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기타 강론 묵상

[스크랩] 12월 9일 대림 제1주간 토요일 <가엾이 여기며 거저 건네는 삶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3.12.09|조회수102 목록 댓글 3

대림 제1주간 토요일   (마태 9,35-10,1.5ㄱ.6-8)


복음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35─10,1.6-8
그때에 35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
36 그분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 37 그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38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10,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 
 

 

가엾이 여기며 거저 건네는 삶 


대림 첫 주간의 마지막 날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리 달라진 것도 크게 달라질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내 자신이 변하고 새롭게 보기로 다짐하여 영의 눈을 뜨지 않고서는 말이다.

오늘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씀을 전해준다.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30,19-20) 우리네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영성생활도 인생살이도 혼자 잘났다고 제아무리 용을 써봐도 별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러나 우리 인생길에 함께 계셔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 ‘비록 곤경의 빵과 고난의 물을 주시지만, 숨어계시지 않고’(30,20) 늘 동반해주시는 주님 때문에 살아갈 의미가 있고 희망이 있지 않겠는가!

우리 삶의 위로와 희망이신 주님은 우리가 어떤 처지에 살아가든 모두의 주님이시다. 우리의 ‘아빠’이신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는 우주적인 가족이요 하느님의 형제 자매들이다. 예수께서는 바로 이 보편적이며 한없는 사랑으로 모두를 사랑하셨고,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주셨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하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셨다.”(마태 9,35) 그분은 장소에 제한을 두지 않으시고 ‘모든 고을’과 ‘모든 마을’을 ‘두루’ 다니시면서 ‘모두’를 고쳐 주셨다. 그렇다! 하느님을 품은 이들의 사랑은 한이 없으신 하느님처럼 모두를 품을 줄 알아야 한다. 이렇게 품어야 하는 까닭은 서로가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설 자리가 없고 이기심과 탐욕이 서로를 가를 때 보이지 않는 폭력과 지배의 악순환이 시작된다. 내가 지닌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 때문에’ 지음 받은 태초의 그 아름다움과 순수함으로 ‘모두’를 품도록 하자!

예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처럼 시달리며 기가 꺾여 있었기 때문이다.”(9,36-37) 하느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은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다. 어떤 이유로든 우리는 정신적으로 상처받고 육신적으로 고통 받으며 일상의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사실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이 무엇을 해주어서가 아니라 ‘그저 곁에 있어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힘을 얻고 살아가는가! 그렇지 않다면 얼마나 고독할지. 예수님께서는 고통과 어려움 중에 살아가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이 가엾이 여기는 마음은 내 앞에 나와 거리를 두고 있는 대상화된 사람에 대한 피상적인 태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가엾이 여기다’란 말의 그리스어 원어인 ‘스플랑크니스테’에서 알 수 있듯 이 말은 상대방의 존재 깊이 들어가 온전히 하나되고 동화되어 그 인격이 되어 함께 느끼고 아파하는 그런 마음이다. 온갖 고통을 겪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완전히 품어 나의 아픔으로 토해낼 수 있는 절절한 사랑이다! 이제부터라도 남의 아픔을‘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것’으로 삼자!

서로에 대한 이런 가엾이 여기는 마음이 절실한 때이다. 그런 마음은 나 살기에 바쁜 일상을 적어도 가끔씩이라도 멈추어 고통과 어려움 중에 있는 이들과 함께 하며,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것을 기쁜 마음으로 되돌리는 것으로 표현해야 할 것이다. 서로를 지극한 사랑의 눈길로 품으며 가엾은 마음으로 차별 없는 하느님의 한 형제자매가 되고 위로와 희망이 되기 위하여 자신을 건네야 하리라!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10,8) 하고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다음검색
스크랩 원문 : 평화의 사도들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3.12.09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하늘 바래기 | 작성시간 23.12.09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12.09 아멘. 감사합니다.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