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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암을 다녀와서

08월28일, 오늘의 이름은 月요일 4.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7.10.06|조회수124 목록 댓글 0

 

 

 2017.09.21.. 좋은 바람과 순한 햇살은 시간을 타고

 

 

 

 

 

  0828, 오늘의 이름은 요일 4.

 

 

 

 

 

  환절기換節期란 계절은 없는데 자꾸만 있다고 하다 보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데생dessin과 드로잉drawing과 크로키croquis가 서로 어떻게 다르고 무엇이 같은지 잘 모르고 있었다. 마치 일반인들이 유도기술에서 절반折半과 유효有效와 효과效果를 구분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으로. 그래서 이제는 박진감 넘치는 유도시합을 위해 각각 2017년과 2008년의 룰 개정으로 인해 유효와 효과는 폐지되어버렸으나 절반과 한판의 구별 역시 일반인들 시각으로는 때에 따라 알쏭달쏭한 차이가 남아있을 것이다. 유도에서 한판승에 필요한 4가지 요소에는 기세, 탄력, 속도, 통제력이 들어있어서 이 요건들을 얼마만큼 갖추고 있는 기술이냐에 따라서 한판과 절반이 판정되는데, 유도의 눈을 통해서 시합을 들여다보면 구태여 각 요소들을 낱낱이 따져보지 않더라도 기술을 척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아마 미술을 하는 분들도 이와 똑같은 방식으로 인해 그림을 척보면 데생과 드로잉과 크로키가 감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우리말로는 소묘素描로 번역이 되는 데생과 드로잉의 설명을 꼼꼼하게 읽어보고 예시例示 그림들을 또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움직이는 형태와 윤곽선으로 그려내는 이라는 주요인主要因이 드로잉이라면 빛에 의한 입체감과 양감의 느낌이 성립되도록 표현하는 방식이 데생이라는 말의 주요 포인트가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보았다. 이런 개념정리가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렇게 내 나름대로 머릿속으로 어떤 개념들을 정리해보는 일이 매우 즐겁다. 즐거움의 내용이란 데생은 본래 프랑스 말이고 드로잉은 영어라는 것을 안중眼中에 넣어본다면, 또 그 말을 소묘素描라는 우리말로 번역해놓은 분위기를 따라가면서 인상印象이나 어감語感을 음미하고 즐겨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당연히 그림의 풍부함을 따져본다면 데생>드로잉>크로키가 되겠지만 그리는 속도로만 따진다면 크로키>드로잉>데생이 될 것이다.

 

 

 

 

 

  나는 음악이나 미술, 무용 등 예술에는 대체적으로 관심은 있되 직접 관여한 바는 별로 없는 아웃사이더인데 언젠가 우연한 기회에 그림에 관해서는 매우 독특한 체험을 가지고 있다. 대략 30여 년 전으로 기억의 바늘을 돌려본다면 그 장소가 천안으로 모아지게 된다. 천안 소재 성거산聖居山에 보명사라는 절이 있는데, 성거산聖居山이라는 지명 때문인지 한동안 인연이 닿아 보명사를 드나들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절에 머무르던 한 스님이 족자로 된 동양화 호랑이 그림을 펼쳐 보여주었는데, 그림속의 호랑이 두 눈에서 몸서리쳐지는 푸른 불이 뚝.... 떨어지는 광경을 눈앞에서 보고는 아아, 이런 그림이 정말 있기는 있는구나. 하고 감탄을 했다. 화선지에 그려놓은 호랑이가 펄펄 살아 날뛰는 호랑이보다 용맹과 기세가 더 준엄하여 방안의 공기까지 서늘한 긴장감이 팽팽하도록 두 눈에서 영기靈氣를 쏘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누굴까, 저런 그림을 저렇게 그려낼 수 있는 화가는 어떤 사림일까하는 궁금증이 울컥 솟아났으나 그 스님도 우연히 얻게 된 그림이어서 작가가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한 서너 달 뒤 어떤 이유에서였던지 법당에서 스님의 개인 미술품 전시회를 열게 되었고 그 자리를 빌려 그 호랑이 그림을 한 번 더 보게 되었는데 순백의 화선지는 한 군데도 그을리지 않은 채 여전히 호랑이 두 눈에서는 시퍼런 불꽃이 날선 비수처럼 점점點點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센트럴파크 남문을 통해 시내로 나와 슬슬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다. 천천히 걸어도 30여분 안팎의 거리여서 시내 구경도 할 겸 그런대로 걸을 만은 했다. 그때 시간은 오후5시 전후쯤으로 저녁식사까지는 아직 두어 시간 가량 남아있었다. 손과 발을 씻고 편안한 자세로 침대에 걸터앉아 신문을 펼쳐들었다. Section A의 뉴스 란에는 7면 중 4면이 허리케인 하비로 인한 DISASTER IN TEXAS텍사스의 재난에 관한 기사들로 넘쳐나고 있는데 마치 춘향전에서 변 사또의 수청을 거부하고 감옥에 갇힌 춘향이가 이몽룡에게 보내는 편지 마냥 온통 애고.. 애고.. 일색이었다. 뉴스 란 일면 대문 사진 밑으로 CATASTROPHE天災 라는 머리기사 아래에는 Inundated Houston faces an ‘unprecedented’ 50 inches of rain. 라고 사족을 달아놓았다. 그러니까 역사상 전례가 없는 1,270mm의 빗물이 텍사스 휴스턴의 지표에 범람해버렸다는 이야기였다. 일 년 지나가야 비가 몇 차례 올까말까 하는 지역에 이런 비와 폭풍이 한꺼번에 몰아쳤으니 그 피해가 얼마만큼 컸을지 상상이 가는 대목이었다. 우리나라 일 년 동안 내릴 비가 사막기후에 가까운 텍사스에 이틀 만에 쏟아져버렸으니 어찌할까 경악驚愕을 금치 못하게 되었는지를 USA TODAY 기사 안에서 사용하고 있는 문장이나 단어들이 당시 상황을 극명克明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For desperate survivors, ‘the cavalry is coming’

  Harvey is poised to be ‘landmark’ disaster

  History’s most hellish storms in USA

  For Houston, ‘worse than the worst-case scenario’

  Texas’ travails are ‘just the beginning’

  Flood victims face long slog 등인데

 

 

 

 

  여기에서 desperate survivors란 절망적인 생존자라는 말이고, ‘landmark’ disaster는 재난의 획기적인 사건이고, hellish storms는 지옥의 소름끼치는 폭풍우이고, Texas’ travails는 텍사스의 고통이며, victims은 희생, slog는 강타하다는 뜻이다. 이것을 춘향전 버전으로 바꾸면 모조리 애고.. 애고..로 바뀐다고 보면 된다. 그만큼 자연의 절대적인 힘과 지구 온난화 또는 기후 이상변화를 초래한 인간의 전횡專橫 앞에 서서히 그러나 차근차근 반응하는 자연에 대한 공포감恐怖感이 가감 없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대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여전히 대량으로 소비하고, 자원을 낭비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자연과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 ‘모르는 놈은 손에 쥐어줘도 모른다고 했으니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면 누가 알아서 모호한 채 전개되고 있는 불확실한 현실과 암담한 상황을 타파打破하고 헤쳐 나갈 것인지 두렵고 두려울 뿐이다.

 

 

 

 

 

  그건 그런데 Section D의 인물 란에 오랜만에 다시 보게 되는 얼굴이 올라와 있었다. 1997831일 파리 알마 터널에서 교통사고로 37살에 세상을 등진 그녀의 삶을 안타까워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고 잊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의 죽음에는 영국 정보당국과 왕실이 개입했다는 소문이 지난 20여 년 동안 끊이지 않고 있다는 내용은 본격적으로 다뤄지지는 않았으나 기사의 행간을 잘 읽어보면 파파라치에 의한 교통사고로 인한 죽음이 분명하다고 외치는 만큼 그러면 그럴수록 그녀의 죽음에 대한 미스터리는 여전히 유효有效하다는 냄새를 팡팡 풍기고 있다. 인물 란의 사진은 199211월 파리의 한 책방을 나서는 금발의 파란 눈의 붉은 입술에 분홍색 정장차림의 그녀가 취재기자들이 밀집한 포토라인 앞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영국왕실의 체면 때문에 하고 있었다는 것을 우리들은 알고 있고, 그 후 4년 뒤에 찰스 왕세자와 이혼을 하고 그 후 1년 뒤에 교통사고로 운명運命을 달리하게 된다. 우리나라에도 오랜 역사 속에 긴 왕조의 시기가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그런데 지구상에는 아직까지 왕조가 남아있는 나라들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국민의 세금으로 지탱을 하고 유지되면서 영국왕실을 대표하고 있는 성장盛裝한 여왕의 일 거수擧手 일 투족投足 등 하얀 장갑을 낀 여왕의 동정動靜을 바라보기 가장 좋아하는 나라가 영국이라는 사실은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 속에서 어떤 나라들의 왕실이나 황실들에서 일어난 부도덕한 성적 타락이나 권력의 전횡專橫이나 허영스러운 사치벽奢侈癖을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일부 민중들은 그들에 대한 환상幻想과 동경憧憬을 가슴속에 품고 있는 듯하다. 그런 충직한 왕실 바라기가 바로 국가에 대한 충성과 애국심 또는 국가적인 자부심으로 연결이 된다고 그들은 믿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죽은 지 20년이 지나도록 영국 왕세자비였던 다이애나를 향해 영국에서 울려 퍼지는 사모곡思母曲은 사람들의 이성理性과 감성感性과 환상幻想 사이에 교묘하게 끼어있는 21C 영국 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저녁7시가 가까워져 오자 예정된 저녁식사시간을 준비해야했다. 몸을 씻고 나서 다시 옷을 챙겨 입고 서울보살님과 딸아이를 앞장세운 채 길을 나섰다. 오늘 저녁식사가 예약된 식당은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아들아이의 절친이자 룸메이트인 청년 사업가 아이가 지분을 가지고 맨해튼에서 운영하고 있는 MAYSVILLE이라는 바-레스토랑이었다. 아빠가 술을 좋아한다면 말할 수 없을 만큼 만족했을 만한 그러한 바-레스토랑이었는데 아쉽게도 아빠는 술보다 밥을 훨씬 사랑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았더니 MAYSVILLE -레스토랑은 GQ 매거진 선정 미국 최고 10대 위스키 바로 잘 알려진 곳이었고, 가장 유명한 메뉴로는 구운 굴요리가 품목에 올라있었다. 그래서 그랬던지 식사를 하는 도중 주변의 촛불이 켜진 식탁에서 구운 굴요리에 버번Bourbon이나 위스키Whisky를 마시고 있는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구운 굴요리는 장방형 모양의 접시 바닥에 지푸라기를 깔고 그 위에 가느다란 나뭇가지로 거치대를 만들어놓고 그 위로 구운 굴을 껍질째 통으로 예닐곱 개씩 올려놓고 있었다. 저렇게 찌푸리기 위에다 굴 몇 개를 올려놓고 과연 얼마씩이나 받을까하고 생각을 해보았더니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우리들은 찜통으로 가득가득 굴을 넣고 푹푹 삶은 뒤 방바닥에 둘러앉아 굴을 까먹고는 했는데 그렇게 쪄먹는 굴도 맛이 있지만 구운 굴도 맛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 메뉴판을 보고 내가 만만한 스테이크를 시키자 서울보살님은 채소 샐러드를 그리도 딸아이는 뭔가 이름이 복잡한 음식을 시켜서 천천히 맛있게 먹었다. MAYSVILLE -레스토랑의 실내 인테리어는 꽤 독특해서 여느 레스토랑에 비해 천정이 아주 높았고 거침없이 시원스런 벽에는 하얀 천에 말 드로잉 작품을 열 점 가까이 걸어놓았다. 그래서 식사를 하는 내내 하얀 허공중을 날듯이 뛰어다니는 열 마리 백마들의 힘찬 도약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아마도 거칠고 순수한 야생 말떼가 뛰노는 거대한 초원에서 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스테이크를 먹는다면 이런 기분이 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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