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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 연구

[스크랩] 동북아의 역사전쟁

작성자치우천황(이종식)|작성시간15.02.25|조회수24 목록 댓글 0

광대한 로마제국의 위용이 이탈리아 반도라는 작은 영토에 묶여 있지만, 프랑스나 독일이 로마제국의 역사가 자신의 땅에서 벌어졌으므로 자신만의 역사라 주장한다는 소리를 들은 바 없다.

 

마케도니아가 발칸반도 한쪽 구석에 찌그러져 유고내란의 참화를 겪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알렉산더 대왕의 후손임을 자랑으로 여기고, 주요 기차역을 알렉산더 역이라고 개칭할 때 그리스와 알렉산더 계승국으로서의 지위 승계를 위한 치열한 외교전을 치뤘다.

 

중국 요하문명과 북방계열 역사는 그 본류대로 주소를 찾아주어야 한다. 유라시아 공통의 뿌리이기도 한 고대사 연구에 관련국가를 참여시키고 공통의 작업을 허용하는 것은, 중화 일원주의, 중화 제국주의의 위험성과 배타성을 견제하고 주변국과 평화공존을 할 수 있는 기반의 첫 발걸음이다.

 

***아래 사진은 2011년 중국 요녕성 박물관의 사진.

당시는 홍산문명이나 요허문명(BC 8000~BC 1500)이라는 소리조차 듣지 못한 터라 봐도 보이는 것이 없었으나, 진기해서 무심결에 캠에 손이 갔는데,,

 

상나라(은殷. BC1600-BC1100 ) 은허 유적에는 이와 동일한 형태의 것이 있다. 중국 안양 은허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는, 순장 유적지의 사모무정(司母戊鼎 ).

 

<삼국지> '위서 부여편'에는 부여(~AD 494. 고구려에 복속됨)도 순장 풍습이 있었다고 기록한다.

부여의 동명왕과 고구려 주몽, 벡제의 온조는 모두 단군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는데, 부여는 소를 죽여 소발굽의 모양으로 길흉을 점치는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고조선과 동일하다.

 

돈황문서(敦煌文書) 내 토원책부(兎園策府) 주석에는 동예의 제천행사로 알려졌던 무천은 고조선의 풍속으로, 고조선은 10월에 제천행사인 무천이 열렸고, 출정에 앞서 소를 잡아 발굽의 형상으로 길흉을 점치던 우제점(牛蹄占)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은 이런 유적에 한국 연구자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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