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자유게시판

[스크랩] 성억압의 원인....친부모가 육아까지 책임져야한다는 사고방식

작성자자유인|작성시간11.07.05|조회수28 목록 댓글 2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감정(사랑의 표현으로서의 5가지 감정)들을 억누릅니까?


그들은 그것들을 억누르라고 배웠다. 그들은 그렇게 하라고 들어왔다.

누구로부터요?


자신들을 길러준 부모로부터.


왜요? 그 사람들은 왜 그렇게 했을까요?


그들 역시 자기 부모로부터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다. 그 부모들은 또 자기 부모로부터 그렇게 들었고.


그래요. 그래요. 하지만 왜요? 그렇게 계속되게 하는 원인이 뭐죠?


계속되게 만드는 원인은, 너희가 부모노릇 하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부모로 가졌다는 데 있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니, 누구 말입니까?


너희의 어머니, 아버지가.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식들을 기르기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고요?


그 부모들이 젊을 때는. 그렇다. 대부분의 경우에 그렇다. 사실 그들 중 많은 수가 지금 하는 만큼이라도 잘 하고 있는 자체가 기적이다.

젊은 부모보다 아이 기를 채비가 덜 된 사람은 없다. 그리고 어쨌든 젊은 부모들보다 이 사실을 더 잘 아는 사람도 없다. 대부분의 부모들이 쥐꼬리만한 인생경험밖에 없는 상태에서 육아업무를 맡게 된다. 당사자인 자신들조차 아직 다 길러지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들도 아직 답을 찾는 중이고, 그들도 아직 실마리를 구하는 중이다.

그들은 아직 ‘자신’조차 발견하지 못했으면서, 자신보다 훨씬 더 취약한 다른 사람들(자식들을 말함)에게서 발견한 것들을 지도하고 키워주려 애쓰고 있다. 그들은 자신조차 규정하지 못했으면서, 남들을 규정하도록 떠밀리고 있다. 그들 자신이, 자기 부모들이 심히 잘못 규정해온 자신의 모습을 극복하려고 아직 애쓰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은 아직 자신이 누군지 조차 발견하지 못했으면서, 너희에게 너희가 누구인지 말해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너희를 바르게 이해시켜야겠다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지만, 사실 그들로서는 자신들의 삶조차 “바르게”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삶과 아이의 삶 전부를 잘못 이해한다.


그들이 운이 좋다면, 자식들에게 입히는 해악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고, 자손들은 그걸 극복하게 되겠지만, 그렇다해도 아마 십중팔구 자기 자손들에게 그 해악의 일부를 물려주기 전에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너희들 대다수가 멋진 부모가 될 수 있는 지혜와 인내, 이해와 사랑을 갖게 되는 건, 너희의 지금 육아 연배가 끝나고 난 다음이다.


이건 왜 그런 거죠? 이해가 안 되는군요. 많은 경우에 당신 관찰이 정확하다는 건 알지만, 이건 왜 그렇죠?


본래 젊은 친부모들이 양육자가 되기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아이를 기르는 연배는 사실 지금으로 치면, 그것이 끝나는 시기에 시작되어야 한다.


전 여전히 그 점을 잘 모르겠는데요.


인간은 인체 생리상 자신도 아직 어린아이인 동안에 아이를 창조할 수 있다. 그리고 너희가 놀랄 사실은 이 아이인 기간이 무려 40~50년에 달한다는 것이다.


인간이 40~50년 동안 “아이”로 있다고요?


어떤 관점에서는 그렇다. 이것이 너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진리란 건 나도 안다. 하지만 네 주위를 둘러봐라. 아마도 너희 종의 행동방식이 내 논점을 밝혀줄 테니.

너희 사회에서는 21살이 되면 ‘다 자라서’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고 말한다.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여기에다 너희를 기르기 시작했을 때, 그들의 나이가 21살보다 그다지 많지 않았던 어머니 아버지가 너희들 대다수를 길렀다는 사실을 보태 보라.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되기 시작할 테니.

친부모가 양육자가 되기로 되어 있었다면, 적어도 50살이 될 때까지 너희는 아이를 낳을 수 없었다!

아이를 낳는 건 잘 발달되고 튼튼한 신체를 가진 젊은이가 하기로 되어 있었던 반면, 아이를 기르는 건 잘 발달되고 튼튼한 정신을 가진 연장자가 하기로 되어 있었다.

너희 사회는 계속해서 아이 양육에 대한 책임을 친부모에게 지우고자 해왔다. 그 결과 너희는 육아과정을 대단히 힘겹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성적 행동을 둘러싼 여러 에너지들까지도 왜곡하고 말았다.


호오… 더 설명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하지.

내가 여기서 살펴본 것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많다. 즉 그들이 아주 괜찮은 사람들이라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연배 정도에서는 아이를 키울 수 없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아니 대부분이라는 사실을. 하지만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 전혀 잘못된 해결책을 내놓았다.

너희 젊은이들이 섹스를 즐기게 놔두는 대신에 섹스 때문에 아이가 생기고 연장자들이 아이를 길러야 한다면, 아이 기를 책임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젊은이들이 섹스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너희는 그 시기 전에 젊은이들이 성을 체험하는 걸 “나쁜 것”으로 만듦으로써, 삶의 가장 즐거운 축하의식 중 하나이기로 되어 있던 것을 금기로 온통 도배하고 말았다.

따라서 따르기엔 너무 부자연스럽다는 훌륭한 이유로, 너희 자식들이 이 금기에 별 신경을 안 쓰게 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인간 존재는 자신이 준비되었음을 말해주는 내면 신호를 느끼자마자, 짝짓고 교미하기를 바라게 되어 있다. 이건 인간의 천성이다.

하지만 자신의 천성에 관한 그들의 생각은, 자기 내면에서 느끼는 것보다 부모로서 너희가 그들에게 말해준 것과 더 깊은 관계가 있기 마련이어서, 너희 아이들은 삶이란 게 도대체 어떤 건지 말해달라고 너희를 쳐다보곤 한다.


그래서 난생 처음으로 서로를 훔쳐보고, 천진하게 서로 놀고, 서로의 “차이”를 탐색해보려는 충동을 느낄 때, 그들은 이에 관한 신호를 찾아 너희를 쳐다보게 된다. 자기 천성의 이 부분은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허용되는 것인가? 아니면 억누르고 삼가고 단념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많은 부모들이 인간 천성의 이 부분에 대해 자기 자식들에게 이야기해준 것이 온갖 종류의 것들, 말하자면 자신들이 들은 것, 종교가 말하는 것, 사회가 생각하는 것 등등, 사물의 자연스런 질서만 빼고 그야말로 온갖 것들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을 목격한다.

너희 인간 종의 자연스런 질서에서 보면, 성욕은 9살부터14살까지의 어딘가 에서 발육하기 시작해서, 15살이 넘으면 대다수 사람들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해서 시간에 맞서는 경주가 시작된다. 기쁨에 찬 자신의 성 에너지를 마음껏 쏟아내기 위해 우르르 달아나는 아이들과, 이들을 막기 위해 우르르 쫓아가는 부모들의 경주가.


부모들은 이 투쟁에서 자신들이 찾아낼 수 있는 지원과 동맹이면 뭐든 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앞에서 지적했듯이 그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어느 모로 보나 천성의 일부인 일을 하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식들에 대한 부자연스런 요구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어른들은 온갖 종류의 가족적, 문화적, 종교적, 사회적, 경제적 압력과 제한과 한계들을 발명해냈고 이렇게 해서 아이들은 자신의 성욕을 부자연스런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길러졌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면, 어떻게 그토록 수치스럽고, 그토록 항상 제지당하고, 그토록 통제되고, 궁지에 내몰리고, 억제되고 구속되고, 부정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저 제 생각엔 여기서 약간 과장하시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정말이냐? 그럼 너는 부모가 자기 몸의 특정 부위에 정확한 이름조차 사용하지 않을 때 네다섯 살 짜리 어린애가 받을 충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너는 그렇게 하는데서 위안을 느끼는 너희 수준에 대해 아이에게 뭐라고 말하느냐? 그리고 그들은 어디서 위안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음....


저, 우린 그런 말을 그냥 안 씁니다. 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셨듯이 요. “지지”나 “네 아랫도리”라고 하는 게 왠지 듣기에 더 낫거든요.

그건 오로지, 일상 대화에서 그 말들을 사용하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너희가 이 신체 부위들의 실제 명칭에 너무 많은 혹을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주 어린아이들은 부모들이 왜 이런 식으로 느끼는지 모른다. 다만 그들은, 몸의 어떤 부위들은 괜찮지 않다, 그 부위들과 관련된 모든 것이 “잘못”까지는 아니더라도 당혹스럽다는 인상, 대개는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받게 된다.

아이들이 자라 10대가 되면,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그들은, 성욕과 임신의 관계와, 자신들이 낳은 아이는 자신들이 길러야 하는 상황에 대해서 아주 단호한 어투로 말하는 걸 듣게 되고, 따라서 이제 아이들은 성적 표현이 “잘못된 것”이라고 느낄, 또 다른 이유를 갖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순환은 완결된다.


이것은 너희 사회에 혼란과 적지 않은 재난을 불러왔다. 천성을 가지고 농락할 때, 으레 나타나는 결과는 재난이다.

너희는 성적 당혹과 억압과 수치를 만들어냈고, 이것은 성적 위축과 성 기능 장애, 그리고 폭력을 불러왔다.

하나의 사회로서 너희는,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위축되기 마련이고, 억누른 행위에 대해서는 기능장애를 겪기 마련이며, 가슴으로는 전혀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음을 알면서도 수치심을 느끼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반발심에서라도 폭력적으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프로이드가 인간종이 지닌 그 엄청난 분노는 성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아마도 신체의 자연스럽고 기본적인 본능과 관심과 욕구들을 억눌러야 하는 데서 나온 뿌리 깊은 분노일 거라고 한 건 나름대로 정확했군요.


너희 정신과 의사들 중 단 한 사람만이 그 정도로 과감했던 건 아니다. 그렇게 좋게 느끼는 것에는 전혀 수치심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아는데도, 실제로는 수치심과 죄의식을 느낄 때, 사람들은 으레 화를 내기 마련이다.

우선 사람들은 그렇게 명백하게 “나쁘기로” 되어있는 것에 그렇게 좋은 감정을 느끼는 자신에게 화를 낸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기만당해온 것일 뿐, 성욕은 멋지고 고귀하고 영광스런 인간체험이기로 되어 있었다는 걸 마침내 깨달을 때,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화를 내게 된다. 성욕을 억누르게 만든 부모와, 그것을 수치스러워 하게 만든 종교와, 그런데도 감히 성욕을 느끼게 만든 모든 이성(異性)들과, 그것을 통제하는 사회 전체에게.

마지막으로 그들은, 이런 것들이 성욕을 금지하도록 내버려둔 자신에게 화를 낸다.


억눌린 분노의 상당부분이 너희가 지금 살고 있는 사회의 왜곡되고 오도된 도덕적 가치관들 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기념비와 동상, 기념우표, 영화, 사진, 텔레비전 프로그램들을 가지고 세상에서 가장 추악한 일부 폭력 행위들은 찬미하고 칭송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부 사랑 행위들은 감추는, 아니 더 나쁘게는 싸구려로 만드는 사회 속으로.

이 모든 것, 정말 이 모든 게 친부모가 육아까지 다 책임져야 한다는 단 하나의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결과들이다.



(신과 나눈  이야기  제3권  1장에서 발췌)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인간해방을 위하여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자유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7.05 성억압->반발(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로맨스를 즐기려 누군가는 사기 강도 전쟁으로 돈을 긁어 모으고, 누군가는 빈곤에 자살까지 하고///이런 짓 그만 두면, 모두가 풍요롭고 평화롭고 기쁨을 누리며 살 수 있지 않을까요?
  • 작성자자유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1.07.05 기본소득제 반대세력들은 부자나 권력자들...그들은 돈으로 섹스를 살려고 하는데, 돈 주고 산 섹스가 '성위축이나 성기능장애'로 인해 불만이기는 마찬가지...인류가 한생명임을 깨우친다면(!!!)...아님 기본소득제를 찬성할 만큼 현명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