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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1월 14일 연중 제2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1.14|조회수499 목록 댓글 14

제1독서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 3,3ㄴ-10.19

 

그 무렵 

3 사무엘이 하느님의 궤가 있는 주님의 성전에서 자고 있었는데,
4 주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 

그가 “예.” 하고 대답하고는,
5 엘리에게 달려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그래서 사무엘은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6 주님께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가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엘리는 “내 아들아, 나는 너를 부른 적이 없다. 돌아가 자라.” 하였다.
7 사무엘은 아직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말씀이 사무엘에게 드러난 적이 없었던 것이다.
8 주님께서 세 번째로 다시 사무엘을 부르시자, 그는 일어나 엘리에게 가서,
“저를 부르셨지요? 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제야 엘리는 주님께서 그 아이를 부르고 계시는 줄 알아차리고,
9 사무엘에게 일렀다. 

“가서 자라. 

누군가 다시 너를 부르거든,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여라.”
사무엘은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10 주님께서 찾아와 서시어, 아까처럼 “사무엘아, 사무엘아!” 하고 부르셨다.
사무엘은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19 사무엘이 자라는 동안 주님께서 그와 함께 계시어, 그가 한 말은 한마디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셨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 6,13ㄷ-15ㄱ.17-20

 

형제 여러분, 

13 몸은 불륜이 아니라 주님을 위하여 있습니다.
그리고 몸을 위해 주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
14 하느님께서 주님을 다시 일으키셨으니, 우리도 당신의 힘으로 다시 일으키실 것입니다.
15 여러분의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라는 것을 모릅니까?
17 주님과 결합하는 이는 그분과 한 영이 됩니다.
18 불륜을 멀리하십시오.
사람이 짓는 다른 모든 죄는 몸 밖에서 이루어지지만,
불륜을 저지르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19 여러분의 몸이 여러분 안에 계시는 성령의 성전임을 모릅니까?
그 성령을 여러분이 하느님에게서 받았고, 또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것이 아님을 모릅니까?
20 하느님께서 값을 치르고 여러분을 속량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 
1,35-42

 

그때에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간 두 사람 가운데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였다.
41 그는 먼저 자기 형 시몬을 만나,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말하였다.
‘메시아’는 번역하면 ‘그리스도’이다.
42 그가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가자, 예수님께서 시몬을 눈여겨보며 이르셨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앞으로 너는 케파라고 불릴 것이다.”
‘케파’는 ‘베드로’라고 번역되는 말이다.

 

 

 

 

<“무엇을 찾느냐?”>


연중 2 주일입니다. 

오늘 말씀전례는 부르심과 응답, 그리고 그 사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1독서에서 사무엘은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이 말씀의 ‘들음’에 있음을 다음과 같이 전해줍니다.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

(1사무 3,18)

화답송에서 시편 작가는 응답의 사명이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음을 노래합니다.
“주님, 보소서. 

당신 뜻을 이루려 제가 왔나이다.”

(시 40,8)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어

당신의 “지체”(1코린 6,15)로 삼으시고 “성전”(1코린 6,19)으로 삼으시니,

그에 합당하게 “여러분의 몸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1코린 6,20)라고 권고합니다.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두 제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길로 안내되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곧 ‘제자 됨의 길’을 깨우쳐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곱 개의 동사, 곧 일곱 가지 행동을 요청합니다.

곧 ‘듣다.’ ‘따라 가다’, ‘함께 가다’, ‘보다’, ‘함께 묵다’, ‘말하다(선포하다)’, ‘그분께 데려가다.’입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36)라는 세례자 요한의 말에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따라 갔습니다.(요한 1,37)

 

여기서 제자가 가는 두 가지를 길을 말해줍니다.

곧 '듣다'와 '따라가다'라는 동사는 제자 되는 길이 단지 동의하고 받아들인다는 수동적인 측면을 넘어 자발적으로 응답하는 순명의 자세를 포함하며,

단지 추종한다는 것을 넘어서 운명을 같이하고 전적으로 헌신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렇게 따라오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물으십니다. 

“무엇을 찾느냐?”

(요한 1,38)

 

곧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진정 찾아야 할 것을 무엇이며, 진정 향해야 할 곳이 누구인지를 일깨워주십니다.

그러자 그들은 “라삐, 어디에 묵으십니까?”(요한 1,38) 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그분이 '묵으신 곳'이라는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누구이며, 어떤 존재인가?’라는 당신 인격에 대한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와서 보아라.”

(요한 1,39)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인격적 체험을 직접 하도록 초대하십니다.

곧 원하는 그것을 '보게 되리라'는 약속과 보장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신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습니다.(요한 1,39)

 

여기서 제자들이 가는 길 세 가지를 말해줍니다.

곧 그분과 '함께 가'는 일, 그분께서 묵는 곳으로 인도를 받아 함께 가는 일이요,

그곳을 '보는' 일, 그분이 누구신지를 깨닫는 일이요,

그분과 '함께 묵는' 일, 그분을 체험하여 사랑으로 흠뻑 젖는 일입니다. 

그러니 “와서 보아라.”(요한 1,39) 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쪽으로 걸어라’, ‘이렇게 걸어라’라는 제자들의 삶의 방향과 방식을 말해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행동으로 체험을 통하여 배우야 함을 깨우쳐줍니다.

 

사실 ‘제자’라는 히브리어(탈미딤)와 희랍어(마테테스)의 뜻은 ‘배움에 헌신한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 모범을 우리는 엘리사에게서 볼 수 있는데, 그는 엘리야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시종이 되어 섬기고 전적으로 헌신하면서 전인격적 유대로 변형을 이루어 갑니다.

그래서 엘리사가 스승과 사별할 때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2열왕 2,12)라고 부르짖으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스승과의 인격적 관계는 친아버지를 넘어서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격언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랍비가 다 같이 인질로 잡혀가면, 제자는 랍비의 몸값을 먼저 지불해야 한다.”,

“아버지와 스승이 무거운 짐을 지고 가면, 먼저 스승의 짐을 덜어드린 후 아버지의 짐을 거들어야 한다.”

결국 제자가 된다는 것은 진리나 스승에 대한 정보적인 접근이 아니라,

교리적인 진리를 배우고 신념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스승을 따라 사는, 스승을 닮아가는, 진정한 변형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이제 예수님과 함께 묵은 그들은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갑니다.(요한 1,42 참조).

 

여기에서 제자들의 두 가지 사명이 드러납니다.

곧 그분을 ‘말하는’ 일, 증언하고 선포하는 일이요, 사람들을 예수님께 ‘데려가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마태 28,19) 사명을 이루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더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동반자요 반려자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를 향하여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우리 주님의 동행을 바오로 사도는 참으로 아름답게 표현해줍니다.
“그분께서는 늘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시면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내가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 퍼지게 하십니다.”

(2코린 2,14)

그렇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개선 행진에 우리를 데리고 다니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바로 그것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동행에 감사드려야 할 일입니다.

이 복된 길을 동행하시는 우리 주님께 감사를 드려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메시아를 만났소.” 하고 증언하여 선포하고 증거자가 되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것을 보고 그분과 함께 묵었다.'

(요한 1,39)

 

주님!

말씀을 듣고 단지 동의하지만 말고, 받아들여 따르게 하소서.

따르지만 말고, 전적인 헌신으로 당신과 함께 일하게 하소서.

오늘도 무엇을 찾고 무엇을 원해야 할지를 일깨워주시고 저를 향해 계시는 당신을 향해 달려가게 하소서.

당신 사랑에 흠뻑 젖게 하시어, 당신 사랑을 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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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4.01.14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들꽃1 | 작성시간 24.01.1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1.14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1.14 아멘.
  • 작성자일라이 | 작성시간 24.01.15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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