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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동엽 신부의 교리] 여기에 물이 있다 ㅡ 은혜로운 교회생활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작성시간23.07.28|조회수101 목록 댓글 6


은혜로운 교회 생활


<홀로'가 아니라 '더불어' 이다 >
종교마다 신앙 생활의 방법이 다릅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리스도교의 길은 불교의 길과 확연하게 다릅니다.

불가(佛家)에서는 '홀로'의 길을 택합니다.
입산수도(入山修道)하기 위하여 출가(出家)합니다.

홀로 토굴을 파고 수년간의 면벽수행(面壁修行)을 하기도 합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던 부처님 말씀처럼 오로지
'나(我)'만을 번뇌의 화두(話頭)로 삼습니다.

'나'를 내관(內觀)하면서 가아(假我)를 버리고 진아(眞我)를 찾기 위함입니다.

이 길을 택한 사람은 그 무엇에도 한눈 팔지 말고 '혼자서'가야 합니다.
그래서 숫타니파타경에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시가 있습니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괴로움이 따르는 법
연정에서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숲 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FONT>

반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더불어 함께'의 길을 택합니다.
성서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模像)'을 지녔다고 얘기합니다.
인간은 하느님의 본성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본성은 삼위일체(三位一體)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의 관계로 드러납니다.

곧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풍요로운 나눔과 친교가 하느님의 본모습 입니다.

이들 세 위격(位格)이 각각 서로에게 '너(=삼위)'이면서 동시에 '
나(=일체)'라는 것이 삼위일체의 신비입니다.

서로 '너'이면서 '나'가 될 수 있는 것은 사랑의 연대가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인간은 이 나눔, 친교, 사랑의 연대를 본성으로 하는
하느님의 모상을 지녔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너'를 필요로 하는 존재요, 너와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존재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교에서는 성자(聖者)가 되기 위해 '입산수도','면벽수행'이 아닌 '이웃 사랑'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은수자(隱修者)들이 있었고 수도생활(修道生活)의 전통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서도 공동체는 빠뜨릴 수 없는 요소였습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주류가 '공동체 생활'과 '이웃 사랑'
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공동체 안에서 교우들과 더불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서로 의지해 가면서 합심하여 신앙 생활을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특히 교회가 믿음이 약한 사람을 도와 줘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믿음이 강한 사람은 자기 좋을 대로 하지 말고
믿음이 약한 사람의 약점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로마 15,1).

교회를 떠난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떠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을 떠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에 충실하다는 것은 바로 교회 생활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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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답댓글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8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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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손빈Youn | 작성시간 23.07.28 감사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8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댓글 첨부 이미지 이미지 확대
  • 작성자창수선화 | 작성시간 23.07.28 아멘! 감사합니다~ ❤
  • 답댓글 작성자박종해 스테파노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3.07.28 아멘.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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