해튼구에서 브루클린구를 향해 이스트 강을 건너가는 브루클린 브리지도 저만큼 보이는데, 브리지로 올라서는 출발장소까지 빙 둘러가는 길이 생각보다는 시간이 걸려 슬렁슬렁 걸었다고는 하지만 40여분가량은 족히 걸린 듯했다. 가는 도중에 브리지 아래 조각 땅을 작은 공원처럼 꾸며놓고 화단 옆으로 벤치가 설치된 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도 했다. 사실 오늘은 별로 걸은 것이 없었다. 새벽 두 시간여의 시내 산책과 아침 서울보살님과 함께 한 호텔 주변 산책과 그리고 여기 차이나타운 돌아보기 1시간가량의 산책이 지금까지의 전부였다. 그런데 다리가 아파오고 몸이 약간 피곤하다는 신호가 왔다. 점심식사를 겸한 딤섬 브런치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오후 두 시경일 뿐이어서 이제부터는 오후용 기운이 솟아나야할 시간인데 이상하게도 황혼녘 하루일정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갈 때의 몸 상태가 되어버린 듯했다. 내 기억에는 있어본 적이 없는 참 낯 설은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오늘은 그런대로 넘어가주었지만 내일 오후에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에 마주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곰곰 여러 가지로 주변상황과 내 몸과 마음의 조시 등을 점검한 뒤에야 그 원인의 일부라도 알아내기는 했지만 여간 찜찜하고 허전한 가슴이 아닐 수 없었다. 생각을 위해 글을 쓰든, 목적을 위해 활동을 하든, 깊이 따져보기 위해 원하는 공부를 하든 체력과 정력이 추진력推進力의 근본인데 앞으로 뒤로 건강과 체력관리에 더 힘을 쏟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쪽저쪽 사통팔달四通八達의 길들로부터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모이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8월말인 목요일 오후에 브루클린 브리지를 찾아 약 4.5Km의 다리 위를 걷기위해 모여든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껴 관심내용을 딸아이에게 물어보았더니 간단하고 명료한 대답이 돌아왔다. 브루클린 브리지는 사시사철 계절 따라 경치가 좋은데다가 뉴욕에 오면 반드시 가봐야 하는 곳으로 이미 유명세를 타버렸고 거기에다가 뉴욕 맨해튼에서는 드물게 센트럴 파크와 더불어 유이有二하게 입장료 없이 공짜라는 것이 부서질 수 없는 현실이라고 했다. , 그렇구나 공짜! 내가 좋아하는 공짜를 다른 사람들도 속으로는 좋아들 하고 있었구나. 그래 삶의 예정하지 않은 휴식休息이자 생활의 여백餘白인 공짜, 공짜야 누가 뭐래도 너를 사랑한다. 그래서 나는 이 서양 속담을 가장 좋아한다. ‘The best things in life are free.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다 공짜다.’ 공짜의 소중함과 거침없는 위력을 보여주는 멋진 글이다.

 

 

 

 

 

  생수병 두 개를 사서 세 사람이 냉수로 목을 적셔가며 브루클린 브리지에 올라섰다. 다리는 차량이 통행하는 1층 부분과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도록 인도로 사용하는 2층 부분으로 각각 분리되어있었다. 그리고 인도는 가운데를 황색선黃色線으로 나누어 왼편은 자전거가 달리 수 있는 통행로를 만들어놓았다. 송이버섯처럼 솟아오른 하얀 뭉게구름이 화창和暢한 날이라는 표현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푸른 하늘에 우아한 대문 장식을 하고 있는 좋은 날이었다. 이스트 강을 따라 불어오는 미지근한 강바람도 날개를 치듯 푸르스름한 물빛을 어렴풋이 띄고 있어서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론 학처럼 너울너울 풍경 속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쏟아지는 햇살과 선명한 검은 그림자들이 눈에 비치는 세상의 모든 장면들을 엄격한 두 가지 세상으로 나누어놓고 있었다. 품 앞에서 차곡차곡 쌓이고 흩어지는 바람의 알갱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더니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단정한 이마와 고운 입매가 몹시도 그리워져왔다.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꽃을 꽂고 산들 무얼 하나

꽃이 내가 아니듯

내가 꽃이 될 수 없는 지금

물빛 몸매를 감은

한 마리 외론 학으로 산들 무얼 하나

 

 

사랑하기 이전부터

기다림을 배워버린 습성으로 인해

온밤 내 비가 내리고

이젠 내 얼굴에도 강물이 흐르는데

 

 

가슴에 돌담을 쌓고

손 흔들던 기억보담 간절한 것은

보고 싶다는 단 한 마디

 

 

먼지 나는 골목을 돌아서다가

언뜻 만나서 스쳐간 바람처럼

쉽게 헤어져버린 얼굴이 아닌 다음에야

 

 

신기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늘을 돌아 떨어진

별의 이야기도 아니고

 

 

우리 모두 잊혀진 얼굴들처럼

모르고 살아가는

남이 되기 싫은 까닭이다

 

 

 

                                          - 박인환, 얼굴 -

 

 

 

 

 

  돌과 쇠를 이용하여 현수교 양식으로 튼튼하고 아름답게 지어져있는 브루클린 브리지의 주탑에 도착을 했다. 다리 난간에 기대어 이스트 강과 어퍼 뉴욕만을 배경으로 빛의 각도에 따라 사진을 찍고 사방의 풍광風光을 즐기면서 잠시 구경을 했다. 여기 브루클린 브리지에는 슬픈 이야기가 숨어있었다. 150여 년 전 세상의 주목注目을 받으면서 브루클린 브리지를 짓는 과정에서 첫 공사감독이자 설계자인 존 로블링이 사고로 죽자 그의 아들인 워싱턴 로블링이 감독직을 이어받았으나 또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그 뒤를 이어서 그의 부인이 마지막 감독이 되어 어려운 공사를 끝마쳤다고 한다. 마치 우리의 에밀레종 전설을 듣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아름다운 것들 속에는 애절하고 슬픈 이야기들이 숨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다리를 계속 건너서 건너편 주탑을 지나고 브루클린 브리지 마지막 도착점에 이르면 그 부근에 그리말디 피자집과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어서 피자와 아이스크림까지를 먹어야 브루클린 브리지 구경이 완성되는 것이라고 딸아이가 슬쩍 말을 해주었다. 그 말을 증거 하듯이 그 방향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고 또 구경을 완성한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강물 같은 인파에 섞여 브리지 마지막 부분까지 걸어갔다 돌아오고 싶었으나 몸은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오후에 연이어 저녁에는 중요한 저녁식사 약속이 예정되어 있어서 무리를 하면 안 된다고 몸이 가르쳐주고 있었다. 서울보살님과 눈을 한 번 맞추어보고 나서 저 멀리 이스트 강을 지나 어퍼 뉴욕만 쪽을 바라본 뒤에 눈앞의 줄기 파란 햇살 한 가닥을 손끝으로 가볍게 흔들어보았다. 푸르르르... 브루클린 브리지 안녕!

 

 

 

 

 

  호텔로 돌아와 씻고 잠시 쉬었다가 호텔 근처에 오후730분 저녁식사를 예약해놓은 음식점으로 향했다. 플로리아는 딸아이와 지난 3년 동안 룸메이트로 살아왔던 대학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대학 졸업식 때 클럽 오찬회에서 한 차례 본 적이 있는 인사성 바르고 귀여운 아가씨였다. 이제 완전히 숙녀가 되어버린 플로리아를 4년 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음식 맛이, 그중에서도 특히 스테이크와 생선요리가 주특기인 스미스 식당THE SMITH의 장마당 같은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놀라움 속에서 만끽하면서 즐거운 저녁식사를 했다. 자신의 미국식 영어가 어느 정도 숙달되어있는가를 확인해보려면 비싼 비용을 내고 까다로운 테스트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이 그 비용으로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된다. 식당 좌석을 예약하고 음식을 자신의 입맛대로 주문하는 과정에서부터 필요한 서비스를 요청하고 즐거운 대화 속에서 식사를 마친 후 계산서를 받아 현금이든 카드든 결제를 해주고 팁까지 전해주는 절차를 풀코스로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면 도널드 트럼프와 욕설을 해가면서 회담을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문제가 없는 준비된 영어실력이라고 자신을 가져도 좋을 것 같다. 딸아이와 플로리아가 시킨 연어 생선 요리도 맛있었다고 했는데 나와 서울보살님이 시켜 먹은 스테이크도 아주 좋았다. 겉이 약간 탄 것 같아서 너무 센 불로 고기를 익혔나싶었는데 속은 알맞게 구워져서 먹어보았던 스테이크 중에서 불 맛과 고기 맛이 가장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감각이 살아있는 스테이크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식탁마다 한 무더기씩 나오는 프렌치프라이도 맛이 있었다. 식사 중에 붉은 와인을 한 잔씩 마시고 디저트로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속이 개운해지는 게 시원하도록 좋았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THE SMITH는 브런치 메뉴로 유명한 음식점이었고 일주일동안 맨해튼을 돌아다녔던 식당 중에서 분위기나 음식 맛이나 서비스나 두루두루 제일 훌륭했던 곳이었다.

 

 

 

 

 

  언젠가 일요법회 도반님들을 뉴욕으로 초대하면 THE SMITH에서 식사를 꼭 한 번은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플로리아가 초대받은 저녁식사에 대비해서 인터넷에 들어가 한국식사 예절 편을 몇 차례 읽어보았는데 한국식사 예절에는 식탁 앞에서 코를 풀면 절대 안 된다고 나와 있었기 때문에 앓고 있는 여름 감기로 인해 콧물이 자꾸 훌쩍거렸지만 코를 풀 수가 없어서 곤란했다는 말을 딸아이와 아파트로 돌아가면서 하더라는 말을 전해 듣고는 웃음이 나왔다. 서양 사람들은 식탁 머리에 앉아 코는 팽팽 풀어대면서 끄억~ 트림을 하는 것은 질색을 하는 모습을 보면 소위 예절이나 매너도 지역 문화권 안에서의 규범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물론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식탁 앞에서 방귀와 욕설은 금지사항이다. 구태여 거론하지 않은 그 몇몇 가지들은 예절이나 매너 이전의 문명과 야만에 관한 사항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녁식사를 끝내자 벌써 밤930분이 되고 있었다. 식당 앞에서 딸아이와 플로리아를 보내고 우리는 가까운 노점에서 포도와 체리를 산 다음 밤거리에서 가볍게 산책을 즐기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작은 호텔 객실은 단정하고 깔끔했으나 밖의 소음이 방안으로 함부로 들어와 밤새 자동차 타이어 마찰음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11시가 넘어서 잠에 들었으나 그렇게 깊은 숙면을 취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도 다소 이른 시각인 새벽515분경에 눈이 떠져버렸다. 오늘의 USA TODAY 일면 톱기사는 ‘DISASTER ON THE USS JOHN S. MCCAIN’으로 미사일 구축함 맥케인이 싱가포르 말라카 해협에서 알래스카 상선과의 충돌로 인해 배와 인명피해를 입었다는 제목으로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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