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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강론 묵상

[스크랩] 3월 2일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제정신차려 주님께 되돌아가는 길♣>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3.02|조회수131 목록 댓글 2

사순 제2주간 토요일 

제1독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 미카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7,14-15.18-20
주님, 14 과수원 한가운데, 숲 속에 홀로 살아가는 당신 백성을, 당신 소유의 양 떼를 당신의 지팡이로 보살펴 주십시오. 옛날처럼 바산과 길앗에서 그들을 보살펴 주십시오. 15 당신께서 이집트 땅에서 나오실 때처럼, 저희에게 놀라운 일들을 보여 주십시오.
18 당신의 소유인 남은 자들, 그들의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는 당신 같으신 하느님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분은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 19 그분께서는 다시 우리를 가엾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들을 모르는 체해 주시리라.
당신께서 저희의 모든 죄악을 바다 깊은 곳으로 던져 주십시오. 20 먼 옛날 당신께서 저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야곱을 성실히 대하시고, 아브라함에게 자애를 베풀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1-3.11ㄴ-32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1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12 그런데 작은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 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14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15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18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20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22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25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26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27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29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30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31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님은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미카 7,18)
 

 

제정신차려 주님께 되돌아가는 길♣


인간은 무엇인가를 찾아 어딘가로 떠났다가 되돌아가는 '길 위의 존재'이다. 그런데 많은 순간 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원하는 것을 찾고 자기뜻을 이루려고 앞만 보고 달려갈 때가 많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가난한 사람들의 예언자 미카는 가난한 이들을 희생시키는 상류 계층의 불의에 대해 심판하고 있다. 그는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이 썩었음을 고발하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밝히시리라 예언한다. 그렇지만 그는 하느님께 용서를 빌면서, 그들의 죄를 눈감아 주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야훼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 (7,18-19). 하느님께서는 유배지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요르단 강 건너편의 비옥한 땅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자비심을 드러내시고 유배지에서의 기적을 되풀이하셨다. 이 기도속의 믿음은 죄를 기꺼이 용서하시는 주님의 한없는 자애에 기초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백성들이 불충실하다 해도 구원계획을 포함한 당신의 모든 약속들을 파기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허물을 용서해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며,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애를 품으시는”(미카 7,18-19) 분이시다. 하느님의 자애로 인하여 죄로 점철된 인간의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애에 대한 응답과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로서 끊임없이 회개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의 용서는 진정한 구원이며, 해방이며 혁신이며 아울러 새로운 창조이다. 하느님께서는 그저 고분고분하고 어정쩡한 부성애로써 우리의 허물을 모르는 채 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새로운 책임을 맡기시고 선으로써 악을 이길 수 있는 확신을 주신다. 이렇듯 그분은 죄인에게도 살아가는 기쁨을 다시 내려주신다.

잃었던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세관원들과 죄인들과 자주 어울려 식사하는 것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에게 하신 비유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들(작은 아들)을 반기시기에 바리사이들과 율사들(큰아들)도 하느님의 이 기쁨에 동참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자기 몫을 챙겨 아버지 집을 떠났던 작은아들은 제정신이 들자 뉘우치며 아버지에게 품팔이꾼으로라도 삼아주시길 바랐다(15,18-19). 아버지는 아들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15,20) 아버지는 원망도 질책도 하지 않고 그의 회개를 기뻐하며 오히려 잔치를 벌이고 아들로서의 자리를 회복시켜 주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자비를 이해하기는 했지만 동생에게 주어진 용서의 선물을 함께 기뻐하고 공유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큰아들도 잔치에 참가하여 함께 즐기기를 원하셨다.

생각해보자! 하느님과 함께 있고 그분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육(肉)의 영에 사로잡혀 아버지의 집, 곧 그분의 한없는 자애와 생명을 주시는 숨결을 거부한 채 자신을 찾아 방황한다. 거짓 허상을 찾아 떠돌며, 공허한 말잔치와 조화(造花)와 같은 어색한 아름다움에 속아 넘어가며 자기만족과 착각의 늪을 헤매고 있음도 알아채지 못한 채! 이제라도 하느님의 자애(慈愛)를 잊고 자애(自愛)에 몰주하여 자꾸만 주님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제정신을 차려’(15,17) 아버지께 되돌아가자. 한없이 자애로우신 그분의 사랑으로 매순간을 이어가면서도 대죄 중에 죽는다면 얼마나 무책임하며 비참한 일인가! 매순간은 그렇게 도전이다. 죽음과 죄와 육의 영에 사로잡히는 그 순간이 바로 아버지께로 되돌아가는 반환점임을 기억하자. 주님께서는 내가 돌아가기로 작정하기만 하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부터 달려오셔서 안아주실 것이다. 지금이 바로 되돌아가야 할 때이다! 그 길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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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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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3.02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02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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