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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강론 묵상

[스크랩] 3월 15일 사순 4주 금요일/ 요한 7,1-2.10.25-30<신앙인의 정체성과 소명의식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성자stellakang|작성시간24.03.15|조회수95 목록 댓글 3

사순 4주 금요일/ 요한 7,1-2.10.25-30

복음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2.10.25-30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셨다.
유다인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2 마침 유다인들의 초막절이 가까웠다.
10 형제들이 축제를 지내러 올라가고 난 뒤에 예수님께서도 올라가셨다.
그러나 드러나지 않게 남몰래 올라가셨다.
25 예루살렘 주민들 가운데 몇 사람이 말하였다.
“그들이 죽이려고 하는 이가 저 사람 아닙니까?
26 그런데 보십시오. 저 사람이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데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합니다.
최고 의회 의원들이 정말 저 사람을 메시아로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27 그러나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28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29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
30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지만,
그분께 손을 대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분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요한 7,30)



신앙인의 정체성과 소명의식 ♣


오늘복음은 요한복음 제2부의 시작부분으로서 예수님의 수난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죽이려는 유다인들의 음모를 알아차리시고 유다에서는 돌아다니기를 원치 않으셨기에(7,1) 갈릴래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셨습니다. 그러다가 초막절 축제를 맞아 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십니다.

예루살렘에는 이미 예수님을 죽이려는 유다인들의 음모가 사람들이 수군댈 정도로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성전에서 가르치시며 큰 소리로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 나는 그분을 안다. 내가 그분에게서 왔고 그분께서 나를 보내셨기 때문이다.”(7,28-29)

이렇듯 예수님께서는 살의로 가득한 유다인들 앞에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이심을 선언하시며(7,10. 28) 그로 인하여 닥쳐올 죽음을 준비하십니다. 곧 자신을 박해하며 죽이려하는 유다인들의 음모에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이런 예수님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요? 예수님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수난과 죽음의 길을 걷도록 이끈 요인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하느님의 아들이요 메시아로 파견되었다는 확고한 정체성과 아버지의 뜻인 인류 구원을 향한 투철한 소명의식이었습니다.

먼저 내가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이신 하느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처럼 다른 이들을 섬기며 살도록 불린 사람이라는 뚜렷한 인식이 없다면 무엇을 하든 자기 사업을 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유다인들처럼 눈이 멀어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비참함에 떨어지지 말아야겠지요.

다음으로 예수님처럼 투철한 소명의식을 지닐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분의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확고한 의식을 지녀야 합니다. 나아가 세상일이나 자신의 유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일을 하는 것이기에 가장 의미 있는 삶으로 초대받았음을 확신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고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은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철저히 실행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주님의 자비와 선, 정의와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이 세상에 하느님을 드러내려 할 때마다 “옳지 못한 생각으로”(지혜 2,1) 의인들을 질투하며 죽이려 음모를 꾸미는 이들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제아무리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세상의 유혹이 나를 끈질기게 뒤흔들려 해도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또한 적대자들의 박해와 음모 속에서도 목숨 바쳐 사랑으로 다른 이를 섬기셨던 예수님과 같은 투철한 소명의식을 지녔으면 합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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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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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조나단 | 작성시간 24.03.15 아멘 신부님 stellakang 님 고맙습니다.
  • 작성자아참 | 작성시간 24.03.15 삶이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세상의 유혹이 나를 끈질기게 뒤흔들려 해도 하느님의 자녀요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3.15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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