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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교구

감곡 매괴 성모 순례지 성당

작성자숲꽃향기|작성시간12.05.26|조회수550 목록 댓글 8

 

 

 

 

 

 

 

 

 

 

 

 

 

 

 

 

 

 

 

 

 

 

 

 

 

 

 

 

 

 

 

 

 

성가정상

 

 

 

 

 

 

 

 

 

 

 

 

 

 

 

 

 

 

 

 

 

 

 

 

 

 

 

 

 

 

 

 

 

 

 

 

 

 

 

 

 

 

 

 

 

 

 

 

 

 

 

 

 

 

 

 

 

 

 

 

 

 

 

 

 

 

 

 

 

 

 

 

 

 

 

 

 

 

 

 

 

 

 

 

 

 

 

충북 음성군 감곡면 왕장리(忠北 陰城郡 甘谷面 旺場里)에 있는 감곡성당은 충북에 최초로 설립된 성당으로,

본래 1894년 봄에 소신학교가 자리잡은 경기도 여주군 강천면 소재 부엉골(부흥골)본당 신부로 부임하여

전교하던 '임 가밀로'(Bouillon Camillus, 부이용, 한국명: 임가미任加彌, 1869.12.19-1947.10.25) 신부가

본당 위치로 적당치 않음을 알고 장소를 물색하던 중, 1896년 5월 매산 언덕 밑의 109칸 짜리 기와집과 터를

매입하여 그해 9월 17일 부엉골을 떠나 감곡으로 본당을 이전하고 본당설정 초대 신부로 부임하였다.

그 집은 임오군란때 명성황후가 일시 피신해 있던 명성황후 6촌 오빠인 충주 목사인 민응식(閔應植, 귀양살이

중 행불)의 집으로써 처음 10만냥을 호가하다가 명성황후가 일본 낭인들의 시해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

났다. 감곡도 의병들이 민응식의 집을 본부로 삼아 의병을 일으키자 일본군이 급습하여 대저택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임 신부는 8백 60냥으로 집터와 일대의 토지를 구입하였다.

처음 '매괴의 동산'으로 부르고 성당과 학교를 지어 성당이름을 장호원성당, 매괴소학교(장호원제일공민학교가

있었음으로)로 이름지었으나 이후 일제가 경기 장호원에 성당을 지어 장호원성당이라고 하자, 충북 장호원(감곡)

에 있는 이 '장호원성당'을 '감곡성당'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러한 사연을 알고있는 고향사람들은 '감곡성당'을 '매괴성당'으로 부르고 있으며 현재는 순교성지로 지정받아

순례자들이 줄을 잇고 있다.

 

명동성당의 축소판과 같은 인상을 주는 성당은 1928년 착공, 1930년 준공됨. 프랑스 외방전교회 소속 시자레

(Chizallet)신부가 설계하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하였다.

길이 40m, 넓이 15m, 종탑높이 36.5m가 넘는 현재의 고딕식 붉은 벽돌조다.

태평양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1943년 7월 임 신부가 연합국인 프랑스인이라는 이유로 서울 용산신학교에

연금하고 기도장소에 신사터를 닦으려다 실패했다고 한다. 광복 후 임 신부는 다시 부임 전교 활동을 하다가

1947년 10월 25일 51년간 한국에서 봉사하다 선종했다.

1953년 메리놀 외방전교회에서 관할하는 충북에 감목(監牧) 대리 구가 설정됨으로써 파지(James v, Pardy, 巴)

신부가 9월 메리놀회 신부로는 처음으로 부임하게 되었고 1958년 청주대목구설정이 있은 후 본당 주임이시던

파 야고버 신부가 주교로 성성되어 제1대 청주 교구장이 되었다.

그 후 메리놀회 소속 미국 신부들이 전교 및 사목 활동을 하다 1970년 정진석(鄭鎭奭)니꼴라오 주교가 2대

청주 교구장으로 임명되어 성성식을 가짐으로써 교구사목권이 명실공히 한국인 주교가 활동하는 자치교구가

되어 1970년대부터 한국인 신부들이 전교와 사목 활동을 하게 되었다.

'임 가밀로' 신부의 3번 째 성당으로 성당이 산 중턱에 자리하여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릴뿐만 아니라 건축학적

으로도 아름다운 건물이라 충청북도에서는 서양식 건물로는 최초로 1996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188호로

지정하였다.

이 성당은 남양성모성지에 이어서 우리나라 두 번째의 성모순례지.

 

 

 

 

* 기적 하나
6.25때 인민군이 매괴성당을 점령한 후 성전을 자기네들 회의 장소로 사용하였는데
인민군 병사 하나가 성모상을 보고 "어떤 여편네가 남자들을 째려보냐?"며 성가대석으로

올라가서 성모상을 향해 7발의 총알을 쏘았다. 석고로 만들어져 한발의 총알에도 박살이 나야 할

성모님은 7발 총알을 맞고도 멀쩡하였고 화가 난 인민군은 따발총을 다시 난사 했지만 그때는

단 한발도 성모님께 맞지 않고 모두 피해가며 벽 쪽으로 흩어졌다. 머리 끝까지 화가 난 인민군은

사닥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성모님을 망치로 내리치려고 했다. 순간 성모님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는데 엄청난 빛이 쏟아져 놀란 그는 손에 들려있던 망치를 버리고 혼비백산하여

도망가고 말았다. 이때 인민군이 처음에 쏜 일곱 발의 총탄은 성모님의 몸에 총알이 박힌

구멍만 남겼을 뿐 뒤로 빠져나간 흔적없이 일곱 발의 총알을 성모닌 당신 몸에 품고 계신다.
오른쪽 가슴에 한 발, 아랫배에 두 발,옆구리, 허벅지에 각각 한 발씩 쏘아서 남은 흔적을

사람들은 "성모 칠고"라고도 한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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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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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댓글 작성자숲꽃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11 고맙습니다...^^*
  • 작성자포도아짐 | 작성시간 12.06.10 마치 성지를 다녀온 듯 합니다. 좋은 자료 김사합니다.
    더위에 건강 조심하시고 즐건 휴일 보내세요.
  • 답댓글 작성자숲꽃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11 네...고맙습니다.
    포도아짐님도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셔요. ^^*
  • 작성자산숲나라 | 작성시간 14.03.31 작년부터 준비하고 있는데 2014년에는 감곡매괴성지의 숨결을 느껴보렵니다.
  • 답댓글 작성자숲꽃향기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4.03.31 산숲나라님 덕분에 올린 사진을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올봄에 한 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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