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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날 전체 속기록] (파일 첨부)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작성자권문석|작성시간12.03.22|조회수39 목록 댓글 0


첨부파일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hwp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첫째 날 전체 속기록]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첫째 날. 청년, 청소년, 프레카리아트 세대와 기본소득

시간: 2012년 3월 16일(금요일) 오후 1시부터 저녁 7시까지
장소: 서울 정동 경향신문사 12층 교육장
기록: 성이름 / 정리: 권문석

<1부 집담회: 청년, 청소년이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 프레카리아트와 기본소득>

<개회사 / 강남훈 기본소득네트워크 대표>

반갑습니다. 이렇게 3일 동안이나 기본소득에 관계되는 국제대회를 하게 되어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를 만들고 기본소득 운동을 시작한지 3년이 넘었습니다. 한국에서 기본소득 사상은 이전에 사회당으로부터 이미 있었지만, 이렇게 3년 만에 국제대회를 (또 다시) 하게 되었는데, 올해 들어서는 청‘소’년이라는 기본소득을 필요로 하는 주체들이 중심이 되어서 대회를 열게 된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기본소득이 그동안 학술적인 측면에 치중했었는데 이제는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는 점령 운동과 결합되어서 앞으로 운동성을 가지고 확산될 것을 기대합니다. 이론적으로나, 긴급한 핵발전으로부터의 탈피. 탈핵의 과제를 기본소득과 연관시켜보려는 노력도 있어서 주체의 형성 측면에서 보나, 운동적인, 또한 당면 과제로 보나 의미 있는 대회가 될 것 같습니다.

멀리서도 바쁘신 일정가운데 와주신 외국인 발표자들께 다시 한 번 감사말씀 드립니다.

<축사 / 홍세화 진보신당 상임대표>

반갑습니다. 진보신당 대표 홍세화입니다. 우선 2012년 기본소득 국제대회 자리에 와서 연대사를 할 수 있게 된 것에 기쁘게 생각합니다.

1%를 위한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잘 아시다시피 신자유주의 금융수탈체제의 심장인 미국의 월스트리트에서 터져 나온 구호입니다. 더 이상 체제가 유지될 수 없다는 근본적 모순에 대한 인식과 거대한 역사적 상상력은 그렇게 만났고, Occupy 운동은 새로운 사회대안과 전환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1% vs 99% 라는 대결구도로 표현됐지만, Occupy 운동은 신자유주의, 금융수탈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싸움입니다.

잘 아시다시피 기본소득은 어떠한 자산심사나 노동요구 없이, 모든 사회구성원 각자에게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조건 없는 소득입니다. 이 단순하고 그러고도 강력한 기본소득 개념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상을 향한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지난해 독일 해적당이 기본소득, 무상 인터넷, 무상 대중교통 등의 공약으로 8.9퍼센트의 지지율을 획득해 주 의회에 진출한 사례가 보여주듯이 기본소득은 이제 몽상에서 현실로 뛰쳐나온 실현가능한 사회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지금 한국의 서울 광장에서는 청년문제 해결, 기본소득 도입을 위한 Occupy 운동과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없는 세상을 위한 희망광장이 점령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번 기본소득 국제 대회가 Occupy 운동과 희망광장에 활력을 주고 새로운 사회를 바라는 우리의 상상력과 행동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기를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사회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오늘 1부 집담회는 서로 돌아가며 상호 토론하는 자리로 개최해야 마땅하나, 순차통역 상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먼저 독일 해적당의 요하네스 포나더의 발표를 듣도록 하겠습니다.

<발표 /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 순차통역: 금민>

오늘 저는 발제로써 2가지 부분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해적당과 해적운동의 역사에 대해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독일과 유럽의 사회제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특히 청년에게 이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하습니다. 오늘 저는 이곳에 와서 상당히 기쁩니다. 세계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밀접하게 상호 관계된다는 것에 특히 기쁩니다. 그래서 초대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데, 특히 Occupy 운동을 통해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동일한 목적을 향해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1년 이내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매우 민주주의적인 미디어입니다. 인터넷 속에서 모두는 평등합니다. 제가 인터넷을 통해 토론할 때 상대는 제가 남성인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은지 젊은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전혀 모릅니다. 어떤 종류의 종교를 가졌는지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성에 대한 관념에 대해서도 그들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인터넷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어 하는 내용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제가 자의로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어떠한 검열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말씀드린 상황이 인터넷의 이상적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바로 1년 전 미국에서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또 예를 들자면 이집트와 시리아 등에서 혁명이 일어났던 것에서도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정부는 당연히 인터넷을 금지하려고 했죠. 유럽과 다른 세계 곳곳의 활동가들은 전화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했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아프리카 나라들은 다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으로는 효과가 없으니까, 인터넷 검열이 이뤄졌는데 인터넷 검열은 유럽에서 없지 않았습니다. 공공연하지 않을 뿐입니다. 정치에선 항상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인터넷을 검열, 심지어 차단하려는 시도입니다. 유럽에서야 물론 북아프리카처럼 단순하게 인터넷을 차단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논거를 댑니다. 그런 논거들이란 대게는 테러,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 등의 괴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제도가 한번 도입된다고 하면 그것은 단순히 해당 목적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 일반을 억압하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유럽에서 해적당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해적당 운동의 출발점입니다. 해적당은 원래 해적 운동에서 출발했고 그것은 당운동이라기 보다 하나의 사회운동이었습니다.

첫 번째 해적당의 출현은 스웨덴에서 일어났습니다. 해적당이 생기기 전 스웨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서로 자유롭게 음원을 교환하고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운동이 있었습니다. 2004년 이전까지 음반 산업은 음반을 서로 교환하는 행위나 다운로드 등에 대해서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pirate bay라고 불렸습니다. 해적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처럼 음반 등에 대해서 서로 양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카피(copy)할 수 있다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해적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은 ‘그래 좋다. 우리가 바로 해적이다. 우린 해적당이다.’라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서버를 뺏어가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버를 은행 금고에다 둔 적이 있습니다.

(독일) 함부르크 주의 선거 바로 직전의 일입니다. 경찰은 저희당(해적당) 서버를 압수수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정당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주 의회 선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저 로고는 스웨덴에서 만든 유럽 해적당 로고이고, 그것은 바로 6년 전 일입니다. 그리고 제1차 스웨덴 해적당 당 대회에서 저 로고가 사용되었습니다. 스웨덴 해적당 당 대회는 매우 작고 화기애애했습니다. 그리고 약 9개월 이후 독일에서 해적당이 건설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2009년 청년 해적당 거리대회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도시에서 이와 비슷한 그룹들이 자꾸 생겨나며 해적당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해적당 청년조직 사진입니다. 대개 20~25세 연령층을 주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더 나이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해적당 전체가 하나의 청년 조직입니다. 건립될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당원들이 나이가 들어서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청년조직은 청년당의 청년조직이므로 매우 젊은 사람들만 있습니다. 첫 번째 선거에서 1% 정도를 받았으니 참패했다 할 수 있겠죠.

3년 전 연방국(?) 선거에서는 갑자기 2%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굉장한 성공이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미디어들이 이야기했습니다. 저기 누군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그것이 잠시 지나가는 현상에 지나지 않고 2, 3년 후에는 다시 듣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선거에서 1, 2% 정도를 받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종류의 선거에 해적당은 늘 참가했고, 같이 조직했고 끝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해적당원들이 해적당의 테마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사진에 있는 해적당 깃발 보이시지요. 저렇게 많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차단과 관련된 항의 시위입니다. 사실 이 테마가 해적당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로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해적당 깃발에 모이게 됐지요. 당원수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해 지금 약 2만 명 정도의 당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함부르크 대회입니다. 그러자 당 대회는 더 이상 작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게 됐습니다. 저것은 지금까지 정당의 역사 중 가장 많고 잘나온, 정당사에 남을만한 사진입니다. 기네스북에 올라간 사진입니다(웃음).

다른 정당은 대의원이 있는데 우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토대 민주주의이고 모든 당원이 당 대회에 올 수 있고 참가한 당원은 누구나 투표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 대회가 열리면 2천 명 정도가 오기 때문에 복잡합니다. 2천 명 정도가 함께 프로그램에 대해 토론합니다. 그런데 이 2천 명이 2만 명이 함께해야 하는 콘셉트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작년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해였습니다. 해적당에 대한 언론과 정가의 주목이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는데요. 우리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2% 정도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베를린 주 의회 선거가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 연방의 선거가 아니라, 베를린 주의 선거입니다. 베를린이야 당연히 해적당 경향의 유권자들이 많이 삽니다. 여론조사에서 많이 받은 것은 맞지만, 2~4% 정도였습니다. 저도 그때 선거운동 함께 하고 거리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공중파 저널리스트가 저에게 와서 ‘오늘밤 센세이션이 일어날 것 같다. 그것은 해적당에 관한 것일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독일에서는 5% 이하면 의회진출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해적당이 5%를 득표한다면 굉장한 열정을 가지고 올 것이란 점을 저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해적당 당원들이 TV에 나가서 적극적으로 토론했고, 200명 정도의 당원들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해적당 역사상 처음 있는 결과였습니다. 해적당의 로고 색깔인 오렌지색을 TV에서 볼 수 있는 것만도 우리에겐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여론조사가 5, 6% 정도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러자 우리는 선거에서 이겼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여론조사였죠.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얼음은 녹았고 기대는 점점 커져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주일 지나자 여론조사가 7.7%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왜 이렇게 지지해 주는지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비례후보 명부에 15명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9%정도를 받으면 우리는 15명이 당선되고 10%를 받는다면 더 이상 올릴 의원조차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만약 10%를 받는다면 나머지 1%는 빈 좌석으로 의회에 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14%까지 나올 때 우리는 과연 의회에 들어갈 수 있을지 서로를 둘러보며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다행히 8.9%였습니다(웃음). 선거 명부에 있었던 15명이 모두 주 의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저희는 내심 우리가 8.9% 보다 많은 득표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번에 좀 더 많이 명부에 올려야 될 것 같습니다. 매우 감성적인 얘기만 하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잠시 비디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출구조사가 나왔을 때입니다. 별로 놀랍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 감동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해적당의 결과에 대한 축하자리입니다. 그런데 선거에 대한 좋은 결과보다 더 축하해야할 일은 자유민주당이 참패했다는 것입니다. 자민당과 해적당은 선거에서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자민당 당수가 해적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표라 얘기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해적당은 5%를 못 넘는데 왜 투표하냐, 2%나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해적당과 자민당은 서로 득표 퍼센트를 바꿨습니다. 자민당이 20년 전에 검열에 대한 반대운동, 검열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시민운동이 누구를 지지했는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민주당은 자신들이 가졌던 가치를 엎어버렸습니다. 잠시 비디오를 보겠습니다. 좌파당은 12%에서 9%로 떨어졌고, 자민당은 원내 진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가 나오자 사람들은 전부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가 이겼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감성적인 순간이었는데요. 갑자기 기자들이 해적당에 몰려왔습니다. 오렌지가 해적당이구요. 빨간색이 좌파당입니다. 거의 좌파당과 비슷한 지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겼나 생각해보니 우리의 테마가 사회에 안착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당들이 우리의 테마를 훔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베를린 선거에서 해적당은 굉장히 광범위한 강령을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인터넷 검열과 정보자료에 대해 집중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투명성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거강령을 차근차근 광범위하게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베를린 해적당, 베를린 시당은 이미 기본소득을 자신의 강령으로 하고 있는 당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선거에서는 사회분야의 정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왜 해적당에 투표했느냐 하면 바로 사회분야 공약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매우 점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해 접근해서 기본소득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에 저희는 ‘모든 인간은 무조건적인 권리를, 생존과 사회적 참여에 대한 무조건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기본강령을 채택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국가가 무조건 보장하라 했지만 어떻게 보장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었죠. 2010년 이야깁니다. 그리고 베를린 선거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베를린 시당은 기본소득을 원한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거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였습니다. 그러자 연방해적당도 베를린 모델에 따라 기본소득을 해적당 전체의 강령으로 해야 한다는 시도를 했습니다. 사실 국민전체, 그리고 해적당 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가 매우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3단계의 강령수립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첫 번째는 의회에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서 여러 모델에 대해 대중에게 여론조사를 하고, 전문가들에게 위탁하고 비교하는 작업을 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여러 모델에 대해 논의를 하자, 그리고 그 절차가 끝나면 세 번째 단계로 국민투표에 부치자. 이렇게 3단계를 걸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절차에 대해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때까지 최저임금이 도입되어야 하는데, 독일에는 최저임금제도가 독특합니다. 해적당 안에서 이것을 투표에 부쳤는데 결과가 아슬아슬했습니다. 해적당은 의사결정을 2/3로 결정하고 거의 모든 결정이 80~90%로 통과가 되는 이상한 당입니다. 그런데 기본소득만은 2/3를 가까스로 넘어서 통과했습니다. 2/3를 넘는다는 것은 강령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의 기준인데 기본소득은 가까스로 통과했습니다. 우리는 당원들의 투표를 하나하나 셉니다. 그렇잖으면 불투명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기본소득 강령은 당원 총투표에서 단 4표가 많아 채택됐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굉장히 많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 테마는 미디어에서 굉장히 많이 토론되고 있습니다. 해적당 내에서도 기본소득 논의는 매우 격화되어서, 사실상 해적당 내에서 가장 많이 토론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끝으로 독일의 현황에 대해 간단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희 관점에서 볼 때 기본소득이 왜 중요한 것인가 말하고 싶습니다. 독일은 약 13년 전부터 ‘하르츠 포(Hartz IV)’라는 사회제도를 도입했습니다. Hartz IV는 매우 강력하게 노동 강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Hartz IV 대상자들은 삶에 필요한 것을 거의 모든 것을 받지만, 사실 그렇게 많이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정기적으로 직업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합니다. 자기가 원치 않는 직장이 알선되었을 때도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강제적으로 직업교육소로 보내지기도 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것들이 전부 사회적으로 무용한 노동이라는 것입니다. 직업교육은 지불되는 노동이 아니라는 법이 있습니다. 매우 큰 슈퍼마켓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물건도 사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진열대를 점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플라스틱입니다. 그것은 실제 슈퍼마켓이 아니라, 훈련을 위한 가상의 슈퍼마켓입니다. 그런 일이라도 해야만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독일의 상황입니다. 청소년들의 상황이 그런 것입니다. 의무적인 학교 과정이 끝나고 더 이상 직업이 없는 경우에, 그리고 사내교육 자리도 대학 자리도 없는 경우 말입니다. 그런 경우에 직업교육조처라는 곳에 구속됩니다. 거기 가서 배우는 것이 방금 가상의 슈퍼마켓 예를 들었듯, 터무니없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노동 중 더 이상 돈이 없다고 얘기하면, 이와 같은 조처로부터도 제외됩니다. 그리고 늘 실습을 해야 한다는 통지를 받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컴퓨터에 앉아 계속 무언가 지원하는 서류들을 쓰는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노동청에서 다시 돈이 생겼으니 오면 된다고 전화를 합니다. 우리는 자리를 몇 개 더 만들었다. 더 서류 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그 전 서류 쓰기 실습을 하던 사람들이 컴퓨터에서 일어나 무언가 터무니없는 육체노동을 하기 위해 떠나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지만, 바로 이런 시스템의 전형적인 예라고 보시면 됩니다.

독일의 청년실업률이 스페인이나 그리스처럼 심각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Occupy 운동에서 스페인에서 온 청년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스페인)에서 직장을 가진 청년노동자들은 임대료를 내기에도 부족한 돈을 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 청년들은 두 가지 선택 지점이 있는데요. 하나는 임대료를 내기 위해 노동을 할 것이냐. Occupy 운동을 할 것이냐 입니다. 제 생각에는 두 번째가 훨씬 훌륭한 선택이라고 봅니다(웃음). 독일은 직업훈련을 받거나 대학을 다니는 중에는 실업부조를 받을 수 없습니다. 대신 훈련비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훈련비는 직업교육을 한 번도 중단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지급됩니다. 누군가가 직업교육이나 대학교육을 시작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바꾸면, 그럴 때에 이 사람은 훈련비도 실업부조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는 국가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불안한데, 뭘 하든지 끝까지 해야 하고, 중단하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불안입니다. 그런데 대학교육이나 실업교육을 시작했다가 이게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순간, 깨달아봤자 계속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만둔다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이 사라지는데요. 일단은 실습까지 하고 불행하게 되거나, 불행해서 2, 3년 후에 직업을 그만두거나, 또는 대학을 졸업하고 불행하게 되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불행해져서 취직을 한 다음에 다시 불행해지거나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훨씬 더 좋은 것이라고 사람들이 차츰 깨닫게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은 불안으로부터 사람들을 동기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본소득은 안정으로부터 사람들에게 동기부여하기 때문입니다.

Hartz IV 시스템은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하는 체제입니다. 청년들의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노동청을 들락날락해야하는 것인데요. 노동청에서 묻습니다. “너 뭐했니?”, “너 어디서 직업 구할래?” 묻습니다. 그런데 바로 내 앞의 공무원이 날 위해 뭔가 해주지 않으면 그가 나에게 실습조처 명령을 내릴 것이고 그러면 무의미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분고분 앉아있습니다. 앉아서 깨끗한 인상을 주기위해 애를 씁니다. 노동청에 가기 전날 열 군데의 회사에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일을 하기 원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물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일하기 싫은데 전화를 하는 경우에는 일부러 멍청한 실수를 저질러 뽑히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또는 면접에 이상한 옷을 입고 간다거나,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응모 서류에 맞춤법을 틀리게 쓴다던지 합니다. 그렇게 취직에 실패하면 다시 4주 동안 돈이 나옵니다. 한편으로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힘들겠지요. 그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에 강제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매우 잘못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노동청에 가면 됩니다. 그곳에 가면 공무원들은 매우 친절합니다. 공무원들은 법률이나 행정명령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권리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는 것도,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은 집에도 찾아옵니다. 진짜 혼자 살고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헌법상 주택은 보호받는 법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그와 같은 기본권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을 노동청까지 안내해주곤 했습니다. 제가 옆에 앉아 있으면 공무원들은 특별히 더 정중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같이 간다고 해도 정작 가야하는 청년들은 일주일 전부터 걱정에 시달립니다. 이처럼 불안과 통제에 근거한 제도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사실은 실패를 처음부터 금지하는 제도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해적당이 그래서 이와 같은 제도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사회제도는 자유에 근거해야하지. 불안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민주주의 속에서의 자유를 고려하는 사회제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생활, 사회생활 안에서의 자유를 얼마만큼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기본소득이 정확하게 이와 같은 노동생활 안에서의 자유에 대해 답하는 콘셉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독일에서 언젠가 기본소득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한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여러 시도가 있습니다. 브라질, 나미비아에 대해서도 독일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소득에 관련된 국제적 대화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 인류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서로 연관시키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에 대한 열망. 이것은 해적당이 발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제적인 기본소득 운동이 바로 자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를 초대해주신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하고 오늘의 대화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해적당 깃발을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질문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정식 강령으로 채택하지 못했지만 좌파당과 녹색당 내에도 기본소득 운동을 하는 동지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동지들과 해적당의 관계가 어떤지, 무엇을 같이 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 순차통역: 금민>

독일은 여러 정당에 기본소득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일하게 자민당에는 한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민당은 선거에서 참패해 의회에서 쫓겨나게 될 정당입니다. 아까 비디오에서 보셨듯이 자민당이 쫓겨난 것에 대해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 않습니까. 좌파당, 녹색당, 사회민주당과 보수정당 안에도 찬성파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녹색당에서의 기본소득 지지율이 가장 높습니다. 50% 정도 됩니다. 그런데 녹색당 안에서 소수파인건 또 사실입니다. 좌파당은 노동개념과 관련된 논쟁 때문에 이것이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좌파당의 노동개념은 임금을 받는 것이 노동이라는 것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또 다른 종류의 노동개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과 관련된 노동개념은 노동이란 내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든 활동이라고 말할 경우 좌파당의 노동개념과 불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파당의 다수가 임금 문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론 다른 당의 기본소득 주장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고 서로 의견을 밀접하게 교환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당의 기본소득 주장자들이 해적당에 대해 매우 질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다른 당의 기본소득 주장자들이 해적당의 성공에 대해 좋은 일이라 생각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하고 있다면 다른 당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해적당이 무엇 때문에 성공하고 있느냐, 사람들이 기본소득 강령을 보게 될 것이고, 다른 당에 있는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입니다. 그러한 현상은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체제의 변혁이기 때문입니다.

<질문 / 이장규: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공동의장>

해적당에서 사안들을 결정할 때, 의제를 생성할 때,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 순차통역: 금민>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형식적인 차원. 의결 같은 걸 하게 되는 절차적인 차원입니다. 그리고 의결 절차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형성하는 과정. 이와 같은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1년에 두 번 당 대회를 엽니다. 거기에서는 제안을 내고 토론을 하고 표결을 합니다. 약 2만 명의 당원들이 모두 제안을 낼 수 있고, 그 제안에 대해 2만 명이 모두 표결을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제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준비하고 표결을 진행하기 위한 수단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표결을 준비하고 의견을 형성하는 과정들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다른 수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터넷에서 굉장히 발단한 위키 백과 시스템을 활용합니다. 위키는 아시다시피 누구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수단 아닙니까. 거기서 당원 한 명이 텍스트를 올립니다. 다른 당원이 고칩니다. 그렇게 토론을 합니다. 물론 여러 그룹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룹들은 지역마다 따로 모이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합니다. 이 같은 작업그룹에 대해서. 작업그룹은 해적당원인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나 가입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입니다. 위키 데모크라티(Wiki Democrati)는 토대 민주주의와 대의제의 중간 형태입니다. 이것은 인터넷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작동을 하는데, 누구나 제안할 수 있고 제안하는 사람은 텍스트를 올립니다. 그리고 토론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동결시킵니다. 그러면 동결된 텍스트들이 있기 때문에 투표를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형성됩니다. 먼저 토론 시기에 이와 같은 가능성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표결할 때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 또는 세 개에 찬성할 수 있고, 보류 또는 반대표도 던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면, 사회정책에 대해 내가 아닌 이 부분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나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하나의 대표단(delegation)에 대해 앉아서 무엇인가를 토론하고 있겠지요. 그러면 저와 함께 토론한 사람은 저를 위해 투표를 해줍니다. 제가 주말에 시간이 나서 인터넷에 로그인 할 수 있다면 제가 직접 참가하여 투표할 수 있겠지만, 제 친구가 저를 위해 대리 투표를 행사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저는 친구를 위해 표를 행사해야겠지요. 제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을 때 친구는 저를 위해 투표를 하고, 자신을 위해서도 투표권을 행사합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것 같지만 유연하고 긴장감 넘치는 절차이고 과정입니다. 이것은 더디게 진행될 것 같지만 매우 빠르게 의사 형성을 할 수 있는 제도란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지도부가 ‘토대의 의견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사회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청년운동의 여러 가지 전망을 보여줄 수 있는 자리인 것 같습니다. 일단 집담회의 주제가 “청년, 청소년이 기본소득을 받는다면”, 그리고 오늘날 가장 대표적인 프레카리아트 세대인 청년 불안정노동자 층의 관점에서, 그리고 사실상 예비 청년 불안정노동자에 지나지 않는 처지로 내몰린 대학생의 관점에서, 또는 영상 활동가의 관점에서 청년들을 각각 대변하면서 오늘의 주제 청‘소’년이 기본소득을 받는다면에 대해서 한 말씀씩 해주실 것이라 기대가 됩니다. 먼저 앉으신 순서대로 김재의 서울점령자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발표 / 김재의: 서울점령자들, Occupy대학생운동본부>

지금 서울 시청광장을 점령하고 점령시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1년 12월 10일부터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83일 동안 여의도 점령을 했었구요. 3월 1일부터 더 많은 대학생 친구들, 청년들과 같이 가자는 제안을 하면서, 지금 16일차 점령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냥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료집에 썼고요. 자료집은 나중에 읽어보시면 될 것 같고 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저는 2006년도에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06학번이고 6년째 대학을 다니며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학생운동을 시작한 것이 대학교 2학년 때인데, 학생운동을 하는 삶이라는 게 대학에서 그리 보편적인 삶은 아닙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마이너한 삶이고, 어떻게는 스스로를 계속해서 설명해야 하는, 나는 왜 학생운동을 하고 있는가, 나는 왜 소위 말하는 운동권의 삶을 살고 있는가, 계속해서 설명해야 하는 삶입니다. 예컨대 부모님께 네가 뭘 하고 있느냐라는 말을 언제나 들어야만 하는 문제들에 봉착을 하는 거죠. 왜 다른 사람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학교에 가고 있을 때, 왜 나는 집회를 가고 세미나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지금은 어느 정도 부모님도 제가 뭘 하는지 알고, 저도 부모님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고, 어느 정도는 안정기에 접어들었는데 저는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한다는 것이 이 사회에서 다른 가치를 만들어내고 다른 세상에 대한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구요. 기본소득이라는 개념, 혹은 정책이 저에게 의미를 갖는다면 그런 관점에서 인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이 무엇이 노동인지 결정하는 권리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하는 부분이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제가 만들고 함께하는 네트워크와 그 안에서 하는 사회적 활동들이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통해 하나의 공식적인 활동이자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이 자리에 다양한 분들이 와 계신데. 저를 포함해 자신이 하고 있는 활동이 결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에 대해 기성세대나 주류 사회는 그것이 도대체 어떻게 가치가 될 수 있는 것이냐 설명하라고 요구하고 그런 불안감들이 20대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에게 활동의 가치를 입증하라고 하는 방식은 결국 이것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것인지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안철수 같은 사람들은 20~30대에 방황했지만 결국 CEO가 됐다는 것, 젊은 시절의 많은 경험들이 지적 자양분이 되고 토양이 돼서 결국 이 사람이 커서 잘 살게 되는 이런 모습들이 주로 기성사회가 20대의 방황과 사회적 활동을 인정하는 관점이라는 것입니다.

20대가 20대 자신의 목소리로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20대가 안정적인 물적 조건들, 20대 스스로 노동의 가치를 규정할 수 있는, 자기 활동의 의미와 가치를 스스로 규정할 수 있는 조건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이라고 하는 게 정책적으로는 그런 20대의 삶을 안정적으로 꾸려갈 수 있는 토대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점의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체적인 정책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의 삶이 누구에 의해서 이야기되어야하는지 말하는 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의도 점령을 준비하며 요즘 프레카리아트니 20대 불안정노동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는데, 충격적인 데이터들이 많습니다. 작년 한 해 자살한 청년들이 230명 정도 되고, 지금까지 학자금 대출을 받은 학생이 100만 명이 넘고, 상환 못한 학자금이 10조 원 정도 되고, 청년들의 48%가 빚에 허덕이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들을 하고 그를 통해 스스로가 규정할 수 있는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변화일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발표 / 김주원: 연세대 문화학과 대학원, 자유기고가>

집필과 연구라는 제목으로 집담회에 참가하게 된 김주원입니다. 집필과 연구라고 했을 때, 대단한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고 대학원생으로서 기본소득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원고들을 쭉 읽어봤을 때, 제 글이 제일 예리함이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하면서, 부족한 글을 보충하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학과는 문화학 협동과정이라고 해서, 젠더 연구와 문화 연구를 하고 있으며 분과학문체계를 벗어나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큰 학과가 하는 것만큼의 지원은 부족합니다.

제 글이 예리함, 서스펜스가 떨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여성연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실제적으로 여성연구자들이 왜 대학원에 와서 공부를 하는가. 저는 취업이냐 공부냐 둘 중 하나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그렇게 좁게 볼 수는 없거든요. 대학원에 온 것은 어쨌든 내 삶을 더 낫게 하기 위한 일종의 생의 기획 연장인데, 사실 막상 대학원을 들어와서 공부를 한 다음에 남는 것은, 고학력 실업자가 되거나, 고학력 불안정노동자가 되는 그런 조건 안에 있습니다. 그런 조건에 대한 얘기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예리함이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대학원에 온 것은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과 바람 때문에 온 것인데 마찬가지 불안을 안고 있는 겁니다. 여기 글에 나오는 프레카리아트란 말이 신조어인데, 불안이란 말이잖아요. 그런데 이 불안이란 말이 20대에만 해당하는 말도 아니고 모두 사람이 다 불안합니다. 모두 불안한데, 그 불안한 상황이 각각 어떻게 다르냐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원생으로서의 물적회로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먹고 살거냐 하는 문제, 물적회로를 크게 3개로 봤습니다. 첫 번째는 학자금 대출, 두 번째는 장학금, 세 번째는 과외인 것 같아요. 학자금 대출은 아까 누적된 학자금이 10조라고 했는데, 양도 중요하지만, 지금 공부를 하거나 먹고 살 궁리를 하는 대학생, 10대와 20대들은 계속 대출을 받아야 하는 거죠. 학자금도 대출받아야 되고, 결혼하려고 해도 대출받아야 하고, 차도 집도 다 대출이에요.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 한국장학재단에서 추진하는 장학시스템이나 대출시스템은 이 사람이 나중에 직업을 가져서 상환할 수 있다는 전제를 통해서 하는 거죠. 그런데 안 됐잖아요. 그게 안 된다는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저도 대출을 당연히 받았죠. 상당한 빚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갚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장학금입니다. 큰 학과 같은 경우에는 BK21같은 것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 랩의 노예가 되는, 계속 그 랩에서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장학금들,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장학재단에서 추진하는 국가연구장학금, 또는 박사과정에서 제공해주는 장학금들도 일정한 조건과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항상 실적을 요구해요. 근데 이게 반드시 장학금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대학 자체가 이미 평가와 검증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고 그런 방식으로 계속 대학생,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검증받기를 요구하는 겁니다. 아까 요하네스 포나더 씨가 말했던 대로 그런 검증 시스템들이 대학 안에 있고, 이걸 신자유주의 시스템이라 부를 수 있는 거겠지요.

세 번째는 과외인데, 과외도 사기업 시장이라는 한국의 특이한 장치인건데, 과외도 대학생들이 많아지니까 경쟁이 발생하는 거죠. 학부모들도 과외하는 선생들을 평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대충 어떤 방식으로 과외선생들이 과외시장에 개입을 하고, 어떻게 자기를 표현하는지 가늠을 하는 거죠. 싸움이 발생하는 건데 이 같은 물적회로에서 대학원생들이 얼마만큼 안정된 생활을 하고, 연구할 수 있느냐 한다면, 그건 역시 불안정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남훈 선생의 연구에 따른 액수가 한 달에 40만원인데, 이게 되게 보수적인 수치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굉장히 중요한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월세를 40만 원 내야하는데 동거인이 있으니 20만 원 내도 20만 원이 남아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죠. 내 삶이 벼랑 끝이 아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장치로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평가보장시스템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건이 없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거죠. 이 잠재력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큰 틀에서 봤을 때는, 저의 발표글 마지막 부분에서 뜬금없이 지금 같은 지구의 삶이 지속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산업시스템도 환경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지속가능하지 않고, 지금 같은 경쟁 시스템도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결국 지속불가능하다는 것 대한 인지가 있어야만 기본소득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염려하는 게,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도 기본소득 이야길 하는데 재원을 자꾸만 공공 예산을 삭감하는 식으로 작동을 하는 거죠. 기본소득 자체가 금융자본주의의 약점을 끊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악용되기 쉬운 것 같고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대출이라는 금융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한편, 금융자본주의 회로를 계속 건드리는, 금융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하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금융자본주의를 찔러야 기본소득이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저는 기본소득 자체가 복지제도는 아닌 것 같고, 굳이 복지제도일 필요는 없는 것 같고, 다른 삶을 살기위한 방법, 박이은실 님이 얘기하신 것과 같은 꿈, 그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이 우리에게 훨씬 의미가 있지 않겠냐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발표 / 다영: 독립청소년, 아수나로>

저는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에서 활동하는 다영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이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는 토론회의 발제비를 노리고, 이렇게 오지도 않았을 테고, 여러분은 좀 더 질 높은 누군가의 발제를 들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청소년에게 기본소득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생각을 하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이 한국에서 어떤 상황에 놓여있냐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민법에서는 청소년의 결정권 등 권리를 많이 침해하고 있어요. 청소년에게는 거취결정권, 재산결정권이 없어요. 대개 부모라고 하는 친권자가 청소년을 징계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거죠. 무슨 애기냐면 청소년이 가출을 했다고 하면 청소년은 집을 계약할 수도 없고, 핸드폰도 만들 수 없어요. 누군가의 명의를 빌려 집과 핸드폰을 구해야 합니다. 거취결정권이 없으니까요. 청소년이 집을 나왔더라도 부모가 찾아내서 경찰에 신고하면 아무런 제도적 장치의 보호 없이 부모가 가라는 대로 끌려가야 하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거죠. 신문 1면에 실릴 만큼 엄청난 사건이 아니면 부모 손에 이끌려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있어요. 그리고 청소년은 노동을 할 수 있지도 않죠. 만 15세 미만이면 아예 법적으로 노동이 금지되어 있어요. 만약에 만 15세 미만 청소년이 집을 나오게 되면, 부모로부터 받는 돈도 없으니, 노동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데, 일을 구할 수도 없어요.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렵게 구한다 해도, 최저임금보다 낮게 받아도 나중에 노동청에 신고해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닌 상태입니다. 만 15세 이상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아요. 정규직도 아니고, 아르바이트 노동도 만 15세 이상이라도 구하기가 힘든 상황에 놓여있어서, 스스로 돈을 벌수가 없어요. 부모로부터 받는 돈이 청소년 소득의 전부인데요. 부모가 용돈을 주는 관계이다 보니 부모가 그걸 빌미로 해서 청소년의 경제권은 부모로부터 침해될 수밖에 없는 거고, 그것부터 시작해서 자기가 결정할 수 있는 많은 권리들이 다 침해될 수밖에 없어요. 예를 들어, 너 이번 시험 성적 90점 이상 안 나오면 용돈 안 주겠다고 한다면 용돈을 받기 위해 억지로 성적을 내야하고 용돈을 빌미로 부모가 청소년을 탄압할 수 있는 것이 많죠. 그래서 저는 기본소득이 무슨 의미냐 생각을 했을 때 친권자와의 억압의 고리를 끊어내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돈을 주는 사람이 친권자도 아니고, 자기 명의로 나오는, 누구나 상관없이 주체로서 받는 소득인 거잖아요. 청소년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소수자들도 자기 명의로 받는 소득이기 때문에,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이자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급받는 기본소득을 부모로부터 지킬 수 있는 토대도 같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구요.

청소년 운동에서 기본소득과 관련된 얘기가 있다면, 학생임금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학생임금은 공부하는 노동을 국가에서 인정해서 학생에게 임금을 주는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노동은 앞서 말한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그리고 학생임금을 받기 위해 억지로 학교를 다녀야 하고, 제도권 교육으로 들어가야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거구요.

이제 탈가정 청소년네트워크라는 것이 생길 것 같기도 해요. 탈가정 청소년이라는 말이 조금 생소하실 텐데, 가출 청소년 또는 비행청소년이라고 불리는 관점이 아니라, 청소년 스스로가 직접 가정을 깼다는 뉘앙스를 주는 언어에요. 탈가정 청소년들이 자기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들이 만들어지고 있어요.

작년에는 대학입시거부운동, 이게 청소년 사회권과 무슨 관계냐고 하면, 청소년 활동가들 중에 대학을 가는 경우가 많지 않은데, 그 경우 할 수 있는 노동들이 매우 없어지고. 대학을 가면 과외를 할 수 있거나, 할 수 있는 노동이 많아지잖아요. 대학을 가지 않으면, 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노동이 거의 없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야기 되진 않았지만, 그래도 대학을 안 가도 먹고살 수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정리를 하면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고, 부모로부터 예속관계를 끊어낼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또한, 청소년이 주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여야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소년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그렇게 같이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사회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기본소득의 중요한 부분 하나가 인격의 독립성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특히 문제 영역, 청소년 인권과 기본소득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주셨습니다.

<발표 / 정용: 영상예술가, 서울점령자들 디자이닝 그룹>

저는 영화 만드는 정용입니다. 영화 만들며 생겼던 고충에서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지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창작을 생각했을 때 머리에 있는 상을 구현하는 시간들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영화 창작은 다양하고 진입 장벽이 낮은 지원사업 등을 통해 돈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많긴 한데, 머릿속에 상을 채우는 시간들에 대한 보장은 거의 없는 편이죠. 머리에 상을 채우는 시간이 창작과정에서 중요하다. 지원받는 시간만큼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 시간들을 보장받지 못하니까 창작과 멀리 떨어져있는 일을 하면서 소재가 농익을 시간 동안 스트레스만 농익는 거죠. 소재를 몸에 채워야 하는데, 멀어지니까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발생하고, 소재를 중간에 포기해버리고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니까 불안감이 생기고 스트레스를 받고 그게 계속 반복되죠. 그런데 저는 소재를 머릿속에 채울 수 있는 시간을 선별해서 개별 지원사업들이 지원해야한다는 생각은 안 해요. 소재를 채우는 시간은 창작과정의 일환이면서 동시에 일반적으로 삶을 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이것은 개별적으로 선별해서 지원을 해야 한다기보다 사회 전체의 생활수준이 높아지는 쪽으로 가야한다고 봐요. 그래서 그런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여유롭고, 불안감을 미뤄줄 수 있는 방안으로 기본소득을 생각하죠. 기본소득을 받으면 창작과 멀어졌던 시간을 줄이고, 일을 적게 하면서 기본소득을 잘 활용해서 시간을 쓸 수 있을 것이에요. 그러면 창작활동도 윤택해지지만, 창작물을 수용할 수 있는 시장도 윤택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생활수준 전체가 전반적으로 상승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기본소득에 대해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회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노동시간 줄이고 여가와 문화생활이 늘어나는, 문화사회로의 큰 이행에 기본소득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표 / 멍구: 파견직 노동자>

야간노동을 12시간 하고 와서 횡설수설할 수 있는데 이해바랍니다. 앞 발표자들 이야기를 들이니 과거의 생각이 많이 떠오르는데요. 저는 처음에 대학을 갔었어요. 그때는 무조건 가야한다는 생각이 있었으니까. 점수 맞춰서 갔었는데, 가다보니 인생에 대한 회의가 들고, 그때는 청소년 운동이나 대학거부 운동이 거의 없던 시절이라서, (있었다면 같이 했을 텐데) 그래서 저 혼자 생각하기로, 학교에서 공부를 해봤자, 노동시장에 편입하기 위한 장치고, 이 지식이란 것이 나보다 더 못 배운 사람을 탄압하는 수단밖에 될 수 없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그래서 자퇴를 하고 뭘 할까 생각을 했지만 할 것이 없었다. 여기저기 기웃기웃했지만 저는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는 편이 아니라, 귀찮았어요. 영화를 하려고 해도, 말씀하셨듯이 지원을 받으려면 지원서를 그 사람들 입맛에 맞게 써야하고, 그런데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남이 시켜서 하면 하기 싫어서 할 수 없는 게 사람인 것 같아요. 집에서는 계속 왜 자퇴를 했냐, 학교로 돌아가라 구박해서 무작정 집을 나왔어요. 독립해서 무작정 일을 시작했는데, 하는 일이 변변치 않았죠. 학력이나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저런 일을 하며 돌아다녔어요. 저는 힘든 곳부터 하다가 점점 괜찮은 곳을 찾아 옮겨갔어요. 좀 더 편한 데로, 그래서 지금 있는 곳은 그나마 편해요. 저는 사람들이 원래 일을 하기 싫어한다고 생각해요.

불안정노동이라는, 프레카리아트라는 이런 노동들. 한 예로 카드사에서 야간 상담을 했었는데, 일은 그렇게 힘들지 않고 나름 편했어요. 점점 취업이 어려워지다 보니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다 대학교 졸업한 사람들이더라고요. 대학도 졸업해서 왜 그런 곳에 와 있냐 하는 사회적 눈치가 있으니까, 다들 자격증 공부하고, 여기는 잠깐 들렀다 가는 곳이고, 이 사회의 보람되는 훌륭한 일들을 하겠다는 생각들을 다들 하고 있어요. 사무실 직원들도 다들 그렇게 생각을 해서 야간에 남는 시간에 공부하는 것을 권장하고. 저도 이력서에 그렇게 썼어요. 대학을 왜 중퇴했느냐. 갑자기 집안사정이 따위로 뻥을 칠 수밖에 없었죠. 인생에 회의가 들어서라고 그렇게 말을 하면 누가 뽑아주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정말 자격증을 공부하고 그러고 싶은가 봤는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더라고요. 처음 들어온 사람들은 뭔가를 해보려고 공부를 하고 그래요. 그런데 거기가 일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은 곳이었어요. 1~2년 지난 사람들은 그냥 이 직업 계속 할래 하고. 결혼하는 사람도 생기고 전공이랑 상관없어도 뭐 그러더라고요. 안타깝게도 저는 문제 있는 사람으로 찍혀서 2년 계약이 끝나는 날 딱 잘렸는데, 아무튼 뭐 그런 식이에요. 지금 제가 있는 곳도 지금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행사인데, 금융사의 서버를 밤중에 감시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하는 일이 부리기도 쉽고 자르기도 쉽고 여러 가지로 유리할 테니 그렇게 하는데, 지금 있는 동료들은 전산 관련 자격증도 있고 전공자들이에요. 그분들은 전공을 살려서 번듯한 곳에 갈려고 했겠죠. 그런데 취업이 안 되다보니 그냥 비슷한 업종에 온 거에요. 그런데 7~10년 된 사람들이에요. 더 이상 다른 데를 갈 생각이 없는 거죠. 자격증이고 뭐고 없고, 그냥 남는 시간 같이 영화보고 놀아요. 그런 거 보면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느냐, 훌륭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느냐, 그런 것 같진 않아요. 주간에 있는 대기업 정규직 직원들을 보면 왜 저런 일을 하고 있나 싶어요. 새벽같이 출근해서 제가 출근하는 시간인 저녁 7~8시, 이럴 때까지 퇴근을 안 해요. 그러면서 그 일을 정말 사랑하느냐면 그렇지도 않고, 관두지도 못하고 자격증 공부를 따로 하고 있고, 보면 참 안타깝죠.

노동이라는 게 자본주의 하에서, 그게 이 사회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 하는 그 가치를 떠나서. 결국 시켜서 하는 것이고, 시켜서 하는 노동이다 보니까 하기 싫어서 하는 것인데 그렇다고 관두려야 관둘 수도 없고, 특히 정규직 같은 경우가 그렇죠. 저 같은 경우는 불안정노동에 익숙해져서 잘리면 어떻게 되겠지 해요. 그런데 정규직 같은 경우는 잘렸다고 하면 다시 정규직을 해야지 불안정노동 시장에 들어오고 싶지 않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 그 일을 평생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영화 현장에서 일할 때 유명인들, 배우들이 수억대의 개런티를 받는다고 해도 전혀 안정적인 것이 아니죠. 자본주의 삶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태고, 사회가 불안을 조장하죠. 그러니 보험회사들이 인기를 얻고 그런 것 아니겠어요.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내가 언제 인기가 떨어져서, 가족 누가 다쳐서, 친척이 부도나면, 이런 걱정 때문에 자기가 얼마나 벌어야 안정적일지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러니 인기 있을 때 무조건 많이 벌려고 해요. 그리고 배우들 보니 다들 부동산 재테크를 하더라고요. 그게 이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이고, 자기 배만 불리려고 꼭 그런 게 아니고, 자기가 언제 여기서 떨어질지 모르니까 불안한 거죠. 한국에서 가장 안정적인 것 부동산 투자라고 하니까 너도 나도 부동산 투자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든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한 달에 어느 정도 돈이 나온다고 하면, 굳이 이렇게 노동에 얽매여서 고달프게 인생을 살 필요가 없을 것 같거든요. 사람들이 자본이 요구하는 노동에서 스스로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나 힘이 생길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 /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기본소득과 탈상품화에 관한 여러 사례를 들어 말씀해주셨습니다.

<발표 / 단편선: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자립음악생산조합>

여기 쓰여 있는 걸 요약하는 공적인 얘기와 제 개 같은 삶을 얘기하는 사적인 얘기로 나눠서 하겠습니다.

예술에서 원래 돈은 되게 중요해요. 역사적으로 보면 낭만주의 시대 전까지는 후견인이란 사람들이 돈을 주면, 예술인들은 직업인에 가까웠잖아요. 그게 낭만주의 들어서는 천재가 되고, 자본주의 넘어서는 스타가 되고, 이런 과정에서 어떻게 돈을 모으냐는 형태는 바뀌지만, 어쨌든 바뀌지 않는 건 돈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1990년대 중반 인디씬(Indi Scene)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여러 쟁점이 있었어요. 그전에도 명동 쎄시봉, 신촌 블루스 이런 것들이 있었는데,  이런 것들과 다른 점이 몇 가지 있어요. 일단 과거의 씬과 다른 점은 인디씬 같은 경우 생태를 이뤘다고 할 정도에요. 씬이란 말 자체가 장소를 기반으로 해서 그 안에 있는 생태적인 많은 것들, 건물, 음악적 관계 같은 걸 통칭하는 용어에요. 그런 씬을 이뤘다고 할 만큼 집약적으로 형성됐었죠. 담론적으로 볼 때도 포스트모던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한국음악적인 메타포를 많이 했던 게 아니고, 미국의 인디팝, 인디음악들을 적극적으로 수입하기 시작했었고, 국가의 자본에 대해 명확하게 반대하는 태도가 최소한 초기 펑크씬에 한정해서는 그런 것들이 있었어요. 물론 이게 정말 그들이 그렇게 생각했었냐 하면, 사실 국가와 자본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하는 건 7,80년대 영국 펑크씬에서 다 했던 걸 장물 팔듯이 떼 오는 것과 별 차이는 없었다고 생각을 해요. 하지만 어쨌든 초기에는 그런 부분들을 내세웠었어요.

여기서 중요한 건,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되어 대안적인 시스템, 대안적인 유통체계, 생산체계를 만든다. 이런 것들이 당시 인디씬의 가장 중요한 기반 중 하나였어요. 90년대에는 초반 그런 시도가 많았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조직적이라기보다 아이디어 등 단발적으로 전개되었던 것이라서, 2000년대 들어서 죄다 망해요. 2000년대 모두 아시겠지만, 신자유주의가 극심하게 된 시대입니다. 그래서 2000년대 중반 돼서 사정이 굉장히 악화되었어요. 그게 장기하 나오기 바로 전이에요. 그때 독자적인 물적 기반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디씬이 국가의 지원사업과 자본에 기대는 것이 굉장히 높아집니다. 맨 처음 국가와 자본으로부터 독립, 그런 얘기를 했었는데, 지금 홍대 앞에 상상마당이라고 있어요. 그게 KT&G 소유인데, 되게 크고 좋은 공연장이고 하니까 자본과 결탁을 하게 되죠.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역 월세가 굉장히 높아지고 재개발되면서 삶이 질이 낮아져서 지금 홍대앞 사는 음악가들은 거의 없어요. 서울권에 땅값 싼, 은평 이런 곳으로 다 이사를 갔죠. 사회학적 용어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고도 하죠.

저는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운영위원이에요. 저는 조합운동을 통해 이것을 극복하려고 시도를 계속하고 있어요. 국가나 자본으로부터가 권력이 나오는 것이 아니고, 실질적으로 저희를 지지하고 있는, 저희와 함께 할 수 있는 음악가들, 혹은 시민, 혹은 청취자들을 대상으로 해서 그로부터 권력을 끌어 모으는 물적 기반, 음악가들이 같이 쓸 수 있고, 청취자들이 같이 쓸 수 있는 공공재를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렇게 한지 3년이 지났고 성과도 굉장히 있는 편이에요. 그런데 조합운동만 가지고 되느냐에 대해서는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조합운동이 국가에 대해 반기를 들거나, 자본에 대한 반기를 들고, 점령하고 권력을 뺏어오는 게 아니고, 시민들이 조직을 만들고 권력을 만들어서 작동하는 건데, 그것만으로는 힘들다. 조합을 만들고 하는 것들 필요하지만, 강정마을 사태 같은 걸 봐도 그렇고, 자본과 국가의 권력이 굉장히 강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사실 한국은, 지역공동체 이런 거 없죠. 시민사회가 가진 권력 자체가 굉장히 부족하고, 이 권력만 가지고는 조합을 한다고 하면 그 전보다는 낫겠지만.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기본소득을 지지하게 되었다. 기본소득 운동은 국가, 자본의 권력에 대해 통제를 강하게 하고, 사회로 권력을 빼앗아 오는 운동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조합운동과 굉장히 필요가 맞는 점이 무엇이냐면, 가져온 권력을 사회 전체가 공유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게 결국 개개인의 자율적인 힘이 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조합도 마찬가지거든요. 조합 같은 경우, 평등주의적 기반에 의해서 일인일표를 주고, 경제적으로 볼 때도 기업처럼 비자금 만드는 식으로 하는 게 아니고 조합의 돈은 최소한으로 유지하고, 그것을 구성원 개개인에게 물적으로 주는 것들, 개개인의 경제 권력을 강화시키는 것이 중요한 운동인데 기본소득 경우도 사회결사체들이 권력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물론 결사체는 필요하겠지만, 다시 개인에게 권력을 돌려준다는 점에서 비슷한 측면이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페이퍼에 기본소득과 조합운동의 비슷한 점에 대해 이야기 했습니다.

그리고 음악가 입장에서 추가적인 기본소득 쟁점들이 있어요. 음악을 노동으로 보냐마냐. 저는 그게 쓸데없는 쟁점이라 생각을 하거든요. 노동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회구성원이고 음악을 만들고 활동을 하며 존재하고 있고,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줘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경제적 권리가 상승하기 때문에 조합 활동도 열심히 할 수 있죠. 또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가 이야기하는, 토지세 강화의 측면에서 땅값을 똥값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특히 저희 같은 노동을 하지 않는 계층이 살 수 있는 확률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음악가가 기본소득과 연계되는 점이 많지 않나 생각을 했습니다.

탈성장, 탈노동사회, 그 부분은 모레 발제 할 이런 건 심광현 선생님이 더 잘 설명해주실테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적으로 얘기하자면, 최근에 월간잉여란 잡지에 글을 썼어요. 모든 개새끼에게 기본소득을 줘야한다는 글을 썼어요. 저는 음악가, 자유기고가, 음악을 가르치는 일도 하고, 활동가이기도 하고. 굉장히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돈이 안 돼요. 한 달에 버는 돈이 평균 50만 원도 유지가 안 돼요. 많이 벌 때도 있지만 그때도 다 써야 되고 하니까요. 그러니 집에서는 개새끼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이게 구조적인 문제에요. 안정적으로 돈을 못 번다는 게 엄청 중요한데, 안정적으로 돈을 못 벌면 차를 못 사요. 차를 못 사면 결혼을 못하고 자식을 못 낳아요. 그리고 결혼을 못하면 집을 못 사요. 한국은 주택청약이 35세 전까지는 결혼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집을 못 사면 어떻게 되느냐면 자산축적을 못해요. 자산축적을 못하면 부모에게 효도를 못하죠. 효도를 못하면 부모가 죽죠. 나이가 들면 죽잖아요. 그러면 저는 부모가 없는 개새끼가 되는 거예요. 나이가 들면 나도 죽겠다. 방사능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스스로를 건사하지 못하는 측면에서도 개새끼가 되는 거죠. 아무튼 제 음악가 친구들 보면 다들 알바를 해요. 그런데 그거들 거의 다 비정규직이에요. 종편에서 일을 하는 친구를 보면, 3일씩 밤을 세고 일을 하는데, 정작 받는 돈은 70~80만 원 정도다. 그 정도로 어떻게 효도를 하겠어요. 걔도 개새끼 되겠죠. 이런 것들이 반복되고 있어요. 사회에서 잉여라고 얘기할 수 있겠는데, 사회에서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으로 사회에서 이들을 개새끼라고 탄압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모든 청년이 궁극적으로 무한하게 개새끼로 수렴되는 이런 과정들을 철폐하지 않으면 세계가 돌아갈 수 없다고 보고요. 저, 다영같은 청소년 그리고 다영보다 더 어린 세대. 이런 사람들이 무한하게 개새끼로 수렴되는 이런 게 어떻게 사회입니까. 저는 이런 세계를 철폐하기 위해서 Occupy든 뭐든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부: 청년의 무기, 기본소득과 점령운동>

<사회 / 권문석: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진보신당 기본소득위원회 준비위원장>

<발표 / Yuri Cantor 유리 칸토르: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자 / 순차통역: 이미경>

여기 와서 여러분을 만나 미국 Occupy 운동에 대해 이야기 할 기회를 가지게 되어 굉장히 기쁩니다. 저는 전 세계의 연대와 상호연관성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Occupy 월스트리트 운동의 최초 시작은 캐나다의 Adbuster 잡지에서 시작했는데요. 원래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는 아이디어는 남아프리카와 중동 특히 타지르 지역의 이집트인들에게서 영감을 얻은바가 큽니다. 이러한 실천에 대한 요구의 반응이 미국에서 굉장히 큰 호응을 이끌어냈는데, 이것은 미국의 현재 정치경제학적 지형에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경제적 지형에 관해 초점을 맞춰 설명하고, Occupy 운동이 현재 시스템의 일부가 될 것이냐, 그것을 부수는 주체가 될 것이냐에 대해 말하려고 합니다.

점령 운동은 개혁 의제를 선점해서 선거에서 민주당(미국)을 위한 활력 혹은 동기가 되고자 하는 민주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을 포함한 세력들에 의해서 밀어붙여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언론들은 종종 점령 운동을 민주당을 위한 기지를 만드는 시도로 보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점령 운동가들은 수평주의와 반 위계적인 구조의 채택을 주장해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몇몇 도시에서 정치인들이 점령 운동의 지지를 획득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그 지지가 실제로 실물화되지 않는 시점이 되었을 때, 재빨리 점령 운동과 거리를 두고 그것에 대한 공격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오클랜드의 정치인들은 처음에는 사실상 점령 운동을 지지하는 듯 한 태도를 보였다가, 지금은 테러리즘으로 낙인을 찍는 입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점령 전술을 막기 위한 새로운 법안이 통과되었고, 경찰들의 대응도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 내 급진적 좌파, 노조, 진보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비영리단체의 많은 사람들이 선거 위주의 가치를 선거와 관련된 정치, 선거 위주의 정치 가치를 높임으로써 그 범주에 흡수되고 있고 진정한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 운동에 함께하는 많은 사람은 대의민주주의나 선거에만 착목하는 정치를 거부할 뿐 아니라 현재 체제에 의해서 제공되는 사회적 변화들이나 비선거적 방안에도 거부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렇지 않은 입장을 견지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그 운동에 일정한 긴장감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2009년 오바마 집권 이후에 미국의 정치적 지형은 급격히 우경화되는 경향이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 내 많은 좌파 성향의 사람들은 이른바 진보적 정치를 한다고 보이는 민주당에 투표하면, 미국의 전 세계적인 군사적 개입도 중단할 수 있고, 통제 불가능한 기업과 자본주의적 체제도 개혁할 수 있고, 자본을 개혁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성정체성을 가진 소수자들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고, 건강보험ㆍ교육 문제 등과 같은 인권에 대한 담론을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희망했고, 기대한 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치인들에게 그들의 호전적인 의제들을 강하게 밀어줄 수 있는 공간을 내어준 것이 되어 반전, 저항 운동이라거나, 정치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들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오바마 정부는 관타나모 기지를 폐쇄하겠다는 약속도 어겼고, 정부운영 투명성을 재고하겠다는 약속도, 인권 침해와 관련된 사람들을 처벌하거나 그 방식을 구현하겠다는 약속도, 성 소수자들을 위한 동등한 평등권 구현의 의제들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어기고 있습니다. 공화당 사람들은 (제가 살며 보아왔던 어떤 시기보다도) 이 논제들을 우경화시키고 있습니다.

점령 운동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마치 좌파 운동은 주변화되고, 경계화되는 것 같이 보였고, 언론들도 우경화ㆍ보수화되는 것 같이 보였습니다. 이러한 경제 불경기, 일자리 부족, 주택시장의 붕괴, 물가 상승과 같은 문제와 쌍을 이루는 정치적 지형의 문제는 몇 년 동안 내부에서 끓어오르고 있는 형국입니다. 결과적으로 야기된 경제적 절망상태는 북아프리카나 중동에서 이전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운동을 만들어내었고, 그것은 휴면 상태에 처해있다고 할 수 있는 좌파들의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각성시키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자들, 심지어 보수주의자들조차도 점령 운동이 실물화 될 수 있는 기회를 궁극적으로 제공하는 잠재력을 가진 전략으로 보고 있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나타나는 주택시장 문제는 (자본주의) 본질과 직결된 문제라 할 수 있겠습니다. 차압되는 집들도 많고, 아직 입주하지 않은 비싼 건물들도, 건축 중에 있거나 완공되었지만 비어있는 상태로 방치된 집들도 많습니다. 뉴욕에서 집 임대는 줄어들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파트 임대 수요는 계속 존재하고 있습니다. 높은 주택임대료와 늘어나는 실업률, 주택 시장의 붕괴 사이에서의 모순이 사람들이 점점 거리로 내몰리는, 지금 살 수 있는 공간에 관해서 많은 관심을 갖고 주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형국이 인간성 혹은 인간의 존엄성에 관해서는 개의치 않는 자본주의 제도 안에서만 말이 된다는 것을 점차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대학 교육 문제에서 보면, 대학에서 등록금이 인상되고, 장학금이나 지원 재정들이 삭감되는 것은 수십 년 동안 계속 진행되어온 일이기는 하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극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캘리포니아 대학들에서는 실제 점령 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저항들이 대규모로 있어왔고, 학교 건물들 일부를 점거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뉴욕에서는 학생들이 점령 운동에서 굉장히 중요하고 적극적인 부분들을 담보하고 있는데, 왜냐면 좀 더 직접적인 행동을 자유롭게 펼치고, 다른 다양한 참가자들보다 경찰과 직면할 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열거한 다양한 대학의 학생들이 자유롭고 열린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뉴욕시에서 학생들은 뉴 스쿨을 점거하고 무료강의, 필요한 사람에겐 누구나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9.11 이후 점점 애국주의가 강화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고, 정치적 지형을 형성하는 데에도 강화된 애국주의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국가주의는 멕시코 국경에서 자경단처럼 국경을 순찰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반 이주민 법률 그리고 점점 많은 수가 증가하는 국외추방 형태의 이민정책으로 나타나고 있고, 이는 오바마 집권 후에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때로는 누가 최고의 미국인이 될 수 있느냐는 경쟁으로 나타납니다. 이러한 경향은 점령 운동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나고 있는데, (예를 들면) 표식, 성조기, 시위물품을 비롯해 예전 정치인들이 얼마나 더 나았고, 어떻게 하면 미국이 자신의 길을 잃게 되었는가하는 허울 좋은 논쟁을 통해서도 이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향은 그 운동 속에서 쇠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아마 지속적으로 국가의 탄압을 경험하는 현실 때문입니다. 경제적 붕괴로부터 발생된 ‘99%’라는 말은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점령 운동에서 좀 더 개혁적인 성향을 갖는 분파가 양산되고 있습니다. 99% vs 1%. 이것은 경제적인 격차의 문제였는데, 예를 들면 매년 연봉이 50만6천 달러 이상이면 당신은 소득분배 기준으로 상위 1%다. 이런 것이 마치 맹목적 애국주의 경향으로 채택되어 왔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 혹은 단절은 굉장히 단순화되어 있고, 개혁적인 부분으로 치우쳐져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존하는 자본주의 체계를 문제의 근원으로 바라보는 대신에, 징후로 나타나는 불평등한 분배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찰조직들이나 억압하는 집단들조차 우리도 99%라고 이야기합니다. 99%라는 경구와 표현의 사용은 어떤 경찰들이 점령 운동을 멈추거나, 약화시키거나, 그것의 방향을 전환시키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자신들을 99%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2011년 봄, 위스콘신에서는 단체교섭권을 부정하고 노조와 했던 협약을 거스르려는 자본가들의 결연한 노력(?)이 있었습니다. 단체교섭권이 노동자들에게 자본주의 진전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 때문에, 단체교섭권은 목표가 되기도 하고, 그 집단적 힘을 반영한 결과가 되기도 합니다. 오바마 승리 이후에 변화가 있었고, 공화당 사람들은 가능한 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와해시키려는 의지를 갖고 지방선거들에서 많이 당선되고 있습니다. 노조와 좌파들은 그에 맞서 싸우고, 조직하고 건물들을 점령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에 자본가들 미국 내 또는 미국 내에 있는 좌파들에게 충격요법을 주었고, 심지어 국제적인 관심을 이끌어내었지만, 집단 단체교섭권을 제한하는 법률이 통과되었고, 그것은 여러 노동자들의 이익을 삭감하였습니다. 건물에 대한 점거는 부분적으로 지속되었는데, 그것은 자신의 노조도 탄압받고 있던 경찰들이 점령자들을 퇴거시키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미국 노동운동은 아주 급진적이고 불법적인 가두투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1947년에 노사관계법이 통과되었는데요. 특별히 효과가 없는 측면들은 합법적인 것으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반대로 그 법이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있는 부분들은, 여러 가지 형태의 파업이나 투쟁을 포함한 효과가 좋은 전략들입니다. 이 지점에서 노조는 점점 체제에 흡수되어 갔고, 그들이 가진 효과와 영향력도 점점 쇠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 노조는 1954년경에는 노동인구의 35%를 조직하는 정점을 찍었습니다. 지금은 노동인구의 11%만을 조직하고 있으며,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은 노동자보다 10~30% 이상 높은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돈을 더 많이 번다면, 왜 그들이 인구의 더 많은 부분을 이루어서 일반적 대중들과 더 긴밀한 관계를 지내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됩니다. 자본주의는 어떻게 노조를 탄압할까요? 노조, 언론을 통제하고 노동자들을 조직하는 것이 좀 더 어렵고 위험요소가 있는 일로 만드는 방식으로 그러한가요?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노조는 미국의 노총과 산업별 조직들의 협의회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에 가입된 사람들의 수는 사적인 부분에서 점점 감소하고 공공영역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다음 단락에 보면 미국에서 있어왔던 역사적 파업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있습니다.

1946년 오클랜드에서는 경찰이, 투쟁하는 여성노동자를 지지하고 파업 분쇄 책동을 반대해서 총파업이 일어났습니다. 미국에서는 지금도 많은 총파업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2011년에 점령 운동을 지지하고 경찰 운동에 대한 억압과 폭력적 대응에 저항하는 총파업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노동운동과 사회적 투쟁이 결합된 형태였다고 생각합니다. 투쟁은 굉장히 성공적이었고 여러 항구들의 폐쇄로 이어졌습니다. 웨스트코스트(서부 해안)의 항구들을 다 폐쇄하기도 했습니다. 웨스트코스트 항구 폐쇄 투쟁은 항만노동자들의 요구를 지지하고, 점령 운동을 지지하고,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요구를 담고 있었습니다. 그것에 관련된 동영상을 보면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여러 형태의 억압에 대해 벌어지는 투쟁들을 잘 조율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영역에 관한 투쟁의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 언론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보도하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언론의 이런 보도 때문에 오히려 노동자 투쟁에 대한 지지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 기차를 막는 등 굉장히 투쟁성이 강한 조직이 경찰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 노동자들이 합법적으로만 투쟁할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투쟁을 계속할 수밖에 없고, 일하러 가는 것을 막는다면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투쟁이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 서로 다른 노조와 직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그들의 투쟁과 실천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항구를 폐쇄하는 움직임이 있었고, 그 지역에서 벌어진 점령 운동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

오클랜드 점령 투쟁(Oakland Occupy: OO)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2012년) 5월 1일로 계획된 메이데이 총파업은 (2011년) 12월에 실제로 시작되었고, 그것이 노동조합을 통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 저항에 직면했습니다. 이렇게 큰 집회를 개최하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오클랜드 점령 투쟁이 총파업을 가능하게 하고, 웨스트코스트 항구를 폐쇄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 사실은 노조에 근거하지 않은 투쟁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99%의 투쟁은 이주민이나 노동자의 언어를 포함해야 하며, 다가오는 메이데이 총파업 투쟁으로 확산되어야 합니다.

<발표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활동가 / 순차통역: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친구들, 점령 운동가들, 기본소득 지지자 여러분, 저는 브레멘에서 왔습니다. 브레멘은 인구 50만 명 정도의 독일 동북부 도시입니다. 오늘 제가 여기서 말할 기회를 주고 초대해주셔 대단히 감사합니다. 먼저 저에 대해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기에 두 가지 역할을 부여받고 왔습니다.

첫째, 좌파당의 당원으로 왔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한국의 사회당의 자매정당입니다. 저는 좌파당에서 기본소득 연방 작업그룹의 대변인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그룹은 당내에서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입장을 강화하고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 독일 attac(아탁: 금융과세시민연합)의 회원으로 여기에 왔습니다. 아탁 내의 브레멘 지역 중심으로 활동하는 ‘모두에게 충분하다’라는 그룹의 일원입니다.

우리가 위기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위기 속에 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 99%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문제는 항상 더 많이 가지려하는 저들 1%, 혹은 심각하게 부자인 저들 1%가 문제입니다. 이와 같은 소수가 사회 전체를 통제하고 있는데, 그들은 주식의 형태로 금융기관을 통제하고, 그 금융기관들은 사실상 카지노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독일, 프랑스, 그리스 그리고 미국의 정치를 살펴본다면, 정치 역시 이와 같은 금융카지노업에 종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은행은 체제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독일 수상(메르켈)이 말합니다. 은행을 구제하기 위해서, 그리고 소위 우리를 구제하기 위해서 엄청난 구제금융 패킷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구제되는 것은 우리들이 아니라 은행들일 뿐입니다. 결국 금융기관의 주식소유자들이 앞으로도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도록, 금융기관의 주식소유자들만이 구제될 뿐입니다. 정치가들은 통화를 증발시키고, 매우 적은 양의 화폐를 시장에 흔듭니다. 결국 모든 계산은 우리들 99%에게 돌아올 뿐이고 결국 우리가 지불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마어마하게 늘어나는 국가부채, 그것은 결국 우리들의 손자와 증손자들까지 짊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국가예산을 축소하면서 또한 사회에서 가장 약한 부분들을 건드리는 복지예산 축소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말합니다.

우리는 너희를 위해 지불하고 싫다. 너희의 금융카지노업을 닫아라.

그것이 오늘 제가 이 학술대회에 참여하게 된 중요한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독일 아탁을 함께 창건했던 사람이 오래 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구적 금융위기는 사실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자본주의의 체제 위기다. 그것은 어떤 사회가 정당한 사회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적인 시대정신과 금융시장의 독재로부터 더 이상 지배받지 않는 세계를 말해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새로운 저항의 방식과 새로운 대안에 대해 서로 밀접하게 토론하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는 바로 지금’이라고 대다수의 독일 점령 운동가들이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 관심사의 굉장히 중요한 부분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단순히 경제의 개혁뿐만이 아니라 (민주적인) 공동체의 확장과 확대에 관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공동체, 특히 오늘날 과거 우리의 업적인 자유가 위협받는 공동체에 대해서, 자유가 금융자본주의의 희생물이 되는 시대를 끝내기 위해 있습니다.

그들은 입법을 합니다. 우리들의 민주주의적인 헌법을 우리 발끝에 짓밟고, 우리들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그런 입법을 합니다. 우리가 어느 날 더 이상 부자유속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한다면, 새로운 세계, 다른 세계는 단지 가능한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할 것입니까. 자본주의에 의해서 풀어놓아진 포식동물인 금융자본주의를 멈추게 하고, 정당한 세계를 재건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가 다른 일을, 무엇을 할 것입니까.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독일에서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요약하는 것은 아직은 이른지도 모릅니다. 거리에 나가서 시위하는 사람들은 아직 소수입니다. 그리고 거대한 대중운동이 되기까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운동 속에서 여러 가지 다른 부분들 사이에 다리를 놓고, 공통성을 창출하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매우 주목하고 있습니다. 참여자들은 여러 가지 문제들에 있어 불만을 가지고 모여듭니다. 그러나 저항은 하나의 측면이고, 이에 대해 구체적인 대안을 내놓는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라고 이미 알고 있습니다. 또한, 대안을 내놓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는 Occupy 안에서도 직면하게 되는 문제입니다. 독일 점령 운동의 요구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그것은 단 하나의 요구로 모아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른 나라의 점령 운동에서도 마찬가지인데, 점령 운동이란 새로운 사회운동이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발견에 기초하고 있는 운동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Occupy 자체가 새로운 사회운동,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한 실험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연설할 자유를 가지고 있고, 남자건 여자건 만인에게 연설할 자유를 준다는 것 또는 동의의 원칙 등이 운동 안에서 확립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Occupy 운동이 확보하지 못한 부분, Occupy 운동의 결점은 미래사회에 대한 하나의 중요한 청사진, 널리 유통될 수 있는 청사진입니다. 그것은 매우 관건적인 문제입니다. 도대체 Occupy 운동이 어디로 가려하느냐는 문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것의 매력은 그것이 아직까지 소진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거리에서 Occupy 활동가를 만나서 이야기해본다면 Occupy 활동가들은 지금까지의 조직된 정치의 형태들에 대해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Occupy 활동가들은, 이미 사회에서 일정한 지분과 조직을 가진 정치세력들이 자신의 운동을 가두어놓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와 같은 점이 청년층이 Occupy 운동에 대해 가지는 매력적인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독일에서 Occupy 운동은 청년층이 주도하고, 청년층에게는 하나의 새로운 운동입니다. 즉, 그들의 부모세대와 비교해볼 때, 인터넷과 더불어 성장했고, 인터넷을 통하여 완전히 다른 소통방식들을 전유하는 세대의 운동입니다. Occupy는 그래서 하나의 새로운 운동형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미 기성화된 제도에 대한 반대 운동의 성격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1968년 학생혁명인데요. 그들 역시 석화된 독일 제도들에 대해서 저항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1968년에 저항했던 세대들이 지금은 완전히 ‘기성화된 세대’가 되었고, 그들이 ‘대중운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정치로 갔고 정치가로 경력(커리어)을 쌓았습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수상이 그 좋은 예가 되겠죠. 그 68년 운동가는 독일 사민당 정치가가 되어서 신자유주의 정신에 의해서 사회국가를 해체하는 정치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게르하르트 슈뢰더 수상과 함께 독일 사민당(사회민주당)은 더 이상 노동자 정당이 아니라 돈 잘 버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이 되었던 것입니다. 매우 비슷한 일이 유럽의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에서도 일어났는데요. 바로 사민주의 정당 안에 그와 같은 그늘이 있었다고 저는 봅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는 매우 비슷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슷한 고통, 절박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좌파사회주의적인 저의 입장에서 볼 때 Occupy 운동은 우리가 매우 다양하지만 하나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확신을 저에게 부여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와 같은 방향성은 현재의 위기를 일으킨 사람들에 대해서 우리가 대립해 있다는 것입니다. Yuri Cantor 유리 칸토르가 방금 여러 가지 설명을 했다시피, 우리들이 Occupy 운동에서 여러 다양성이 서로 잘못을 미루면서 상호 배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메르켈 독일 수상은 ‘남유럽럽인들은 매우 게으르고 그들이야말로 오늘날 유럽 재정위기의 주범’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대표적 사례입니다. 우리 99%들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서로 갈등하게 하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금융위기의 원인이 무엇이고, 주범이 누구인지 알고 있음에도, Occupy 운동에 대해 독일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매우 많은 근거들이 있습니다.

두 가지는 제가 이미 언급했는데, Occupy 운동 자체가 일종의 결집운동이라는 것입니다. 매우 많은, 서로 상이한 저항 집단들이 결집한 운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대안적인 정치 형태에 관한 명확하고 공통적인 관점이 아직은 형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거기 있는 많은 사람에게 Occupy 운동이 어떤 입장에 서있는 지에 관해 간혹 불명확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두 번째로 Occupy 운동은 토대 민주주의적이고 풀뿌리 민주주의적인 실험입니다. 그래서 종래의 의사결정 기구들과 다른 민주주의를 실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보통 시민들은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 알면서도, 왜 Occupy를 지지하지 않을까요. 독일인들은 명확하고, 전체 개요가 보이는 걸 좋아하고, 명확한 의사결정 과정을 좋아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Occupy는 독일인들의 정치 성향과 달리, 다채롭고, 야생적이고, 어떻게 보면 혼란스럽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요소들에 관해 독일인들은 원래도 어려워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렵게 생각합니다. 독일인들은 불평이 많고, 욕도 잘 합니다. 정치에 대해 욕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정작 행동을 하자고 하면, 한숨만 쉬고 집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로 이 뒤에 독일인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독특한 관점이 있는데, 그것은 독일 역사의 특수함으로써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민주주의는 마치 외과 수술과 비슷하게 우리들에게 이식된 것이고, 독일인들이 직접 민주주의를 쟁취한 게 아닙니다. 그래서 많은 독일인들에게 민주주의란 어떠한 사람들이 지배하도록 놔두는 것인데, 그들은 바로 선출된 전문가들입니다. 그래서 대개의 정치는 의회 주변에 있는 여러 가지 위원회와 전문가집단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위원회들과 의회는 잘 조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독일의 보통 시민들에게 Occupy하는 행위는 무정부주의자들이 만드는 혼돈이라 이해됩니다.

간단하게 독일 Occupy 시위에 대한 사진 설명을 하겠습니다. 이 사진은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럽중앙은행 앞 시위 사진입니다. 다음 사진은 2011년 10월 15일에 있었던 첫 번째 Occupy 집회 장면입니다. 보시는 것처럼 다채로운 색깔, 유채색 텐트들이 설치돼 있습니다. 보통 시민들은 낮에 이들과 대화하는 것을 꺼립니다. 얼굴이 잘 안 보이는 저녁에 대화하는 걸 좋아 하구요.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작은 텐트들과 굉장히 높은 유리 건물들의 대조가 오늘날 제가 사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네 돈이 뭘 하는지는 상관없겠지?’라고 쓰인 펼침막을 들고 서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저 사람이 저렇게 펼침막에 의문부호를 쓴 것은 토론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토론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처럼 독일인들은 왜 Occupy 운동에 대해 복잡한 관계에 서있는가? 그것은 Occupy 운동이 단순히 정치개념만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워하는 것은 개방적 구조, 투명성, 직접적인 시민참여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문제는 독일인들에게는 지금까지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단 한 번의 경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의 유래 없이 강력한 대중운동이 등장한다는 것 자체가 독일에서 항상 어려운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만약 독일에서 경제적이고 사회적인 문제가 매우 첨예하게 진행된다면, 꼭 이렇게만 계속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독일 사람들도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사회국가의 50% 정도는 이미 해체되었습니다. 그리고 독일 실업률이 스페인, 그리스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많은 그리고 잘) 훈련된 젊은이들이 직장 없이 거리를 떠돌고 있습니다. 유리 칸토르는 미국 사람들이 어떻게 어느 날 갑자기 집에서 쫓겨나는가에 대해 잘 보고했는데, 독일은 아직 그런 정도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처럼 주택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 괜찮은 것 같지만 좀 더 상황이 어려워진다면 독일인이라고 얌전히 있으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문제는 오늘날에도 독일인들 상당수는 생계비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사회로부터 배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숫자가 최근 독일에서도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실제로 거리에서 매우 가난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그들은 쓰레기통을 뒤지고 있습니다. 빈 깡통 등을 수집하여 그것을 몇 푼의 돈으로 교환합니다. 우리 좌파당 국회의원 중 한 사람이 스스로 실험한 적 있습니다. 그가 쓰레기통을 뒤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뜯지도 않고 아직은 먹을 만한 음식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독일은 통계적으로 슈퍼마켓에서 팔리는 음식물의 1/3 정도가 뜯지도 않고 버려지는 나라입니다. 무료급식을 먹기 위해 서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숫자는 나날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독일에서의 빈곤이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천천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아무튼 독일은 세계에서 매우 부유한 몇 개 국가에 속하고, 여전히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고, 위기는 보이지 않게 야금야금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일 언론들이 재정위기와 재정위기의 사회적 영향, 그리고 이에 대한 저항운동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가 말씀드리겠습니다. 2011년 10월 15일, 첫 번째 Occupy가 있었을 때 거의 모든 방송과 미디어들이 보도했습니다. 어떤 건전한 보통시민이 왜 저항 운동에 가담하게 됐는지에 관하여 매우 크게 보도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쇼타임이 끝나자마자 언론들은 침묵했습니다. 그리고 고작 보도됐다는 것이 프랑크푸르트의 금융기구 밑에 몇 개의 텐트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이런 고집스러운 활동가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정도입니다. 만약에 다음 번 Occupy Day가 와서 또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면, 방송국에서 또 올 것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오늘날의 방송과 미디어가 사건에 대해 심층적 보도를 할 시간은 전혀 없이, 그들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오직 매우 비판적인 분석과 보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은 인터넷, 블로그 뿐이고, 정치 경제 등에서는 거의 거론이 되지 않고 있고, 주류 언론들을 보면 은행을 구출하는 것이 얼마나 필수적인 일이며 독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을 구제하는 일이라는 것만 연일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재정 위기가 오고, 유럽 전체 재정 위기에 대해 미디어들이 보도를 하고 얼마나 많은 재정적자가 있는가에 대해서 보도할 때, 미디어들은 금융위기를 국가재정위기로 전환시켰습니다. 메르켈이 ‘은행체제는 우리들에게 매우 중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매일 미디어에 등장하면, 사람들은 다른 대안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어마어마한 액수의 그 많은 돈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바로 사회복지가 그만큼 축소됐다는 뜻이겠지요. 슈뢰더 이래로 늘 사회복지를 축소해왔고, 임금인상을 억제해왔고, 최저임금지대 자체를 철폐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역사에 대해서 비판적 분석과 통계에 근거한 글을 주류 언론에서 보도하는 것은 독일에선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이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왜 이렇게 오래 하는가? 바로 이와 같은 미디어의 무관심이 독일에서의 토대 민주주의에 대한 무관심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거대 미디어 자본들은 금융섹터에 있는 사람들, 정치가들과 동맹을 맺고 한편에 서있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저들의 통일전선을 어떻게 깨뜨릴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대중이 참여하는 시위를 독일에서 생길 수 있을까. 바로 이것이 오늘 서울에 와서 여러분들과 토론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저는 Occupy 운동이 가진 토대 민주주의적 성격과 독일 보통시민이 참여하기 어려운 상태, 미디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Occupy 운동과 기본소득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고 싶습니다.

Occupy 운동 안에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그룹을 만났을 때 저는 매우 코믹한 느낌을 가졌는데요. 그 그룹과의 관계는 좋은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점령자들 중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 매우 불안해졌습니다. 저와 너무 다르고, 낯설게 느껴졌고, 대개는 젊었고, 비관습적이었고, 비조직적이었고, 규율과 통제를 거부하고, 행동에 있어서도 그랬고, 구조 안에 있지도 않고, 연설도 독특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우스운 얘기라기보다 매우 갈등적인 상황을 설명하고 싶어서입니다. 기본소득 운동은 약 2년 전부터 독일에서 가장 중요한 담론 중 하나입니다. 독일에서 기본소득 운동은 매우 전통적인 방식의 운동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규칙적인 토론회, 규칙적인 작업그룹, 그리고 미디어 활동 등 매우 전통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데, 처음엔 토대 민주주의로 출발한다 하더라도 제도를 향한 장정을 해야 하고 제도를 통해서 훨씬 더 유명해져야 하고, 살롱에서 이야기하는 담론이 되는 방식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발전 과정과는 다르게 Occupy 운동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역사가 짧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그런 과정을 원하는지 질문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Occupy 운동이 다른 운동과 어떻게 함께 결합할 것인가는,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토대 민주주의적인 형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Occupy 운동이 앞으로 어떻게 구조화되고,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운동이 될 수 있는가는 굉장히 열려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늙어버린 기본소득 운동도 젊은 운동에 대해서 훨씬 개방적이어야 하고, 즐길 줄 알고, 실험정신이 강한 운동과의 만남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Occupy 운동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인터넷을 통해 소통하고, 심지어 그들의 참여 인원을 확대시키는 수단으로까지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이런 인터넷을 통한 소통에서 여기 서울의 점령자 분들도 (이미) 그렇게 하지 않는가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일에서도 이와 같은 토대 민주주의와 또 다른 형태의 조직들이 서로 공통점을 발견해가면서 함께 협력할 수 있길 바랍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저의 짧은 말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세계는 적어도, 이미 수명을 다한 금융체제가 더 이상 사람들을 옭아매지 않는 세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자유를 보장하고, 사회적인 참여를 보장하고, 평등한 사회적 복지를 보장하고, 세계적인 평화를 보장하고, 생태적인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또 하나의 세계는 가능합니다.

<사회 / 권문석: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진보신당 기본소득위원회 준비위원장>

2부의 주제가 ‘청년의 무기: 기본소득과 점령운동’입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유리 칸토르, 가브리엘레 슈미트가 발표를 해주셨고요. 바로 이어서 조병훈 동지의 금융자본주의 시대의 청년, 청소년 대안, 기본소득에 대해서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발표 / 조병훈: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대변인, 서울점령자들 Occupy기본소득운동본부>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 대변인이고, 서울점령자들 Occupy기본소득운동본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방금 가브리엘레 슈미트 발표 끝부분의 Occupy 운동 내 기본소득 운동에 대한 감상을 재밌게 들었는데요. 저희와 함께하는 대학생운동본부 분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저희가 주로 디자이닝 그룹으로, 프로그램 진행이랑 텐트 꾸미기 등을 맡기로 했는데요. 영화를 틀면 B급, 음악을 틀면 펑크를 트는, 옆에 있는 희망광장과 뭔가 잘 어울리지 않는 그런 게 있어서, 조금 있다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저희 단체 이름에 대한 소개하면 이야기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저희 단체 이름이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인데, 청‘소’년의 ‘소’자 앞뒤로 따옴표가 들어있습니다. 이것은 청년과 청소년을 붙인 것입니다. 청소년과 청년을 왜 붙였느냐? 사실 청년 운동은 예전의 청년학생운동을 계승했고, 청소년 운동은 주로 청소년 인권 운동을 다뤄왔습니다. 그런데 청년과 청소년이 두리반, 명동 마리 같은 철거현장, 신자유주의 난개발의 현장에서 만나게 되었고, 만나보니 사는 것이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청‘소’년이라는 단어를 만들게 된 겁니다. 청‘소’년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발표문에서 아시아 금융위기의 자식들이라는 문구로 짧게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97년 태국 바트화가 무너지며 시작된 아시아 금융위기, 소위 IMF 사태가 그 이후 학교를 졸업하거나 경제생활을 하는 세대들에게 똑같이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IMF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IMF가 태국, 인도네시아 등을 지나 한국에 왔습니다. IMF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은 국치라 여기며 불만스러워했습니다. 그전까지는 세계 유수의 경제선진국이라 자부했었는데, IMF를 맞아 당황스러웠던 겁니다. 하지만, 이 난감함을 분석하거나, 해소할 여유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범죄율이 올라가고, 자살도 많이 하고, 보험금타려고 철도에 뛰어드는 안타깝고 괴이한 일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정부와 재벌들은, 한국의 노동시장을 유연화하라는 IMF의 구제금융 협상조건에 따라서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를 했고, 그때까지 종신고용에 익숙해있던 한국의 근로자들, 주로 베이비부머 세대들 비롯한 사람들이 슬럼프에 빠졌죠. 그 자식들이자 취업을 새로 하는 사람들이, 청년들이었던 겁니다. 대학생으로 치면 96, 97학번들인데요. 그리고 그때부터 계속해서 문제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IMF 직후 김대중 정부 들어서는 돈을 많이 풀어서 구제 금융도 다 갚고, 경기부양을 하고, 그러면서 청년의 고용문제는 약간 늦게 터졌어요. 버티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청년들의 문제가 확확 드러난 거죠. 88만원 세대 등장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면, 88만원 세대 이전에는 이 문제가 수면 위에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청년학생의 시대였죠. 청년학생은 80년대부터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했던 힘센 세대잖아요. 그런데 그런 세대가 아니라, 이제 다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힘없는 세대, 가난한 세대가 등장한 겁니다.

88만원 세대의 등장으로 운동 차원에서는 전기를 맞이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년 의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했고 20대 당사자 운동이라는 섹터가 그때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전에는 20대라는 얘기가 없었거든요. 주요 의제는 10년간 두 배로 증가된 ‘대학등록금을 동결하라.’, ‘청년 고용의 안정화 및 최저임금 상승’, ‘주거권 보장’ 등입니다.

하지만 20대 세대가 하나로 집결되지 않았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이 출신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초기 20대 당사자 운동이라고 스스로를 지칭했던 그룹들은 전통적 학생운동권이 아니라 시민사회 섹터나, 청소년 운동을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를테면 함께 일하는 재단, 희망청, 하자 센터가 그들입니다. 그때까지 학생운동권은 20대 당사자 운동이란 말을 저어했다. 마치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가 Occupy 운동하는 사람들이 기본소득 운동하는 사람들을 이상하게 생각하듯이 저어했습니다.

이런 구별된 조직화가 3, 4년에 걸친 20대 아젠다의 한계로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이런 20대 아젠다를 청년유니온이 작년 재작년에 전부 수렴했습니다. 한국 최초로 청년노동조합으로 출범을 했는데 청년유니온이 주로 가지고 있던 정책이 옛날 민주노동당 시절의 청년고용할당제 정책이었습니다. 이 정책은 물론 전체 고용의 확대라는 기획 내에서 진행된 것이긴 합니다. 고용 불안의 원인, 아시아 금융 위기라는 원인보다는 표피에 집중한 것입니다.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용이 증대되면 금융자본주의가 억제될 수 있을까요? 이것이 기본소득이 던진 질문이지 않습니까? 고용이 증가되려면, 시간이 줄거나, 반(半) 형태로 고용이 되거나, 노동이 아닌 것이 노동이 되어야 하는데, 그것 없이 동일한 현재의 산업구조에서 고용할당제가 있다고 금융자본주의가 억제될 수 있을까요? 그런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청년고용할당제, 반값등록금 등이 20대 문제를 드러내고 타격하기보다는 정치권으로 넘겨주는, 결과적으로 진보정당의 홍보 정도로 전략하고 만 것입니다.

청‘소’년은 IMF 이후의 경제인이 되는 모든 세대를 일컫는 것인데, 아까 이야기했듯 여태껏 힘을 가졌던 기존의 전통 학생운동권은 20대 아젠다나 청소년 문제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존 조직들에게 방기되는 위치에 있던 청‘소’년들이 일선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들 청‘소’년 세대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이들이 무척 가난뱅이라는 것입니다. 다들 어렵습니다. 잘 나가는 사람들이 없어요. 이들이 능력이 좋다고 해도, 돈을 벌수도 자기 능력을 맘껏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이 영화를 찍으려고 해도, 카메라가 없는, 기초적인 수단이 없기 때문에 가난뱅이입니다. 그런데 가난뱅이인 반면, 굉장히 역량이 있습니다. 그 역량이란, 자기 개발을 어렸을 때부터 했기보다, 다양성이라거나 인터넷을 통해 개방된 정보를 획득하는 것이 빨랐기 때문에, 축적된 데이터가 굉장히 많은 겁니다. 이렇게 능력이 많은데 가난뱅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산업은 불황이니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일용직, 편의점, 마트 등의 일자리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일을 하면 고작 최저임금 밖에 못 받게 되는데, 최저임금이라고 해봤자, 올해 최저임금이 4,580원 정도에 불과하고, 민주노총 등이 기준이 모호한 최저생계비에 맞춰진 도시노동자 평균임금의 50% 정도만 받자고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이 일주일에 40시간 이상을 꾸준히 일할 수 없는 청‘소’년 세대에게는 별로 효용이 없는 겁니다. 차라리 안 먹고 안 쓴다는 태도를 갖게 되는 겁니다.

그러면 이 사람들이 무엇을 했느냐 하면 투쟁현장에 갔습니다. 갔더니 여러 친구들이 와서 재밌게 놀더라. 재밌게 노는데 자기의식을 현장에 투영을 하더라는 겁니다. 그 현장이 많지는 않지만, 펼쳐진 겁니다. 그래서 감을 잡았던 것 같아요.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네. 사람들이 모이면 고민도 하게 되고, 공부도 하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중의 하나가 기본소득 청‘소’년 세미나였습니다. 청‘소’년들을 상대로 기본소득 세미나를 했어요. 그때는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가 될지 말지 반신반의 했었습니다. 처음 세미나 할 때는 20명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남은 6, 7명이 기본소득 청‘소’년 네트워크란 걸 만들게 된 겁니다.

청‘소’년이 기본소득을 주장하게 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이들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습니다. 기존 정당들, 진보정당을 포함하더라도, 이들에게 권력을 주면 이들이 잘 할 것이란 기대나 믿음이 별로 없었던 겁니다. 왜 그러냐면 투쟁 현장에서 워낙 진보정당과 부딪치며 자신들의 권리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이용되고, 주변화되는지를 봐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은 나에게 권력을 나눠줘라. 그 다음에는 내가 알아서 판단을 하겠다는 태도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본소득이 단순한 빈곤구제책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고, 빚에 허덕이는데 기본소득을 받으면 그게 해결되겠다는, 단순하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이라는 것은 죽을 때까지 받는 거잖아요. 이러면 완전히 인생의 계획이 달라지는 겁니다. 빈곤이나 빚은 장기상환으로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는 것인데, 그리고 그 다음 인생이 남아있는 겁니다. 죽는 것보다 사는 게 훨씬 좋다는 거지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자기 인생을 설계하고 싶은, 아직 인생에 기대가 남아있는 청소년에게는 주요하게, 유혹적으로, 실재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게 청소년 기본소득의 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발표 / 박정훈: 대학생사람연대 기획위원장, 서울점령자들 Occupy대학생운동본부>

저는 독일 좌파당의 요하네스 포나더와 가장 싱크로율이 높을 것 같은데, 전형적인 조직 학생 운동권입니다. 저는 좀 독특한 경험을 했어요. 10대에는 청소년 운동을 하다가 대학에 들어와서 기존에 있던 조직학생운동을 장악한 그래서, 저의 구상과 계획으로 학생조직을 움직일 수 있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앞의 독일과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서 말하면, 한국의 Occupy 운동은 미국처럼 정치지형과 비판을 뚫고 가기위한, 조직학생운동의 전략 전술로서 접근한 면이 있어요. 결과는 독일 Occupy 운동이었습니다. 저희가 83일 동안 강추위를 견디며 대중을 기다렸지만, 대중은 오지 않고, 독일 좌파당원이 만났던, 기본소득을 지지하는, 아까 인용하면, 통제되지 않고, 자유분방하며, 조직학생운동권과 도저히 융합될 수 없는, 심지어 발언하는 것이 멍청하게 보이는 그런 사람들과 만난 것입니다.

처음엔 저런 사람들과 무슨 운동을 할까 싶기도 했는데, 그런 한편 저는 청소년 운동을 하면서, 반권위적인 사람들만이 Occupy 운동을 함께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사실은 이들이 함께 하기를 기다렸었고, 인고의 세월을 견디는, 그러고 나니 지금은 이분들한테 Occupy 운동의 전체적 디자인을 다 맡긴 상태입니다.

왜 그랬냐 하면 저는 현장에서 활동하는 활동가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도대체 이러한 좌파 스탠스에 있는 정치를 도대체 누가 어떻게 해칠 것인가입니다. 그것은 주체의 문제였는데요. 대학생들의 공통성 확보라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면이 있습니다. 제 발제문의 제목이 1% vs 99%인가, 아니면 20% vs 80%인가 입니다.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스스로가 20%에 속해있다고 믿고, 그러기위해 노력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들에게 우리는 99%라고 말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저는 자본주의의 시간성 측면에 착목하는 면이 있는데, 나란 상품이 팔리는 것은 미래완료적 시제입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해야 하는 것이고, 마르크스가 이야기한 것에 따르면 결사적 도약에 성공해야만 자신의 가치가 실현되는 것이고, 이것은 미래에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알 수 없는 불안감입니다. 그렇다면 현재는 자본이 원하는 노동과 능력을 키울 수밖에 없는 상태이고, 이런 상태에서 기존 학생운동의 전략은 이들을 끌어올 수 있는 매력적인 수단이 아니라는 겁니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좌파들이 했던 이야기가 대학생도 예비노동자라는 것인데, 바로 예비노동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지금 대세가 된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는 겁니다. 노동자가 되기 위해서, 고용되기 위해서 그러합니다. 이것은 전혀 저항의 메커니즘을 깰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예비노동자라는 정체성에서 벗어나는 기제들, 그것은 새로운 공통성의 확보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99%다. 노동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불안함이라는 공통성을 확보할 수 있다. 그래서 조직학생운동권임에도 불구하고 Occupy 운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고, 대학생의 공통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대학 외에, 조병훈 씨가 발표한 것처럼 20대 세대, 매우 특정한 세대인거죠. 보편적 세대는 아닙니다. 1997년경부터 만들어졌던 20대 세대의 보편성, 20대 청년들, 99%의 주체성과 공통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가 문제인 겁니다. 그리고 그것의 수단으로써 기본소득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기본소득이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데, Occupy 운동의 원인이 누구인가를 정확하게 지목했다는 점, 그리고 99%가 모일 수 있는 광장을 연다는 점에서, Occupy 운동이 주체성 회복, 공통성 확보, 1%의 원인이 누구인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운동 방식입니다. 제가 주목하는 지점은 이 지점이구요.

비록 지금은 독일 Occupy와 같은 형태이지만, 아직도 감성이 다르지만, 운동 속에서 배우고 있고, 새로운 동력을 만들어야지만, 지금의 청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청년 비례대표나 민주당을 뽑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생각합니다.

<토론 / 박이은실: 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글에 적힌 소속 외에도 지구지역 행동네트워크에 소속된 박이은실입니다.

하나의 글은 대학생이라는 특정한 주체 혹은 개인에 관한 글이었고, 하나의 글은 대학생 이외에 20대란 전반적인 세대 주체를 이야기하는 글 같았어요. 교집합도 있고, 교집합이 아닌 부분도 있는 이 두 주체들이 광장에서 만났고, Occupiers 아큐파이어들이 됐다. 이렇게 말하는데, 기본적으로 여기에서 기본소득과 관련시키고 있는 부분들, 비판의 지점들 등 여러 가지 지점들에 대해 저는 다 공감합니다.

질문은, 대학이라는 공간이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지배하고, 금융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공간이고,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그 지배체제에 포섭되어 있는데, 그러면 이곳에서 광장으로 뛰쳐나와서 Occupy를 하면, 이제 대학이라는 공간을 버리는 것인가? 그래서 대학생 운동은 사라지고, 20대 세대 운동이 되는 것인가? 아니면 대학생들이 대학 내에서 운동할 때에 너무 좌파 식으로 했기에 고립되어서 광장으로 뛰쳐나온 것인가? 그러면서 대학 내에서의 어떤 부분들은 포기하고 나온 것인가? 아니면 대학 내로 들어가지 않았거나 대학에서의 신자유주의 질서ㆍ가치ㆍ욕망들과 다른 가치가 있기 때문에, 이미 대학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광장에 있는 사람들과 대학생들을 만날 것인가 하는 질문이 있어요.

저는 본인들의 위치에서 시작해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말하자면, 대학생이 대학을 포기하면 대학은 누가 지키는가하는 정도의 질문입니다. 아까 Yuri Cantor 유리 칸토르가 새로운 방식으로 대학을 점유하는 것을 말해주셨던 것 같아요. 강의실을 점유해서 공짜 강의를 연다거나, 강의실을 점유해서 다른 일을 한다거나 하는 방식, 그래서 대학생들이 광장이라는 공간과 대학생들이 특정한 위치에서 쓸 수 있는 대학이라는 공간을 동시에 점유했을 때만이 대학 내에서 지금 재생산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가치와 욕망을 바꿀 수 있지 않는가 생각을 해요. 대학생들이 대학을 버리면 좀 그렇다는 거구요.

어쨌든 다른 꿈들을 꾸기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데, 그 꿈들을 계속 실현하겠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이미 다른 꿈이 없을 거라고 좌절해 있거나, 다른 꿈을 찾고자 하지만 꿈을 꿀 수 있는 물적인 토대 자체가 붕괴되어있는 사람들에게 다른 꿈을 꿀 수 있도록 우리가 자극을 준다거나 서로 자극을 받는다거나, 자원을 공유한다거나 하는 것들이 함께 병행되어야 하며, 절대 버리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토론 / 은혜: 연구공간L>

저는 토론보다 이 세션에 대한 보론 격으로 글을 썼습니다.

저는 점령자, 해적, 기본소득. 이 3가지 고리를 이어보려 했습니다. 그것은 공통적인 것의 재점유를 위한 우리의 무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발표문을 짧은 시간에 읽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촛불봉기가 한풀 꺾이면서 ‘촛불사람들’과 함께 앞으로의 활동방향을 모색하다가 기본소득 이야기를 꺼낸 적이 있다. 반가움과 의구심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질문들. 그 반응은 기본소득을 ‘전도’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뭔가를 좋은 것으로 인식시키려 노력하다보면, 그것이 어느 틈엔가 만능열쇠로 둔갑해 있는 경우가 종종 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기만 하면’ 식의 사고방식을 심어주게 될까 두려워 나는 이렇게 말했다.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것은 이 짓을 그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짓을 더 잘 하기 위해서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순간 진짜 싸움이 시작된다.’ 여기서 ‘이 짓’은 또 다른 세계, 더 나은 삶을 위한 투쟁을 말한다. 때로는 촛불시위로, 때로는 점령으로, 때로는 해적질로 드러나는 우리의 투쟁 말이다.

촛불사람들이 저녁마다 생업을 끝내고 광장으로 모여들었던 것처럼 그리고 타흐리라이트들과 지구 각 지역의 점령자들이 생업을 미루거나 멈추고 광장을 점령한 것처럼, 오늘날 이른바 99%의 운동은 소수의 직업운동가(조직가)들이 다수의 대중을 동원하는 과거의 운동과는 사뭇 다르다. 이제 운동 속의 대중은 자신의 생업을 스스로 유연화(태업 혹은 파업)하면서 투쟁에 참여하고, 그 결과 자신의 삶 전체를 이전과는 전혀 다른 리듬으로 재구성하게 된다. 이는 청년들의 운동으로 좁혀서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이다. 아니, 그러한 발본적인 차이가 두드러지면 두드러졌지 결코 덜하지 않다. 그런데 문제는 생업과 운동의 부조화, 즉 생업을 조절하면서 운동에 투신하는 형국이 필연적으로 가져올 수밖에 없는 좌절과 고통이다. 너무 많은 각오와 너무 많은 희생이 요구되는 상황 속에서 기본소득은 운동을 (기꺼운 방식으로)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좋은 해법이 된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형상을 이에 대한 해답 정도로 협소하게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기본소득은 한 달에 한 번씩 손에 쥐게 되는 화폐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최소 생계를 보장하는 복지 프로그램’ 이상의 지평을 열어젖히는 것이 기본소득운동의 관건이다. 일전에 나는 이를 위해 「삶정치적 기본소득을 위하여」라는 글에서, 마이클 하트와 안토니오 네그리가 주장하는 다중의 세 가지 요구―지구시민권·보장소득·재전유권―와 기본소득의 결합을 시도한 바 있다. 즉 보장소득과 상통하는 기본소득을 지구시민권과 재전유권이라는 다른 두 가지 요구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나는 기본소득이 개체―그것이 사적인 것이든 공적인 것이든―의 재생산에 머물지 않고 공통적인 것의 재생산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결합이 필수적이라고, 그리고 지구시민권과 재전유권 역시 기본소득(보장소득) 못지않게 다중에게 (특히 청년-다중에게) 매우 의미심장한 요구라고 생각한다.

먼저 지구시민권을 살펴보자. 지구시민권(the right to global citizenship)은 자본이 세워놓은 갖가지 사회적(물리적, 인종적, 젠더적, 문화적) 장벽과 위계를 무너뜨려 자본에게 빼앗겼던 공간의 자율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지구’시민권이라고 해서 단지 자유로운 ‘해외 이주’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global’한 시민권을 요구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지구적인(지구라는 행성 차원의 planetary) 외연적 시민권뿐만 아니라, 위계의 철폐를 의미하는 내포적 시민권(혹은 시민권의 강도 intensity) 또한 포함하고 있다. 이로써 지구는 하나의 메트로폴리스로 사고되기 시작한다.

청년들은 지구라는 이 거대한 메트로폴리스 속에서 자율적인 사회적 이동 및 이주를 욕망한다. 이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이동 및 이주에 그치지 않고 수많은 마주침들과 관계들을 낳는다. 그 마주침들과 관계들은 다양하고 특이한 지식, 정보, 이미지, 코드, 정동 등 공통적인 것의 조건이자 산물이다. 이동 및 이주에 대한 강조는 부르주아적 의미에서의 계층 간의 이동(이른바 ‘개천에서 용 날 가능성’)을 활성화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지구시민권은 개인의 뛰어남으로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계층이라는 틀로 환원될 수 없는 월경과 횡단 그리고 점령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지구시민권이 공간의 자율을 되찾기 위한 것이라면, 재전유권(the right to reapproriation)은 공통적인 것의 자율적인 운영을 되찾기 위한 것이다. 이제까지 자본이 공통적인 것을 파괴 또는 통제해온 방식 중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바로 각종 사유화이다. 물, 가스, 수도, 전기, 교통 등 공공인프라뿐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수많은 지식, 정보, 이미지, 정동 등을 사유화하려는 시도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금 일촉즉발의 상황에 놓여 있는 제주 강정마을의 경우는, 주민들과 자연환경이 맺는 관계를 파괴하고 땅과 바다를 사유화하려는 시도이다. 토지와 바다를 수용하는 주체가 해군일 뿐 여타의 사유화와 다를 바가 없다.)

접근권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는 이 재전유권 역시 청년들과 매우 밀접한데, 특히 지적소유권의 강화와 교육의 부패는 오늘날 전 지구적인 청년들의 화두이다. 오늘날의 생산이 곧 공통적인 것의 생산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지적소유권의 강화(각종 저작권, 상표권, 특허권과 최근 웹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온라인해적행위금지법 SOPA 등)는 생산의 원료이자 수단을 봉쇄하는 것이며 교육의 부패(등록금, 대학기업화, 금융위기 이후 미주와 유럽 등지에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공교육 예산삭감)는 자본으로부터 자율적인 주체성의 생산을 봉쇄하는 것이다. 공통적인 것이 생산적 힘이자 그 산물이 된 오늘날, 지식과 교육에 대한 접근은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받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수탈된 것을 되찾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생산수단의 재전유이기도 하다.

그럼 이제 청년-다중의 세 가지 요구들이 어떻게 결합되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살펴보자. 먼저 기본소득과 지구시민권의 접속은 ‘기본소득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되어있다. 이 접속은 기본소득운동의 궤적 속에 이미 들어있다.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의 핵심적 덕목인 무조건성―심사와 노동의무가 없이 지급되는―이 시민권의 강도를 보장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기본소득운동의 지구적 네트워킹이 시민권의 외연을 조금씩 확장시키고 있다. 즉 기본소득과 지구시민권은 국가 간 경계와 사회적 위계라는 두 가지 분할선을 모두 넘어서는 문제인 것이다.

여기서 국내외 점령자들의 존재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타흐리 광장에서 월스트리트로 그리고 다시 전지구의 광장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점령운동은, 외연적으로는 기본소득운동이 흘러 다닐 수 있는 전 지구적 회로를 마련하고 있으며 내포적으로는 과거의 계급론으로 포착될 수 없는 다양한 주체들의 합류를 돕고 있다. 그리고 기본소득은 점령운동의 지속가능성 또는 재생산가능성을 보장할 수 있다. 이는 점령자들의 생계가 안정되어 운동이 좀 더 수월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이제껏 자본의 리듬대로 살아왔던 사람들이 교환가치를 획득하는 데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달리 말해 아직-아닌-점령자들이 점령에 동참하도록) 도울 것이라는 전망을 의미한다. 이처럼 점령운동과 기본소득은 상호보완적인 관계 속에서 서로를 상승시킨다.

다음으로 기본소득과 재전유권의 접속은 ‘기본소득으로 무엇을 줄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나는 앞서 소개한 글에서, 수탈당한 것을 되찾는 데 있어 소유권이 아닌 접근권을 주장해야 하며 화폐형태로 지급되는 소득뿐만 아니라 ‘공통적인 것에 대한 무조건적 접근권’ 역시 소득으로서 쟁취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지적소유권의 강화와 교육의 부패에 맞선 싸움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제시했다. 국내외 해적들의, 특히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끝날 수 있는 해적행위를 집단적인 운동으로 조직해낸 해적당의 행보가 의미심장해지는 지점이다.

해적운동과 기본소득 역시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해적운동은 그 자체로 소유관계와 가치척도에 균열을 가져온다는 점에서 기본소득과 일치하며, 기본소득이 해적운동과 결합될 때 비로소 우리는 화폐가 아닌 형태의 기본소득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해적운동 역시 기본소득과 결합함으로써 ‘해적들의 딜레마’를 현실적으로 타개할 수 있다. 현재의 콘텐츠 생산-유통-소비 구조 속에서 해적행위는 본의 아니게 대자본과 소생산자 모두에 균열을 가져온다. (‘굿 다운로더’ 캠페인이 바로 소생산자를 인질로 삼아 굿 다운로드, 즉 ‘제값 내고 소비하기’를 강요하는 자본과 국가의 대표적인 술수이다. 그런데 ‘제값’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긴 하는 건가?) 기본소득은 콘텐츠 생산자들의 자립과 해적행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할 것이며, 이로써 해적행위가 이른바 ‘팀 킬(Team Kill)’이 될 여지는 사라지고 해적들은 오로지 자본 및 국가의 해적으로서만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근대적 정치경제학 용어집의 맥락에서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가 아니다. 더 이상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어있다는 의미에서의 무산자가 아닌 것이다. 우리의 시대는 인간이 곧 생산수단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이며, 그런 의미에서 탈근대적이다. 자신이 갖고 있는 지식, 정보, 아이디어, 정동, 관계 등이 곧 생산수단이 되어 또 다른 지식, 정보, 아이디어, 정동, 관계 등 생산물을 낳는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의 생산에 대한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을 완전히 마련하지 못한 지금, 그 자체로 생산수단인 우리 자신은 자본과 국가의 압력 앞에서 휘청대기 일쑤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프레카리아트, 즉 불안정한 프롤레타리아트인 것이다.

나는 공통적인 것의 생산에 대한 자율적이고 민주적인 운영의 실마리를 기본소득에서 찾았다. 그리고 이제 기본소득을 씨줄로 삼아 한쪽에는 지구시민권과 점령운동이라는 날줄을, 다른 쪽에는 재전유권과 해적운동이라는 날줄을 감을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재구성된 기본소득운동은 임금노동자 중심의 노동운동으로도, 당사자 중심의 신사회운동으로도 환원되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를 구성하는, 그럼으로써 공통적인 것의 생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당사자가 되는 새로운 운동이다. 기본소득운동, 점령운동, 해적운동, 학생운동, 젠더운동 등 각각의 분과운동들로 존재하던 것에서 ‘운동들의 운동’으로 변모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고 공통적인 것을 재전유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다.

<발표 / 조병훈: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대변인, 서울점령자들 Occupy기본소득운동본부>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전통적 조직의 붕괴가 무슨 의미인지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조직을 하는 속도보다, 표현들이 확대되는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두리반에서 같이 투쟁하던, 상주하던 10대 청소년들이 4~50대 또는 386들보다 더 급진적인 문제의식을 가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적인 조직 운동이 아니었을 뿐이지 그들 역시 좌파이지 않은가. 현재 좌파들의 스펙트럼을 다시 조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뿐 아니라 뉴욕도 그렇고, 대부분의 Occupy 운동이 다양한 주체들을 어떻게 모으냐가 핵심인데, 다양한 주체들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같은 Occupy 운동을 하는 겁니다. 물론 Yuri Cantor 유리 칸토르는 쟁점을 많이 이야기했지만, 아무튼 그게 어떻게 표현되느냐에만 보통 관심이 집중되는데……. 그것보다는 이들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치 아까 박정훈 씨가 청소년 운동을 했었다고 하는 것처럼 그러한 지점들을 계속 찾아보면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발표 / 박정훈: 대학생사람연대 기획위원장, 서울점령자들 Occupy대학생운동본부>

저는 박이은실 선생님의 문제 제기에 공감하고, 답을 찾고자 이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 Occupy를 진행하고 있고, 3월 30일에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서 광장 점령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미 언론에 발표한 상태입니다. 박이은실 선생님의 문제 제기, 광장에서 Occupy 운동을 한 이유는, (2012년) 3월 30일에 대학생 Occupy 운동이 기존의 좌파 학생운동 조직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병훈 씨의 문제의식과 닿아있는데, 새로운 학생운동의 전형을 만들 필요가 있고, 그 학생운동에서 새로운 주체가 등장할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더 이상 좌파에게는 대중론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조직해야 할 대중이 대학에는 존재하지 않아요. 몇몇 예비혁명가밖에 존재하지 않아요. 또는 마르크스에 관심 있는 진보적 학생들이 NL과 다른, 좌파학생운동가들이 생각하는 대중입니다. 이것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대중들과 함께 어떤 운동을 하고, 어떻게 새롭게 학생운동을 조직할 것인가. 이것을 위해서 Occupy 운동을 하는 것인데, 이것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물으시면 답이 없다. 3월 30일로 예정된 집회라던가, 지금 광장에서 벌어지는 Occupy, 그리고 대학 Occupy 운동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고, 저 역시 지금 하는 운동을 통해 배우는 입장에서, 이것이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발표 / 박이은실: 한신대 연구교수,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

이야기를 짧게 하느라 세대 이야기를 못하고 넘어갔습니다. 제가 40대 초반이니 어떻게 보면 세대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처해있는 전반적인 문제들이 너무나 흡사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토론문에서 세대 문제는 좀 더 길게 봐야하지 않나 말했습니다.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대학 내에서건 밖에서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다는 바람이 대학 내에서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식민화되어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거잖아요. 다들 경쟁만 이야기하니까, 내가 어떻게든 경쟁에서 살아남을 것이라는 일말의 희망이 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거잖아요. 그 꿈을 깨고, 다른 꿈을 꿀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기본소득이 가진 힘은 꿈을 꿀 수 있는 현실 가능한 꿈이라는 겁니다. 이걸 이루어 내야만, 이걸 이루어 내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머릿속의 또 다른 꿈을 만들고, 자극하지 않으면 우리가 광장을 가건 어딜 가건 소수일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꿈 이야길 한 겁니다.

<발표 / 은혜: 연구공간L>

예비노동자, 유예된 노동자 등 제 발표에서 오늘날 인간이 생산수단이 된 맥락을 전복시킬 필요가 있다. 유예된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미 생산자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자유주의적 마르크스의 맥락에서 이런 표현을 쓰기도 하거든요. 우리는 돈을 받으면서 해도 모자랄 판에 빚을 내면서 공부를 하지 않느냐. 그러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논의가 풍부해 질 수 있을 것 같다.

<발표 / Yuri Cantor 유리 칸토르: 미국 월스트리트 점령자 / 순차통역: 이미경>

박이은실 씨가 말하신 ‘우리가 시스템을 위해 꿈을 꾸지 않으면, 시스템은 에너지를 잃을 것이다.’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Occupy 월스트리트에서도 많은 그룹들이 아이디어를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은혜 씨가 언급하신 해적당 운동, 기본소득 운동, Occupy 운동, 이런 것들을 통합시키는 첫 단계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지금 월스트리트에서도 집단 파업을 준비하고 있고, 그것이 새로운 꿈에 큰 힘을 줄 것입니다.

<발표 / Gabriele Schmidt 가브리엘레 슈미트: 독일 attac, 좌파당 기본소득 활동가 / 순차통역: 금민 기본소득네트워크 운영위원장>

먼저 기본소득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특히 기본소득이 청년층에 대해 어떠한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저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부터 나온 이야기입니다. 저희 브레멘 주에서 대학생들을 위한 대학생 기본소득 법률안을 만든 적이 있습니다. 즉 현재 대학생들은 생활장학금 대여제 등을 통해 생활하고 있는데, 모든 대학생에게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법률안을 attac 아탁에서 낸 적이 있습니다. 브레멘주 의회에서 통과될 뻔했으나 아슬아슬한 차이로 통과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좌파당 브레멘주지부는 청년 기본소득 안을 자신의 공약으로 좌파당에서 주 차원에서 통과시키는 것까지 성공했습니다.

대학생 이외에 여러 직업훈련을 받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작용을 하는가에 대해서 몇 마디 더 하고자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로부터의 독립성 문제라고 봅니다. 그것은 사회구성원이 되는 것의 굉장히 중요한 계기라고 봅니다. 혼자서 주거를 유지할 수 있고, 또 혼자서 자립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는 조건을 사회가 만들어 줘야 된다는 점에서, 기본소득은 대학생들에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이 말로 마지막 인사를 마칠까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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