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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강론 묵상

[스크랩] 2024년 1월 24일 연중 3주간 수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마르코4,1-20) 송진욱 도미니꼬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1.24|조회수36 목록 댓글 2

2024년 1월 24일 연중 3주간 수요일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복음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4,1-20
그때에 1 예수님께서 호숫가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너무 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그분께서는 호수에 있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 뭍에 그대로 있었다.
2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비유로 가르치셨다.
그렇게 가르치시면서 말씀하셨다.
3 “자, 들어 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 그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다.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 싹은 곧 돋아났지만,
6 해가 솟아오르자 타고 말았다. 뿌리가 없어서 말라 버린 것이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는데,
가시덤불이 자라면서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들은 좋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
그리하여 어떤 것은 서른 배,
어떤 것은 예순 배, 어떤 것은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
9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10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분 둘레에 있던 이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들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12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
13 예수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비유를 알아듣지 못하겠느냐?
그러면서 어떻게 모든 비유를 깨달을 수 있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은 실상 말씀을 뿌리는 것이다.
15 말씀이 길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들이 말씀을 들으면 곧바로 사탄이 와서
그들 안에 뿌려진 말씀을 앗아 가 버린다.
16 그리고 말씀이 돌밭에 뿌려지는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들으면 곧 기쁘게 받는다.
17 그러나 그들에게 뿌리가 없어서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걸려 넘어지고 만다.
18 말씀이 가시덤불 속에 뿌려지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이다.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가,
그 말씀의 숨을 막아 버려 열매를 맺지 못한다.
20 그러나 말씀이 좋은 땅에 뿌려진 것은 이러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씀을 듣고 받아들여, 어떤 이는 서른 배,
어떤 이는 예순 배, 어떤 이는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 앉아서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입니다. 우선 우리는 이 비유의 특징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전반부의 내용은 “씨 뿌리는 사람”의 내용이고 후반부의 내용은 씨를 받는 이, 즉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의 내용입니다. 씨 뿌리는 분은 예수님이시고 씨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씨는 좋은 땅에도, 길에, 돌밭에,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습니다. 다시말해 하느님의 말씀은 세상 모든 이에게 뿌려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받아들이는 이들이 좋은 땅인지 돌밭인지 가시덤풀 인지가 중요한 것이지요.

 

하느님의 말씀은 항상 같은 내용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말씀을 듣는 이들의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을 보자면 많은 이들이 돌아갔고 제자들과 그리고 둘레에 있던 이들이 나오지요. 돌아갔다는 것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이고 제자들 외의 남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남아 있는 모든 이들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입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가 주어졌지만, 저 바깥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그저 비유로만 다가간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 나라의 신비는 바로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이들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고 그것을 받아들인 이들입니다. 즉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이들이며 그러므로 좋은 땅이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이들이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확신이 없다면 바로 우리가 문제입니다. 여러분! 열매는 우리 스스로 맺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길래 스스로 맺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할 때 맺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한다고 믿는 이들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물의 유혹이 와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님 앞에 부족한 죄인임을 고백만 하면 되는 것임을 잊지 맙시다. 아멘!

 

 

가고시마교구 송진욱 도미니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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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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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1.24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1.24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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