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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합니다

가난한 행복쟁이 -이지민-

작성자2천사|작성시간22.10.15|조회수92 목록 댓글 1

 

 

요즈음 집 가까이에 있는 수변 공원(수밭골)을 자주 걷는다. 걸을 때 발의 피로를 막아준다는 폐타이어를 재생한 길이다. 군데 군데 벤치가 있어 나처럼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걷기에 부담이 없고 너무 좋다. 거기다 장미꽃, 금잔화, 원추리 등 꽃들이 피어 있고 나무도 많다. 큰 못에는 물도 많이 흐른다. 동네에서 찾은 ‘무릉도원’이라 할 만하다. 나는 삐뚤삐뚤거리고 걸음이 영 불안하지만 표정 하나는 누구보다도 밝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내 옆에 와서 웃으시며,

“학생인지 아가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상이 밝아서 아주 보기가 좋은데요. 평화와 기쁨을 머금고 있는 육백 만불짜리 얼굴인데요. 제 기분까지 행복하 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호호호호.”

평소에 밝게 웃는 표정이 싱그럽고 활기 넘치며 맑아서 좋다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자주 들었었다. 평화와 기쁨이 느껴진다고 하니, 괜히 내가 우쭐해졌다. 피땀 흘려 노력하여 뭘 이루어 내었거나, 이웃들에게 내 몸 아끼지 않고 봉사를 한 것도 아닌데, 거저 편안하게 밝게 웃음을 보인 것 뿐이건만…….

내가 다리가 불편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입은 장애가 아니다. 학창 시절에 횡단보도를 걷다가 차에 치여 입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죽었다가 새로 태어났으니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나에게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에 의하여지만 고생스러워도 나야말로 가장 밑바닥까지 가본 우회적으로 말하면 ‘행운의 소녀’이다. 다리는 삐뚤삐뚤거리고 넘어질 때도 있지만 늘 얼굴엔 맑은 미소와 감사와 행복이 가득한 까닭일지도 모른다.

장애를 입기 전의 나는 어떠했는가? 또래보다 몸집은 작고 여렸다. 허나 학교에 들어가선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고 피아노를 배워 시(city)에선 top에 들었으니 학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만 하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던가. 이렇게 꽉 차인 나를 하느님도 시샘하였을까.

현재의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보잘 것 없다. 한쪽 다리의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고 힘이 없어 반대편 다리보다 좀 짧고 무릎을 굽히지 않고 옆으로 휙휙 돌리며 걷는다. 사고로 병원에서 너무 오래 누워 있었고 먹은 것에 비해 활동을 못하니 운동량이 부족해 배가 좀 나왔다. 속을 들여다 봐도 그다지 잘난 구석이 없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도 못하다. 몸이 불편하다 보니 학교를 졸업하고도 사회적 경험을 하지 못해 마음이 너무나 담백하고 순박하다. 속된 표현으로 세상 물이 안 들었다나.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한 지 스무 해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단발머리에 배낭 메고 모자 쓰고 운동화 신고 나가면 다들,

“수능 시험 준비한다고 애쓰지?”

한다. 그래서 나는 억울하게도 평생에 수능을 골백번도 더 친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진 것 가운데 남들에게 자랑할 만하고 내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게 한 가지 있다.

가톨릭 교 신자가 되어 “클라라(Claraa)”라는 반짝반짝이는 이름을 받아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아름답게 펼쳐지듯이, 우리 삶에 어두운 순간이 없다면 밝음과 기쁨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부족함 속에서 깨우침을 얻고 정화되어가는 순례의 여행길이다.

앞서 본 것처럼 나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초라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그래서 더 순수하고 맑음을 느끼는 행복과 평화로움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힘이 빠져 있고 희망을 잃어버린 누군가가 나를 통해, 나의 평화와 행복해하는 밝은 얼굴을 보고 삶의 의미를 되찾고 기뻐한다면, 그 또한 좋지 않은가.

 

요즈음 집 가까이에 있는 수변 공원(수밭골)을 자주 걷는다. 걸을 때 발의 피로를 막아준다는 폐타이어를 재생한 길이다. 군데 군데 벤치가 있어 나처럼 다리가 불편한 사람들이 걷기에 부담이 없고 너무 좋다. 거기다 장미꽃, 금잔화, 원추리 등 꽃들이 피어 있고 나무도 많다. 큰 못에는 물도 많이 흐른다. 동네에서 찾은 ‘무릉도원’이라 할 만하다. 나는 삐뚤삐뚤거리고 걸음이 영 불안하지만 표정 하나는 누구보다도 밝다.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내 옆에 와서 웃으시며,

“학생인지 아가씨인지는 모르겠지만 인상이 밝아서 아주 보기가 좋은데요. 평화와 기쁨을 머금고 있는 육백 만불짜리 얼굴인데요. 제 기분까지 행복하 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호호호호.”

평소에 밝게 웃는 표정이 싱그럽고 활기 넘치며 맑아서 좋다는 분에 넘치는 칭찬을 자주 들었었다. 평화와 기쁨이 느껴진다고 하니, 괜히 내가 우쭐해졌다. 피땀 흘려 노력하여 뭘 이루어 내었거나, 이웃들에게 내 몸 아끼지 않고 봉사를 한 것도 아닌데, 거저 편안하게 밝게 웃음을 보인 것 뿐이건만…….

내가 다리가 불편한 것은 태어날 때부터 입은 장애가 아니다. 학창 시절에 횡단보도를 걷다가 차에 치여 입은 것이다. 그러하기에 죽었다가 새로 태어났으니 완전히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나에게 현실이 어렵고 힘들다 할지라도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남에 의하여지만 고생스러워도 나야말로 가장 밑바닥까지 가본 우회적으로 말하면 ‘행운의 소녀’이다. 다리는 삐뚤삐뚤거리고 넘어질 때도 있지만 늘 얼굴엔 맑은 미소와 감사와 행복이 가득한 까닭일지도 모른다.

장애를 입기 전의 나는 어떠했는가? 또래보다 몸집은 작고 여렸다. 허나 학교에 들어가선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았고 피아노를 배워 시(city)에선 top에 들었으니 학부모들의 선망의 대상이 될 만 하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하던가. 이렇게 꽉 차인 나를 하느님도 시샘하였을까.

현재의 ‘나’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보잘 것 없다. 한쪽 다리의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고 힘이 없어 반대편 다리보다 좀 짧고 무릎을 굽히지 않고 옆으로 휙휙 돌리며 걷는다. 사고로 병원에서 너무 오래 누워 있었고 먹은 것에 비해 활동을 못하니 운동량이 부족해 배가 좀 나왔다. 속을 들여다 봐도 그다지 잘난 구석이 없다. 지적 능력이 뛰어나지도 못하다. 몸이 불편하다 보니 학교를 졸업하고도 사회적 경험을 하지 못해 마음이 너무나 담백하고 순박하다. 속된 표현으로 세상 물이 안 들었다나. 그래서 대학교를 졸업한 지 스무 해가 다 되어가는 지금도 단발머리에 배낭 메고 모자 쓰고 운동화 신고 나가면 다들,

“수능 시험 준비한다고 애쓰지?”

한다. 그래서 나는 억울하게도 평생에 수능을 골백번도 더 친다.

그러나 지금 내가 가진 것 가운데 남들에게 자랑할 만하고 내 스스로도 만족스러운 게 한 가지 있다.

가톨릭 교 신자가 되어 “클라라(Claraa)”라는 반짝반짝이는 이름을 받아 신앙 생활을 하고 있다.

또 일곱 빛깔의 무지개가 아름답게 펼쳐지듯이, 우리 삶에 어두운 순간이 없다면 밝음과 기쁨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은 부족함 속에서 깨우침을 얻고 정화되어가는 순례의 여행길이다.

앞서 본 것처럼 나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한 초라한 사람이다. 그러나 내 얼굴은 그래서 더 순수하고 맑음을 느끼는 행복과 평화로움이 들어 있는지도 모른다.

힘이 빠져 있고 희망을 잃어버린 누군가가 나를 통해, 나의 평화와 행복해하는 밝은 얼굴을 보고 삶의 의미를 되찾고 기뻐한다면, 그 또한 좋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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