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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원 발언: "집필과 연구" 첫째 날 속기록 중]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3월 16일)

작성자권문석|작성시간12.03.22|조회수47 목록 댓글 0

<발표 / 김주원: 연세대 문화학과 대학원, 자유기고가>

집필과 연구라는 제목으로 집담회에 참가하게 된 김주원입니다. 집필과 연구라고 했을 때, 대단한 연구를 하는 것은 아니고 대학원생으로서 기본소득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원고들을 쭉 읽어봤을 때, 제 글이 제일 예리함이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하면서, 부족한 글을 보충하는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학과는 문화학 협동과정이라고 해서, 젠더 연구와 문화 연구를 하고 있으며 분과학문체계를 벗어나있기 때문에 자유로운 연구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만큼 큰 학과가 하는 것만큼의 지원은 부족합니다.

제 글이 예리함, 서스펜스가 떨어지는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여성연구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거예요. 실제적으로 여성연구자들이 왜 대학원에 와서 공부를 하는가. 저는 취업이냐 공부냐 둘 중 하나로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그렇게 좁게 볼 수는 없거든요. 대학원에 온 것은 어쨌든 내 삶을 더 낫게 하기 위한 일종의 생의 기획 연장인데, 사실 막상 대학원을 들어와서 공부를 한 다음에 남는 것은, 고학력 실업자가 되거나, 고학력 불안정노동자가 되는 그런 조건 안에 있습니다. 그런 조건에 대한 얘기가 많이 없었기 때문에 예리함이 떨어지지 않았나 생각을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대학원에 온 것은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과 바람 때문에 온 것인데 마찬가지 불안을 안고 있는 겁니다. 여기 글에 나오는 프레카리아트란 말이 신조어인데, 불안이란 말이잖아요. 그런데 이 불안이란 말이 20대에만 해당하는 말도 아니고 모두 사람이 다 불안합니다. 모두 불안한데, 그 불안한 상황이 각각 어떻게 다르냐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저는 대학원생으로서의 물적회로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먹고 살거냐 하는 문제, 물적회로를 크게 3개로 봤습니다. 첫 번째는 학자금 대출, 두 번째는 장학금, 세 번째는 과외인 것 같아요. 학자금 대출은 아까 누적된 학자금이 10조라고 했는데, 양도 중요하지만, 지금 공부를 하거나 먹고 살 궁리를 하는 대학생, 10대와 20대들은 계속 대출을 받아야 하는 거죠. 학자금도 대출받아야 되고, 결혼하려고 해도 대출받아야 하고, 차도 집도 다 대출이에요. 그런데 지금 같은 경우, 한국장학재단에서 추진하는 장학시스템이나 대출시스템은 이 사람이 나중에 직업을 가져서 상환할 수 있다는 전제를 통해서 하는 거죠. 그런데 안 됐잖아요. 그게 안 된다는 문제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실 저도 대출을 당연히 받았죠. 상당한 빚이 있는데, 이걸 어떻게 갚을 것인지에 대해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 장학금입니다. 큰 학과 같은 경우에는 BK21같은 것을 받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대부분 랩의 노예가 되는, 계속 그 랩에서 생활을 해야 되는 거예요. 그렇지 않은 장학금들, 예를 들어서 지금 한국장학재단에서 추진하는 국가연구장학금, 또는 박사과정에서 제공해주는 장학금들도 일정한 조건과 능력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항상 실적을 요구해요. 근데 이게 반드시 장학금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대학 자체가 이미 평가와 검증 시스템으로 돌아가고 있고 그런 방식으로 계속 대학생, 대학원생들로 하여금 검증받기를 요구하는 겁니다. 아까 요하네스 포나더 씨가 말했던 대로 그런 검증 시스템들이 대학 안에 있고, 이걸 신자유주의 시스템이라 부를 수 있는 거겠지요.

세 번째는 과외인데, 과외도 사기업 시장이라는 한국의 특이한 장치인건데, 과외도 대학생들이 많아지니까 경쟁이 발생하는 거죠. 학부모들도 과외하는 선생들을 평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대충 어떤 방식으로 과외선생들이 과외시장에 개입을 하고, 어떻게 자기를 표현하는지 가늠을 하는 거죠. 싸움이 발생하는 건데 이 같은 물적회로에서 대학원생들이 얼마만큼 안정된 생활을 하고, 연구할 수 있느냐 한다면, 그건 역시 불안정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두에게 조건 없는 기본소득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남훈 선생의 연구에 따른 액수가 한 달에 40만원인데, 이게 되게 보수적인 수치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굉장히 중요한 숫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월세를 40만 원 내야하는데 동거인이 있으니 20만 원 내도 20만 원이 남아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죠. 내 삶이 벼랑 끝이 아니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는 장치로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또 하나는 평가보장시스템과 거리가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조건이 없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중요한 거죠. 이 잠재력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 같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큰 틀에서 봤을 때는, 저의 발표글 마지막 부분에서 뜬금없이 지금 같은 지구의 삶이 지속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사실 산업시스템도 환경적으로나, 생태적으로나 지속가능하지 않고, 지금 같은 경쟁 시스템도 지속가능하지 않습니다. 결국 지속불가능하다는 것 대한 인지가 있어야만 기본소득이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많은 사람이 염려하는 게, 일본의 우파 정치인들도 기본소득 이야길 하는데 재원을 자꾸만 공공 예산을 삭감하는 식으로 작동을 하는 거죠. 기본소득 자체가 금융자본주의의 약점을 끊는 방식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악용되기 쉬운 것 같고요. 그리고 실질적으로 대출이라는 금융에 매여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는 한편, 금융자본주의 회로를 계속 건드리는, 금융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하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게, 금융자본주의를 찔러야 기본소득이 의미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저는 기본소득 자체가 복지제도는 아닌 것 같고, 굳이 복지제도일 필요는 없는 것 같고, 다른 삶을 살기위한 방법, 박이은실 님이 얘기하신 것과 같은 꿈, 그런 맥락에서 기본소득이 우리에게 훨씬 의미가 있지 않겠냐 하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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