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일 4월 4일 목요일
마음의 울타리
†오늘의 말씀 요한5:31-47
너희는 성서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을 알고 파고들거니와 그 성서는 바로 나를 증언하고 있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람에게서 찬양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지만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러나 아마 딴 사람이 자기 이름을 내세우고 온다면 너희는 그를 맞아들일 것이다. (요한5:3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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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생각의 틀을 지키려고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이러한 경향이 강한 사람들을 우리들은 소위 “완고” 하다라고 합니다. 또는 좋은 말로 하면 “주관이 강하다” 라고 말 할 수도 있고 조금 나쁘게 표현하면, “고집이 세다” 라고도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어느 시골에서 전투가 벌어져 미군병사가 전사했습니다. 그의 전우들은 전우를 전쟁터에 버리고 갈 수 없어, 수소문 끝에 근처 마을에 흰 울타리가 있는 작은 교회를 발견하고 해가 지기 전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병사들이 교회 문을 두드리자 등이 굽은 노신부가 나왔습니다. 한 병사가 정중히 부탁하였습니다. “친구가 전사하였습니다. 우리들은 그를 교회의 묘지에 매장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신부는 병사들의 얘기에 조금 당황하더니, 잘 못하는 영어로 더듬더듬 대답하였습니다. “미안합니다.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이곳에 매장할 수 없습니다.” 피곤에 지친 병사들은 실망하여 돌아가려 하는데, 노신부가 병사들을 불러 세우더니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음, 그런데 울타리 밖에 매장하는 것은 괜찮아요” 이 얘기에 조금 화가 났지만 병사들은 급히 울타리 밖에 땅을 파고 친구를 묻었습니다. 작업이 끝나자 날은 이미 어두웠습니다.
다음날, 그들의 부대는 이동하게 되어, 친구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묘지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어제 묻은 곳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황한 병사들이 교회 문을 두드렸습니다. “미안합니다. 신부님. 어제는 너무 어두워서 친구를 어디에 묻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 얘기를 들은 신부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미안하네 젊은이들, 어젯밤, 자네들이 돌아간 뒤로 통 잠을 잘 수가 없었다네. 그래서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 교회 울타리를 병사의 묘지가 들어오도록 옮겨 놓았다네”
오늘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아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완고한 유대인들을 질책하십니다. 예수님의 등장으로 당시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바리사이파와 율법학자들이 크게 긴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릅니다. 울타리를 친 사람들은 자신의 울타리가 튼튼하게 유지되기를 바라지, 망가지거나 훼손되는 것을 싫어하지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울타리가 없는 분이시며, 오히려 사랑의 힘으로 사람 마음의 울타리와 장벽을 허무시는 분입니다. 사순절은 이처럼 자기 마음 속의 울타리를 발견하고, 예수님의 복음이 내 안에 스며들 수 있도록, 그 울타리를 뽑아버리는 기간입니다.
†黙想: 오늘 말씀의 유대인들은 눈 앞에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완고한 마음 때문이지요. 완고함이란 울타리가 높고 두껍기 때문이지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마음속에는 어떤 울타리들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