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등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 류시화 시집 -
누가 죽었는지
꽃집에 등이 하나 걸려 있다
꽃들이 저마다 너무 환해
등이 오히려 어둡다. 어둔 등 밑을 지나
문상객들은 죽은 자보다 더 서둘러
꽃집을 나서고
살아서는 마음의 등을 꺼뜨린 자가
죽어서 등을 켜고 말없이 누워 있다
때로는 사랑하는 순간보다 사랑이 준 상처를
생각하는 순간이 더 많아
지금은 상처마저도 등을 켜는 시간
누가 한 생애를 꽃처럼 저버렸는지
등 하나가
꽃집에 걸려 있다
*** 꽃집에 걸린 등을 보며
꽃을 바라 보는 시인을
우리는 꽃처럼 바라 본다
세상이 아무리 어둡고
모든 것에 희망을 버려서
빛이 없던 이가
죽어서야 등을 켠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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