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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구

【생활 속의 복음】삼위일체 대축일-삼위일체, 사랑의 신비는 우리의 표양

작성자실비아메이|작성시간12.06.01|조회수12 목록 댓글 1

생활 속의 복음삼위일체 대축일-삼위일체, 사랑의 신비는 우리의 표양
서광석 신부(전주교구 신풍본당 주임)

오늘 삼위일체 대축일 복음에서 예수님은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신다.

 성삼위 각각의 위격과 본성은 동일하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 하느님은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삼위께서 한 위격이면서 하느님은 한 분이시라는 삼위일체의 진리는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오직 신앙으로만 믿을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가 "성부와 성자, 성령이 계시는데 어떻게 서로 높고 낮음이 없으며, 한 분이 다른 분으로 되시고, 또 이 낳으신 분과 낳음을 받으신 두 분으로부터 성령이 나셨다면 어찌 선후관계가 없겠는가?"하는 고민을 하며 해변을 거닐었다.

 그때 한 꼬마 아이가 백사장에서 조개껍데기로 바닷물을 작은 모래집에 퍼 담고 있었다. "얘야 뭐하니?"하는 성인의 물음에 아이는 "제가 바닷물을 모두 퍼서 이 모래집에 담으려고요"하고 답했다. 그러자 성 아우구스티노는 "어떻게 이 엄청난 바닷물을 조개껍데기로 다 퍼서 그 모래집에 담겠느냐?"고 말했다. 아이는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인간의 작은 머리로 그 엄청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이해하겠다고 하십니까"하고 반문했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은 성 아우구스티노가 바닷가를 다시 보니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성인의 일화처럼 우리는 성삼위의 신비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인류구원 역사 과정에서 삼위일체 관계를 살펴볼 수 있다. 하느님 안에서의 관계인 성삼위 신비와 하느님과 인간 관계가 성경에 드러나는 것이다.

 인류구원 역사에서 하느님인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신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짓고 당신을 등진 인류를 회두하여 화해시키시고, 당신과 일치시키신다. 인간 수준과 조건에 맞추시어 단계적으로 당신을 계시하신다.

 하느님이신 성부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셨고, 죄를 짓고 떠나간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세우셨다. 그리하여 성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일신 하느님에 대해 계시하신다. 자연, 초자연적 방법이나 예언자를 통해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고 소통했음이 구약에 기록돼 있다.

 신약에서 하느님이신 성자께서는 성부의 구원계획에 따라 세상에 오신다. 인간 곁에 직접 함께 계심으로써 성부와 인간, 인간과 인간관계를 회복시켜 구원계획을 완성하신다. "너희는 가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세례를 베풀라"(마태 28,19 참조)고 하신 성자의 말씀에서 삼위일체 신비가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이신 성자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서 떠나신 다음에도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셨다. 하느님이신 성령께서 다른 위격을 취하심은 당연하다. 그분은 성부와 성자의 사랑으로서 교회 안에 항상 존재하시어 인간을 성화시키시며 인간 곁이 아닌 인간 안으로 들어오신다. 하느님과 전 교회 구성원이 서로 사랑하여 일치를 이루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일치로 모인 하느님 백성이다. 시간적 선후나 지위의 높고 낮음이 없으신 하느님이신 성부와 하느님이신 성자와 하느님이신 성령께 다 같은 흠숭과 사랑을 드려야 한다.

 그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서로 다른 위격으로 구별되지만 사랑으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신다. 그리스도인은 이 성삼위 신비인 사랑의 일치를 신앙의 근본 원리로 삼아야 한다.

 우리는 사랑의 하느님을 거부할 수 없고 이웃사랑을 외면할 수 없다. 하느님이신 성부께서는 매개를 통해 우리와 관계를 맺으셨고, 하느님이신 성자는 우리 곁에 계시고, 하느님이신 성령께서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라고 명하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즉 양심에 존재하신다.

 우리의 양심을 거슬러 사랑의 계명을 거부하는 행위는 곧 하느님을 거부하는 행위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에서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현세에서도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2,32)고 가르치신다. (평화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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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emerenciana | 작성시간 12.06.01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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