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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교리] 여기에 물이 있다 ㅡ 뜬금없이 보여도 그냥 믿자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작성시간23.04.25|조회수116 목록 댓글 4


뜬금없어 보여도 그냥 믿자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이 터무니없는 일처럼 보일때가 있습니다.
모순이요 부조리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과 모리아 산에 올랐고,
욥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종기를 긁어야 했으며,
다윗은 동굴에 숨었고, 엘리야는 사막으로 힘없이 걸어 들어갔으며,
모세는 언제나 어떻게 해야 할지 하느님께 여쭈었습니다.

이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하느님께서는 무관심하고, 무기력하며,
심지어 적대적이라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위기의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들은 혼란스럽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의 기로에 서 있었습니다.

화를 내면서 돌아설 것인지, 아니면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해야 했습니다.
그때 그들은 모두 '신뢰의 길'을 택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신앙의 거인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인 키에르케고르는 혹독한 믿음의 시험을 견디고
살아남은 욥과 아브라함 같은 인물들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욥과 아브라함이 시험을 받을 때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모순된 모습으로 당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분은 아니셨지만, 분명히 그렇게 보였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 부조리하게 보이는 하느님을 신뢰하면
예상치도 못한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C.S. 루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올가미에 걸린 개를 풀어 줄 때, 아이의 손가락에 박힌 가시를 빼 줄때,
아이에게 수영하는 법을 가르칠 때, 물에 빠진 사람을 구조할 때,
초보 등산객과 험난한 등산 코스를 오를 때,
그들을 머뭇거리게 하는 치명적인 장애물은 불신이다.

우리는 곤경에 빠진 이들에게 비록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에 확신이 없더라도 일단 믿을 것을 요청한다.
조금 위험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전하다는 사실을 믿으라고 한다
개의 앞발을 올가미 속으로 더 집어넣는 것은 그 속에서 발을 완전히 빼내기 위한 방법이다.

가시를 빼낼 때의 아픔을 참아내면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된다.
수영 또한 언뜻 보기에 그냥 빠져 버릴 것 같지만
물은 저항력이 있어 몸이 뜰 수 있도록 받쳐 준다.

좀더 높고 노출된 암반 위에 올라야 산에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
그런 행동을 유도하기 위해 우리가 상대방에게서 끌어내야 할 것은 신뢰다.
그런 신뢰는 확실한 증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기보다는 감정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가 낯선 사람이라면,
그들은 우리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고 나서 우리를 믿어야 할지 결정할 것이다.
때때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불신 때문에 효과적으로 도울 수 없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안전에 대한 증거가 부족하거나 미흡함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를 믿어 준다면,
우리는 성공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그러한 믿음을 요구하는 것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또한 우리를 신뢰했다는 이유로 아무도 그들을 비난하지 않는다.

자기를 도와주려는 사람을 믿었다고 해서 그 개나 어린아이를 어리석다고 욕할 사람도 없다.
그리스도교의 전제를 받아들인다는 말은 하느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다는 뜻이다.

마치 도움을 받은 개와 어린아이처럼, 아니면 물에 빠진 사람이나 초보 등산객처럼
철저하게 자신을 내맡기는 것을 말한다. 아니 그 이상의 믿음이 요구된다."

루이스의 말처럼 그냥 믿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이해가 안 가더라도 한번 덥석 맡겨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심리 요법 가운데 '행동치료요법(行動治療療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요법은 어떤 특정한 상환에서 "마치 ...처럼 행동하라"고 유도합니다.

변화가 반드시 "일어날 것처럼 행동"함으로써 실제 행동을 위한 동기를 지속적으로 유발하는 것이
치료 효과를 가져온다고 합니다. 성자(聖者)가 되기 위한 길은 성자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남편을 정말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 없다면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입니다.
남편에게 애정을 표시하고 선물을 주며 상냥하게 대하면, 그런 행동을 할 때 품었던 사랑의 감정이
구체화되어 나타난다고 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이와 비슷합니다.

믿음의 출발은 "나에게 믿음이 생겼다."고 행동함으로써 시작됩니다.
성서에 있는 하느님의 모든 말씀이 사실인 것처럼 믿고 행동함으로써신앙 생활이 영위됩니다.
믿음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만약 하느님을 강하고 깊게 체험한 적이 없다 해도,
하느님을 사랑 많은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내 이웃들을 진실로 하느님을 닮은 존재들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나를 용서하신 것처럼 내게 잘못을 저지른 그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믿어가는 과정입니다.

셀던 배너켄(Sheldon Vanauken)의 말에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믿기로 결심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 결정이야 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다.
나는 의심을 품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단, 의심을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간구할 따름이다.

'주님, 제가 믿나이다. 저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소서.'"

토마스 머튼의 말이 이 장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겸손한 복종과 사랑으로 하느님께 완전하게
자신을 드리는가에 비례해 그분을 알게 된다.
그분을 본 다음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먼저 행동하라. 그러면 보인다.....

하느님을 믿기도 전에 그분을 분명하게 보려고 기다리는 자들이
믿음의 여정을 시작조차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여기에 물이 있다/ 차동엽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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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하늘 바래기 | 작성시간 23.04.25 "우리가 얼마나 겸손한 복종과 사랑으로 하느님께 완전하게
    자신을 드리는가에 비례해 그분을 알게 된다."

    아멘~!
    오늘도 그분과 함께하는
    보람된 하루가 되도록 삽시다.
    아우님! "화이팅~!"
  • 답댓글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25 형님, 고맙습니다.
    활찍 핀 봄꽃과 함께 오늘도 행복하십시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엠마우스 요셉 | 작성시간 23.04.25 엊그제 꾸리아당장님이 하시는 말씀 신부님이 레지오 모임을 신앙을 모임이어야지 친목을 위주로 하면 아니다 하셨다는데...
    뭐가 마즈는건지 모이면 기도하지 뭐 잡소리만 하다 가는가!

    그랬다

    뽜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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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4.25 ㅎ.ㅎ.
    레지오가 원래 그런 다소 이상한 단체 아닙니까?

    그래도 레지오 기도 무시하면 안됩니다.

    아마 성모님 매일 쳐다보며 빙그레 웃는 모습 생각하고 소주도 한잔 하십시오.

    형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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