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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신부 강론

2024년 2월 25일 사순 제2주일

작성자푸른잎새|작성시간24.02.24|조회수499 목록 댓글 10

제1독서
▥ 창세기의 말씀 22,1-2.9ㄱ.10-13.15-18

 

그 무렵 

1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9 그들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곳에 다다르자,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고 장작을 얹어 놓았다.
10 아브라함이 손을 뻗쳐 칼을 잡고 자기 아들을 죽이려 하였다.
11 그때,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고 그를 불렀다.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보니, 덤불에 뿔이 걸린 숫양 한 마리가 있었다.
아브라함은 가서 그 숫양을 끌어와 아들 대신 번제물로 바쳤다.
15 주님의 천사가 하늘에서 두 번째로 아브라함을 불러 

16 말하였다.
“나는 나 자신을 걸고 맹세한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가 이 일을 하였으니, 곧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17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너의 후손은 원수들의 성문을 차지할 것이다.
18 네가 나에게 순종하였으니,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너의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제2독서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 8,31ㄴ-34

 

형제 여러분,
31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느님께 선택된 이들을 누가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을 의롭게 해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34 누가 그들을 단죄할 수 있겠습니까?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신 분, 또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신 분,
그리고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이십니다.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 9,2-10

 

그 무렵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에 공통으로 들어있는 말 한마디는 '아들'이라는 말입니다. 

제1독서에서 주님의 천사는 아브라함에게 말합니다.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아끼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바닷가의 모래처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창세 22,17)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준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로마 8,32)

그리고 복음에서 성부께서는 예수님의 세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마르 9,7)

이 세 이야기는 모두 ‘산’에서 벌어진 이야기입니다. 

제1독서는 모리야의 산에서, 제2독서는 갈바리 산에서, 복음은 타볼 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처럼 산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고 있습니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준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

(창세 22,2)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사랑하는 것, 소중한 것을 바쳐라 하십니다. 

 

그런데 혹 우리에게는 사랑하는 것, 소중한 것이 있는지요?

하느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 더 소중한 것 말입니다. 
만약 있다면, 그것을 모조리 살라 바쳐라 하십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아들을 끔찍이도 사랑했고, 소중히 여겼습니다.

늦게야 얻은 아들, 그것도 자신이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해줄 보증수표인 아들, 이 소중한 아들을 그는 너무도 사랑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분신이요, 자신의 미래였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 소중한 아들을 온전히 바쳐라 하십니다.

그를 통해서 ‘민족들의 조상’이 되리라는 그 희망도 부수어버려라 하십니다.

곧 자신의 전부를 바쳐라 하십니다.

나아가서 자신의 전부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미래와 종족의 미래까지도, 온전히 모조리 바쳐라 하십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하느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요, 무조건적인 수락의 요청이었습니다. 

그 이끄심에 따라 아브라함은 비로소 자신의 희망과 믿음과 사랑 때문에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하느님의 희망과 믿음과 사랑이 이루어지도록 순명하였습니다.

 

이를 가리켜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될 것을 믿었습니다.”

(로마 4,18)

그러나 당신께서 아브라함을 벼랑으로 끌고 온 것은 그를 벼랑에서 떨어트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벼랑을 건너게 해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벼랑 건너에는 더 나은 미래가 펼쳐져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결국 이 진정한 미래를 주기 위해서는 벼랑까지 끌고 와야만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야만이 그릇된 희망과 믿음과 사랑이 정화를 받을 수 있는 까닭이었습니다.

 

참으로 그것은 은총이었습니다.

믿음에 따라 이루어진 은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의 말합니다.
“약속은 믿음에 따라 이루어지고 은총으로 주어집니다.

(로마 4,16)

제1독서가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아들인 이사악을 ‘하느님께 번제물로 바치는’ 이야기라면,

제2독서는 반대로, 이제 하느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아드님을 ‘인간을 위해 내어주신’ 이야기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말합니다.
“당신의 친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준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로마 8,32)  

오늘 복음에서는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에 따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르 9,7)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내가 있어야 할 곳은 그 분 '말씀' 아래에 머무는 일입니다.

들려오는 말씀이 내 안에서 성취도록 말씀께 승복하는 일입니다.

말씀께서 나를 맘껏 쪼물딱거릴 수 있도록 말씀께 자신을 허용하고 수락하는 일입니다.

 

곧 자신을 예수님께서 머무시는 초막으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자신을 그야말로 말씀이 이루어져야 할 공간이요 장소로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오로가 말한 것처럼 ‘이 건물(초막)은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나고,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게 될 것입니다.’(에페 21-22 참조)

그것은 말씀의 힘을 수락하는 일이요, 변화의 힘이신 말씀께 자신을 건네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말씀을 주인 되시게 해 드리는 일이요, 주님을 주님 되시게 해 드리는 일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변모될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대로, “더욱더 영광스럽게 그분의 모습으로 바뀌어 걸 것입니다.”(2코린 3,18 참조)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는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당신의 말씀을 ‘듣는 것’이 바로 우리가 그분의 사랑에 따라 사는 일입니다. 

 

이렇게 그분께 순종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될 것입니다. 

이 ‘변모’가 바로 사순절의 근본 정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진정 오늘 변모되기를 바라는지요?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할 일입니다.

 

진정 거룩해지기를 바라는지요?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을 믿어야 할 일입니다.

 

진정 하느님 되기를 바라는지요?

그렇다면 그분의 말씀에 순명해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마르 9,7)

 

주님!

말씀의 권능으로 저를 덮으소서.

구름 속에서 울려오는 당신 음성으로 저를 덮치소서.

제 자신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장소가 되게 하소서.

저의 비천한 몸을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시키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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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앞동산 | 작성시간 24.02.25 아 멘 !
    감사합니다 ^^
  • 작성자가을비 | 작성시간 24.02.2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atti | 작성시간 24.02.25 Amen.
  • 작성자발아래 | 작성시간 24.02.25 아멘. 감사합니다.
  • 작성자혜원 | 작성시간 24.02.25 아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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