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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annes Ponader 요하네스 포나더(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발언: 첫째 날 속기록 중] 2012 기본소득 국제 대회, 금융자본주의를 점령하라 (3월 16일)

작성자권문석|작성시간12.03.22|조회수48 목록 댓글 0

<발표 /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 순차통역: 금민>

오늘 저는 발제로써 2가지 부분에 대해 다룰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해적당과 해적운동의 역사에 대해 짧게 소개하겠습니다. 다음에는 독일과 유럽의 사회제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고 특히 청년에게 이것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 설명하습니다. 오늘 저는 이곳에 와서 상당히 기쁩니다. 세계 여러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더 많이 밀접하게 상호 관계된다는 것에 특히 기쁩니다. 그래서 초대해주셔서 매우 감사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세계에 살고 있는데, 특히 Occupy 운동을 통해 많은 나라의 사람들이 동일한 목적을 향해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최소한 1년 이내로 우리는 인터넷을 통해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밀접하게 상호 연관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매우 민주주의적인 미디어입니다. 인터넷 속에서 모두는 평등합니다. 제가 인터넷을 통해 토론할 때 상대는 제가 남성인지조차 모를 수 있습니다. 제가 나이가 많은지 젊은지 어느 나라 사람인지 전혀 모릅니다. 어떤 종류의 종교를 가졌는지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나 성에 대한 관념에 대해서도 그들은 알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인터넷을 통해 제가 말하고 싶어 하는 내용에 대해서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제가 자의로 얘기하고자 하는 내용에 대해 어떠한 검열도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지금 말씀드린 상황이 인터넷의 이상적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바로 1년 전 미국에서 혁명적인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또 예를 들자면 이집트와 시리아 등에서 혁명이 일어났던 것에서도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정부는 당연히 인터넷을 금지하려고 했죠. 유럽과 다른 세계 곳곳의 활동가들은 전화로 인터넷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했고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북아프리카 나라들은 다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해줬습니다. 인터넷을 차단하는 것으로는 효과가 없으니까, 인터넷 검열이 이뤄졌는데 인터넷 검열은 유럽에서 없지 않았습니다. 공공연하지 않을 뿐입니다. 정치에선 항상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는데, 그것은 인터넷을 검열, 심지어 차단하려는 시도입니다. 유럽에서야 물론 북아프리카처럼 단순하게 인터넷을 차단할 순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논거를 댑니다. 그런 논거들이란 대게는 테러, 미성년자에 대한 성폭행 등의 괴상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종류의 제도가 한번 도입된다고 하면 그것은 단순히 해당 목적에만 관련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 일반을 억압하는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래서 유럽에서 해적당 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해적당 운동의 출발점입니다. 해적당은 원래 해적 운동에서 출발했고 그것은 당운동이라기 보다 하나의 사회운동이었습니다.

첫 번째 해적당의 출현은 스웨덴에서 일어났습니다. 해적당이 생기기 전 스웨덴에서는 몇 년 전부터, 서로 자유롭게 음원을 교환하고 다운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회운동이 있었습니다. 2004년 이전까지 음반 산업은 음반을 서로 교환하는 행위나 다운로드 등에 대해서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pirate bay라고 불렸습니다. 해적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처럼 음반 등에 대해서 서로 양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카피(copy)할 수 있다는 개념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해적 운동에 동참한 사람들은 ‘그래 좋다. 우리가 바로 해적이다. 우린 해적당이다.’라고 스스로에게 긍정적으로 의미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서버를 뺏어가는 현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버를 은행 금고에다 둔 적이 있습니다.

(독일) 함부르크 주의 선거 바로 직전의 일입니다. 경찰은 저희당(해적당) 서버를 압수수색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정당입니다. 그리고 그때는 주 의회 선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저 로고는 스웨덴에서 만든 유럽 해적당 로고이고, 그것은 바로 6년 전 일입니다. 그리고 제1차 스웨덴 해적당 당 대회에서 저 로고가 사용되었습니다. 스웨덴 해적당 당 대회는 매우 작고 화기애애했습니다. 그리고 약 9개월 이후 독일에서 해적당이 건설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2009년 청년 해적당 거리대회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크고 작은 도시에서 이와 비슷한 그룹들이 자꾸 생겨나며 해적당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해적당 청년조직 사진입니다. 대개 20~25세 연령층을 주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더 나이 많은 사람도 있습니다. 해적당 전체가 하나의 청년 조직입니다. 건립될 때는 그랬는데 지금은 당원들이 나이가 들어서 저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청년조직은 청년당의 청년조직이므로 매우 젊은 사람들만 있습니다. 첫 번째 선거에서 1% 정도를 받았으니 참패했다 할 수 있겠죠.

3년 전 연방국(?) 선거에서는 갑자기 2%를 받았습니다. 그것은 굉장한 성공이었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미디어들이 이야기했습니다. 저기 누군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은 그것이 잠시 지나가는 현상에 지나지 않고 2, 3년 후에는 다시 듣지 못할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거의 모든 선거에서 1, 2% 정도를 받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종류의 선거에 해적당은 늘 참가했고, 같이 조직했고 끝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 해적당원들이 해적당의 테마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는 것을 알 수 있겠죠. 사진에 있는 해적당 깃발 보이시지요. 저렇게 많이 모이기도 했습니다. 인터넷 차단과 관련된 항의 시위입니다. 사실 이 테마가 해적당을 만드는데 가장 큰 공로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해적당 깃발에 모이게 됐지요. 당원수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기 시작해 지금 약 2만 명 정도의 당원이 있습니다. 이것은 함부르크 대회입니다. 그러자 당 대회는 더 이상 작고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아니게 됐습니다. 저것은 지금까지 정당의 역사 중 가장 많고 잘나온, 정당사에 남을만한 사진입니다. 기네스북에 올라간 사진입니다(웃음).

다른 정당은 대의원이 있는데 우리는 없습니다. 우리는 토대 민주주의이고 모든 당원이 당 대회에 올 수 있고 참가한 당원은 누구나 투표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당 대회가 열리면 2천 명 정도가 오기 때문에 복잡합니다. 2천 명 정도가 함께 프로그램에 대해 토론합니다. 그런데 이 2천 명이 2만 명이 함께해야 하는 콘셉트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작년은 우리에게 매우 특별한 해였습니다. 해적당에 대한 언론과 정가의 주목이 갑자기 오르기 시작했는데요. 우리는 여론조사에서 항상 2% 정도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베를린 주 의회 선거가 있었던 것입니다. 독일 연방의 선거가 아니라, 베를린 주의 선거입니다. 베를린이야 당연히 해적당 경향의 유권자들이 많이 삽니다. 여론조사에서 많이 받은 것은 맞지만, 2~4% 정도였습니다. 저도 그때 선거운동 함께 하고 거리에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공중파 저널리스트가 저에게 와서 ‘오늘밤 센세이션이 일어날 것 같다. 그것은 해적당에 관한 것일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독일에서는 5% 이하면 의회진출이 안 됩니다. 그래서 해적당이 5%를 득표한다면 굉장한 열정을 가지고 올 것이란 점을 저희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해적당 당원들이 TV에 나가서 적극적으로 토론했고, 200명 정도의 당원들이 공동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는데 해적당 역사상 처음 있는 결과였습니다. 해적당의 로고 색깔인 오렌지색을 TV에서 볼 수 있는 것만도 우리에겐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여론조사가 5, 6% 정도로 오르기 시작했는데 그러자 우리는 선거에서 이겼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역시 여론조사였죠.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얼음은 녹았고 기대는 점점 커져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일주일 지나자 여론조사가 7.7%까지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왜 이렇게 지지해 주는지에 대해서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비례후보 명부에 15명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9%정도를 받으면 우리는 15명이 당선되고 10%를 받는다면 더 이상 올릴 의원조차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만약 10%를 받는다면 나머지 1%는 빈 좌석으로 의회에 남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14%까지 나올 때 우리는 과연 의회에 들어갈 수 있을지 서로를 둘러보며 다시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다행히 8.9%였습니다(웃음). 선거 명부에 있었던 15명이 모두 주 의회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요. 그리고 저희는 내심 우리가 8.9% 보다 많은 득표를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잘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번에 좀 더 많이 명부에 올려야 될 것 같습니다. 매우 감성적인 얘기만 하고 있지만,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뚝뚝 떨어집니다. 잠시 비디오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출구조사가 나왔을 때입니다. 별로 놀랍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두 가지 감동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해적당의 결과에 대한 축하자리입니다. 그런데 선거에 대한 좋은 결과보다 더 축하해야할 일은 자유민주당이 참패했다는 것입니다. 자민당과 해적당은 선거에서 서로 경쟁관계에 있었습니다. 자민당 당수가 해적당에 투표하는 것은 사표라 얘기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해적당은 5%를 못 넘는데 왜 투표하냐, 2%나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해적당과 자민당은 서로 득표 퍼센트를 바꿨습니다. 자민당이 20년 전에 검열에 대한 반대운동, 검열을 반대하는 시민운동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시민운동이 누구를 지지했는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민주당은 자신들이 가졌던 가치를 엎어버렸습니다. 잠시 비디오를 보겠습니다. 좌파당은 12%에서 9%로 떨어졌고, 자민당은 원내 진출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 결과가 나오자 사람들은 전부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우리가 이겼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감성적인 순간이었는데요. 갑자기 기자들이 해적당에 몰려왔습니다. 오렌지가 해적당이구요. 빨간색이 좌파당입니다. 거의 좌파당과 비슷한 지지를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왜 이겼나 생각해보니 우리의 테마가 사회에 안착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다른 당들이 우리의 테마를 훔쳐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좋은 일입니다. 베를린 선거에서 해적당은 굉장히 광범위한 강령을 이야기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인터넷 검열과 정보자료에 대해 집중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투명성과 직접민주주의에 대해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거강령을 차근차근 광범위하게 넓혀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베를린 해적당, 베를린 시당은 이미 기본소득을 자신의 강령으로 하고 있는 당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선거에서는 사회분야의 정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왜 해적당에 투표했느냐 하면 바로 사회분야 공약 때문이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는 매우 점진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해 접근해서 기본소득을 채택하게 되었습니다. 2010년에 저희는 ‘모든 인간은 무조건적인 권리를, 생존과 사회적 참여에 대한 무조건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기본강령을 채택합니다. 당연히 우리는 국가가 무조건 보장하라 했지만 어떻게 보장해야하는가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었죠. 2010년 이야깁니다. 그리고 베를린 선거가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베를린 시당은 기본소득을 원한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이 선거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의제였습니다. 그러자 연방해적당도 베를린 모델에 따라 기본소득을 해적당 전체의 강령으로 해야 한다는 시도를 했습니다. 사실 국민전체, 그리고 해적당 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지지가 매우 높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3단계의 강령수립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첫 번째는 의회에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서 여러 모델에 대해 대중에게 여론조사를 하고, 전문가들에게 위탁하고 비교하는 작업을 하라는 요구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여러 모델에 대해 논의를 하자, 그리고 그 절차가 끝나면 세 번째 단계로 국민투표에 부치자. 이렇게 3단계를 걸쳐서 기본소득을 도입하는 절차에 대해 제안을 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그때까지 최저임금이 도입되어야 하는데, 독일에는 최저임금제도가 독특합니다. 해적당 안에서 이것을 투표에 부쳤는데 결과가 아슬아슬했습니다. 해적당은 의사결정을 2/3로 결정하고 거의 모든 결정이 80~90%로 통과가 되는 이상한 당입니다. 그런데 기본소득만은 2/3를 가까스로 넘어서 통과했습니다. 2/3를 넘는다는 것은 강령으로 받아들일 것인지의 기준인데 기본소득은 가까스로 통과했습니다. 우리는 당원들의 투표를 하나하나 셉니다. 그렇잖으면 불투명하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기본소득 강령은 당원 총투표에서 단 4표가 많아 채택됐습니다. 그런데 사회적으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굉장히 많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 테마는 미디어에서 굉장히 많이 토론되고 있습니다. 해적당 내에서도 기본소득 논의는 매우 격화되어서, 사실상 해적당 내에서 가장 많이 토론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입니다.

끝으로 독일의 현황에 대해 간단히 말하고 싶습니다. 저희 관점에서 볼 때 기본소득이 왜 중요한 것인가 말하고 싶습니다. 독일은 약 13년 전부터 ‘하르츠 포(Hartz IV)’라는 사회제도를 도입했습니다. Hartz IV는 매우 강력하게 노동 강제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Hartz IV 대상자들은 삶에 필요한 것을 거의 모든 것을 받지만, 사실 그렇게 많이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항상 정기적으로 직업을 구하기 위해 돌아다녀야 합니다. 자기가 원치 않는 직장이 알선되었을 때도 그것을 해야만 합니다. 강제적으로 직업교육소로 보내지기도 합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것들이 전부 사회적으로 무용한 노동이라는 것입니다. 직업교육은 지불되는 노동이 아니라는 법이 있습니다. 매우 큰 슈퍼마켓이 있습니다. 거기서 저는 물건도 사고 물건들을 정리하고 진열대를 점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제가 거기서 구매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플라스틱입니다. 그것은 실제 슈퍼마켓이 아니라, 훈련을 위한 가상의 슈퍼마켓입니다. 그런 일이라도 해야만 직업이 없는 사람들이 돈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독일의 상황입니다. 청소년들의 상황이 그런 것입니다. 의무적인 학교 과정이 끝나고 더 이상 직업이 없는 경우에, 그리고 사내교육 자리도 대학 자리도 없는 경우 말입니다. 그런 경우에 직업교육조처라는 곳에 구속됩니다. 거기 가서 배우는 것이 방금 가상의 슈퍼마켓 예를 들었듯, 터무니없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노동 중 더 이상 돈이 없다고 얘기하면, 이와 같은 조처로부터도 제외됩니다. 그리고 늘 실습을 해야 한다는 통지를 받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컴퓨터에 앉아 계속 무언가 지원하는 서류들을 쓰는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다 갑자기 노동청에서 다시 돈이 생겼으니 오면 된다고 전화를 합니다. 우리는 자리를 몇 개 더 만들었다. 더 서류 쓸 필요가 없다.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그 전 서류 쓰기 실습을 하던 사람들이 컴퓨터에서 일어나 무언가 터무니없는 육체노동을 하기 위해 떠나야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극단적인 예지만, 바로 이런 시스템의 전형적인 예라고 보시면 됩니다.

독일의 청년실업률이 스페인이나 그리스처럼 심각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Occupy 운동에서 스페인에서 온 청년들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스페인)에서 직장을 가진 청년노동자들은 임대료를 내기에도 부족한 돈을 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스페인 청년들은 두 가지 선택 지점이 있는데요. 하나는 임대료를 내기 위해 노동을 할 것이냐. Occupy 운동을 할 것이냐 입니다. 제 생각에는 두 번째가 훨씬 훌륭한 선택이라고 봅니다(웃음). 독일은 직업훈련을 받거나 대학을 다니는 중에는 실업부조를 받을 수 없습니다. 대신 훈련비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 훈련비는 직업교육을 한 번도 중단하지 않은 사람에게만 지급됩니다. 누군가가 직업교육이나 대학교육을 시작했다가 적성에 맞지 않아 바꾸면, 그럴 때에 이 사람은 훈련비도 실업부조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그는 국가로부터 아무 것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불안한데, 뭘 하든지 끝까지 해야 하고, 중단하면 아무 것도 안 된다는 불안입니다. 그런데 대학교육이나 실업교육을 시작했다가 이게 잘못되었다고 깨달은 순간, 깨달아봤자 계속해야 합니다. 만약에 그만둔다면 국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모든 혜택이 사라지는데요. 일단은 실습까지 하고 불행하게 되거나, 불행해서 2, 3년 후에 직업을 그만두거나, 또는 대학을 졸업하고 불행하게 되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불행해져서 취직을 한 다음에 다시 불행해지거나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행하게 사는 것보다는 무조건적 기본소득이 훨씬 더 좋은 것이라고 사람들이 차츰 깨닫게 된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은 불안으로부터 사람들을 동기부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본소득은 안정으로부터 사람들에게 동기부여하기 때문입니다.

Hartz IV 시스템은 사람들의 불안을 이용하는 체제입니다. 청년들의 경우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노동청을 들락날락해야하는 것인데요. 노동청에서 묻습니다. “너 뭐했니?”, “너 어디서 직업 구할래?” 묻습니다. 그런데 바로 내 앞의 공무원이 날 위해 뭔가 해주지 않으면 그가 나에게 실습조처 명령을 내릴 것이고 그러면 무의미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고분고분 앉아있습니다. 앉아서 깨끗한 인상을 주기위해 애를 씁니다. 노동청에 가기 전날 열 군데의 회사에 일을 할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일을 하기 원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일단 물어봐야 하는 것입니다. 일하기 싫은데 전화를 하는 경우에는 일부러 멍청한 실수를 저질러 뽑히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또는 면접에 이상한 옷을 입고 간다거나, 대학을 졸업했음에도 불구하고, 응모 서류에 맞춤법을 틀리게 쓴다던지 합니다. 그렇게 취직에 실패하면 다시 4주 동안 돈이 나옵니다. 한편으로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해보십시오.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힘들겠지요. 그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에 강제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매우 잘못된 게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노동청에 가면 됩니다. 그곳에 가면 공무원들은 매우 친절합니다. 공무원들은 법률이나 행정명령을 어기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권리에 대해 제대로 설명하는 것도,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하는 것도 아닙니다. 가끔은 집에도 찾아옵니다. 진짜 혼자 살고 있는지 검사하기 위해서입니다. 헌법상 주택은 보호받는 법임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그와 같은 기본권을 유린하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을 노동청까지 안내해주곤 했습니다. 제가 옆에 앉아 있으면 공무원들은 특별히 더 정중한 태도를 보이곤 합니다. 그러나 제가 같이 간다고 해도 정작 가야하는 청년들은 일주일 전부터 걱정에 시달립니다. 이처럼 불안과 통제에 근거한 제도가 제대로 될 리 없습니다. 사실은 실패를 처음부터 금지하는 제도란 있을 수 없다고 봅니다.

해적당이 그래서 이와 같은 제도에 대해 철저히 부정하게 된 것입니다. 사회제도는 자유에 근거해야하지. 불안에 근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민주주의 속에서의 자유를 고려하는 사회제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동생활, 사회생활 안에서의 자유를 얼마만큼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는가가 중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기본소득이 정확하게 이와 같은 노동생활 안에서의 자유에 대해 답하는 콘셉트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독일에서 언젠가 기본소득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한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여러 시도가 있습니다. 브라질, 나미비아에 대해서도 독일인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본소득에 관련된 국제적 대화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전 세계 인류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서로 연관시키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에 대한 열망. 이것은 해적당이 발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국제적인 기본소득 운동이 바로 자유에 대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를 초대해주신 여러분께 대단히 감사하고 오늘의 대화에 대해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해적당 깃발을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질문 / 곽노완: 기본소득네트워크 학술위원장>

정식 강령으로 채택하지 못했지만 좌파당과 녹색당 내에도 기본소득 운동을 하는 동지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동지들과 해적당의 관계가 어떤지, 무엇을 같이 하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답변 /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 순차통역: 금민>

독일은 여러 정당에 기본소득 주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유일하게 자민당에는 한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자민당은 선거에서 참패해 의회에서 쫓겨나게 될 정당입니다. 아까 비디오에서 보셨듯이 자민당이 쫓겨난 것에 대해 사람들이 박수를 치지 않습니까. 좌파당, 녹색당, 사회민주당과 보수정당 안에도 찬성파가 있습니다. 정확히는 녹색당에서의 기본소득 지지율이 가장 높습니다. 50% 정도 됩니다. 그런데 녹색당 안에서 소수파인건 또 사실입니다. 좌파당은 노동개념과 관련된 논쟁 때문에 이것이 매우 복잡해졌습니다. 좌파당의 노동개념은 임금을 받는 것이 노동이라는 것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데 기본소득은 또 다른 종류의 노동개념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기본소득과 관련된 노동개념은 노동이란 내가 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든 활동이라고 정의할 것입니다. 그래서 가치를 만들어내는 모든 활동이라고 말할 경우 좌파당의 노동개념과 불일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파당의 다수가 임금 문제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물론 다른 당의 기본소득 주장자에 대해 자세히 알고 있고 서로 의견을 밀접하게 교환하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른 당의 기본소득 주장자들이 해적당에 대해 매우 질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다른 당의 기본소득 주장자들이 해적당의 성공에 대해 좋은 일이라 생각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우리가 성공하고 있다면 다른 당의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해적당이 무엇 때문에 성공하고 있느냐, 사람들이 기본소득 강령을 보게 될 것이고, 다른 당에 있는 기본소득 지지자들의 입지가 강화될 것입니다. 그러한 현상은 매우 행복한 일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권력의 장악이 아니라 체제의 변혁이기 때문입니다.

<질문 / 이장규: 진보신당 정책위원회 공동의장>

해적당에서 사안들을 결정할 때, 의제를 생성할 때, 인터넷으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 요하네스 포나더: 독일 해적당, 영화감독 / 순차통역: 금민>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형식적인 차원. 의결 같은 걸 하게 되는 절차적인 차원입니다. 그리고 의결 절차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형성하는 과정. 이와 같은 두 가지 차원이 있습니다.

절차적이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1년에 두 번 당 대회를 엽니다. 거기에서는 제안을 내고 토론을 하고 표결을 합니다. 약 2만 명의 당원들이 모두 제안을 낼 수 있고, 그 제안에 대해 2만 명이 모두 표결을 합니다. 어마어마하게 많은 제안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준비하고 표결을 진행하기 위한 수단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표결을 준비하고 의견을 형성하는 과정들입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다른 수단이 있습니다. 하나는 인터넷에서 굉장히 발단한 위키 백과 시스템을 활용합니다. 위키는 아시다시피 누구나 내용을 바꿀 수 있는 수단 아닙니까. 거기서 당원 한 명이 텍스트를 올립니다. 다른 당원이 고칩니다. 그렇게 토론을 합니다. 물론 여러 그룹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룹들은 지역마다 따로 모이고 기자회견을 하면서 자신들의 의견을 발표합니다. 이 같은 작업그룹에 대해서. 작업그룹은 해적당원인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나 가입하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문제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입니다. 위키 데모크라티(Wiki Democrati)는 토대 민주주의와 대의제의 중간 형태입니다. 이것은 인터넷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작동을 하는데, 누구나 제안할 수 있고 제안하는 사람은 텍스트를 올립니다. 그리고 토론하고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는 동결시킵니다. 그러면 동결된 텍스트들이 있기 때문에 투표를 할 수 있는 선택지들이 형성됩니다. 먼저 토론 시기에 이와 같은 가능성들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표결할 때도 한 개가 아니라 두 개 또는 세 개에 찬성할 수 있고, 보류 또는 반대표도 던질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는 시간이 없다고 생각을 한다면, 사회정책에 대해 내가 아닌 이 부분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나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저는 하나의 대표단(delegation)에 대해 앉아서 무엇인가를 토론하고 있겠지요. 그러면 저와 함께 토론한 사람은 저를 위해 투표를 해줍니다. 제가 주말에 시간이 나서 인터넷에 로그인 할 수 있다면 제가 직접 참가하여 투표할 수 있겠지만, 제 친구가 저를 위해 대리 투표를 행사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저는 친구를 위해 표를 행사해야겠지요. 제가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을 때 친구는 저를 위해 투표를 하고, 자신을 위해서도 투표권을 행사합니다. 이것은 매우 복잡한 것 같지만 유연하고 긴장감 넘치는 절차이고 과정입니다. 이것은 더디게 진행될 것 같지만 매우 빠르게 의사 형성을 할 수 있는 제도란 것을 아셨으면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지도부가 ‘토대의 의견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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