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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새계경

22. 오계품(五戒品)

작성자안심정사-2|작성시간13.12.10|조회수335 목록 댓글 3

 

優婆塞戒經卷第六

 

22. 오계품(五戒品)

 

22.1. 선생이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사람이 삼귀의를 얻고, 어떤 사람이 삼귀의를 얻지 못하나이까.”

22.2. “선남자여, 인연을 믿고 과보를 믿으며, 진리()를 믿고 도를 얻음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사람은 삼귀의를 얻습니다. 마음이 지극한 사람은 믿음이 무너질 수 없고, 삼보께 친근(親近)하고 좋은 벗의 가르침을 받으면 이와 같은 사람은 곧 삼귀의를 얻습니다. 우바새계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우바새계를 살펴보기를, ‘셀 수 없이 많은 공덕 과보가 있어서 한량없는 폐악(弊惡)의 법을 부수는 것이다. 중생이 끝이 없고, 괴로움을 받음이 또한 그러하다. 사람의 몸을 얻기 어렵고 비록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모든 근()을 갖추기가 어렵다. 비록 모든 근을 갖추었어도 신심을 얻기가 어려우며, 비록 신심을 얻어도 좋은 벗을 만나기가 어렵다. 비록 좋은 벗을 만나도 자재함을 얻기가 어렵다. 비록 자재함을 얻더라도 모든 것은 무상한 것이다. 내가 이제 악업을 지으면 악업으로 인하여 2(二世)에 몸과 마음의 악보(惡報)를 받으니, 이러한 인연으로 몸과 입과 뜻이 악한 것은 곧 나의 원수다. 설사 삼업의 악이 악한 과보를 얻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악은 역시 짓지 않으리라. 이 삼악업이 현재에 폐악색(弊惡色) 등을 내고 죽을 때에 뉘우침을 내니, 이 인연으로 내가 이제 삼귀의와 팔재법을 받고 모든 악과 불선업(不善業)을 멀리 여의겠다고 관해야 합니다.”

22.3. “지혜로운 이는 계에 두 가지가 있음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는 세계(世戒)이고, 둘째는 제일의계(第一義戒)이다. 삼보께 귀의하지 않고 계를 받으면 이를 세계라고 한다. 이 계는 견고하지 않아서 채색에 아교가 없는 것과 같으므로 나는 먼저 삼보께 귀의한 후에 계를 받으리라고 할 것입니다. 종신토록 받거나, 하루 낮 하루 밤에 받는 것은 우바새계와 팔계재법입니다. 대체로 세계는 먼저의 모든 악업을 파괴할 수 없으나 삼귀계를 받으면 이를 파괴하며, 비록 큰 죄를 짓더라도 계를 잃지 않으니, 왜냐하면, 계의 힘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함께 공동으로 죄를 지었을 때, 한 명은 계를 받았고 다른 한 명은 계를 받지 않았다면, 이미 계를 받은 자가 범한 것은 죄가 무겁고 계를 받지 않은 자가 범한 것은 죄가 가볍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말씀을 훼손하였기 때문입니다. 죄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성중(性重)이고, 둘째는 차중(遮重)입니다. 이 두 가지 죄에 또 가볍고 무거움이 있으니, 어떤 사람은 중죄라도 가볍게 짓고 가벼운 죄라도 무겁게 짓습니다. 예를 들어, 앙굴리마라는 세계(世戒)를 받았고, 이라발룡(伊羅鉢龍)은 의계(義戒)를 받았는데, 앙굴마라는 성중죄(性重罪)를 지었어도 중죄가 되지 않았고, 이라발룡은 차제(遮制)를 범하였어도 중죄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중죄를 지어도 가벼울 수 있고, 가벼운 죄를 지어도 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계가 같다고 해서 과보도 같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계에도 불살(不殺)과 부도(不盜)가 있고 의계에도 역시 불살과 부도가 있으며 불음주(不飮酒)에 이르기까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세계는 근본부정(根本不淨), 수이부정(受已不淨), 장엄부정(莊嚴不淨), 각관부정(覺觀不淨), 염심부정(念心不淨), 과보부정(果報不淨)이기 때문에 제일의계라고 부르지 않고 오직 세계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의계를 받아야 합니다.

22.4. 선남자여, 후세에 중생의 몸이 키가 여덟 장()이고 수명은 84천세()를 채우는데, 이 때 계를 받는 것과 또 지금의 악세(惡世)에 계를 받는 것, 이 두 과보는 같습니다. 왜냐하면, 삼선근(三善根)이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목숨을 끊는 곳에서 계를 얻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대체로 금계(禁戒)라는 것은 일체의 죽일 것과 죽이지 않을 것 가운데서 얻으니, 일체의 죽일 것과 죽이지 않을 것이 셀 수 없이 많고 끝도 없이 크며 계의 과보도 또한 이와 같이 셀 수 없이 많고 끝없이 큽니다. 선남자여, 온갖 보시 중에 두려움을 없애 주는 것이 제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설하는 오대시(五大施)란 것이 곧 이 오계입니다. 이와 같은 오계가 중생으로 하여금 오포외(五怖畏)를 여의게 합니다. 이 다섯 종류의 보시는 쉽게 수행할 수 있고 자재무애(自在無碍)하면서 재물을 잃지도 않습니다. 그리하여 무량무변의 복덕을 얻으니 이 다섯 가지 보시를 여의고는 수다원에서부터 아누다라삼먁삼보리까지의 과보를 얻을 수 없습니다.

선남자여, 계를 받고나면 이 사람은 모든 천상과 인간의 공경과 수호함이 되고 큰 이름을 얻습니다. 비록 악한 상대를 만나더라도 근심과 괴로움이 없고 중생이 친근히 하고 곁에 있으며 즐겁게 의지합니다. 아나타삔디까 장자의 아들은 비록 팔천의 금전을 위하여 계를 받았어도 한량없는 공덕 과보를 얻었습니다. 선남자여, 재물을 위해 계를 받아도 오히려 이익을 얻거늘 하물며 지극한 마음으로 해탈을 위하는데 어찌 얻지 못하겠습니까.

선남자여, 다섯 가지 선법이 있어 둘러싸면 이 계가 항상 늘어나는 것이 갠지스 강물과 같습니다. 그 다섯이란, 첫째는 인자함이고, 둘째는 가여워 함이며, 셋째는 기뻐함이고. 넷째는 참는 것이며, 다섯째는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이 무거운 사견(邪見)을 부수고 마음에 의심이 없으면 정념(正念)을 갖추어 장엄이 청정하고 근본이 청정하며 나쁜 각관(覺觀)을 여의게 됩니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다섯 가지 악한 일을 멀리하면 이것이 계를 받는 것이며 일체의 몸과 입과 뜻의 악함을 여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이 오계를 떠나고도 생사를 벗어나 해탈한다고 말한다면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사람이 생사의 큰 바다를 건너고자 한다면 당연히 지극한 마음으로 오계를 받아 지켜야 합니다.”

22.4. “이 오계 중에서 네 가지는 후세에 무작계(無作戒)를 이루지만 오직 애욕만은 끊기 어렵기 때문에 이루지 못합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음욕에 얽히므로 지극한 마음으로 방일함이 없도록 삼가야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은 아주 무거운 법이 있지만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그 모든 것에 대한 계율을 제정하지 않고 무슨 인연으로 술에 대한 것만을 제정하셨는가?’라고 말한다면, 선남자여, 술을 마심으로 인해 참괴심이 무너지고 삼악도에 두려움을 내지 않습니다. 이 인연으로 그 나머지 네 가지의 계도 받지 못하므로 과거의 모든 부처님께서는 계율을 제정하여 술 마시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여래가 이미 술에 과실이 많다는 것을 말씀하셨다면 왜 오계의 처음에 두어 말씀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한다면, 그 뜻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술에 대한 계금(戒禁)은 차중(遮重)이고 성중(性重)이 되지는 않습니다. 여래는 먼저 성중의 계를 제정하시고 뒤에 차중을 제정하였습니다.

선남자여, 여래가 먼저 백월(白月), 흑월(黑月) 중에 각각 삼재(三齋)가 있다고 말한 것은 외도의 것을 따른 것입니다. 모든 외도의 무리는 언제나 이 날에 모든 하늘에 공양합니다. 그러므로 여래도 삼재가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창문에 휘장을 치는데 휘장을 눌러야만 떨어지지 않는 것처럼 삼재의 법도 이와 같습니다. 중생이 마음을 내서 받아 지키면 마침내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누가 보시할 때나, 삼보께 공양할 때나, 좌선할 때나, 선행을 닦을 때나, 독경할 때나, 부모께 공양할 때에 먼저 법을 세우기를, ‘내가 짓지 않으면 꼭 스스로 벌하리라라고 한다면, 이 사람은 복덕이 밤낮으로 더하는 것이 흐르는 갠지스 강과 같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계에는 다섯 가지의 과보가 있으니, 첫째는 무작과(無作果)이고, 둘째는 보과(報果)이며, 셋째는 여과(餘果)이고, 넷째는 작과(作果)이고, 다섯째는 해탈과(解脫果)입니다. 오계를 갖추어 받아 지킨다면 이 사람은 이와 같은 오과를 얻습니다. 우바새로서 항상 절과 사당과 승방(僧坊)에 나가고, 가서는 모든 비구들과 친근히 합니다. 그리고는 법을 묻고, 이미 법을 물었거든 마땅히 지극한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듣고 나서는 받아 지키되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잊지 않도록 하고 그 뜻을 분별할 것입니다. 뜻을 분별하고는 다시 중생에게 전하여 교화한다면, 이를 우바새의 자리이타라고 합니다.”

22.5. “우바새로서 이와 같이 말한 바를 익히거나 배우지 않고, 비구를 업신여겨 그의 허물과 실수를 찾으며, 가서 법을 들어도 믿고 공경하는 마음이 없거나, 외도를 받들어 섬기면서 그 공덕을 보고 해, , 오성(五星) 따위 별들을 깊이 믿는다면 이 우바새는 견고하게 법에 머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바새로서 비록 오악(五惡)의 업을 스스로 짓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짓게 한다면, 이는 우바새로서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바새로서 먼저 남의 물건을 취하고 나중에 허락받아 일이 끝났다고 해도, 이 우바새는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바새로서 나루터에서 물건을 팔면서 알고 있는 세금을 전당잡는다면 이 우바새는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바새가 값을 헤아려서 병을 고치고 나서 그 물건을 판다면, 이 우바새는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바새로서 관()을 어기고, 사사로이 법을 정한다면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바새가 스스로 악을 짓지 않고 남에게 짓도록 가르치지 않으며, 마음으로 악을 생각하지 않으면 법답게 머문다고 합니다. 우바새로서 객번뇌(客煩惱)로 인하여 일어난 죄를 짓고 나서 참괴와 뉘우치는 마음을 내지 않으면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바새로서 몸과 목숨을 위하여 악한 일을 짓는다면 법답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우바새로서 비록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비법(非法)을 행한다면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신심을 얻고 복덕을 지으며, 정념(正念)을 잘 닦고 모든 법을 관하되, 이것은 모두 항상함이 없으며, ()와 아소(我所)가 없고, 온갖 것에 취착하는 마음이 없으며, 온갖 것이 자재하지 않고 생멸하는 것이고, 괴롭고 공허한 것이며, 적정(寂靜)함이 없음을 봅니다. 사람의 몸을 얻기가 어려우며, 비록 사람의 몸을 얻었으나 모든 근()을 갖추기가 어렵고, 비록 모든 근을 갖추었으나 바른 견해를 얻기가 어려우며, 비록 바른 견해를 갖추었으나 믿는 마음을 얻기가 어렵고, 비록 믿는 마음을 얻었으나 좋은 벗을 만나기가 어려우며, 비록 좋은 벗을 만났으나 바른 법을 듣기가 어렵고, 비록 바른 법을 들었으나 받아서 지키기가 어렵다고 하며, 이와 같이 관찰하면 이를 사람이라고 할 만합니다.

어떤 사람이 관찰하되, 욕계(欲界)가 항상함이 없고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까지가 모두 영원하지 않으므로 삼악도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를 원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관찰하면 세 가지의 견고하지 않음을 보게 됩니다. 견고하지 않은 몸을 견고한 몸으로 바꿀 수 있으니, 예배, 공양하며 옴에 마중하고 감에 배웅하며 자기의 손으로 베풀고 직접 복된 일을 하면 이것이 견고하지 않은 몸을 가지고 견고한 몸으로 바꾸는 것이며 견고하지 않은 재물을 견고한 재물로 바꾸는 것입니다. 스스로 먹고 쓰고, 또 보시하여 병든 이와 길 가는 사람에게 주며 사문이나 바라문 등과 빈궁하고 하천한 사람에게 공양하면, 이것이 견고하지 않은 재물을 견고한 재물로 바꾸는 것이며 견고하지 않은 목숨을 견고한 목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육념(六念)과 자, , , 사를 닦고 사진제(四眞諦)를 증득하며 생, , , 사를 잘 관찰하고 선업과 악업의 과보가 분명하다고 믿으며 은애(恩愛)에는 당연히 이별이 있다는 것과 일체 중생은 자재함을 얻지 못한다는 것과 성도(聖道)를 얻지 못하면 생사의 힘이 크다는 것과 온갖 세속의 즐거움에 항상 괴로움이 따른다는 것을 알고 비록 받더라도 마음을 염착(染着)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마치 겨울철에 불을 구하여 스스로 따뜻하게 하는 것처럼 마침내 악을 짓지 않을 것이며 인욕을 닦고 두 가지의 보시로써 중생을 윤택하게 할 것입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의 성품이 평등함을 깊이 살펴보고 말하는 모든 것이 부드러우며 중생을 잘 교화하여서 법답게 살도록 하고 나쁜 벗을 멀리하며 마음에 방일함이 없고 술을 마시거나 노름을 하거나 사냥을 하는 일은 하지 않으니, 이것이 견고하지 않은 목숨을 견고한 목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사람의 몸을 얻고 재물이 넉넉하며 더불어 자재함을 얻었거든, 먼저 부모와 스승과 화상과 나이 많고 법을 지키는 분들께 마땅히 공양하고 멀리에서 온 초행의 사람과 아픈 사람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부드럽게 말하고 참괴심이 많으며, 치우쳐서 덕이 있는 한 사람만을 믿거나 존경하지 않고, 계를 지니고 많이 들은 현성(賢聖)을 보거든 집과 음식과 이부자리와 의복과 약으로 공양해야 할 것입니다. 승가에는 깊은 공덕이 많음을 말할 것이며, 향도(向道)를 닦아서 수다원과(須陀洹果)를 얻고, 아라한에 이르기까지 향하는 길을 닦아서 아라한과를 얻으며, 금강삼매(金剛三昧)와 전광삼매(電光三昧)를 닦습니다. 이와 같이 관하고는 평등하게 받들어 보시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보시하면 한량없는 복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녹자경(鹿子經)에서 위사카에게 말하기를, ‘비록 부처님과 500명의 아라한을 청하더라도 승가를 청하는 복을 얻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승가 중에 아주 극악한 비구에게 보시하여도 오히려 한량없는 복덕의 과보가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구가 비록 악인이어서 계()도 다문(多聞)도 없고 선한 법을 닦지 않더라도 세 가지 보리에 인()이 있고 과()가 있음을 설하고, , , 승보를 비방하지 않으며 여래의 위없는 뛰어난번기()를 지녔고, 바른 견해여서 잘못이 없습니다.

승가에게 공양하면 곧 이것이 불, 승 이보(二寶)께 공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법의 공덕이 미묘함을 살펴보면 이것은 곧 온전하게 삼보께 공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보시할 때 과보를 구하지 않으면, 이것은 곧 위없는 보리에 공양하는 것입니다. 온전하게 보시바라밀을 성취하고 보리도를 닦으면, 미래에 한량없는 공덕을 얻어서 스스로도 이롭고 남도 이익되게 할 것입니다.

자비를 닦아서, 남의 괴로움을 없애기 위하여 스스로 자기의 즐거움을 버리면 아직 보리는 얻지 못하였어도 마음에 근심과 뉘우침이 없습니다. 비록 보리는 오래 얻기가 어렵다고 들었지만 그 속마음은 처음부터 퇴전이 없으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한량없는 세상을 큰 고뇌를 받아도 또한 피로도 싫증도 없습니다. 법다운 행을 좋아하여 세속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고 고요하게 머무는 것을 즐겨 출가 수도할 것입니다. 아직 출가하지 못하고 비록 집에 있더라도 해탈한 사람과 같이 여러 가지 악을 짓지 않으면 세 가지의 계율인 계계(戒戒)와 정계(定戒)와 무루계(無漏戒)를 얻습니다.”

22.6.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재가보살이고, 둘째는 출가보살입니다. 출가보살은 법답게 수행함이 어렵지 않으나, 재가보살은 법답게 수행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재가보살은 많은 악연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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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원준석 | 작성시간 18.02.18 부처님 감사합니다.
  • 작성자원준석 | 작성시간 18.03.29 감사합니다.
  • 작성자giftjudy | 작성시간 19.12.0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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