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일 3월26일 화요일
일곱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오늘의 말씀 마태오18:21-35
그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마태오18:2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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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年6月、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유서 깊은 흑인교회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해 9명이 사망한 가운데, 경찰은 백인 용의자(루프, 당시21세)의 범행동기가 인종차별에 인한 증오범죄라고 발표했습니다. 전미를 경악시킨 이 사건은 이틀 후 보석 여부를 심판하는 재판이 열리고 유족들은 주(州) 관례에 따라 심문 중 모니터 카메라 너머의 용의자에게 한 사람씩 발언을 하는 시간이 주어졌습니다.
당시 현장에 있던 펠리시아는 죽은 척하면서 총격을 피할 수 있었지만, 아들인 타이완사는 그녀의 눈앞에서 숨지고 말았습니다. 그녀는 "우리는 두 팔을 벌려 너를 성경 모임에 받아들였지만 너는 내가 알기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내 몸에 있는 살 하나하나가 모두 아프고 나는 예전처럼 살아가지 못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너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기도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네이딘 콜리어는 "너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겠다. 엄마를 다시 안을 수 없고 함께 얘기를 할 수도 없으며 많은 이들이 너 때문에 고통스럽지만 하나님은 너를 용서할 것이고 나도 너를 용서한다"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목사인 할아버지를 잃은 손녀는 "할아버지와 다른 희생자들이 증오의 손에 의해 돌아가셨지만, 증오는 결코 사랑을 이길 수 없다. 모두가 당신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고 울면서 말했습니다.
그날 유족 전원이 범인을 용서했습니다. 유족들이 보여준 위대한 용서는 증오범죄가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는 전 미국을 울리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상대가 뉘우치기는커녕 사과 한마디 없는데, 왜 내가 먼저 용서하지 않으면 안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용서는 상대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원한을 품은 채로 살아가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망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후대에까지 불행의 씨앗을 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이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복수하고 심판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느님의 눈앞에는 모든 것이 다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히브리4:13)라는 말씀과 「사람은 단 한 번 죽게 마련이고 그 뒤에는 심판을 받게 됩니다.」(히브리9:27) 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란 나를 옭아매고 있는 미움과 원망의 속박으로부터 자신을 풀어주기 위해, 그들에 대한 판단과 복수마저도 하느님의 심판에 모두 맡기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성서에 「친애하는 여러분, 여러분 자신이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서에도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할 일이니 내가 갚아주겠다." 하신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12:19)라고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들이 서로를 용서함으로써 원한이라고 하는 늪에서 벗어나 상처를 치유하고 영혼이 회복되어, 다시금 축복받은 삶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라시고 계십니다.
†黙想: 주님은 우리들에게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바로 하느님한테 용서받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용서받았기 때문에 나도 용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의 자녀에게 있어 용서란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았다」라고 하는 확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용서는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용서받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신앙의 선물이자 은총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