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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부교구

상추밭 가는 길

작성자한동수|작성시간16.06.05|조회수191 목록 댓글 5

 

 

 

책장을 정리하다가...

오래된 노트를 발견했습니다.

언제적 것인지도 모르는 책갈피를 뒤적이다 보니...

재미있는 시가 적혀 있습니다.

작자가 누구인지는 적혀 있지 않고 시 구절만이 쓰여 있습니다.

 

<상추밭 가는 길>

 

눈 비비며 깨어난 햇살 데리고 상추밭에 간다.

발소리에 깨어난 흙들이

푸슬 푸슬 잠을 털며 따라나선다.

들풀들이 길섶으로 그리움을 나열한다.

가운데 들어선 신명난 바람들이

한판 멧굿을 벌이며 길잡이가 된다.

밤새 별을 안고 구른 조약돌만

아직도 이슬 덮고 누워 있다.

 

하찮은 들녘의 글자들 뒹구는 길에

아침은 부풀거나 꾸미지 않은 채로 오고

아무것도 아닌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연들을 이끌고

잎 넓은 편지지를 뜯으러

이슬젖은 새벽길을 나선다.

 

한 소절 소절마다...

어쩜 이리도 아름다울 수가...

누구라도 이 시를 읽어 보면

아름다운 아침 풍경이 그려질 것입니다.

 

갑자기 눈가가 축축해집니다.

 

시인은...

 어쩌면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부풀지도,꾸미지 않고 오는 아침...

발소리에 깨어나는 흙들...

멧굿을 벌이는 신명난 바람...

이슬 덮고 누워 있는 조약돌...

 

오늘 새벽에,

눈부시게 노란 코스모스랑...

이제는 지려는지 빛이  바래가는  울타리의 넝쿨장미를 바라보며 

이슬젖은 풀들을 툭툭 발로 채며 상추 밭에 올라가서

상추를 뜯어 내려왔는데...

 

장 시간 앉아서 정리하다 보니...

옆구리가 꿰는 듯 아파서 지금도 허리를 제대로 펼수가 없으나

뜻하지 않은 추억으로의 여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창조주이신 하느님에 대한 묵상도...

 

가끔은 정리도 필요하단 생각이 듭니다.

생활의 정리도 생각의 정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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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이팝꽃 | 작성시간 16.06.05 시도 참 좋지만 오래간만에 대하는 한동수님의 소식이 더 반갑습니다.
    잔잔하게 풀어 놓는 한동수님의 글이 참 좋습니다.
    건강하세요^^~~
  • 작성자햇살타고 | 작성시간 16.06.06 인터넷에" 상추밭 가는 길" 시가 있습니다.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글입니다.
    저는 식전에 묵주알 굴리며 밭으로 나갑니다.
    마늘과 감자,그리고 참깨와 기장조가 턱하니 거기에 있습니다.
  • 작성자나무로즈마리 | 작성시간 16.06.07 동수형님. 추억으로의 여행길..... 행복하게 함께 했습니다. 프로로 글을 쓰셨으면 멋진 작가가 되셨을 것 같아요,
    이 아침 아련한 추억 여행길... 이제 깨어나 부지런히 일터로 가야겠습니다.
  • 작성자솔~♣ | 작성시간 16.06.07
    시인이 상추밭 가는길에는 아기자기 기쁨의 친구들이 참 많은듯싶군요. ^^*
  • 작성자글라라120 | 작성시간 16.06.13 새벽에 주말농장 가는 길에 보는 채소들은 그대로 천국이에요. 꾸밈없는 자연스러움, 소박함, 부지런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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