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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1월 20일 연중 제2주간 토요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1.19|조회수390 목록 댓글 12

제1독서
▥ 사무엘기 하권의 시작 1,1-4.11-12.19.23-27

 

그 무렵 

1 다윗은 아말렉을 쳐부수고 돌아와 치클락에서 이틀을 묵었다.
2 사흘째 되는 날, 어떤 사람이 옷은 찢어지고 머리에는 흙이 묻은 채 사울의 진영에서 찾아왔다. 

그가 다윗에게 나아가 땅에 엎드려 절을 하자,
3 다윗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하고 물었다.
그가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진영에서 빠져나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다윗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서 말해 보아라.” 하자, 그가 대답하였다. 

“싸움터에서 군사들이 달아났습니다.
또 많은 군사가 쓰러져 죽었는데, 사울 임금님과 요나탄 왕자님도 돌아가셨습니다.”
11 그러자 다윗이 자기 옷을 잡아 찢었다.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다.
12 그들은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탄, 그리고 주님의 백성과 이스라엘 집안이 칼에 맞아 쓰러진 것을 애도하고 울며, 저녁때까지 단식하였다.
다윗이 애가를 지어 불렀다
19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살해되어 언덕 위에 누워 있구나.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졌는가?
23 사울과 요나탄은 살아 있을 때에도 서로 사랑하며 다정하더니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았구나.
그들은 독수리보다 날래고 사자보다 힘이 세었지.
24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생각하며 울어라.
그는 너희에게 장식 달린 진홍색 옷을 입혀 주고 너희 예복에 금붙이를 달아 주었다.
25 어쩌다 용사들이 싸움터 한복판에서 쓰러졌는가?
요나탄이 네 산 위에서 살해되다니!
26 나의 형 요나탄, 형 때문에 내 마음이 아프오.
형은 나에게 그토록 소중하였고 나에 대한 형의 사랑은 여인의 사랑보다 아름다웠소.
27 어쩌다 용사들이 쓰러지고 무기들이 사라졌는가?”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3,20-2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20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21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오늘 복음은 두 개의 절로 되어 있는 짧은 본문입니다. 

첫 번째 절(20절)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들어가고 섞여지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치 배추벌레가 배추를 먹으면서 배추색깔로 변해가듯이 말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절(21절)에서 복음사가는 말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마르 3,21)

여기에서 '붙잡다'(krateo)라는 말은 ‘손에 쥐다, 제지하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친척들이 ‘예수님의 활동을 제지하러 나섰다’는 뜻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곧 ‘자신들의 손에 쥐고 조정하고 흔들려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수난예고 하셨을 때, 베드로가 당신을 꼭 붙잡고 반박하자(마르 8,32)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활동을 제지하려고 붙잡는 이는 그가 비록 제자라 하더라도, 혹은 친척이라 하더라도,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사탄의 행위가 되고 맙니다. 

그러니 우리는 명심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실 때 '나를 따라 오너라'고 부르신 것이지, ‘나를 붙잡으라.’고 부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뿐, 붙잡으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곧 자기의 뜻으로 예수님을 붙들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서 막달레나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도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말라.”(요한 20,17)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예수님께 붙들린 사람’, ‘예수님께 붙잡힌 사람’, ‘하느님께 사로잡힌 사람’(앙드레 루프) 일 뿐입니다. 

곧 우리가 하느님을 제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제지하시도록 승복하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제지는 우리의 굴복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로운 응답’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지금 내가 원하는 바를 얻으려고 예수님을 ‘붙잡으려’ 하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께 ‘붙들려’ 사로잡혀 따라가고 있는지 보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붙드셨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에 매달려 있는 이들인 것입니다. 

사실 친척들이 예수님을 붙잡으러 나선 이유는 예수님이 ‘미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붙들린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생각에 붙들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생각에 붙잡혀버리지 않도록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생각’은 하느님이 아니라 한갓 우리가 만들어 놓은 ‘우상’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예수님께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미치신 분’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께 사로잡히신, ‘아버지께 미치신 분’이십니다.

 

동시에 ‘나에게 미치신 분’이십니다.

비가 올 때나 눈이 올 때나, 내가 배신하고 무관심할 때마저도, 언제나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시는, 진정 ‘나에게 미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행복합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마르 3,21)

 

주님!

당신께 사로잡힌 자 되게 하소서.

당신을 붙잡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 붙잡히게 하소서.

나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에 사로잡혀 살게 하소서.

사람의 일이 아니라 당신의 일에 붙들리게 하소서.

당신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조정에 승복하여 살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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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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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걸레 | 작성시간 24.01.20 붇들려 살아가노라면
    행복은 나를찾아 오리라고 확신합니다,
  • 작성자아낄래요 | 작성시간 24.01.20 항상, 감사드립니다.~!
    이번 주말에도 건강하시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1.20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혜원 | 작성시간 24.01.20 아멘. 감사합니다 ~🙏💒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1.20 아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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