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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암을 다녀와서

떠날 때는 말 없이.

작성자밸라거사|작성시간18.08.11|조회수113 목록 댓글 0

 

 

 2018.08.10.. 하늘은 쾌청, 어제도 소나기 오늘도 소나기

 

 

 

 

 

 떠날 때는 말 없이.

 

 

 

 

 

 

  저를... 아세요?’ 마뜩잖은 얼굴로 상대방 쪽에서 되물어오는 바람에 그는 순간 주춤했다. “, 아는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사람을 잘못 보았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는 엉거주춤 자리에 앉으면서 당황스런 눈길로 상대방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뭔가 다른 것도 같았다. , 까만 머리가 단발이 아니라 어깨에 닿을 듯 말 듯 길어져있었다. 새초롬하게 그를 쳐다보고 있던 아가씨는 벌써 시선을 어느 한 점으로 돌려놓고 있었다. 하얀 꽃무늬 블라우스에 하늘색 스커트를 갖춰 입고 시선을 모아 앞을 쳐다보고 있는 긴 목과 하얀 옆얼굴이 확실히 눈에 익었다. 그렇지만 목에 은빛의 가느다란 목걸이가 걸려있었다. 알 듯 말 듯한 분위기하며 청결하고 단정한 옆모습은 몇 가지 사소한 변화를 제외한다면 역시 그 아가씨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는 일단 생각을 정리해보고 싶어서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어 한 개비를 뽑아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담배를 한 모금 두 모금 연거푸 빨아들여 가슴 속으로 연기를 깊숙이 집어넣었더니 속이 후련해지면서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두어 모금을 더 빨아들인 뒤 하얀 연기를 후우~ 하고 길게 내뿜었다. 하얀 연기가 다발을 이루면서 허공의 한 점에 도달하자 이내 부드럽게 흐늘흐늘 옅어지면서 부챗살처럼 넓게 흐트러져나갔다. 그는 다시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이번에는 가슴속에서 일어나던 몇 점의 당혹감當惑感까지 내뿜듯 하얀 연기를 거침없이 후우~ 내뿜었다. 그러자 옆에서 가볍게 잔기침을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옆을 돌아보았더니 옆 좌석 아가씨가 손을 입가에 대고 잔기침을 하고 있었다. 그 손과 옆얼굴이 무척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차, 담배를 꺼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와 똑같은 순간이 두어 달 전 고속버스 안에서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옆 좌석의 아가씨를 돌아보면서 , 미안합니다말하고는 의자 등받이에 붙어있는 재떨이 통에 담뱃불을 부빈 후 꺼버렸다. 그의 말에 옆 좌석 아가씨가 화답하듯 고개를 살짝 까닥했으나 손은 입가에 댄 채 시선은 그대로 앞을 향하고 있었다. 창 쪽에 앉아있는 아가씨가 그를 전혀 모르겠다는 눈치이니 뭐라고 다시 말을 붙일 수도 없고 담배를 피우자니 아가씨가 또 잔기침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차라리 눈이나 좀 붙이자는 심정으로 의자 등받이를 뒤로 눕히고 스르르 눈을 감았다. 막상 눈을 감았더니 두어 달 전 고속버스에 나란히 앉아 함께 서울까지 갔던 까만 단발머리 아가씨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그를 생면부지生面不知의 얼굴로 대하면서 옆 좌석에 앉아 있는 아가씨가 분명 그 단발머리 아가씨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속버스에 시동이 걸리는 진동과 기계소음이 들려오더니 승객들은 모두 안전벨트를 매달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그는 조금 전에 매놓은 안전벨트를 손으로 쓸어 확인해보고는 생각은 두어 달 전 기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창 쪽 옆 좌석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전벨트 끝에 달려있는 쇠고리가 어딘가에 긁히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그는 눈을 뜨고 옆 좌석을 돌아보았더니 아가씨가 안전벨트를 매려고 쇠고리 부분을 잠금장치에 밀어 넣는데 잘 걸리지가 않는 듯했다. 아가씨는 고개를 숙이고 몇 차례나 반복해보더니 오른손에 쇠고리를 든 채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래서 그가 의자 등받이를 앞으로 당기고 안전벨트를 푼 다음 얼굴을 돌려 아가씨를 쳐다보며 말했다. “저어, 괜찮으시면 내가 안전벨트를 매어드릴까요?” 하고 물어보았다. 그의 말에 아가씨가 고개를 살짝 까딱했다. 그는 아가씨에게서 쇠고리를 건네받아 상체를 왼편으로 비틀어 옆 좌석 왼편 팔받이 아래 붙어있는 붉은 잠금장치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가 엎드리기 편하도록 아가씨가 몸을 좌석 뒤로 바짝 붙여 앉았지만 그의 왼쪽 어깨가 아가씨의 가슴을 투욱 스쳐지나갔다. 그러자 그의 코에 젊은 여인女人의 향기香氣가 물씬 풍겨왔다. 코를 가득 메우는 고혹적蠱惑的인 향기에 그의 가슴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리움 같은 안타까움이 뭉클뭉클 솟아났다. 그는 엎드린 자세로 오른손에 쇠고리를 들고 팔받이 아래 있는 잠금장치 안으로 밀어 넣어보았다. 붉은 잠금장치에 밀려들어가던 쇠고리가 딸깍! 하고 채워지지 못하고 무언가에 걸려 끝까지 들어가지를 못하는 것 같았다. 그는 왼손을 깊숙이 뻗어 잠금장치를 잡고 오른손에 힘을 줘가면서 쇠고리를 안쪽으로 몇 차례 꾹꾹 밀어 넣었다 빼냈다를 반복해보았다. 두 팔을 움직일 때마다 가슴에 부딪쳐오는 하늘색 스커트 속 허벅지 탄력이 부드럽게 느껴져 왔다. 그는 이런 상황이 싫지는 않았으나 다소간 어정쩡한 자세가 조금 부담스러웠고 혹시 오해라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는 생각에 자연 두 팔에 힘이 들어갔다. 그래서 쇠고리를 무리하게 밀어 넣었더니 아뿔싸! 이번에는 잘 빠지지를 않았다. 손아귀에 힘을 바짝 주어 서너 번 실랑이를 한 뒤에 잠금장치에서 쇠고리를 겨우 빼내어 몇 차례 더 밀어 넣고 빼내는 동작을 반복해보았다. 그러자 잠금장치 안이 막혀있는 것처럼 뻑뻑하던 것이 조금 느슨해지면서 쇠고리가 스윽~ 끝까지 들어가자 마침내 딸깍! 하는 소리가 상큼하게 들려왔다. 바로 그의 눈 밑에 있는 하늘색 스커트의 올 하나하나가 하늘과 맞닿은 수평선처럼 푸르고 선명하게 보였다. 아가씨의 무릎위에 상체를 숙이고 있던 그는 몸을 일으키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아가씨가 고맙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해주었다. 그도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안전벨트를 맨 뒤 좌석 등받이를 뒤로 눕히고 눈을 감았으나 가슴속은 보라색 안개로 가득 차있는 것 같았다. 형형색색形形色色의 소망과 꿈을 안은 사람들을 태우고 고속버스는 북쪽을 향해 시원스럽게 내달리고 있었다.

 

 

 

 

 

  버스 바퀴에 돌멩이가 튀겨나갔든지 도로에 파인 곳이 있었든지 고속도로 위를 달려가던 버스가 움찔하는 바람에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여기가 어디쯤일까 하고 창 쪽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나지막한 산과 그 앞으로는 푸른 색종이를 이어놓은 듯 논과 밭이 넓게 펼쳐져있었다. 창밖 가까운 곳부터 하늘 닿는 저 멀리까지 초록이 표정을 바꾸어가며 점점 짙어가면서 때로는 스스로에 대해 엄격해지고 있었다. 부드러운 햇살아래 산그늘은 거의 검은색으로 물들어있었다. 그렇게 무심코 차창車窓 밖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선명한 검정색이 그의 눈앞에 출렁~ 떠올랐다. 옆 좌석 아가씨가 고개를 이쪽 편으로 돌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두어 번 자세를 편하게 골랐다. 곤한 잠에 빠져있는 아가씨 고개가 살짝 숙여지면서 까만 머리가 흐트러진 대로 얼굴이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전체적으로 하얀 빛이 감도는 이목구비耳目口鼻가 참 단정한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을 받치고 있는 긴 목이 까만 머리칼에 휩싸여있는데 그 가운데로 앙증맞은 목걸이가 보였다. 은빛의 가느다란 줄에 초록 잎사귀 세 장 가운데는 붉고 작은 보석이 별처럼 박혀있는 심플한 목걸이였다. 하얀 얼굴과 까만 머리칼 사이로 드러난 붉은 보석이 잘 어울려보였다. 아가씨가 몸을 움찔하더니 눈꺼풀 안으로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그는 아마 꿈을 꾸고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을 했다. 표정이 미세하게 변화하면서 미소를 짓기도 미간을 가볍게 찌푸리기도 했다. 그는 아가씨의 미묘한 표정변화 속에서 무언가를 느끼고 싶은 듯 물끄러미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아가씨가 몸을 두어 번 뒤채더니 자세를 바로해서 좌석에 단정하게 앉았다. 그는 얼른 고개를 돌리고 슬그머니 눈을 감았다. 잠시 후 버스 스피커에서 음악이 흘러나오더니 휴게소에서 15분간 쉬었다 가겠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버스는 점차 속도를 줄여 고속도로 가장자리 길을 따라 휴게소 안으로 서서히 들어갔다. 승객들이 대부분 버스에서 내리자 그도 안전벨트를 풀고 좌석에서 일어나 통로로 걸어 나갔다. “저기요~” 그때 창 쪽 좌석에 앉아있던 아가씨가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아가씨를 향해 돌아보면서 왜요?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아가씨가 안전벨트를 가리키면서 이게 안 풀려서요라고 말했다. 밀어 넣을 때도 말썽이던 잠금장치가 빼낼 때도 역시 말썽이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 그럼 잠깐 실례하겠습니다하고 아가씨 무릎 위로 몸을 구부려 붉은 잠금장치의 뚜껑을 열고 까만 줄을 당겨보았다. 쉽게 빠져나와야하는 쇠고리가 무언가에 걸려있는 것 같았다. 다시 왼팔을 길게 뻗어 왼손으로 잠금장치의 뚜껑을 열고 오른손으로 쇠고리 밑 부분을 잡아 힘껏 당겨보았다. 역시 무엇에 걸려있는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렇긴 하지만 쇠고리가 잠금장치 안에서 무엇에 걸려있더라도 꼭 풀어줘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쇠고리를 잠금장치에 걸 때야 되면 좋고 안 돼도 그만이지만 안전벨트를 풀지 않으면 좌석에서 나올 수가 없으니 만약 용무가 급하다면 이 또한 난처한 일이 아닐 수가 없어서였다. 몇 번이나 힘을 주어 쇠고리를 잡아당겨보다가 이번에는 잡아당기는 대신 안쪽으로 힘껏 밀어 넣었다가 슬그머니 잡아당겼더니 잠금장치 안에 걸려있던 쇠고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쉽게 빠져나왔다. 안전벨트가 풀리자 그는 얼른 숙였던 상반신을 세우고 뒤로 물러나 통로 쪽으로 비켜 서있었다. 아가씨는 좌석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바로 잡더니 고개를 까딱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통로 쪽으로 걸어 나왔다. 그는 버스에서 내려 아가씨가 하늘하늘 걷는 뒷모습을 보면서 잠시 제자리에 선 채로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옅은 구름이 깔려있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휴게소 안으로 들어가 캔 음료를 두 개 사들고는 버스로 돌아왔다. 버스안내양의 승객확인이 끝나자 버스는 스르르 미끄러지듯이 휴게소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담배도 못 피우니 음료라도 하나 마셔야지 하고 캔 음료를 손에 들었다가 먼저 아가씨에게 건넸더니 자신도 음료를 준비했다면서 역시 음료를 하나 그에게 건네주었다. 옆 좌석 아가씨는 그가 건네준 캔 음료를 두 손으로 받아들었고 줄곧 오른손에 들고 홀짝홀짝 마시고 있었다. 그도 홀짝홀짝 음료를 마시면서 창밖으로 스쳐지나가는 세상이 어두워져가는 풍경들을 구경했다. 한 번 세상에 어둠이 풀려나자 순식간에 밤이 왔고, 버스 안은 실내등이 켜져 낮처럼 밝은 그들만의 세상이 되어있었다.

 

 

 

 

 

  버스가 동대문 고속터미널에 도착하자 다른 승객들 뒤를 따라 그도 내렸다. 그리고 아가씨에게 어느 쪽으로 가시는지? 하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동대문 고속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광희문 방향으로 간다고 했다. 마침 그가 살고 있는 곳이 신당동이어서 가는 방향이 같으니 택시를 타고 가다가 광희문 부근에서 내려드리겠다고 했더니 아가씨는 고개를 까딱하고는 고맙다고 했다. 광희문 부근에서 택시를 잠깐 멈추고 트렁크에 실려 있는 작은 가방을 그가 건네주었더니 아가씨가 오른손으로 받아들고는 고개를 한 번 그를 향해 까닥하고는 한산해진 광희문 길의 어둠속으로 하늘하늘 걸어갔다. 세월이 지나가고 그해 가을 여산인지 죽암인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그는 아가씨를 딱 한 번 더 만났다. 그가 탄 버스보다 15분 먼저 서울로 출발한 고속버스를 타고가다 휴게소에 들어갔는데 그 다음 고속버스 편으로 출발했던 그가 탄 차가 같은 휴게소로 들어가게 되자 휴게소 주차장에서 서로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그로서는 주차장에서 만났던 아가씨가 단발머리 아가씨인지 목걸이 아가씨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역시 그쪽에서는 그를 기억하지 못하고 그가 전하는 인사를 멀뚱한 표정으로 마뜩잖게 흘려보내고 있었다. 물론 그는 이제 단발머리인지 긴머리인지 왼손잡이인지 오른손잡이인지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는 않다고 생각을 했다. 그 아가씨는 한 사람의 두 형태인 분신일 수도 있고, 일란성 쌍둥이일 수도 있고, 빛과 그림자처럼 항상 함께 있으나 서로 전혀 다른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두 가지 현상일 수도 있고, 와 용, 혹은 허상虛像과 실제實際일 수도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해 여름 광희문 부근에서는 사람들이 혹할만한 기이한 소문이 나돌아 다녔다. 일요일 해거름 녘으로 어두워질 무렵이면 상여를 맨 장례행렬이 광희문 앞을 지나가곤 했는데 그 앞에는 단발머리와 긴머리의 두 젊은 여인네가 항상 앞장을 서서 걸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고를 받고 경찰이 출동해서 보면 아무 것도 없는지라 몇 번 이런 일이 반복되자 소문에 소문이 꼬리를 이어 부풀려져갔고 사람들은 그것을 광희문光熙門 괴담怪談이라고 불렀다. 본래 서울 도성을 통과하는 문으로는 사대문四大門과 사소문四小門이 있었는데, 광희문은 시구문屍軀門, 수구문水口門이라고도 했으며 서쪽의 서소문과 함께 도성 내의 장례행렬이 동쪽 방향으로 지날 때 통과하는 문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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