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계지덕
지금도 자주 동요하고,
자주 교만하고,
자주 조급하지만
진짜 투계가 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목계지덕]
그런 꿈을 이룬 사람이고 싶다.
목계지덕
당신의 꿈은 살아있나요?
당신의 꿈은 가능한가요?
당신의 꿈에 타인의 도움이 필요한가요?
당신의 꿈은 그 고난의 시간을 견디는 중인가요?
아니면 그 고난을 다 견디어 내셨나요?
꿈을 이루는 동안 얼마큼 상처를 입었으며
꿈을 이루는 동안 어떤 아픔을 앓았나요?
꿈이 지칠 때 어떻게 견디며 쓰다듬으셨나요?
꿈이 우울한 날 얼마나 혼자 우셨나요?
꿈이 서글프게 한 날 어떤 위안으로 버티셨나요?
결국
꿈에게 보여준 당신의 신뢰는 인정받았나요?
어른이 되면서 사실 나에게 꿈을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내 꿈을 궁금해 할 사람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 꿈을 위해 내 청춘을 복종했다.
능력이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그냥 꾹 참기
그만두고 싶을 때 마다
그만두지 말라고 나에게 때를 썼다.
유치한 자존심은 팔아 먹은지 오래였고
내 멋대로 하기엔 두려움에 쫄아 살았다.
내 꿈에 당당했지만 내 모습은 늘 우울했다.
나를 아프게 하는 것들
상대적 비교와 상대적 박탈감들을 무시했다.
그리고 그건 어려운 일도 힘들 일도 아니었다.
꿈 앞에 무시 받을 땐 분노가 일었지만
극한 상황이 오면 오히려 냉정했다.
꿈, 그 꿈을 위해 내 인생을 난폭운전 했다.
나의 좁은 지식과 식견이
안쓰러울 정도로 인정되는 부족함
부족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늘 큰소리를 친 건 아닐까?
자주 분노하고 자신에게 그 분노가
늘 복병인걸 알면서도
자신을 다스림에 모자람이 많은 사람이 바로 나였다.
늘 예민해서 분노를 밥 먹듯 하면서
사람만나는 일이 두려웠다.
조금만 심기가 불편해도 쉬이 짜증을 내고
나를 이해 못하는 주변 사람들을 미워했다.
왜 그리 화낼 일도 성질 낼 일도 많았는지 모르겠다.
완벽하지 못하면서 완벽한 체 하느라
그것이 들키기 싫어설까?
스스로에게 주는 자학의 분노는
정신병처럼 치닫기도 했고
언제 시한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나는 싸움 닭이었다.
싸움닭
그랬다. 참 많이 어리석었다.
<경청과 목계>의 그 싸움닭이 목계지덕이 되기까지
나는 그렇게 거친 싸움닭으로 살았다.
목계지덕
첫째-자신이 제일이라는 교만함을 버려라
둘째-상대방의 소리와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마라
셋째-상대방의 대응에 자신의 감정을 통제해라
넷째-상대방에 대한 공격적인 눈초리를 버려라
꿈을 위해 내공을 쌓기까지 내가 진짜 싸우지 않고도
두렵지 않는 목계가 되기까지 그 경계심은 늘 나를 힘들게 했다.
강하다는 건 경계가 없다는 것이고
진짜 강하다는 건 경계심마저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자주 동요하고,
자주 교만하고,
자주 조급하지만
진짜 투계가 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작은 일에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목계지덕]
그런 꿈을 이룬 사람이고 싶다.
처음엔 꿈이 사회적 명성과 지위 권력의 서열인줄 알았고
철든 후 꿈은 좋은 집, 좋은 차 였을만큼 아주 많이 어리석었고
철들 무렵 지금의 내 꿈은 ‘목계지덕’ 그런 사람이 되는게 내 꿈이다.
꿈-이루어지거나 바라거나 꾀하는 일, 실현시키고 싶은 희망
돌아보니 내 과거의 꿈들은 백과사전의 꿈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 보니 내가 가지고 싶은 건
무릇 부귀영화가 아니었다.
다윗왕이 반지 세공인을 불러
나를 위한 반지를 만들 되 내가 교만하지 않고
내가 큰 절망에 빠졌을 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으며
스스로에게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글귀를 새기라고
다윗왕이 명할 때 세공인은 솔로몬 왕자를 찾아가 부탁할 때
그 솔로몬 왕자는 세공인에게
“이 또한 지나가리라”한다.
즉 불행과 함께 할 때 희망을 잃지 말며
행운이 따를 때는 겸손함과 자만함을 경계하라 했듯
지금 반 구십 앞에 내 꿈은 내 감정을 통제 할 수 있는 힘이다.
가끔 앞이 안보일 때 가끔 내 현실적 욕구가 앞설 때는
최소한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가 꿈꾸는 꿈, 내가 꿈꾸는 미래는 나만 안다.
내 살아생전 내가 이룬 재물이 조금 더 많다하여
내 죽은 후 우는 이가 더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나는 내 꿈을 내 이상을 살고싶다.
내 소신대로 사는일
내 죽은 뒤 내가 남긴 글들에게 위안받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나무로 만든 닭처럼 내 감정을 통제할 줄 아는
멋진 카리스마로 살고 싶다.
내 꿈
멋진 인생, 멋진 사람, 멋진 글
반 구십의 오늘 사십사년 뒤 내가 떠나는 그날
‘목계지덕’을 갖춘 사람으로 죽는 일을
꿈꾸는 오늘이 너무 벅차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