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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 이기우 신부

작성자구유|작성시간22.08.13|조회수282 목록 댓글 2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예레 38,4-10; 히브 12,1-4; 루카 12,49-53

연중 제20주일; 2022.8.14.; 이기우 신부

 

1. 죄악의 구조와 사회 분열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시던 시대에 로마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지중해 일대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고는 매우 강력한 식민통치로 억압하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도 로마의 침략을 받아 정복되었으니, 이집트와 바빌론에 이어 세 번째

종살이를 자기 땅에서 하게 된 셈이어서 민족사에서 가장 어두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바빌론 유배에서 돌아온 이래 이스라엘을 종교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력으로도 다스리던 사두가이파는 물론 평신도로서 지식인과 기술자로 구성되어

중산층에 속했던 바리사이파 등 엘리트들은 별다른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로마제국에

협력하고 부역했습니다. 그밖에 힘없는 대다수 백성들은 이해관계와 정치 성향에 따라

갈라졌고, 그 안에서도 조금이라도 힘이 있는 자들은 더 약한 이들에게 갑질을 일삼으며

희망을 잃어버린 채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사두가이파, 바리사이파 외에도 젤로데파,

에세네파 등 나라 전체가 네 파로 갈라져 있는 판국에, “한 집안의 식구들이 서로 갈라져서

서로 맞서게 되는”(루카 12,52) 각자도생(各自圖生)의 분열 상황은 이미 벌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가족이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2. 세례자 요한의 선택

  세례 운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요한은 유다 광야에서 살던 생활양식을 고수했습니다.

광야에서 요르단강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난 것도 회개의 설교를 하고 이에 호응하는

이들에게 세례를 주기 위함이었고, 그러고 나면 다시 유다 광야로 물러가서 들꿀과

메뚜기를 먹고 거친 낙타 털옷을 입고 살았으니, 가난하지만 거룩한 이 생활양식이

전형적인 예언자들의 삶이었습니다. 

 

  이런 예언자적인 생활양식을 따른 이들이 에세네파입니다. 이들은 본시 예루살렘

성전에서 봉직하던 이들은 세습 사제들이었는데 사두가이파 사제들의 부패상이

극심해지자 언젠가 하느님의 심판이 내릴 것을 기대하고 광야로 탈출하여 때를

기다리던 무리였습니다. 이들은 그 물 귀한 유다 광야에서 죄를 씻는 정화의식을 매일

거행하며 꿈란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독신사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아버지 즈카르야도

사제였던 요한은 에세네파와 비교할 때 거칠고 가난하게 사는 생활양식이 같고,

파국이 임박했다고 믿는 메시지도 같으며, 본거지도 같은 유다 광야였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이 에세네파 개혁사제들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첫 번째 차이점은 광야에서 매일 물로 몸을 씻는 정화의식 대신에,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도시의 요르단강으로 나와서 단 한 번의 세례의식으로 모든 죄를 씻는 세례를

대중적으로 베풀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전통적인 예언자들이 발휘했던 도덕적 권위를

요한도 지니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하나의 정신 운동이었습니다. 그는 무려 4백 년 만에

출현한 예언자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또 다른 차이점은 요한이 행한 이 독창적이고

권위 있는 세례조차도 예수님께서 베푸실, 또 다른 세례를 위한 준비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했다는 점입니다(요한 1,26-27.33). 

 

3. 세례자 요한과 예수의 차이

  요한의 세례운동은 세상과 시대의 총체적 혼란상을 걱정하던 수많은 이들에게

광범위한 지지와 뜨거운 호응을 받았고, 예수님께서도 그러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당시 이스라엘  사회를 갈라놓고 있었던 네 가지 유력한 분파들,

즉 보수적이었던 사제들의 사두가이파나 상대적으로 진보적이었던 중산층 평신도

엘리트들의 바리사이파, 갈릴래아 평민들이 모여 혁명을 꿈꾸던 과격한 젤로데파나

유다 광야에서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던 급진적인 사제들의 에세네파가 아니라 세례자

요한을 선택하여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라"는 요한의 메시지를 이어 받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요한과 더불어 세례운동을 펼치지는 않으셨습니다.

파국이 임박했다는 데에는 동의하신 셈이었고 그래서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도

이어받으셨지만, 세례를 받으신 후에는 독자적으로 활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달리 병자나 장애자들을 건강하게 치유해 주셨고 요한은 물론 이전 어느 예언자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던 일, 즉 마귀까지도 쫓아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에 대한

적대자들의 살해 음모가 시작되자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셨고 방방곡곡으로 파견하기도

하셨습니다. 이 파견 활동에 성과가 있어 예순 명의 추가 제자들을 얻으신 다음에는

이들을 합쳐 모두 일흔두 명이나 죄는 대규모 제자단을 전국에 파견하기도 하셨습니다.

이런 상대적 독자 활동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메시지에 보태어 '믿음'을

요청하신 것이고 그 실체는 새로운 세상으로서의 하느님 나라였던 것입니다

 

4.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

  구약성경에 소개되는 다양한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극적이면서도 제일 아름다운

만남으로는 요나단과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사울왕의 장자와 장군이었던 이 두 사람은

서로 왕위를 두고 경쟁하는 구도와 상황에서도 서로를 믿고 도와주는 우정을 발휘한

바 있었습니다. 결국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과 함께 전쟁터에서 전사함으로써 부왕의

명예도 지키고 다윗 왕조가 시작되게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는 이보다 더 극적이었고 더 아름답다 못해

거룩하기까지 합니다.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사촌언니로서 육 개월 먼저 태어났으므로 요한이 손위 육촌 형뻘이지만,

요한은 일찌감치 예수님의 인간됨은 물론 신성까지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하여 깎듯한 겸손으로 예수님을 대하였습니다(루카 3,16). 동시대인들 가운데

예수님의 진면목을 알아보기는 요한이 처음이었고, 그래서 안드레아(요한 1,40),

필립보(요한 1,43) 등 자기 제자 두 사람도 예수님께 천거했을 정도로 요한의 태도에는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부여받은 사명이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임을

의식하고 있었고, 예수님께서도 요한에 대해서는 최대의 찬사로 대우하시고

인정하셨습니다(루카 7,28). 

 

4. 예수의 또 다른 세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루카 12,49)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내가 받을 세례가 있다.”(루카 12,50)고도 말씀하신 것은 당신이 받으실 불의

세례를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동안 내내 사랑의 불을 사람들

안에서 피우심으로써 불의 세례를 자청하여 하느님께로부터 받으셨고, 그 결과 이 불의

세례는 사두가이와 바리사이 등 유다교 지배층의 미움을 받아 못 박히신 십자가

희생으로 이어졌으므로 십자가의 세례이기도 하며, 또한 제자들을 비롯한 신자들을

세상에 사랑의 불을 지를 사도로 변화시켜줄 성령의 세례까지를 뜻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불의 세례는 물의 세례가 지닌 예언자적 도덕성을 딛고 출발했습니다.

세상의 죄를 씻고 정의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도약입니다. 그리고 이 불의 세례는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사랑의 희생으로 행하신 십자가의 세례로 귀결되었습니다.

이는 인류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는 길을 여는 영적인 도약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불의 세례는 공동체를 세우게 하시는 성령의 세례로 이어졌습니다.

믿는 이들은 신앙의 공동체로 모여서 세상에 사랑의 불을 지르는 새로운 도약에

초대받고 있는 것입니다. 

 

5. 물과 불의 세례가 지닌 파스카적 성격

  예수님을 따라서 우리도 달려야 할 이 길은 1단계로 세상의 죄와 결별하는 분열을

일으키고 나서, 2단계로 서로가 함께 세상을 사랑의 불로 타오르게 하여 다시금

새 백성으로 모아들이는 창조적 성격을 지닙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성사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성사를 거행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지닌 파스카 신비를 전례로 거행하는 부활 성야입니다. 

 

  이 파스카 신비를 이해시킬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가 준비되어야 합니다. 

- 예비자 교리반에 등록하기에 앞서서 세례를 받기 원하는 당사자가 관찰할 시간도

필요하고 교회로서도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前) 예비 기간이 있습니다. 

- 그 다음, 정식으로 교리반에서 예비자를 받아들이는 예식을 시작으로 교리의 초석을

놓아주는 예비 기간이 있습니다. 세상의 죄와 그 배후에 있는 마귀의 존재를 깨닫게

해 주고 하느님을 진정으로 갈망하는 마음을 일으켜 주어야 하는 단계입니다.

이 단계에서부터 교회 공동체의 체험을 하게 하는 것이 좋으며, 대부나 대모의 도움도

이 단계에서부터 가시화되는 것이 좋습니다. 

- 세 번째로는 마음과 생활을 회개하고 기초적인 교리 지식도 갖춘 예비자들을 선발하는

예식으로 시작되는 정화와 조명의 기간이 있습니다. 이 기간에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피정이나 순교자들의 신앙을 배우는 성지 순례도 권장됩니다. 

- 네 번째로는 입교 절차로서 세례성사를 받은 새 영세자들을 그냥 방치하지 말고 복

음을 묵상하며, 성체성사에 참여하고, 애덕을 실천하는 파스카의 신비를 더욱 깊이

이해시키고 신앙을 더욱 성숙시킬 수 있는 신비 교육 기간이 남아 있습니다. 

 

  이 네 단계를 모두 합하여 예비자를 정식 신자로 교육시키는 기간은 최소 1년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교리교육 의안, 31항). 보통 제2단계와 제3단계를 일컫는 예비자 교리

기간은 6개월 정도인데, 제1단계와 제4단계에 대해서도 인격적인 관계를 통하여 신앙을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작은 어려움에도 주저앉는 냉담자를 양산하지 않고

파스카 신비를 이해하고 믿는 신앙인을 양성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단계의 전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이해하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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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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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귀임 마리아 | 작성시간 22.08.1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조재현 | 작성시간 23.03.0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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