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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정보】파우스티나 자비의 수녀원(퍼온글)

작성자실비아메이|작성시간12.06.14|조회수44 목록 댓글 2

 

     자비의 수녀원 - Lord I Trust In You




          자비의 사도 파우스티나 성녀께서 머무시고 돌아가신 자비의 수녀원입니다.
         입구의 벽돌로 된 담에 성녀의 모습과 예수님 자비의 빛이 새로운 아침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을
         반겨 맞이합니다.




            14처가 세워진 너른 풀밭 뒤쪽으로 보이는 구불구불한 곳은 2차 세계 대전 당시 채석장이었던 곳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몸을 피해 일을 하신 곳입니다.




한쪽엔 벽돌담과 또 한쪽엔 멀리14처가 있는 길을 걸으니 앞에 커다란 성당이 우뜩 솟아 있습니다.
희년을 맞이하는 2000년 첫 번째로 시성되신 파우스티나 성녀를 기념하기 위한 기념 성당과 탑이라고 합니다.
본당 안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함께 나누지를 못합니다만,
하얀 벽면과 나무를 곧게 깎아 마치 빛이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는 듯한 형상의 천장,
또 제대 뒤쪽엔 예수님 자비의 그림과 그 아래 둥그런 지구본울 감싸고 있는 가지 많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조각이 인상 깊이 남아 있습니다.
지구는 온 세상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는 세파에 시달리는 우리들 인간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성당 안을 찍을 수 없었지만 수녀원 마당 한켠 벽면에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시던 모습의
사진이 있기에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아쉬운 대로 본당 안을 조금은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념 성당 지하에 마련된 소성당입니다.
성녀의 작은 뼈 조각 일부가 제대에 안치되어 있고요 우리 순례자들은 그곳에 일렬로 서서 친구하고 돌아 나옵니다.
단체로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들이 조용히 앉아 있습니다.
아이들을 보니 집에 두고 온 그 또래의 녀석 생각이 살짝 났지요^^





옆의 경당에서 그날의 미사를 마치고 이곳 수녀원 소속의 가브리엘라 수녀님으로 부터 파우스티나 성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날은 마침 9월 29일 대천사 축일이었는데, 제 축일날, 축일 맞으신 수녀님께 말씀을 듣는다는 게 우연이었겠지만
제겐 큰 기쁨과 깊은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옆의 경당 안도 한 컷...






성당 지하의 그림입니다. 동이 터오는 바다의 빛, 가운데 십자가,
참 인상적인 그림을 뒤로 하고 기념 성당을 나왔습니다.




현대식으로 지어진 시성 기념 성당을 나오니 맞은편에 벽돌색, 자비의 성녀 수도원과 옛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파우스티나 성녀가 머물며 주님의 환시체험과 계시를 받아 일기를 쓰셨던 곳이지요.
기념 성당이 크고 멋져보일 수는 있으나 사실 이곳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잇는 곳은 이 옛 수도원 성당입니다.
성녀의 유해와 예수님 자비의 그림 원본이 성당에 모셔져 있지요.





할머님 두 분이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수도원을 걸어 나오십니다.
그 뒤쪽으로 종들이 달려 있는 종탑이 있는데 이것은 하느님의 계시가 온 세상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수녀원 마당으로 들어서니 자비의 모후이신 성모님의 동상이 팔을 벌려 맞이해 주십니다.
자비의 모후시여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 쪽 담에 잘 사열된 깃발들의 호위를 받으며 엄마를 따라 나온 꼬마 순례자도 지나가고...







파우스티나 성녀께서 돌아가신 방의 창 아래에 안내문과 함께 꽃들이 가득 피어 있습니다.
내부를 공개하지 않는 대신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네요.
오래된 건물이라 보수 공사를 하는 듯....

제게 파우스티나 성녀는 감자 깎는 수녀님으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오래 전 읽은 그분의 전기에서 그렇게 묘사되어 있었지요.

1905년 8월 25일 폴란드의 그라고비에츠에서 어머니 마리안나와 농부인 아버지 스타니슬라우스 코발스카의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성녀의 원래 이름은 Helena Kowalsk입니다.
16세에 집을 떠나 가정부로 생계를 돕기도 했던 성녀는 어려서부터 수도 성소를 느껴 수녀원 입회를 원했으나
부모님의 반대로 마음을 접었다가 19세 때 그리스도의 환시체험 후 바르샤바로 떠나 일년 후 20세에
성모 수녀회에 받아들여집니다.






성당에서 주교님이 미사를 집전하고 계십니다.
사실 안에서는 사진이 금지 되어 있는데 저는 밖에서 찍었으니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성녀는 교육이 없었던 관계로 평생동안 주방, 정원사, 문지기의 소임으로 13년 수녀생활을 합니다.
자신의 삶을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내어 놓고 잃어버린 영혼들을 예수님과 함께 구원하겠다는 다짐으로
생활하던 중 비범한 신비적 은총으로 예수님과 대화, 환시, 예언을 받지만 이로인해 조롱과 박해를 받습니다.





성당 제대 왼쪽으로 예수님 자비의 그림 원본과 파우스티나 성녀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성녀는 1931년 2월 22일 그림과 같은 예수님의 환시를 체험하는데, 예수님의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두 줄기 빛은
영혼을 의롭게 하는 물과 영혼의 생명인 피를 상징하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창에 찔리셨을 때
그분 깊은 자비에서 흘러나온 것입니다.
그 모습과 같은 그림으로 성심에 대한 공경을 전파하라는 임무를 수여받은 성녀는
영적 지도 신부인 Michael Spocko 신부를 만나 의논 후 일기 쓸것을 권유받았습니다.
신부님과 같은 대학 교수였던 Eugene Kazimierowski 를 소개받아 환시로 본 예수님 모습을
그림으로 완성하도록 설명을 합니다.
1935년 처음으로 Vilnius에서 예수님 자비 상본을 걸고 부활 둘째 주인 4월 28일 소포코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가 봉헌됩니다.
그후 1936년 부터 페결핵을 앓기 시작한 성녀는 1938년 9월 병세의 악화로 크라코우로 와서 요양하다가
같은 해 10월 5일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십니다.






Basilica of Divine Mercy 를 나와 점심 식사를 하고 나오니 미사를 마치신 주교님이
이 지역 방송사와 인터뷰를 하고 계십니다.
크라코우 교구장이신 스타니슬라오 대주교님은 돌아가신 요한 바오로 2세와 각별한 우정을
나누셨던 분이라고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신 주교님의 강복을 받았으니 축일날 값진 선물을 받은 셈입니다.




파우스티나 수녀님은 2000년 4월 교황 요한 바오로에 의해 성녀로 시성되었으며, 부활 둘째 주일은
하느님 자비 축일로 선포 되었습니다.

"나는 나의 자비에 의탁하는 영혼들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은총을 베풀기 원한다.
나는 요구한다.... 나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자비의 행위들을. 너는 언제 어디서나 이웃에게 자비로워야 한다.
그것을 회피하거나 변명하려 하거나 면하려 해서는 안 된다.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할 세 가지 방법을 주겠다.
첫째는 행동으로, 둘째는 말로써, 셋째는 기도로써이다."

성녀의 일기에 쓰여진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거의 매일 찾아가는 아버지 방에 걸려 있는 너무도 익숙한 예수님 자비의 그림,
그 하단에 쓰여진 글귀 'Lord I Trust In You'를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한다는 것, 읽고 쓰기는 쉬운데 그것을 살아내려니 자주 돌부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돌같이 굳은 마음을 오직 하느님 자비에 의탁하면서 다시 떠나는 순례의 길
한 마리 비둘기를 들고서 우리를 배웅하시는 요한 바오로 2세, 그 뒤쪽으로 펼쳐진 하늘이
높고 푸르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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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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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emerenciana | 작성시간 12.06.14 감사합니다...
  • 작성자실비아메이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12.06.14 예 ,,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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