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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 대축일] 예수 성심은 찬미받으소서

작성자구유|작성시간21.06.10|조회수134 목록 댓글 1

 

 

예수 성심

호세 11,1-9; 에페 3,8-19; 요한 19,31-37

2021.6.11.; 예수 성심 대축일; 이기우 신부

 

오늘은 예수 성심 대축일입니다.

이 전례로써 부활 대축일부터 이어진 예수 대축일 시리즈를 장엄하게 마칩니다.

이러한 전례의 흐름에 담긴 의미를 살펴보면,

우리 교회가 세상에 선포해야 할 복음의 요체가 드러납니다.

또한 교회와 시대의 상황이 변화되면서

복음의 초점이 이동하고 발전해 온 바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복음 선포의 기준이자 바탕은 예수님의 복음 선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조상대대로 하느님을 믿어 오던

이스라엘의 하느님 신앙이 크게 잘못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두가이들이 주도해 온 이스라엘의 제사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를

소통시키지 못하고 있었고, 하느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

예언은 이미 끊긴지 오래였으며 그나마 예수님 직전에 출현한

세례자 요한마저도 참수당하여 순교하였습니다.

제사와 예언이 이 지경이었으므로 실천 역시 종교적 위선 투성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시며 이 성전을 허물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그 대신에 부활하실 당신 몸으로 새로운 성전을 세우리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것이 진리 안에서 영으로 하느님께 드릴 예배의 터전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사두가이들의 권세나 예루살렘 성전의 권위가 어마어마했던 것을 감안하면

예수님의 이러한 처신은 목숨을 걸고 죽을 각오로 행하신 복음 선포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몸소 예언자 역할을 수행하시며,

산상설교를 비롯한 새로운 가르침을 백성 가운데에서 펼치셨습니다.

새롭고도 권위있는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러 전국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는데,

하느님의 진리에 목말랐던 그들은 그분의 확신에 찬 말씀도 듣고자 했지만,

그 참에 고질병도 고치고 지긋지긋한 마귀도 쫓아내어 달라고 구름같이 찾아 왔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에 퍼져있던 전국적인 병리현상과 부마현상이 말해주는 바는 뻔합니다.

종교 질서가 왜곡되어 버리니까 각종 질병과 마귀가 극성을 부리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가르침을 펴는 틈틈이 병자들을 고쳐 주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어

백성을 도와주시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영을 지니신 분으로서만 가능한 일들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종종 기적이 일어났는데, 이에 대해 당시 유다교의 지도층인

사두가이들과 바리사이들은 매우 두려워하면서 예수님을 죽이겠다고

공생활 초기부터 사악한 음모를 꾸몄습니다.

하느님을 믿어온 사람들이 보인 행태가 이토록 어처구니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내내 긴장하셔야 했으며 끝내 죽을 각오까지 하셔야 했습니다.

백성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희망찬 복음을 선포하시던 예수님께서

정작 제자들에게 남기신 그분의 가르침 속에 비극적이게도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예고가 세 번이나 들어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역설적으로, 이 십자가와 부활의 가르침이 그분 예언 메시지였던

하느님 나라 복음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사도로 3년 동안 양성받은 제자들은 이 십자가와 부활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기 어려워

하다가 성령을 받고 나서야 비로소 복음을 선포하러 세상 사람들 앞에 나섰습니다.

그런데 그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 선포의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선포하셨던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아니라 예수 부활의 복음이었습니다.

이는 선포 내용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증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부활이야말로 그분이 선포하셨던 하느님 나라의

가르침이 참으로 옳은 진리라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평면적으로 보면 역설로 보인 이 두 가지 메시지가

입체적으로 차원 높게 승화된 셈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향한 예수 부활에 대한 확신을 굳힌 사도들은 자신들만이 아니라

초대 교회의 신자들도 자신들처럼 예수 부활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수 있도록 하는 원동력이 성령께 있음을 성령 강림 이후 깨달았고,

이래서 부활하심으로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성자 그리스도와 함께 성령께도

하느님 칭호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성령이야말로 사도로 양성받으며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제자들만이 아니라 새로이 입교한 신자들도

예수 부활을 확신하게끔 믿음을 주시는 우리의 하느님이셨습니다.

그 확신의 근거는 성령의 일곱 가지 은사였습니다.

슬기와 통달, 의견과 지식, 굳셈과 효경 그리고 경외심의 은사를

충만히 받은 신자들도 로마 제국의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선포하여 놀라운 교세 신장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복음을 선포하게 된 교회는 자연스럽게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게 됩니다.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복음으로,

다시 십자가와 부활을 통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 성령을 통한 복음으로

구체화되어서는 이제 삼위일체 하느님에 대한 복음 선포로 보편화되어 간 것입니다.

이 과정이 4백 년 걸렸습니다.

 

교회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교리를 정식으로 선포한 때가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였고, 성체와 성혈에 관한 신심이 전례 안에

반영되게 된 때는 13세기부터였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1500년 동안은 삼위일체 교리로만

복음을 선포했는데, 워낙 사변적인 방식으로 되어 있어서 본격적으로 복음 선포가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공의회에서 삼위일체 하느님을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알아듣게 되면서 삼위일체 하느님 교리와 성체 성혈 교리가

어우러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 성체와 성혈 대축일 강론에서도 말씀드린 바처럼,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따라 공동체를 이루어 복음을 선포해야 하되,

공동체를 이룬 각 개별 그리스도인들은 성체와 성혈을 받아 먹고 마심으로써 예수님처럼

자신을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해야 한다는 복음선포의 영성이 확립되었습니다.

18세기 이후에 확립된 예수 성심께 관한 신심은 이 복음선포 영성을 뒷받침해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자신을 하느님께 제물로 봉헌하는 자세는 그분의

거룩한 마음을 본받으려는 지향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체 성혈 신심과

예수 성심 신심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전자는 전례에서 드러나는 반면에 후자는

사도직 활동에서 요구된다는 것입니다. 무려 2천 년이나 걸려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알아 들은 소중한 진리입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예수 성심은 찬미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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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요셉-막내165 | 작성시간 21.06.1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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