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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교구

두 번 낳아 주신 어머니 -이지민-

작성자2천사|작성시간23.01.11|조회수89 목록 댓글 0

 

1996MBC 4부작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이 영화의 제목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정말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이별 자체가 사람에게 있어서 극한의 슬픔이고 안타까움이건만, 그것을 아름답게 할 수 있다니 너무 미화시키는 것은 아닐까. 허나 준비된 이별은 남겨지는 자보다 떠날 자에게 더 아름답게 정리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기도 하리라. 자신이 떠날 시간을 미리 알고 준비하여 깨끗하게 정리하며 떠나는 모습. 그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건 불시에 이별을 맞이하는 것보다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겨질 자들도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다 해도 이별은 너무 슬프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한 줄만 읽어도 다 알만한 이야기다. 한 가족이 있고, 그 안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암에 걸려 곧 떠날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엄마에게 소홀했던 가족들은 뒤늦게 이 사실을 접하고, 엄마와의 시간과 모든 것을 소중히 하고 또 그 이별을 받아들이는 시간을 가진다. 하지만 알면서도 그 이별이란 시간을 받아들이기엔, 엄마라는 존재가 너무 크고 묵직하다. 사실 누구에게나 엄마라는 이 단어가 주는 느낌은 너무나도 따뜻하다.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느꼈던 따뜻함 때문일까? 엄마라는 단어에는 왠지 모를 따스함그리움이 담겨져 있다. 그렇기에 더 응석도 부리고 더 서슴없이 대하기도 하며 어떨 때는 문득 그립기도 하다. 그런 엄마가 떠난다니, 다 아는 이야기라도 그 소재의 진정성 때문에 이 영화는 그야말로 사무친다. 왜 하필 엄마일까. 엄마여서 더 슬프게 다가오는 걸까. 자식들을 위해 고생만 하신 것 같은 엄마여서 그럴까? 떠나는 순간까지 자식들과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 최근 본 영화 중에서 가장 많이 주체할 수 없는 진심의 눈물을 흘린 영화다.

내가 이 영화에 더욱 끌린 이유가 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하다고 한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어머니도 사람인지라 같은 사람을 두 번 낳을 수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어머니는 나를 두 번 낳아주셨다. 0000년 어느 날, 나는 응애, 응애하며 복스럽게 태어났다. 어릴 때는 특별히 예능에 남다른 재능이 있어 고전 무용과 피아노에 두각을 보였다. 학교에 들어가서는 학업에도 충실하여 전교 1,2등을 도맡아 하였다.

198994,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버스에서 내려 파란 신호등을 보고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승용차에 치여 죽었다. 운전면허증을 딴 지 7일된 초보운전자였던 것이다. 병원에 실려 가서도 나는 죽어 있었기 때문에 가해자는 경찰서에 가서 내가 빨간불일 때 건넜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아마도 가해자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사실 그때 나는 죽었었다. 가해자가 내 책가방을 뒤져 비상연락망 수첩을 찾아내어 친구에게 전화하여 부모님과 연락이 닿았다. 아버지가 친구 의사 선생님을 불러 수술을 하였다. 세월이 흘러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수술 후에 중환자실에서 간호를 하시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 의사들조차도 손가락질하고 비웃었다고 한다. 죽은 아이()를 간호한다는 이유였지 않았나 싶다. 기적(奇跡)은 아무에게나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간절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일어난다고 하였던가.

55일 만에 내가 눈을 뜨고 의식이 돌아온 것이다. 지금 생각하건대, 먼저는 하늘의 뜻이었고 다음은 부모님의 극진하고 남다른 간호로 기적적으로 나는 새로 태어났다. 이때부터는 나는 몸은 중학생이지만, 다른 건 모두 세상에 갓 태어난 아기였다. 아기는 그래도 몸뚱이라도 작으니 키우기가 훨씬 낫다. 나는 몸은 다 자랐고 정신은 아기니 키우는 부모님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었을 거다. 그래도 병원에 있을 때는 환자들만 있으니 모두 다 오십보백보(五十步百步)이니 괜찮았다. 그렇게 병원에서 일 여 년 있다가 퇴원을 하게 되었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적에 재미 삼아 배워서 따 놓은 어머니의 운전면허증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아침에 나와 같이 승용차로 등교를 한 뒤, 점심시간에 맞추어 어머니 혼자 도시락을 가지러 집에 오셨다. 학교에 다시 와 나에게 도시락을 전해주고는 운동장에서 기다리셨다. 행여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그러니 어머니는 어머니 개인 생활을 모두 접고 딸내미의 보디가드(body guard)가 되어야만 했다. 어머니는 혼자 집에 가셔서 저녁 도시락을 싸서 수업을 마친 나와 치료 받으러 병원으로 갔다. 차 안에서 나는 뻘거무리한 김칫국물도 흘려가며 도시락을 먹었다. 강행군이 따로 없었다.

어느 날 학교에서 큰 실례를 했다. 똥을 싸버린 것이었다. 집에 오면서 어머니께 사건(?)의 자초지종(自初至終)을 얘기했다. 고개를 숙인 채 어머니의 꾸지람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머니께서는 꾸중은커녕, 창피함과 놀라움에 떨고 있는 나를 달래주셨다. 내 앞에서는 강하게 말씀해주셨지만 부엌에서 밥을 하며 눈물을 훔치시는 걸 보았다. 내 앞에선 모든 걸 하시는 강한 분이시지만 어머니 당신도 아픔과 슬픔을 아는 여자라는 걸 느꼈다.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눈물이 없는 사람은 가슴이 없다. 그래서 바닥까지 추락해본 사람만이 눈물을 사랑한다. 바닥에는 가시가 깔렸어도 양탄자가 깔린 방처럼 아늑할 때가 있다. 더는 내려갈 수 없는 나락에 떨어지면 차라리 다시 일어나서 오를 수가 있어 좋다. 그래서 사람은 자기가 흘린 눈물만큼 인생의 깊이를 안다. 더 나아가 눈물보다 아름다운 것은 다시 시작하는 용기와 희망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어느 날, 학교에서 몸이 아파 어머니께 짜증을 부렸다. 어머니의 위로를 속으로 바라면서. 내 투정을 들으신 어머니는 한 치의 위로도 없이 아주 결단력 있게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우리 지민이 이제 다 나았구나! 네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는 아빠랑 엄마가 네 발을 꼬집고 때려도 꿈쩍도 않더니만 이제는 아픈 것도 느끼니, 얼마나 좋냐!

몸이 불편한 딸내미가 학교에서 아팠다고 하면 어리광이라고 할지라도 같이 아픈 척이라도 해주며 위로해주는 것이 일반적인 엄마의 대본아니던가. 아무리 내가 특별한 경우라고는 하지만 의외의 어머니 반응에 나는 무척 황당해했다.

누구에게나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한 머니(money)어머니이다. 나에게는 한 번 낳았지만 두 번 시작부터 길러주신 남다른 특별한 어머니다. 사람 행세할 만큼 길러주셨으니, 이제는 딸내미인 내가 어머니를 편안히 모실 차례이다. 참 감사할 뿐이다. 나는 참으로 복이 많다. 이렇게 멋쟁이 어머니를 아무나 가지나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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