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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주님의 자비(연중 제24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2.09.11|조회수175 목록 댓글 5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주님의 자비(연중 제24주일)


복음 루카 15,1-10

그때에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2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4 “너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에서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

5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6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8 또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 안을 쓸며 그것을 찾을 때까지 샅샅이 뒤지지 않느냐?

9 그러다가 그것을 찾으면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은전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

10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한다.”



오늘 복음은 ‘주님 자비’에 대한 비유입니다.

주님의 자비는 용서입니다.

인간의 역사는 배신의 역사이지만 주님 구원의 역사는 끝없는 용서의 역사입니다. 주님의 기적과 은총으로 유다인들은 이집트를 탈출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여전히 금송아지를 모시며 주님을 배신하였습니다. 주님께서 분노하시어 그들을 벌하려고 하자 모세가 용서를 빌고 간절히 구원을 청하였고 주님께서는 다시 또 그들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배신했던 바오로 성인도 주님의 은총으로 회개하고 끝내는 주님의 사랑을 선교하는 명예로운 사도가 되어 자신처럼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주님의 자비를 얻게 된 것은, 나로 하여금 주님의 크신 자비를 보여주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탕자’ 에서는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는 무한한 자비를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도 전에 이미 아들을 용서했습니다. 어떤 책망도 없이 모든 것을 용서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먹고 입을 것 없어 메마른 모습으로 돌아온 아들을 보니 마음이 아파 새 옷과 새 구두를 주었고 기름진 송아지를 잡고 연회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참으로 무한한 자비입니다.

주님의 자비는 조건이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지은 죄의 무게를 가늠하지 않으십니다. 당신의 자비가 무한하고 계산하지 않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익만을 생각하셨다면, 99마리의 착한 양떼를 두고 길을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서지는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위험한 일이고, 어쩌면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잃어버린 동전 한 닢을 찾기 위해, 불을 밝히고 온 집안을 청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동전 한닢을 찾기 위해 너무 많은 낭비를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날 만큼, 많은 죄를 짓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는 만큼 주님의 자비도 많이 받습니다. 즉, 생명이 있는 만큼 자비의 역사도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큰아들이 방탕하게 살다 돌아온 동생을 시기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돈을 모두 탕진하고, 아버지와 하늘에 죄를 지은 동생에게 아버지는 좋은 옷과 반지, 신발과 살진 송아지를 주시며 돈을 낭비했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불량한 동생을 껴안고 입을 맞췄습니다. 우리 인간의 셈으로 판단한다면 전혀 남는 것이 없는 일이지만 주님의 계산으로는 우리 모두는 자비의 대상이기에 끌어안고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내가 지은 죄로 죽어 마땅하고, 오래 전에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자비는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는 자비입니다.

그릇된 일을 한 아들을 아끼고 자비를 베푼다는 것은 사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입니다. 그러나 만일, 주님께서 인간의 이치대로 하셨다면 그것은 무한한 자비가 아닐 것입니다. 주님의 자비는 마르지 않는 샘물과 같습니다. 주님의 자비는 장소와 대상을 가리지 않고 품어주는 거대한 대양과 같은 사랑입니다.

방황하는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 주님께서는 그 양을 어깨에 매고 돌아와 연회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부정한 여인과 세리, 장님, 불쌍한 어린이들 그 모두는 주님의 자비 안에 있는 사람들 입니다. 주님을 멀리하는 사람, 버림받은 사람, 죄 지은 사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 그들도 역시 주님의 자비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우리 모두입니다. 주님의 무한한 사랑과 견줄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무한한 자비, 그외의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 저희가 주님의 무한한 자비 속에서 살고 있음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지금까지 살면서 주님의 자비를 경험하였습니까?

2. 주님 앞에서 똑바로 서 있을 수 있는 당당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내가 지은 수 많은 죄로 죽어 마땅하고, 오래 전에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렇게 살게 해 주신 주님의 자비에 대해 생각해보십시오.

3. ‘용서의 자비’, ‘조건 없는 자비’와 ‘배척하지 않는 자비’에 대해서 생각해보십시오.

말씀의 실천

1. 우리는 주님의 무한한 자비 속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주님의 자비를 나를 배척하는 사람들에게 다시 베풀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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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서 추석은 공휴일이 아니라 아이들을 위한 날입니다. 어린이들에게 별과 등불 축제 등을 베풀어주고 월병으로 마음을 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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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가온누리 | 작성시간 22.09.1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별향기 | 작성시간 22.09.11 아멘 감사합니다 💕
  • 작성자달리고 싶다 | 작성시간 22.09.11 감사합니다
  • 작성자귀임 마리아 | 작성시간 22.09.11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2.09.11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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