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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엣대주교님묵상

주님의 선택(연중 제19주일)

작성자빠다킹신부|작성시간23.08.13|조회수127 목록 댓글 4
끼엣 추기경님의 주일 묵상


주님의 선택(연중 제19주일)


복음 마태 14,22-33

군중이 배불리 먹은 다음, 22 예수님께서는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23 군중을 돌려보내신 뒤, 예수님께서는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혼자 거기에 계셨다.

24 배는 이미 뭍에서 여러 스타디온 떨어져 있었는데, 마침 맞바람이 불어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25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26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겁에 질려 “유령이다!” 하며 두려워 소리를 질러 댔다.

27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28 그러자 베드로가 말하였다.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오라고 명령하십시오.”

29 예수님께서 “오너라.” 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갔다. 30 그러나 거센 바람을 보고서는 그만 두려워졌다. 그래서 물에 빠져 들기 시작하자, “주님, 저를 구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질렀다.

31 예수님께서 곧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고,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2 그러고 나서 그들이 배에 오르자 바람이 그쳤다. 33 그러자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그분께 엎드려 절하며, “스승님은 참으로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의 기적을 보여주신 후 제자들은 보내고 당신께서는 산으로 가셔서 밤새 기도하셨습니다. 왜 제자들을 따로 보내셨을까요? 군중의 마음과 신뢰를 얻어 권위를 드높이신 예수님께서 그들을 뒤로 하고 홀로 떠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부분에 대해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에는 자세한 설명이 없지만 요한 복음에는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표징을 보고,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와서 당신을 억지로 모셔다가 임금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시고,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 (요한 6, 14-15)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십니다. 인간은 끝없이 높아지려 안간 힘을 쓰건만 주님께서는 한없이 당신을 낮추셨습니다. 같은 세상의 계단을 사람과 하느님은 서로 다른 목적으로 사용합니다. 사람들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계단을 사용합니다. 더 높은 물질적 삶을 추구하고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고 더 좋은 평판을 얻고 싶어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 계단을 내려가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높은 하늘에서 비천한 인간세상으로 내려오시어 평범한 사람, 가난한 사람, 죄지은 사람, 가장 낮은 신분으로 내려오셨습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쉬운 것만을 추구합니다. 고생을 적게 할 수 있는 길, 더 편한 길, 더 빨리 성공하는 길만을 찾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언제나 좁은 길, 험한 길, 겸손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빵과 물고기의 기적’으로 들떠 있는 군중들이 당신을 왕으로 추앙하는 것을 원치않으셨기에 그들을 떠나고자 하셨습니다. 왕은 당신이 가고자 하는 겸양의 길, 고난의 길, 좁은 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고 당신의 제자들이 스승의 권위를 세우고 그 권위만을 존경하는 제자가 되는 것을 우려하시어 제자들에게 먼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가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많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따라 겸손의 길, 봉사의 길, 고난의 길인 성령의 길을 가셨기에 마침내 승리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충실한 자녀의 삶을 살아가려한다면 오직 주님의 길만을 따라야 합니다. 그 외 다른 길은 없습니다.

과거 가톨릭 역사에서 권력과 부유한 교회는 쉽게 부패하고 해체의 위기에 직면한 사실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난하고 박해를 받을수록 교회는 크게 성장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가 주님의 길인 고난의 길을 따라갔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제자로서 주님을 따라 겸손의 길, 좁고 험한 길, 십자가 고행의 길을 떠나야 합니다.

세상의 유혹에 많은 어려움도 있겠지만 그 길은 주님의 길이기에 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아멘


함께 묵상해 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이 당신을 왕으로 숭상할까 우려하여 제자들을 두고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당신도 이런 상황을 맞는다면 주님과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습니까?

2. 내가 다니는 교회가 어떤 모습이기를 바랍니까? 권위와 부유함을 지닌 교회? 아니면 가난하고 겸손한 교회입니까?

3. 당신은 주님의 길을 따라 갈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말씀의 나눔

1.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많은 길이 있습니다.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는 내가 결정합니다. 선택의 기로에 있다면 나의 결정보다는 주님이시라면 어떤 결정을 하셨을지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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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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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3.08.13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바람의노래 | 작성시간 23.08.1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달리고 싶다 | 작성시간 23.08.14 감사합니다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3.08.14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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