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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꽃인 줄 착각한 날 -이지민(=2004)-

작성자2천사|작성시간22.10.26|조회수68 목록 댓글 1

 

어제 너무 지나치게 많이 걸었던지 오른발등과 발바닥이 걷기 힘들 정도로 많이 아프다. 나에게 이 정도는 아픈 증상에 들지도 않는다. 그래서 내가 억눌리고 침체된 몸과 마음을 제대로 펴고 힐링할 수 있는 ‘청도 운문사’로 간다. 내가 발바닥이 아파 더 가까운 팔공산으로 가자고 먼저 말해보나, 오늘 같이 화창한 날은 팔공산은 차가 밀린다며 청도 운문사로 가기로 부모님과 합의를 본다.

 

처음에는 발바닥에 통증이 ‘찌인하게’ 오니 어머니 손을 잡고 껌딱지가 되어 걷는다. 하느님은 그가 이겨낼 수 있는 고통만을 선물하신다고 하잖은가. 조금 따각따각할 뿐이지, 걸을 만 하다.

내가 워낙에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서 어머니가 꽃그림이 그려진 목수건을 둘러주신다. 운문사 가는 길은 거의 평지나 다름 없으니 옆에 꽃과 나무도 보고 걸을 수 있다. 감나무는 이제 이파리가 다 나와서 완전히 신록(新綠)을 이룬다. 역시 ‘5월의 장미’는 꽃 중에 여왕 자리를 내어주기에는 너무도 매혹적이고 아름답다. 빨강이 장미 옆에는 노랑이 금매화가 깨끗하고 귀엽게 조화를 이룬다. ‘금매화’를 보고 처음에 꽃이름을 많이 아는 어머니가 노랑색이라서 ‘금잔화’라고 했었던 에피소드가 있는 꽃이다. 어머니는 알면서도 나를 웃기려고 그리 했던 사연이 있는 ‘금매화’이다.

조금 더 가니 접시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곳곳에 개망초도 부끄러워하며 수줍게 웃는 자태가 싱그럽다. 마치 사춘기 시절 꿈이 많고 티없이 순진했던 나를 보는 것 같아 살짝이 혼자서 웃어보기도 한다.

 

 

오르다가 울산 진철이 아재와 아짐을 만난다. 어머니가 조곤히 입을 떼신다.

“왠지 내가 오늘은 여기 더 오고 싶더라카이. 도련님하고 수경 에미 볼라고 그랬는 갚다카이.”

 

벌님들이 내 눈 앞에서 계속 윙윙거린다. 나는 걸음질도 그다지 완전하지 못한데 눈 앞에서 줄곧 윙윙거리니 힘들고 불편하기 짝이 없을 노릇이다.

걸어가면서 가만 있질 못하고 어린이들처럼 누가 좀 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머야! 벌님들은 내가 진짜 꽃인 줄 아는지? 헤헤헤”하며 투덜댄다. 사람들은 나의 미모를 몰라줄지라도 곤충들은 내가 꽃이라고 알아본다고 입이 근질근질거려서 도저히 못 참고 어머니께 자랑해댄다.

조금 뒤에 어머니의 확실한 해명을 듣자마자 나는 뒤집어지고 만다.

“지민아! 착각은 집에서만 하고 말 것이지, 이까이 나와가도 하시니 그렇게 자연을 오염시키야 되겄냐? 니가 꽃이라 벌이 오는 기 아이고, 니 목수건에 꽃이 많잖니?”

그래도 꽃수건 덕분에 ‘꽃’으로 착각할 수 있어 행복하고 벅찬 하루였다. 감사할 뿐이다. “아싸가오리!” “얼쑤, 지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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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2천사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2.10.30 우와, 멋지네 ^^^ 세상에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연은 없다 아이가?
    사랑한데이알제?
    고맙구먼이도 알제^^^
    오늘도 샬롬이데잉,퓸퓸+++
    사랑차 한 잔 하게! 나는 가난해서리 줄 게 이뿐이라네.개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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