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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강론 묵상

[스크랩] 2월 18일 사순 제1주일 <너와 나의 광야♣>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2.18|조회수114 목록 댓글 3

2월 18일  사순 제1주일

제1독서

<홍수에서 구원된 노아와 맺은 하느님의 계약>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9,8-15
8 하느님께서 노아와 그의 아들들에게 말씀하셨다.
9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 뒤에 오는 자손들과 내 계약을 세운다.
10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곧 방주에서 나와,
너희와 함께 있는 새와 집짐승과 땅의 모든 들짐승과 내 계약을 세운다.
11 내가 너희와 내 계약을 세우니,
다시는 홍수로 모든 살덩어리들이 멸망하지 않고,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는 홍수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12 하느님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내가 미래의 모든 세대를 위하여, 나와 너희,
그리고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은 이것이다.
13 내가 무지개를 구름 사이에 둘 것이니,
이것이 나와 땅 사이에 세우는 계약의 표징이 될 것이다.
14 내가 땅 위로 구름을 모아들일 때 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나타나면,
15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고,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제2독서

<이제는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 베드로 1서의 말씀입니다.3,18-22
사랑하는 여러분,
18 그리스도께서는 죄 때문에 단 한 번 고난을 겪으셨습니다.
여러분을 하느님께 이끌어 주시려고,
의로우신 분께서 불의한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육으로는 살해되셨지만 영으로는 다시 생명을 받으셨습니다.
19 그리하여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도 가시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20 옛날에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몇몇 사람 곧 여덟 명만 방주에 들어가 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21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오르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계시는데,
그분께 천사들과 권력들과 권능들이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12-15
그때에 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마르 1,13)
 

너와 나의 광야♣


인생의 축소판인 사순절에 우리는 유혹의 광야에서 부활이라는 약속된 땅으로 가도록 초대받고 있다.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온 인류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 광야로 내보내시어 유혹을 받게 하셨다(1,12). 이렇듯 성령께서는 영광과 고난을 함께 주신다. 예수님의 광야의 유혹으로부터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는 기쁜 소식이 울려 나온다. 광야는 식물이 거의 자라지 못하고,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하며, 사탄의 영토요 들짐승들의 땅이다. 허기짐과 목마름, 불편함과 적막함, 생명의 위협과 약육강식이 거친 광야의 상황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비인간적인 상황 한복판으로 들어가셨다.

하느님과 함께 하지 않는 내 마음과 세속의 정신에 물든 자신이 광야요, 빈곤과 불의와 인간적 비참함과 집단적 이기주의가 펼쳐지고 있는 세상이 바로 광야이다. 그래서 광야는 하느님께로 되돌아가 참 나를 발견해야 하는 자리이자, 인간존엄을 위한 사회정의와 사랑의 연대를 살아내야 할 선택과 결단에 직면하는 곳이다. 이렇듯 광야는 유혹의 장소이자 하느님을 만나는 은총의 장소로서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이 있어야 할 곳이다.

이스라엘의 광야에서의 유혹 곧 이집트 병사들에게 쫓김, 목마름, 배고픔의 유혹과 예수님의 유혹은 나의 유혹이요 이 사회의 유혹이다. 재물, 명예, 권력으로 표현되는 이 유혹은 결국 왜곡된 힘의 덩어리이다. 마귀는 교만, 소유욕과 명예욕, 식욕과 성욕, 집단적 이기심을 자극한다. 그리고 마귀는 '나의 의지'라는 금송아지를 받들어 모시라고 부추긴다. 마귀는 때로는 돈으로, 때로는 여자나 남자로, 때로는 권력이나 육신의 안일함 등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사탄의 끈질김과 교활함을 간파하였던 성 프란치스코는 “감춰진 유혹이나 드러난 유혹, 갑작스런 유혹이나 끈질긴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소서.”(주님의 기도 묵상, 9절)라고 기도하였다.

내 인생의 광야,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받는 세상의 광야에서 찾아드는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우리 존재의 중심을 하느님께로 이동해야 한다. 이 세상의 가치들과 사물들과 사고방식들을 하느님 위에 두려는 일체의 성향과 행위가 곧 죄이다. 회개란 우리의 삶이 하느님께로 되돌아가 하느님 중심의 삶으로 바뀌는 것이며, 복음적 가치를 내 삶의 최상의 가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제 ‘멈춰 서서’ ‘나 자신’을 먼저 바라보며, 하느님의 힘에 철저히 의탁하도록 하자.

우리는 자기애착과 편의주의 때문에 삶의 광야에서 은총을 체험하지 못하고 유혹에 넘어지곤 한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욕과 오해와 멸시와 매 맞으심과 죽으심이라는 삶 전체를 통째로 바친 희생에 뒤따른 것이었음을 잊지 않도록 하자. 예수님께서 겪으신 유혹들은 한마디로 하느님을 인간의 가치나 질서 아래 두려는 왜곡된 인간 삶의 질서 의식이다.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뜻대로 하려는 태도가 문제다. 자기의지를 자기 소유로 주장하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영으로 가난한 사람이며 그는 참으로 하느님 나라에 속하게 된다. 내가 가난한 영을 지닐 때 비로소 광야에서 참 나를 만나고 정의와 사랑이 꽃피는 세상을 이룰 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유혹을 물리치심으로써 하느님께 친교의 예물을 봉헌하시자 광야가 성전으로 바뀐다. 이처럼 내 인생은 유혹이 많은 광야이지만 성전이 될 수도 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유혹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이기셨다는 점에 주목하자.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얼을 지니려는 노력이며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는 겸손한 자세이다. 우리 모두 예수님의 결의를 받아들여 자기 의지를 포기하고, 세상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 의지하고 순종하며 살아가자.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에 귀 기울임으로써 깨어 유혹에 빠지지 않게 될 것이다. 단식 또한 온전히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것으로서 온몸으로 기도하는 길이다. 단식은 기도의 영혼이고 자선은 단식의 생명이다. 자선으로 구체화하지 않는 단식이나 기도는 거짓일 뿐이다.

나아가 우리는 세상의 광야인 사회적 불의와 무관심, 집단적 이기주의로 인한 온갖 차별과 소외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슴 절절한 참회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의 부조리, 경제 정의와 분배 정의의 실종, 인간존엄성을 짓밟는 자본의 권력화와 우상화, 사회 갈등 속에 삶의 자리를 잃고 고통받는 이들을 외면히는 정치권력에 맞서는 연대 없는 회개는 거짓이다. 나아가 나의 참회와 사랑을 통해 한국사회의 광야가 사랑 가득하고 정의롭고 인간다운 은총의 바다가 되도록 행동하지 않는 신앙은 정신적 사치임을 명심했으면 한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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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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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2.18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2.1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2.18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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