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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구

[스크랩] 개미와의 동거

작성자햇살타고, 마리아|작성시간24.04.05|조회수160 목록 댓글 3

 

개미와의 동거

신상숙

 

   햇살이 정겨운 오후,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잔디밭에 돋아난 잡풀을 뽑기 시작했다. 노란, 하얀 민들레가 제 몫을 다하고 솜뭉치를 날리며 둥실둥실 떠다니는 모습이 내년에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는 듯하다.

 

   호미로 풀을 뽑아내면 잔디도 함께 뽑혀서 칼로 조심스럽게 도려내야 한다. 이른 봄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주던 민들레가 내 손에 무참하게 잘리고 말았다. 보리밭의 가라지도 아닌 민들레를 굳이 없애야 하는 이유는 잔디를 곱게 가꾸려는 내 욕심 때문이다. 그러다가 신기한 것을 보았다. 민들레 주변에 개미가 흙을 수북하게 쌓아 올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개미가 민들레 수액을 먹으려고 그곳에 집을 지었나 생각했는데, 또 다른 일년생 화초에서도 같은 것이 보였다. ‘아뿔싸! 민들레를 기둥 삼아 집짓기 하는 걸 모르고 뭉개 버렸으니 이를 어쩌나, 후회하였을 때는 이미 개미가 흩어지고 난리가 난 후였다.

 

   추운 겨울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얼어 죽지 않고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잔디밭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개미들의 일하는 모습이 보인다. 주변에 먹을 것이라도 있으면 떼거리로 달려들어 분주하게 움직인다. 먹을 것이라야 사람이 버린 음식물 찌꺼기와 죽은 곤충 따위를 비롯해서 개가 흘려놓은 개밥 정도인데, 그것을 먹으려고 떼로 몰려와 제집으로 끌어들인다. 어떤 놈은 제 몸집보다 더 큰 먹이를 입에 문 채 앙증맞게 기어가는 모습에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뉘엿뉘엿 해가 넘어갈 무렵 개미가 이동하는 모습을 쪼그리고 앉아 들여다보았다. 한참 들여다보아야 움직임이 겨우 보이는 아주 작은 개미들이다. 옛 어른 말씀에 개미가 이사하면 장맛비가 온다는데, 곤충에 불과한 개미가 자연의 섭리를 어떻게 알았을까 싶다. 더구나 콘크리트길 위를 질서 있게 기어가는 모습에 탄성이 나온다. 무리가 이동하면서 여왕개미와 어린 새끼는 어떻게 하였는지 인솔자도 보이지 않는데, 흐트러짐 없이 이동하는 모습은 사람들이 좀 배웠으면 했다.

 

   텃밭에서 잡풀을 뽑다가 실수로 건드린 개미집 속에 밥풀같이 하얗게 생긴 것이 바글바글한다. 이런 내 불찰로 개미들에게 큰 실수를 한다니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어서 얼른 흙으로 잘 덮어주었다. 개미는 행여 적의 공격을 받아도 빠른 시간에 원래대로 복구가 가능하다. 그걸 보면 부지런하고 근면 성실한 사람을 비유하여 개미같이 일한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말이다.

 

   흰개미는 목재를 파먹기 때문에 건축물을 망가뜨리고, 집개미는 집안에서 세균을 옮겨놓아 불결하기 짝이 없다. , 불개미는 농작물 먹어 치워 농부들에게 큰 피해를 준다고 한다. 하지만, 집 근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은 개미는 자신의 영역을 건드리지 않으면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않는 착한 애들이다. 그들은 민들레에 기생하며 먹이 취하는 게 아니라 민들레를 기둥 삼아 집을 짓는 것이었다. 여름 장마 때 물이 불어나면 기둥을 타고 올라가 삶을 보존하려고, 피신하기 좋은 자리에 집짓기 하는 걸 내 실수로 부숴버린 것이다.

 

   장맛비가 그치고 난 후 풀숲이나 축축한 땅 위로 날개 달린 개미들이 무리 지어 날고 있었다. 땅 위에서 기어다녀야 할 개미 떼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을 보니, 녀석들의 짝짓기 철이 되었나 보다. 싸움하는 병정개미는 생식능력이 없고 일을 도맡아 하는 일개미는 날개가 없다. 생식 능력이 있는 암수가 짝짓기를 위해서 결혼 비행을 하는 것이라니 참으로 신비롭다. 그들은 넓은 창공을 신방 삼아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멋지게 짝짓기 하는 것이다. 결혼 비용을 장만하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혼수 문제로 파경에 이르는 사람에 비하면, 하늘을 날면서 결혼식을 올리고 자식 낳고 번성하는 그들에게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건조한 풀밭이나 돌 틈 사이, 소나무 아래가 개미들의 보금자리다. 마당 한 귀퉁이를 그들에게 내어준다고 우리의 삶이 변하는 것도 아닌데, 내 필요에 의해서 개미들의 터전을 부숴버린 꼴이 되었으니, 자연 속에 함께 있으면서 아름다운 자연을 그들과 함께 나누지 못할 정도로 옹졸한 내 자신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시원한 소나무 그늘에서 새들의 노랫소리 들으며 나비들 춤사위도 보고 싶고요, 따뜻한 햇살에 볼 비비며 사랑도 하고 싶다고요. 맛있는 과일 혼자 드시고 이 좋은 시골 구경 혼자 하시렵니까?’ 개미들의 외침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이제 잔디밭을 거닐 때마다 종아리로 기어오르는 개미에게 생각 없이 내리치던 손길을 멈추게 되고, 내 부주의로 하찮은 곤충의 생명도 다치지 않을까 조심한다. 그들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을 사랑하며 마당 한 귀퉁이를 그들에게 내어주면 어떨까? 어릴 적, 장난삼아 개미집을 헤집어놓고, 보태서 개울물에 떠내려 보내기도 했으니, 늦게나마 사과하는 뜻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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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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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엠마우스 요셉 | 작성시간 24.04.05 개미는 검정개미. 횐개미, 불개미중 흰개미가 젤 문제 담은 불개미 ...
    꿀병에든 꿀을 떠먹고 흘렸는지 시골집에 오랫만에 가보니 주방 바닥이 불개미 좁쌀만한 것 부터 긤정개미가 안방에도 득실거려 징그러워서 약을 뿌리고 일주일 후 다시 가보니 개미 무덤이 되었네요 미안하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지만
    개미와의 동거라기 보다는 전쟁을 치렀네요 따듯한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하세요 상숙 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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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햇살타고, 마리아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4.04.11 요즘 쌀바구미와 전쟁 중
  • 답댓글 작성자엠마우스 요셉 | 작성시간 24.04.12 햇살타고, 마리아 벌레도 약 뿌려봐야 그때뿐 나라가 조용해야 농사도 풍년이 드는데...
    애고 이겐 뭔 꼴인지
    잠이니 잡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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