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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교리] 여기에 물이 있다 ㅡ 제자의 길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작성시간23.06.24|조회수124 목록 댓글 10

[차동엽 신부] 여기에 물이 있다/제자의 길


예수님은 다른 스승들이 추론(推論)한 것을 가르쳤고, 다른 스승들이 가르친 것을 명령(命令)하셨습니다.

다른 스승들은 진리를 터득하여 가르칠 수밖에 없었기에 추론의 방법을 택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이 진리 자체이시기에 추론할 필요 없이 바로 가르치실 수 있었습니다.

다른 스승들이 추론을 통하여 확실한 진리로 파악해서 가르친 것,
그것은 예수님께는 이미 확실한 실천 명제였습니다.
그래서 불확실한 것을 확실하게 선포하셨고, 확실한 것을 실행토록 명령하셨습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예수님이 이렇게 명료하게 가르치시고 명하셨어도 그것을 제자들이 다 알아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실 열두 사도는 객관적으로 교육 수준에서 봤을 때
예수님의 가르침을 수용할 만한 지적 능력이나 지혜가 부족했을 듯 싶습니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당신 제자들에게
"아직도 너희는 이해하지 못하느냐?"하고 하신 말씀이 17번이나 나옵니다.
쉽게 말해서"아직도 모르느냐?"는 핀잔의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우리는 다른 각도에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진실로 요구한 것은 당신 말씀을 알아듣는 '지성' 이 아니라,
낡은 비전을 버리고 '새로운 비전'을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굳은 신앙의 문제이며 깊은 신뢰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모자라는 지성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도 그들이 알아듣지 못했던 것은
낡은 비전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사도들은 그들을 행복하게 해줄 그 무엇을 나름대로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물질적인 풍요, 즉 고기가 가득 찬 배, 여러 척의 배, 배부름과 부유함을 꿈꾸었을 터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그들 삶의 한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 그들의 세속적인 욕망을 깨뜨리고
그들의 자기 중심적이던 꿈을 부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전혀 새로운 삶의 목표를 제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작 그들에게 필요했던 것, 그러나 실로 이루어지기 힘들었던 것은
예수님 말씀을 알아듣는 지성이 아니라 바로 삶의 태도를 바꾸는 회개였습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사도들은 예수님의 매력적인 인품에 끌려 배와 그물 그리고 생업까지 포기하고
예수님을 따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미련이 남아 있었습니다.

과거에 하던 대로 살고 싶어, 그것이 옳은 것 같아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찝찝한 여운이 남아 있었습니다.

여전히 그들 자신의 꿈, 계획, 민첩하게 쌓아 올린 행복의 원칙 안에는 원수를 사랑하고,
물질적 소유를 포기하고, 원치 않는 길을 함께 걸어가고,
혹은 다른 쪽 뺨마저 내어 주라고 하는 그런 계명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렇게 물으셨던 것입니다.
바꾸어 말할 때 이는 다름 아닌 다음과 같은 물음인 셈입니다.
"아직도 미련이 남아 있느냐?
너의 무엇이 낡은 비전을 버리고 새 비전을 취하지 못하게 한단 말이냐?"

이와 똑같이 예수님은 오늘 당신에게도 물으십니다.
"아직도 모르겠느냐?"
그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마다 자신들의 관점에서 들었습니다.
이전의 습관, 타성, 아집을 버리지 않은 채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들이려 했습니다
.
그러니 이해도 안 되고 수용도 안 되었습니다.
자신의 잣대를 버리지 못하니 예수님의 잣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님의 잣대에 우리를 맞추어 새롭게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스승이라면 우리는 모두 제자가 됩니다.
그분이 탁월한 권위로 가르치셨기에 우리는 모두 당당한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유다인의 전통에서 '제자(그:mathetes)'는 엄격하게 '전문가로서 스승'의 권위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예컨대, 율법을 중히 여겼던 바리사이인의 제자'는 문헌과 구전으로 전해진 율법에 헌신함과 동시에
자신들의 스승인 랍비의 해석과 지도에 전적으로 의존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사제 관계는 율법에 대한 '학습 과정'에 한정되어 성립되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의 '삶 전체'를 스승을 따르는 데 바쳤습니다.
이들은 스승 세례자 요한을 따라 금식도 하고 기도도 했고(마르 2,18; 루가 11,1 참조),

스승이 투옥된 기간에도 그리고 그가 죽음을 맞이했을 때도 변치 않고 충성을 다하였습니다.(마태 11,2; 마르 6,29 참조).
바리사이인의 제자들과는 달리 그들은 스승의 가르침을 배웠을 뿐 아니라 스승을 위해 기꺼이 투신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가 된다는 것과 거의 비슷하면서
새로운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성격을 띱니다.

첫째, 예수님이 '먼저' 부르셨습니다.
랍비들의 세계에서는 제자가 자신의 스승을 선택하여 그의 학교에 자발적으로 지원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먼저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은 대단히 비싸고 전인적인 희생을 요구하는 부르심이었습니다.
이에 기꺼이 응한 이들만이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씀이 어려워서야 누가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요한 6,60)하고 예수를 떠났습니다.

끝까지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격려의 말씀을 주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요한 15,16).

성부,성자,성령의 주도적인 부르심에 대한 이 천명은 결국 제자들에게 흔들리지 않고
담대하게 예수님을 증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둘째, 제자들이 따를 것은 '예수님 자신'이었습니다.
"나를 따르라." 예수님 외에 감히 누가 이 엄청난 요구를 할 수 있겠습니까?

유다 랍비는 고작 율법에 대한 자신들의 가르침을 따를 것을 제자들에게 요구한 정도였습니다.
그리스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철학 노선을 따를 것을 제자들에게 기대하는 수준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의 가르침뿐 아니라 당신의 삶 전체를 따르는 전인적인 추종을 요구하셨습니다.
이는 당신 자신이 길(요한 14,6 참조)이니 당신 자신을 따라야 한다는 권고임과 동시에
당신의 사명 수행에 동참하여 '동지'가 되자는 초대였습니다.

부처님이 죽을 때 그의 제자들은 어떻게 하면 자기들이 그를 가장 잘 기억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애써 자신을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아니라 그의 가르침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는 유명한 얘기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에게 있어서는 전혀 다릅니다. 그의 가르침이 중요한 것 이상으로 그와의 인격적인 만남이 중요합니다.

제자의 길은 그를 사귀는 것이며, 그를 사랑하는 것이며, 그를 믿고 그를 따르는 것입니다.

셋째, 제자가 갈 길은 '순종'이었습니다.
순종은 동서의 여러 문화에서도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스승에 대한 제자의 도리입니다.

예수님 역시 엄격하게 제자들의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

자신에게는 '아니'라고 말하고 예수님께는 "예"라고 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절대 순종의 삶을 예수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자고로 "제자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아야 한다"고 했을 만큼 제자가 스승에게 드리는 예(禮)는 엄격했습니다.
하물며 하느님의 아들이시요, 영원한 생명의 주관자이신 예수님께는 어떻게해야 마땅하겠습니까?

가르침을 왜곡하거나 적당히 여기지 않고 그것 아니면 다른 길이 없는것처럼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을 모델로 삼아 그대로 닮고자 해야 합니다.
상황 속에서 들려오는 그분의 명(命)을 즉시 따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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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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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6.24 예, 형님도 즐거운 주말 되십시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하늘 바래기 | 작성시간 23.06.24 ㅎㅎㅎ 사는게 쉬울겁니다.

    아우님!
    탐욕과 시기심과 집착만 없애면
    모두가 부처요 모두가 하느님이 된답니다.

    오늘도 마음을 닦고 비우는 천사로 살아봅시다.
  • 답댓글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6.25 ㅎ.ㅎ.
    형님, 옳습니다.
    마음을 닦고 비우는 천사로 살아 봅시다.

    우리보고 하느님 되라고 하면 전 안 할랍니다.

    그러나 탐욕과 시기심과 집착은 없애고 싶습니다.

    이렇게 욕심은 물불을 안가리니 원...

    오늘도 행복하십시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김광시 | 작성시간 23.06.25 감사합니다 💖💖💖
  • 답댓글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6.25 고맙습니다.

    항상 주님의 은총 속에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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