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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1월 18일 연중 제2주간 목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1.17|조회수424 목록 댓글 11

제1독서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 18,6-9; 19,1-7

 

그 무렵 

6 다윗이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이고 군대와 함께 돌아오자,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여인들이 나와 손북을 치고 환성을 올리며, 악기에 맞추어 노래하고 춤추면서 사울 임금을 맞았다.
7 여인들은 흥겹게 노래를 주고받았다.
“사울은 수천을 치시고 다윗은 수만을 치셨다네!”
8 사울은 이 말에 몹시 화가 나고 속이 상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다윗에게는 수만 명을 돌리고 나에게는 수천 명을 돌리니, 이제 왕권 말고는 더 돌아갈 것이 없겠구나.”
9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게 되었다.
19,1 사울이 아들 요나탄과 모든 신하에게 다윗을 죽이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나 사울의 아들 요나탄은 다윗을 무척 좋아하였기 때문에,
2 이를 다윗에게 알려 주었다.
“나의 아버지 사울께서 자네를 죽이려고 하시니, 내일 아침에 조심하게.
피신처에 머무르면서 몸을 숨겨야 하네.
3 그러면 나는 자네가 숨어 있는 들판으로 나가, 아버지 곁에 서서 자네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겠네.
그러다가 무슨 낌새라도 보이면 자네에게 알려 주지.”
4 요나탄은 아버지 사울에게 다윗을 좋게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임금님, 임금님의 신하 다윗에게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은 임금님께 죄를 지은 적이 없고, 그가 한 일은 임금님께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5 그는 목숨을 걸고 그 필리스티아 사람을 쳐 죽였고, 주님께서는 온 이스라엘에게 큰 승리를 안겨 주셨습니다.
임금님께서도 그것을 보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공연히 다윗을 죽이시어, 죄 없는 피를 흘려 죄를 지으려고 하십니까?”
6 사울은 요나탄의 말을 듣고, “주님께서 살아 계시는 한, 다윗을 결코 죽이지 않겠다.” 하고 맹세하였다.
7 요나탄은 다윗을 불러 이 모든 일을 일러 주었다.
그러고 나서 다윗을 사울에게 데리고 들어가, 전처럼 그 앞에서 지내게 하였다.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3,7-12

 

그때에 

7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호숫가로 물러가셨다.
그러자 갈릴래아에서 큰 무리가 따라왔다.
또 유다와 

8 예루살렘, 이두매아와 요르단 건너편, 그리고 티로와 시돈 근처에서도 그분께서 하시는 일을 전해 듣고 큰 무리가 그분께 몰려왔다.
9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당신을 밀쳐 대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시려고,
당신께서 타실 거룻배 한 척을 마련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10 그분께서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 주셨으므로, 병고에 시달리는 이들은 누구나 그분에게 손을 대려고 밀려들었기 때문이다.
11 또 더러운 영들은 그분을 보기만 하면 그 앞에 엎드려, “당신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십니다!” 하고 소리 질렀다.
1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나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을 전해들은 이들이 온 유다뿐만 아니라 주변의 여러 곳에서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들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십니다. 

그들이 치유를 받고자 몰려왔지만, 예수님의 참 모습을 알지는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악령들은 예수님을 보기만 하면, “당신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마르 3,11)라고 외쳐댑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엄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마르 3,12 참조)

사실 마르코복음 곳곳에서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에게 뿐만 아니라, 치유 받은 이들과 제자들에게도 함구령을 내리시며 당신의 신원을 장막으로 가리십니다. 
왜 일까요?

당신이 메시아임을 세상에 드높이 선포해야 함이 마땅할 터인데도, 왜 당신의 신원을 꼭꼭 감추실까요?

심지어는 당신의 가르침마저도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저들이 돌아와 용서받는 일이 없게 하려는 것이다.”(마르 4,12)라고 말씀하실까요?

 

사실 야훼 하느님께서도 파라오를 마음이 완고하게 하셨고,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서는 “백성의 마음을 무디게 하고~ 돌아와 치유되는 일이 없게 하여라.”(이사 6,10)라고도 하셨습니다. 

대체 왜 이처럼 알리지 못하게 할까요? 

그것은 ‘때’가 아닌 까닭이었습니다. 

곧 당신의 참된 모습이 드러날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눈이 가려져 있어, 아직 예수님의 진면목(참된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르코 복음은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마르 1,1)이라는 말로 시작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진실한 신앙으로 고백하고 있는 곳은 엄밀한 의미에서 딱 한 군데 밖에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때 그곳’에서 비로소 예수님께서 함구령을 내린 그 신원이 밝혀질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인가?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때’ 입니다. 

그때 마침내 십자가 아래에서 백인대장은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처럼 ‘십자가’를 관상할 때라야 신앙의 눈이 열리고, 비로소 당신을 참되게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성전을 가리고 있던 ‘휘장’이 찢어지면서 그 비밀의 신비가 드러납니다.

 

곧 성전을 가리고 있던 ‘휘장’이 찢어지듯, 우리 자신이 만들어 놓은 우상의 하느님이 부서지고서야, 비로소 예수님의 진면목(참된 모습)이 드러납니다.

그제야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을 보고서야, 그분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미사 중에, ‘휘장’이 찢어지듯 찢어진 그분의 살과 피를 마시며, 

그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아드님 우리 주님을 관상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합시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당신을 알리지 말라고 엄하게 이르곤 하셨다.'

(마르 3,12)

 

주님!

저의 무지를 깨우쳐 주소서.

당신의 참된 모습을 알아볼 수 있는 신앙의 눈을 열어 주소서.

완고함의 장막을 부수소서.

십자가에서 드러내신 당신의 신비를 따라 살며,

당신 십자가에 저를 매달고 사랑으로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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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1.18 Amen.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4.01.18 오늘도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1.18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감사하는 사람 | 작성시간 24.01.18 아멘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1.19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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