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책속의 멋진 글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우리는 다 같다)

작성자김성중 레미지오|작성시간23.09.26|조회수188 목록 댓글 0

배우 김혜자 씨와 함께 네팔을 여행할 때의 일이다. 카트만두 외곽의 유적지에 갔다가 길에 장신구들을 펼쳐 놓고 파는 여인을 보았다. 이름난 관광지라서 노점상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녀가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김혜자가 걸음을 멈추더니 그녀 옆으로 가서 앉는 것이었다. 물건을 사려는 게 아니었다. 그제야 보니 그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싸구려 장신구들 위로 번졌다. 놀라운 일은 김혜자 역시 그녀 옆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말도 없이 여인의 한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먼지와 인파 속에서 국적과 언어와 신분이 다른 두 여인이 서로 눈물의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도. 방송작가가 따라온 것도 아니었다. 배우 김혜자의 연기가 아니라 인간 김혜자의 자발적인 공감의 눈물. 연민의 눈물이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공감이다. 북적대는 관광객들과 노정상들 속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여인을 발견한 것도 놀라웠지만. 언어도 통하지 않는 타인의 슬픔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감 능력. 우는 사람 옆에서 함께 울어 주는 마음이 김혜자를 진정성 있는 배우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었다. 이윽고 네팔 여인의 눈물은 옆에 앉은 김혜자를 보며 웃음 섞인 울음으로 바뀌었으며. 이내 밝은 미소로 번졌다. 공감이 가진 치유의 힘이었다. 우리는 함께 아파함으로써 위로받고 강해진다. 헤어지면서 김혜자는 팔찌 하나를 고른 후 그 노점상 여인의 손에 300달러를 쥐어 주었다. 그 여인에게는 거금이었다. 여인은 놀라서 자기 손에 들린 돈과 김혜자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떠나면서 뒤돌아보니 여인은 서둘러 좌판을 정리하고 있었다. 내가 왜 그런 큰돈을 주었느냐고 묻자 김혜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누구나 한 번쯤은 횡재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잖아요." 김혜자는 그 팔찌를 여행 내내 하고 다녔다. 그 무렵 김혜자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낼 때였다. 그녀의 고뇌와 절망은 대중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에 대한 진실한 공감 능력으로 자신의 아픔까지 치유해 나갔다. 공감은 ' 나의 아픔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갖겠다는 선택'이다. 훗날 내가 네팔에서의 그 일을 이야기하자 김혜자는 말했다. "그 여자와 나는 아무 차이가 없어요. 그녀도 나처럼 행복하기를 원하고. 작은 기적들을 원하고. 잠시라도 위안받기를 윈하잖아요,우리는 다 같아요.


- 류시화-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공유하기
  • 신고하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