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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암을 다녀와서

08월25일, 오늘의 이름은 金요일 3.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09.08|조회수120 목록 댓글 0

 

 

 2017.09.07.. 허공에 가득한 가을의 분주함

 

 

 

 

 

  0825, 오늘의 이름은 요일 3.

 

 

 

 

 

  대체로 성공이나 실패에는 친절한 예고豫告가 없다.

 

 

 

 

 

  그러니까 51 station에서 6번선 지하철을 타고 Spring station인가에서 내린 뒤 맨해튼 남동쪽Lower East Side의 클린턴Clinton가에 있는 브런치 레스토랑에 갔다가 대기줄이 좀 길어서 식사장소를 바꾸어 NYU뉴욕대학교에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들어가 브런치를 먹은 후에 잘 가꾸어놓은 NOHO의 주변 경치를 구경하면서 화창한 풍경 속을 부담 없이 걸어 NYU를 지나고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까지 갔는데 이렇게 걸은 시간이 아마 한 시간 반가량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오늘 새벽녘에 타임스스퀘어 주위를 혼자 돌아보았던 두 시간 반 정도 나들이를 포함해서 오전에 대략 4시간 가까이 걸었던 것 같다. 딸아이 안내를 받아서 이번에 지하철을 타고 가는 목적지는 9.11 메모리얼과 폭발이 있었던 지표의 지점인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와 무너진 쌍둥이 빌딩이 있던 자리에 새로이 지어놓은 세계무역센터 One World Trade Center로 일명 ‘Freedom Tower’라 부르는 빌딩이었다. 이 지역에는 당시 9.11테러가 발생했던 주변을 공원화해놓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그날의 비극적인 순간들이 다시는 재발하지 않도록 참배와 추도를 할 수 있는 경건하고 평온한 공간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 위치에는 검은 대리석으로 장방형 꼴의 거대한 수조水槽를 만들어 놓고 사방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이 수조 가운데 깊은 구멍으로 한없이 흘러내리게 하는 형태의 구조물이 설치되어있었다. 아마 그 검은 대리석 구조물에는 인류애人類愛와 고귀한 생명들의 희생에 값하는 눈물과 슬픔의 의미를 품고 있다고 생각을 했다. 미국 맨해튼 남서부지역에서 발생한 9.11테러와 같은 반인륜적反人倫的이며 잔인하고 폭력적인 테러는 비난당해 마땅한 일이면서 모두의 가슴에 슬픔과 오열이 넘치게 하는 이런 일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자유와 평화를 지향하는 우리들의 처절한 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태의 드러난 현상現狀과 숨겨진 이면裏面을 철저하게 분석하여 정확하게 파악하고 대처를 함으로써 우리들이 소망하는바 더 좋고 선한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9.11테러가 뜻하는 거대한 비극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정치적·문화적 충돌이나 종교적 충돌 안에는 우리들이 무관심했거나 잘 모르고 있었던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라는 논리와 갈등이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라는 환상과 함께 내면 깊숙이 잠겨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그러면 탈식민주의Postcolonialism 란 무엇인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탈식민주의는 대단히 포괄적인 개념이어서 광범위한 분야를 포함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제국주의 시대이후 독립을 한 후에도 여전히 남아있는 제국주의 잔재를 탐색해서 그것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극복하자는 문예사조이다. 그래서 탈식민주의는 현재를 또 다른 형태의 식민지적 상황으로 파악하고 제국주의적인 억압구조로부터 해방의 추구, 제국이 부여한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정체성의 수립, 그리고 더 나아가 불가시적인 문화적, 경제적 제국주의에 대한 경계를 제안한다. 즉 식민주의가 주로 지리적 식민지 그 자체에 주된 관심이 있다면, 탈식민주의는 문화적 또는 정신적 상황에 더 많은 관심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탈식민주의 이론을 정립한 주요 학자 중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ide의 저서인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1978>은 탈식민주의가 체계적인 담론으로 자리 잡는 분기점이 되었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은 한마디로 서구의 눈으로 본 동양의 정체성 형성이며 서양의 자기 이미지를 우월한 문명으로 강화하는 일종의 책략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은 정치적인 권력과 직접적인 대응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종다양多種多樣한 권력과 불균등한 교환관계 속에서 생산, 확산되는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서구인이 보는 동양의 모습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재생산되면서 직접적인 지배와 경제적인 우위優位의 실현이 아니더라도 서구인의 우월성, 동양의 신비화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재 탈식민주의 연구는 확장되는 추세에 있다. 오늘날 식민주의는 단순히 제국주의 같은 어떤 역사적 현상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억압 상황을 의미하는 용어로 광범위하게 수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식민지인 상황을 뜻하던 식민지화된 상태21세기에는 자유와 권리와 평등을 박탈당한 모든 상황을 뜻하는 말로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원래 유럽의 문화와 예술에 나타난 동방취미東方趣味의 경향을 나타냈던 말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동양과 서양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동양에 대한 서양의 우월성이나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서양의 동양에 대한 고정되고 왜곡된 인식과 태도 등을 총체적으로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오리엔탈리즘이라는 개념이 서양의 동양에 대한 인식이라는 폭 넓은 의미로 쓰이게 된 것은 1978년 에드워드 사이드가 발간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이라는 책이 계기가 되었다. 이 책에서 사이드는 서구 국가들이 비서구 사회를 지배하고 식민화하는 과정에서 동양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태도가 어떻게 만들어져서 확산되었는지를 분석했다.

 

 

 

 

 

  그라운드 제로Ground Zero에서 추도追悼와 묵념默念을 마친 뒤 딸아이가 미리 입장권을 예약해놓은 프리덤 타워Freedom Tower를 구경했다. 104층 높이로 세워진 프리덤 타워는 높은 만큼 시야가 넓고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이 뛰어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만큼이나 구경을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단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영상을 통해 설명을 들은 뒤 통 유리창너머로 사방의 전망을 보러 돌아다녔다. 그런데 그때부터 몸의 기력이 떨어지면서 컨디션이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잠시 앉아쉬면 괜찮거니 하는 생각에 의자에 앉아 쉬었는데도 전망을 보러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지 않을 정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여행 중 무리할 만큼 돌아다니거나 장거리 운동을 할 경우에도 피곤하다고 느끼는 경우는 있지만 피로감이 서서히 밀려오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인데 이처럼 한꺼번에 피로감에 휩싸이는 경험은 없어서 당황스럽기도 또한 힘이 들기도 했다. 잠시 후 딸아이와 전망대를 돌아다니던 서울보살님이 내 곁으로 와 앉아 있다가 오후에 브루클린을 돌아보는 일정을 취소하고 일단 호텔로 돌아가 쉬었다가 미리 예정되어있는 저녁식사에 참석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물어왔다. 딸아이도 같은 권유를 해왔고 나도 여러 곳을 더 돌아다니고 싶은 의욕이나 열정이 생기지 않아서 아쉽지만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이런저런 사유로 근처의 지하철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아직 녹색 바람과 푸른 햇살이 짱짱한 오후3시경에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했다. TV를 켜놓고 침대에 누워 뉴스를 듣다가 졸다가하면서 편안하게 쉬었다. 그리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다. 오늘 오후에 프리덤 타워 꼭대기 층 전망대에서 느꼈던 온몸을 억누르던 피로감의 이유와 정체가 무엇일까 하고 생각을 했다. 그런 뒤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부터 사흘째인 오늘까지 하나하나를 되짚어가면서 일정이나 평소와는 달랐던 변화들을 확인해보았다. 그러다가 얻은 결론이 한 가지 있었다. 그러니까 몇 년 전만하더라도 미국에 와서 시차 같은 것에 신경을 쓸 필요 없이 내가 해오던 방식대로 그저 일정에 맞추어 움직이면 웬만한 정도는 내 몸에서 이겨내고 조절이 되었는데, 이번에도 예전부터 해왔던 대로 미국에 도착한 다음 이틀에 걸쳐 새벽 나들이를 두어 시간씩 돌아다님으로 해서 시차를 극복할 수 있는 시간이나 배려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시차조절의 실패로 몸의 균형이 깨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이제부터는 몸이 알아서 이겨내고 조절을 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먼저 몸을 관리해주고 배려해야하는 그런 시기에 들어왔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무언가 커다란 것이 몸에서 한순간 빠져나가는 듯한 상실감 같은 것이 몰려왔지만 이것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든 받아들여야하는 현실과의 타당妥當하면 협조協助를 하는 포용包容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이제까지는 몸에게 균형과 조절을 일방적으로 맡겨왔지만 지난 60여 년간의 수고에 보답하듯이 이제부터는 몸에게 섬세한 관리와 부드러운 배려로 응해줘야 할 차례가 되었나보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그동안 수고 많이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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