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바새계경

24. 업품(業品)②

작성자안심정사-2|작성시간13.12.10|조회수412 목록 댓글 3

 

優婆塞戒經卷第七

 

24. 업품(業品)

 

24.12. “선남자여, 중생이 죄를 지음에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악계(惡戒)이고, 둘째는 무계(無戒)입니다. 악계인 사람은 비록 염소 한 마리를 죽이거나 죽이지 않을 때라도 항상 살생죄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먼저 서원을 했기 때문입니다. 계가 없는 사람은 비록 천 사람을 죽였더라도 죽일 때 죄를 얻고 죽이지 않을 때는 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원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온갖 불선법은 마음의 근본이 되므로 그 근본으로 인하여 모든 비구의 범하는 죄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몸으로 범하는 것이고 둘째는 입으로 범하는 것이며, 마음으로 범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와 같이 계라는 것은 시간과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으면 얻을 수 없습니다. 비유하면 마치 나무를 비벼서 불을 얻으려고 하면 나무가 있어야 하고 힘이 있어야 하고 마른 소똥이 있은 다음에야 불을 얻으며 한 가지라도 없으면 불을 얻지 못하는 것처럼 계법(戒法)도 역시 그러합니다. 이와 같이 계는 얻거나 버리거나 지키거나 위반하는 것이 모두 마음에 달렸는데, 여래는 모든 법성(法性)을 분명히 알기 때문에 규제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선업에 대한 생각의 힘을 인하여 어떤 악도 짓지 않는다면 이를 법다운 계라고 부르는데, 이것을 남에게서 받으면 계를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계를 받지 않고 공덕을 얻는다면, 온갖 사나운 짐승과 사자, 호랑이도 공덕을 얻어야 하나 실제로는 얻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착한 계를 받는 자는 한량없는 복을 얻고 나쁜 계를 받는 자는 한량없는 죄를 얻습니다.

그러므로 경 가운데 악한 행위를 설하였으니, 첫째는 양을 기르는 것이고, 둘째는 닭을 치는 것이며, 셋째는 돼지를 기르는 것이고, 넷째는 고기를 낚는 것이며, 다섯째는 그물로 잡는 것이고, 여섯째는 소를 죽이는 것이며, 일곱째는 옥졸이 되는 것이고, 여덟째는 사냥개를 기르는 것이며, 아홉째는 그물과 덧을 만드는 것이고, 열째는 사냥꾼이 되는 것이며, 열한 번째는 뱀에게 비는 것이고, 열두 번째는 사람을 죽이는 것이며, 열셋째는 도적이 되는 것이고, 열넷째는 양 쪽을 이간시키는 것이며, 열다섯째는 채찍질을 하고 죄인의 목에 칼을 씌우고 발에 쇠사슬을 달고 이마에 쇠못을 박고 불로 지지는 고문을 가하는 것입니다.

국왕, 대신의 호의를 받고도 그들을 중상하고 무시하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성품과 악한 마음을 가진 아주 악한 촌주(村主)와 세금으로 받은 물품들을 사용하는 자와 계율을 범하는 비구처럼 참괴심이 없는 자들은 모두 계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록 착하지 않은 업도(業道)라고 하지 않더라도 큰 죄를 얻습니다. 왜냐하면, 목숨이 다하도록 짓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일 들은 서원을 세우지 않고 사람으로부터 받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악계(惡戒)는 네 가지 경우에 버리니, 첫째는 이근(二根)을 얻었을 때고, 둘째는 수명을 버릴 때며, 셋째는 선계(善戒)를 받을 때고, 넷째는 욕계의 번뇌를 끊을 때입니다.”

24.13. “어떤 사람이 선한 계율을 구족하는 것처럼, 악계도 또한 그렇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악계는 얻기 쉽기 때문이고 하나의 인연으로 얻기 때문이니, 이른바 서원을 세우기 때문입니다. 선계는 그렇지 않아서 다섯 방편이 있으니 이른바 오근(五根)입니다. 그러므로 얻기 어렵고, 얻기 어렵기 때문에 갖추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바새계에는 무의어와 양설, 악구가 없다. 그러므로 우바새계, 팔계재법은 사미와 비구에게는 충분한 것이 될 수 없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제 받아서 지녀서 구업(口業)을 청정히 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내가 오계를 받고 몸, , 뜻을 청정히 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청정하지 않으면 이 사람은 구족계를 얻지 못함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하건대, 사람이 악계를 받으면 비록 살생을 하지 않더라도 이 사람에게는 항상 악계가 있어서 위반하고 금하는 것이 이루어지는 것처럼, 비구도 이와 같습니다. 왜냐하면, 계를 받아 지니면 하나하나의 계에 업이 많고 과보가 많기 때문입니다. 중생이 셀 수 없이 많으니 계도 한량없고 물건이 한량없으니 계도 또한 한량없습니다.

이 선계, 악계에는 세 가지가 있으니 상, , 하를 말하는 것입니다. 악계를 받지 않았으면 비록 죄를 많이 지어도 악계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비난하기를, ‘무슨 인연으로 오계는 형체와 목숨이 다하도록 받으며 팔계재법은 하루 낮 하룻밤 동안인가?’ 하거든, ‘여래께서는 법상(法相)을 잘 알고 통달하여 걸림이 없으셔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24.14. “선남자여, 세간의 복전에 모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공덕전이고, 둘째는 보은전입니다. 이 두 복전을 파괴하면 오역죄라고 합니다. 이 오역죄에 세 인연이 있습니다. 첫째는 극악심이 있는 것이고, 둘째는 복덕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셋째는 올바른 과보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상이 아닌 상태에서 아라한을 죽였다면 역죄를 얻지 않습니다. 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참괴심이 없고 은혜를 갚는 것을 볼 수 없으며 마음에 공경심이 없으면, 다만 방편을 짓고 근본을 짓지 않았더라도 비록 역죄는 아니지만 역시 큰 죄보를 얻습니다. 잘 가르치고 가여워 하고 사랑하고 견디어 참고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하고 큰 괴로움을 받기 때문에 부모를 보은전(報恩田)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이 부모를 죽이고 나서 비록 다시 선행을 한다고 하더라도 이 선행은 과보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그늘을 필요로 하는 데서는 잠깐이라도 가지와 줄기와 꽃과 잎을 함부로 꺾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선남자여, 내가 열반한 뒤에 제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고 사람을 잘못보아 부모를 죽이는 것은 역죄(逆罪)를 얻지 않는다고 할 것이니, 그것은 곧 담무덕(曇無德)부입니다. 어떤 부파는 비록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라 하더라도 부모를 죽이면 역죄(逆罪)를 얻는다고 할 것이니, 곧 미사색(彌沙塞)부입니다.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고 사람을 잘못보아도 부모를 죽이면 모두 역죄를 얻는다고 할 것이니, 곧 살바다부(薩婆多部)입니다. 왜냐하면, 세간의 진실은 믿을만하며 부모에 대한 실재는 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마음으로 죽이면 곧 역죄를 얻지만, 진실로 부모인데도 부모라는 생각이 없고 악한 마음을 내지 않으면 부모가 비록 죽더라도 역죄를 얻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네 가지 일이 충족되어야만 역죄를 얻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실로 부모에 대해 부모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둘째는 악한 마음이며, 셋째는 버리는 마음이고, 넷째는 중생의 생각을 짓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를 갖추면 역죄가 성립되지만, 갖추지 않았으면 성립되지 않습니다. 연민하기 때문이거나 공경하기 때문이거나 법을 받기 위해서나 두려움 때문이거나 명성 때문에 부모에게 죽는 기구를 주었다면 비록 손수 죽이지 않았더라도 역시 역죄를 얻습니다. 남이 시켜서 어쩔 수 없이 부모를 죽게 하고 울고 근심하였다면 이와 같은 죄는 처음도 중간도 뒤도 가벼운 것입니다. 부모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잘못하여 다른 사람을 죽였다면 역죄를 얻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이고자한 것이 잘못하여 부모를 죽인 것도 역시 이와 같습니다. 어머니를 죽이고자 하였을 때 잘못하여 다른 사람을 죽이고, 죽이고 나서 칼을 감추다가 잘못하여 다시 어머니의 몸을 죽여도 역죄를 얻지 않습니다. 어머니를 잘못보고 자식이 다른 사람을 죽이면, 다만 죽인 죄만 얻고 역죄는 얻지 않습니다. 이 오역죄에는 아버지를 죽이는 것은 가볍고, 어머니를 죽이는 것은 무거우며, 아라한(羅漢)을 죽이는 것은 어머니를 죽이는 것보다 무겁고, 부처의 몸에 피를 내는 것은 아라한을 죽이는 것보다 무거우며, 승단을 파괴하는 것은 아라한을 죽이는 것보다 무겁고, 부처의 몸에 피를 내는 것보다도 승단을 파괴하는 것이 무겁습니다.

물중(物重)과 의경(意輕)이 있고 물경(物輕)과 의중(意重)이 있으며 물중과 의중이 있고 물경과 의경이 있습니다. 물중과 의경은 악한 마음이 없이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고, 물경과 의중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축생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며, 물중과 의중은 극악한 마음으로 생모(生母)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고, 물경과 의경은 가벼운 마음으로 축생을 죽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와 같은 악업은 방편이 무겁고 근본과 이루어 마침은 가벼운 것이 있고, 방편과 근본은 가볍고 이루어 마침은 무거운 것이 있으며, 방편과 근본은 무겁고 이루어 마침은 가벼운 것이 있고, 근본은 가볍고 방편과 이루어 마침은 무거운 것이 있습니다.”

24.15. “사물(事物)은 한 가지이나 마음의 힘 때문에 가볍고 무거운 과보를 얻습니다. 선남자여, 어떤 사람이 밥을 내게 보시하고자 하다가 아직 내게 주지 못한 사이에 굶주린 개에게 주었다면, 나는 또한 이와 같은 사람을 큰 시주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복전이거나 복전이 아니거나 마음으로 가리지 않고 베풀어 주는 자는 한량없는 복덕을 얻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착하고 청정하기 때문이니 이 업이 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현보(現報)이고, 둘째는 생보(生報), 셋째는 후보(後報)이고, 넷째는 무보(無報)입니다. 또 업에는 네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때는 정하였으나 과보는 정하지 않음이고, 둘째는 과보는 정하였으나 때는 반드시 정한 것이 아니며, 셋째는 때가 정해졌고 과보도 또한 정해진 것이고, 넷째는 때와 과보가 함께 정해지지 않은 것입니다. 때가 정해진 것이란 것은 이른바 현재와 다음 생과, 후세(後世)입니다. 때가 정해지고 과보가 정해지지 않으면 이 업은 바꿀 수 있습니다. 과보가 정해져서 뒤에 받을 자라면, 이 업은 바꿔서 현재에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착한 마음과 지혜로운 인연의 힘 때문입니다. 악과가 정해진 자도 바꿔서 가볍게 할 수 있습니다. 무슨 인연으로 과보가 정해졌다고 하느냐 하면, 항상 지어 뉘우침이 없기 때문이고 전일한 마음(專心)으로 짓기 때문이며 즐겁고 기뻐하면서 짓기 때문이고 서원을 세우기 때문이며 짓고 나서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업은 과보가 정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생의 행업(行業)에 가벼움이 있고 무거움이 있으며 먼 것이 있고 가까운 것이 있는데, 그 인연을 따라서 선, 후로 받습니다.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혜를 닦으며 반드시 선과 악에는 마땅히 과보가 있다는 것을 알면, 이 사람은 무거운 업을 바꿔서 가볍게 받고 가벼운 것은 받지 않게 됩니다. 복전을 만나고 선지식을 만나서 도를 닦고 선을 닦으면, 이 사람은 후세의 중죄를 바꿔서 현세에 가볍게 받습니다. 사람이 욕계(欲界)의 모든 업을 갖추었더라도 아나함과(阿那含果)를 얻으면 후세의 업을 바꿔서 현재에 받습니다. 아라한과도 역시 그렇습니다.

선남자여, 지혜로운 이는 몸을 닦고 계를 닦고 마음을 닦고 혜를 닦습니다. 이 사람은 지극히 무거운 업을 파괴하는 것으로서 마치 아가타(阿伽陀) 주문과 독을 제거하는 보배가 사나운 독을 파괴하는 것과 같습니다. 작은 죄를 지어서 처음에는 방편으로 가볍게, 뒤에 마칠 때는 무겁게 되었다면, 이 사람은 몸과 계와 마음과 혜를 닦지 않아서 가벼운 것을 무겁게 만든 것입니다.

중생이 한 가지나, 두 가지나, 갖가지를 지으면 짓는 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도 있고 짓는 것이 갖추어진 것도 있는데, 먼저 생각하고 뒤에 짓는 것은 지은 것이 갖추어졌다고 하고, 먼저 생각을 하지 않고 곧 짓는 것은 짓는 것이 갖추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짓고 나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으니, 업을 짓고 나서 과보가 정해지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고, 또 짓고 나서 갖춘 것이 있으니, 업을 짓고 나서 과보를 얻는 것이 정해진 것입니다. 또 짓고 나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으니, 과보가 비록 정해졌으나 때가 정해지지 않은 것이고, 또 짓고 나서 또한 갖추어진 것이 있으니, 때와 과보가 함께 정해진 것입니다. 또 짓고 나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으니, ()를 갖는 정견(正見)이고, 또 짓고 나서 갖추어진 것이 있으니, 계를 훼손하는 삿된 소견입니다. 또 짓고 나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으니 원인을 믿고 과보를 믿는 것이고, 또 짓고 나서 갖춘 것이 있으니, 인과를 믿지 않는 것입니다. 또 짓고 나서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있으니, 악을 지을 때에 착한 것이 있어 둘러싼 것이고, 또 짓고 나서 갖춘 것이 있으니, 악을 지을 때에 악이 와서 둘러싼 것입니다. 또 짓고 나서 갖추지 않는 것이 있으니, 비록 많은 악을 지었으나 인간 가운데에 과보를 받는 것이고, 또 짓고 나서 갖춘 것이 있으니, 인간 중에서 악을 짓고 지옥에서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또 짓고 나서 갖추지 않은 것이 있으니, 정념심(正念心)이 있는 것이고, 또 짓고 나서 갖춘 것이 있으니, 생각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또 짓고 나서 갖추지 않은 것이 있으니, 삼시(三時)로 뉘우치는 것이고, 또 짓고 나서 갖춘 것이 있으니, 삼시로 뉘우치지 않는 것입니다. 악과 같이 선도 또한 이와 같습니다. 이와 같이 짓고 나서 또한 갖추기 때문에 작은 것을 짓고 큰 것을 얻으며, 큰 것을 짓고 작은 것들을 얻습니다.”

24.16. “하나의 뜻으로 몸을 얻는데 몸이 얻어지면 한량없는 뜻을 가집니다. 몸을 얻는 첫 뜻은 선한 것입니다. 몸이 이미 얻어지면 두 가지 과보를 얻으니 선과 불선이 섞인 것입니다. 인간과 하늘이 이와 같습니다. 지옥의 중생은 악한 생각으로 몸을 얻고 몸이 이미 얻어지면 한결같이 불선입니다. 아귀, 축생은 악한 생각으로 몸을 얻고 몸이 이미 얻어지면 선과 불선이 섞여 있습니다. 선과 악의 중음(中陰)은 선악으로써 몸을 얻는데 몸이 이미 얻어지면 모두 잡보(雜報)인 선과 불선을 얻습니다.

가라라시(歌羅羅時)와 노시(老時)에도 또한 잡보의 선과 불선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경 가운데 네 가지의 업이 있다고 말하였으니, 흑업(黑業)에는 흑보(黑報)이고, 백업(白業)에는 백보(百報)이며, 잡업(雜業)에는 잡보(雜報)이고, 흑도 아니고 백도 아닌 것으로 이 업에는 과보가 없습니다. 흑업 흑보는 이른바 지옥이고, 백업 백보는 이른바 색천(色天)이며, 잡업 잡보는 이른바 욕천(欲天)과 인간, 축생, 아귀이고, 백도 아니고 흑도 아닌 것으로서 과보가 없는 것이란 번뇌가 없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사람이 이와 같은 업연을 알지 못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세상에서 생사에 윤회합니다. 왜냐하면, 이와 같은 업의 인연을 알지 못하는 자는 비록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에 나서 수명이 팔만 겁일 지라도, 그 복이 다하면 도로 삼악도에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온갖 것을 그려내는 데에는 생각보다 더한 것이 없습니다. 생각은 번뇌를 그리고 번뇌는 업을 그리며 업은 몸을 그리는데, ()의 인연 때문에 빛과 소리가 묘하고 좋으며, 행주좌와에 자상하고 훌륭하며, 성냄의 인연 때문에 빛과 소리가 추악하고 행주좌와가 급하고 사나운 것입니다. 성냄과 같이 어리석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24.17. “한량없는 세계와 일백서른여섯의 지옥과 한량없는 축생과 한량없는 아귀가 모두 업으로 만든 것이고 인간과 하늘도 또한 그러합니다. 한량없는 중생이 해탈을 얻는 것도 또한 업으로 인한 것입니다.

선남자여, 이 십선도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번뇌를 막음이고, 둘째는 착한 마음을 지음이며, 셋째는 계를 증장(增長)하는 것입니다.

마치 독을 제거하는 약에 세 가지가 있는 것과 같으니, 첫째는 아가타약(阿伽陀藥)이고, 둘째는 신주(神呪)이며, 셋째는 진보(眞寶)입니다. 사람이 방일하지 않고 행을 잘 닦아 바른 생각을 갖추고 선과 악을 분별하면 이 사람은 결정코 십선업의 길을 닦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많이 방일하고, 참괴심도 신심도 없으면, 이 사람은 결정코 열 가지 불선업의 길을 짓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십업도에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방편이고, 둘째는 근본이며, 셋째는 이루어 마침입니다. 어떤 사람이 부모와 스승과 화상과 덕이 있는 사람에게 부지런히 예배 공양하고 먼저 생각하여 안부를 여쭙고 말은 곧 부드럽고 연하게 하면 이를 방편이라 하고, 그렇게 하고나서 생각하는 마음을 닦으며 기뻐하면서 후회하지 않으면 이를 이루어 마침이라 하며, 지을 때 오로지하는 것을 근본이라고 합니다.

선남자여, 이 십업도에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상, , 하입니다. 어떤 경우는 방편이 상이고, 근본이 중이며, 이루어 마침이 하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방편이 중이고, 근본이 상이고, 이루어 마침이 하이기도 하며, 어떤 경우는 방편이 하이고, 근본이 상이며, 이루어 마침이 중이기도 합니다. 이 십업도를 세 가지 법이 에워싸니, , , 치가 없는 것과 탐, , 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십업도에 계행과 함께 하는 것과 계행과 함께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계를 버리는 것에는 여섯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선근을 끊을 때이고, 둘째는 이근을 얻을 때이며, 셋째는 수명을 버릴 때이고, 넷째는 악계를 받을 때이며, 다섯째는 계를 버리는 때이고, 여섯째는 욕계의 몸을 버릴 때입니다. 불법이 멸할 때 곧 계를 잃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받고나면 잃지 않고, 받지 못하면 얻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 , 뜻의 악을 끊으므로 계계(戒戒)라고 하고, 근본사선(根本四禪)과 사미도선(四未到禪)을 정계(定戒)라고 합니다. 근본사선과 초선, 미도선을 무루계(無漏戒)라고 하고, 몸을 버리고 후세에 다시 악을 짓지 않는 것을 무작계(無作戒)라고 합니다. 모든 근을 지켜 거두고 정념심(正念心)을 닦으며, , , , , , 법을 보고 듣고 깨달아 알되 방일하지 않는 것을 섭근계(攝根戒)라고 합니다.

무슨 인연으로 계라고 합니까? 계라는 것은 제()를 말하는 것이니, 온갖 불선법을 제어(制御)하므로 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계라는 것은 책애(迮 隘)라고도 하니, 비록 악법이 있어도 성품이 용납하지 않으므로 책애라고 합니다. 또 계라는 것은 청량(淸凉)이라고도 하니, 번뇌의 열을 막아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므로 청량이라고 합니다. 또 계라는 것은 상()이라고 하니, 천상(天上)보다 높아서 위없는 도에 이르므로 상이라고 합니다. 또 계라는 것은 학()이라고 하니, 마음과 지혜와 모든 근()을 제어하는 것을 배우기 때문에 학이라고도 합니다.

선남자여, 때로는 어떤 사람이 하나의 계를 갖추면 이른바 바라제목차계(波羅提木叉戒)이고, 이계를 갖추면 정공계(定共戒)를 더하는 것이며, 삼계를 갖추면 무루계(無漏戒)를 더하는 것이고, 사계를 갖추면 섭수계(攝根戒)를 더하는 것이며, 오계를 갖추면 무작계(無作戒)를 더하는 것입니다. 선남자여, 바라제목차계는 현재에 얻고, 정공계는 삼세(三世)중에 얻습니다.

선남자여, 또 어떤 사람이 계를 받고자 할 때 진심으로 생사의 죄과와 해탈의 공덕을 관찰하고 신심으로 환희하면 이 사람은 함께 작, 무작계를 얻습니다. 이와 같이 계는 목숨의 길고 짧음을 따르니, 목숨이 길면 길게 얻고 목숨이 짧으면 짧게 얻습니다. 이 무작계는 세 가지 인연으로 버리니, 첫째는 장엄(莊嚴)이 작기 때문이고, 둘째는 마음이 방일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실천하는 것이 견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버리지 않는 인연이 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본원(本願)이 있기 때문이고, 둘째는 지은 업이 견고하기 때문이며, 셋째는 진심으로 방일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십선업과 십악업과 선계와 악계를 빼고 나서 다시 업과 계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있으니, 선악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선악에 작()과 무작(無作)이 있는데, 어떤 사람은 작과 무작을 갖추니, 현재에 선을 지으면 버리지 못하는 동안에 작과 무작을 갖춥니다. 둘째 생각 가운데에는 과거의 작과 무작을 성취하고, 짓고 나면 과거에는 오직 무작이 있고 작은 없습니다. 사람이 계를 얻으면 비록 불선을 행하여도 현세에 두 가지 법을 성취합니다. 악법에는 작이 있고, 선법에는 무작이 있습니다. 이 작, 무작은 두 가지 인연으로 버리니, 첫째는 베푸는 물건이 다하는 경우이고, 둘째는 마음으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을 버림입니다. 이세(二世)에는 과거, 현재의 무작을 성취합니다. 삼세(三世)의 정계(定戒)는 두 인연으로 버리니, 첫째는 퇴전할 때이고, 둘째는 선근을 끊을 때입니다. 또 삼시가 있으니, 첫째는 몸을 버릴 때이고, 둘째는 퇴전할 때이며, 셋째는 위에 태어날 때입니다. 무루계에는 세 때의 버림이 있으니, 첫째는 퇴전할 때이고, 둘째는 둔함을 바꿔서 예리함을 지을 때이며, 셋째는 상과(上果)를 얻을 때입니다. 마음의 선업을 한 때 잃는 것이란 상생(上生)할 때를 말함입니다. , , 뜻의 선은 선근을 끊었을 때 일시에 모두 잃게 됩니다. 선남자여, 구족계와 정계와 무루계와 섭근계를 얻으면, 이 사람은 십업도를 분명히 알 것입니다.”

24.18. “선남자여, 십업도로 인하여 중생의 수명에 증감이 있으니, 줄어든 자의 수명은 십년이기도 하고, 늘어난 자는 셀 수 없이 많은 해에 이르기도 합니다. 북울단월은 정수(定壽)가 천년이고, 여기는 수명이 백년이며, , 서 두 곳은 이백오십입니다. 여기에 수명이 무량이며 저기도 또한 무량입니다. 사천왕의 수명은 인간의 수로 구백만 세이지만 수명이 일정하지 않으니, 삼천하와 같습니다. 삼십삼천은 수명이 일천팔백만 세이나 수명이 또한 일정하지 않고, 염마천(焰魔天)의 수명은 삼천육백만 세이나 수명이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도솔천(兜率天)의 수명은 칠천이백만 세인데, 후신(後身)보살을 제하고 나머지는 일체의 목숨이 다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화락천(化樂天)의 수명은 일만사천사백만 세인데 목숨이 정하지 않고,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은 수명이 이만팔천팔백만 세인데 목숨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타화자재천상의 1년은 곧 열지옥(熱地獄)의 하루 낮 하루 밤입니다. 이와 같이 삼십일이 한 달이고 열두 달이 한 해가 되어서 저 지옥의 수명은 이만팔천팔백만 세인데 목숨이 일정하지 않습니다. 화락천상의 1년은 곧 대성지옥(大聲地獄)의 하루 낮 하루 밤입니다. 이와 같이 삼십일이 한 달이고 열두 달이 한 해가 되어서 그 지옥의 수명은 일만사천사백만 세인데 목숨이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도솔천의 1년은 곧 소성 지옥(小聲地獄)의 하루 낮 하루 밤입니다. 이와 같이 삼십일이 한 달이고, 열두 달이 한 해가 되어서, 저 지옥의 수명은 칠천이백만 세인데 목숨이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염천(焰天)1년은 곧 중합지옥(衆合地獄)의 하루 낮 하루 밤입니다. 이와 같이 삼십일이 한 달이고 열두 달이 한 해가 되어서, 저 지옥의 수명은 삼천육백만 세인데 목숨이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삼십삼천의 1년은 곧 흑승지옥(黑繩地獄)의 하루 낮 하루 밤입니다. 이와 같이 삼십일이 한 달이고 열두 달이 한 해가 되어서 저 지옥의 수명은 일천팔백만 세인데 목숨이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사천왕천의 1년은 곧 활지옥(活地獄)의 하루 낮 하루 밤입니다. 이와 같이 삼십일이 한 달이고 열두 달이 한 해가 되어서 저 지옥의 수명은 구백만 세인데 목숨이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아비지옥(阿鼻地獄)의 수명은 1겁이고 대열지옥(大熱地獄)의 수명은 반 겁인데 오직 이 두 곳의 수명은 결정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오백년이 아귀의 하루 낮 하루 밤입니다. 이와 같이 삼십일이 한 달이고 열두 달이 한 해가 되어서 저 아귀의 수명은 일만오천 세인데 목숨이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축생도(畜生道) 중에서 난타(難陀), 바난타(婆難陀)를 제하고는 그 나머지는 수명이 또한 일정하지 않습니다. 아비지옥의 일 년은 비상비비상처의 하루 낮 밤과 같으니 이와 같이 삼십일이 한 달이 되고, 열두 달이 한 해가 되어서 저 하늘의 수명은 팔만 대겁이고, 무소유처(無所有處)는 육만 겁이며, 식처(識處)는 사만 겁이고, 공처(空處)는 이만 겁입니다.”

24.19. “경미(輕微)한 번뇌라도 일으키고, 공정(空定)에 애착한다면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사람은 사무색(四無色)에 나게 됩니다.

십년에서부터 증가하여 팔만 세에 이르고, 팔만 세에서 감소하여 도로 십년에 이르고, 이렇게 증감하기를 꼭 열여덟 번을 하는 것을 중겁(中劫)이라고 합니다. 세 번의 곡식이 귀해지는 재앙, 세 번의 질병에 의한 재앙, 한 번의 군대에 의한 재앙을 1소겁(小劫)이라고 하고, (), ()의 두 가지 재앙을 각각 다섯 단계를 지나서 한 번의 바람의 재앙이 있고 다섯 번의 바람의 재앙을 지나면 1대겁이라고 합니다.

염부제(閻浮提) 가운데에 전쟁(刀兵)이 일어날 때, , 서 두 곳의 사람은 잠시 화을 내고, 이 병()이 일어날 때, 저기에는 작은 두통이 나고 힘이 약해집니다. 여기서 곡식이 귀할 때면 저기서는 먹을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나쁜 일은 울단월에는 없습니다. 죽이지 않으면 그 때문에 수명이 늘고, 훔치면 그 인연으로 수명이 줄어듭니다.

두 가지의 겁이 있으니, 첫째는 수겁(水劫)이고, 둘째는 화겁(火劫)입니다. 화겁이 일어날 때 지옥의 중생으로서 과보가 다한 자는 모두 나올 수 있고, 과보를 아직 마치지 못한 자는 다른 곳의 큰 지옥으로 옮겨 가게 됩니다. 이 세간의 팔대 지옥이 비어서 중생이 없으면 이를 중생이 지옥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대해(四大海) 가운데에 있는 중생으로서 업이 다한 자는, 모두 해탈을 얻고, 미진한 자는 모두 다른 곳 바다 가운데로 옮겨 태어납니다. 이 바다 가운데에 한 중생도 없으면 이를 벗어났다고 합니다. 염부제의 땅 바로 밑에 오백 유순을 지나서 염라왕성이 있으니 둘레의 세로와 가로가 칠만오천유순입니다. 이와 같은 성 안에 아귀 중생의 업이 다한 자는 모두 떠나게 되고 다하지 못한 자는 다른 곳의 염라왕 처소로 옮겨 태어나게 됩니다. 이 성중에 한 중생도 없으면 이를 벗어났다고 합니다.

그 때 어떤 사람이 안의 인연으로 초선(初禪)을 얻고, 얻고 나서는 곧 일어나서 큰 소리로 외치기를, ‘초선은 고요하다, 초선은 고요하다고 하면, 모든 사람이 듣고는, 곧 각각 사유하여서, 일체가 다 함께 초선을 얻습니다. 그리고 곧 사람의 몸을 버리고 초선지(初禪地)에 나게 됩니다.

그 때 초선 중에 또 어떤 사람이 안의 인연으로 이선(二禪)을 닦아서 얻고, 얻고 나서는 곧 일어나서 큰 소리로 외치기를, ‘이선은 고요하다, 이선은 고요하다고 하면, 중생이 듣고는 각각 스스로 사유하여서 다시 이선을 얻고 초선의 몸을 버리고 이선처(二禪處)에 나게 됩니다. 그 때에는 아비지옥(阿鼻地獄)에서 위로 초선에 이르도록 내지 한 중생도 없습니다.

선남자여, 사천하의 밖에 유건타산(由乾陀山)이 있느니라. 거기에는 일곱 개의 해가 있는데, 중생의 복덕 인연의 힘으로 오직 하나의 해만 나타나서 이 힘으로 백곡(百穀)과 초목이 자랍니다. 화겁(火劫)이 일어날 때는 일곱 해가 모두 나타나서 온갖 백곡과 초목과 산하(山河), 대지(大地), 수미산왕과 내지 초선까지도 불태웁니다. 이선의 중생들이 이 화재를 보고 공포심을 내면, 그 중에 또 먼저 난 모든 천신이 뒤에 온 천신들에게 말하기를, ‘그대들은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도 예전에 일찍이 이와 같은 화재를 보았는데 저 곳에서 그치고 여기에는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저 모든 중생의 십년 수명이 증가 되어서 팔만 세에 이르고, 팔만 세에서 감소되어 도로 십년에 이르는 그 동안에도 이와 같은 화재의 열은 오히려 쉬지 않습니다. 이 때 문득 중간의 선처(禪處)에 큰 비가 내리면서, 다시 수명이 한 번 증가되었다가 한 번 감소됨을 겪는데, 중생의 업행 인연의 힘 때문에 이 물을 가지게 됩니다. 그 밑에서 다시 일곱 겹의 풍운(風雲)이 나오면 이 때 비는 그치고 물 위에 막()이 생기는데, 마치 유비(乳肥)와 같습니다.

사천하 중에 수미산왕이 점점 나타나고, 물 가운데에는 자연히 온갖 종자가 갖추어 있습니다. 이 때 이선에서 또 어느 한 사람이 단명하고 복이 다하여, 그 업력으로 세간에 떨어져서 태어나는데, 수명이 무량하고 광명이 스스로 비춥니다. 혼자서 오래도록 지내면서 근심하고 괴로워하다가 스스로 생각하여 말하기를, ‘내가 이미 혼자 있으니, 내가 복이 있다면 원컨대 다시 어떤 사람이 여기 와서 태어나 나와 함께 반려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면, 이 때 이선에 있는 모든 중생들이 복이 엷어지고 목숨이 다하여서, 그 업의 인연 때문에 문득 여기에 와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것을 이 사람이 보고는 마음으로 기뻐하면서 곧 스스로 생각하기를,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내 처소에 화생한 것은 곧 이것은 내가 만든 것이다. 나는 저 사람에게 자재한 힘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러면 저 사람도 생각하기를, ‘내가 저 이를 좇아서 났으니 저 이가 나를 화하여 만든 것이다. 저 이는 내 몸을 자재하는 힘을 가졌다고 합니다. 이 인연으로 일체의 중생이 아견상(我見想)을 냅니다. 선남자여, 오음(五陰), 십팔계(十八界), 십이입(十二入)등 중생의 세계, 국토의 세계가 다 이 십업의 인연으로 있는 것입니다.”

24.20. “선남자여, 보살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재가보살이고, 둘째는 출가보살입니다. 출가보살은 이러한 십업도를 관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나, 재가보살은 이를 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재가보살은 많은 악연에 얽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원준석 | 작성시간 18.02.18 부처님 감사합니다.
  • 작성자원준석 | 작성시간 18.04.03 감사합니다.
  • 작성자giftjudy | 작성시간 19.12.02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